어제 저녁까지도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쳤다.
오늘은 뮌헨에 온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다.
그렇다.
오늘은 전쟁과 광기의 상징인 수용소를 갈 참이다.
우리는 아우슈비츠만 상징적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전쟁의 광기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1000여개의 수용소가 존재했고
비슷하거나 똑같은 모습으로 유대인과 그들이 소위 말하는
2등 시민들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고 있었다.
오늘 갈 곳은 다하우 수용소이다.
이곳은 뮌헨 근교에 있는 곳인데
최초로 세워진 유대인 집단수용시설이다.
물론 이전에 게토라고 하는 유대인 구역이 있었지만
이곳 수용소는 그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뮌헨 캠핑장의 유쾌한 리셉션을 뒤로 하고
다하우 방향으로 달렸다.
오늘은 다하우 수용소에 들렀다가 체코로 넘어갈 예정이다.
뮌헨을 벗어나 교외로 나섰다.
다하우 수용소는 뮌헨 시내에서 4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하우 시내에 들어서서 방향을 물었다.
지금까지 길 물으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사진을 들이다대는 방법!!
베어 이스트 다스? 웨얼 이즈 잇?
이거면 된다. 뭐 짜달시리 어렵게 고민할 필요없다.
길 가던 커플에게 물으니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해준다.
감 잡고 다하우 수용소로 향하는데
한적한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야 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다하우 수용소로 들어서는데
날씨마저도 너무 음산하다.
입구 대문엔 상투적 거짓말이 붙어 있다.
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일하모 자유를 준다꼬? 에라이 거짓말쟁이 새끼덜아!!
거짓말이 써진 대문을 들어서자 황량한 광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점호를 했는데 숫자가 맞을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세워두었다고 하는데 전쟁은 미친짓이다.
광장을 지나서 예전에 관리동으로 사용했던 박물관으로 향했다.
특징적인 것이 이곳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단체로 이곳을 찾아 조상들의 흔적 속에서
조용히 흐느끼고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도 36년간의 식민지 생활을 통해 탄압을 받았기에
이들이 느끼는 조용한 분노와 흐느낌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현재의 모습이다.
힘을 가진자의 압박 속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뤘던 그들이
지금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자그마한 땅을 향해서
나치가 저질렀던 그대로 어쩌면 더 이상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을 가하고 탄압을 가하고 있다.
게토 같은 가자 지구, 대낮에도 미사일을 쏴대는 야만성...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배워서 그런가?
아뭏든 그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반성은 엄청나게 인간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본다.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와서...
박물관은 사진과 유품들로 몇 개의 방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었다.
가스실험을 통해서 죽어가는 모습
압력실험을 통해서 죽어가는 모습 등이 사진으로 남아져 있었고
탈출을 시도하다 전기철조망에 너덜너덜 걸려있는 주검도 남아 있었다.
한 마디로 형극의 현장이다. 오홋... 이렇게 유식한 말을? ^^
음 웃어서 미안하다. 이곳은 엄숙해야 하는 곳인데
어쨋든 진지함은 나같은 무식한 이에게도 영감을 주는 모양이다.
관리동을 벗어나자 징벌방이 보이는데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을
수감해두는 곳이었다.
서대문 형무소를 보는 듯 하다.
그래서 남의 일 같지 않다. 가슴 한켠이 울컥해온다.
구치소를 지나서 실제로 수용했던 시설로 향하는데
침대가 정말 작다. 나무로 대충 만든 침대는
내가 눕기에도 작아보였는데 키 큰 서양인이라면?
담장을 따라 감시초소가 그대로 남아 있고
전기 철조망도 옛모습 그래도다.
아래 사진의 돋아오른 부분이 예전의 수용소 막사인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막사를 돌아서 가스실로 향했다.
목욕탕이라고 적혀 있지만 물이 나오는 구멍에선
가스가 나왔다고 한다.
사린 가스에 목이 타는 괴로움 속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았을 안타까운 인간들에게
숙연한 마음과 나치에 대한 울분과
전쟁의 광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시에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인지 사진마저도 흔들린 모양이다.
가스실 안에서는 도저히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오는 시체들은 그 옆의 화장막 두 군데에서
태웠는데 나중엔 그것마저도 부족해서
수용소 남단의 대형 소각장에서 불태웠다고 한다.
이스라엘인들만이 슬픈게 아니라 우리도 슬펐다.
뜨거운 한 덩어리가 가슴에서 코로 올라온다 눈아랫쪽을 찌른다.
아프다...
가스실과 화장막을 끝으로 다하우 수용소 순례는 끝이 났다.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분노로 마음을 다잡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방랑자며 여행객이다.
감상에 취해 오래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벤취에 한참을 앉았다 우리는 프라하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그런데 차안에서 나는 발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완전히 발이 썩는 냄새가 난다.
나와 함께 했던 아쿠아 슈즈는 쓰레기통으로 갔다.
피유... 그 냄새라니...
다하루를 지나서 레겐즈부르크를 지나 슈반도르프까지는
말그대로 아우토반이다.
뷔유웅~~!! 달렸다.
슈반도르프까지 1시간 20분만에 도착했다.
슈반도르프까지는 200킬로미터가 넘는다. 흐흐흐
비만 안 왔으면 1시간 10분 안에도 가능했을 것인데 아쉽다.
차도 없고 한적한 길이다.
길 마저 쭈욱 뻗어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가속패달을 밟으면
180킬로미터는 그냥 나온다.
간이 작아서 185킬로미터가 최고 속도인데 나르는 기분이더라.
그래도 나는 속도도 아니다.
오토바이가 한 번씩 170킬로미터로 달리는 나를 추월하는데
그 넘들은 22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이지 싶다.
보통 20킬로 미터 이상 빨라야 추월이 가능하고
쌔앵 추월하려면 50킬로미터 이상 빨라야 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
슈반도르프를 지나자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구릉으로 이루어진 길을 지나는데 비가 쏟아진다.
풍경이 너무 장관이다.
이곳은 독일의 국립공원지역인데
지나치는 풍경이 나중의 오스트리아나 스위스와 비슷했다.
얼마를 달리니 체코와의 국경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지나서 조금 더 가니 검문소가 나오고
여권을 체크하고 체코로 들어섰다.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플젠(PLZEL)을 지나서 프라하로 가는 길은
정말 멋있었다.
이런 멋진길을 두 시간 가까이 달려야 프라하다.
프라하로 가기전 조그마한 마을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주 아주 맛있는 스테이크에 음료수에 아이스크림까지
물가가 예술이다. 3만원 정도에 계산이 완료다.
환상적이다. 게다가 체코의 필스너 생맥주는 그 맛이 예술이다.
시원하면서도 깔끔하고 그리고 풍부한 감칠맛까지!!
맥주는 독일과 체코가 최고라고 본다.
식사를 마치고 프라하로 프라하로 향했다.
운전대를 아내에게 넘기고 한가로히 앞창에 발올리고
달려 나간다.
저녁 무렵 프라하의 캠핑장에 도착을 했다.
적당한 곳을 골라서 텐트를 쳤는데 양쪽 이웃이
다 프랑스 사람들이다.
봉쥬르~~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레스토랑에서 가졌다.
밥값이야 끝내주는 것은 당연지사고
그 맛 또한 연하고 맛있는 소고기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사흘간 그 집에서 저녁 참 맛있게 많이 먹었다^^
사람 좋던 웨이터 아자씨도 생각이 난다.
아 다녀오고 나니 왜 또 이리 가고 싶은지 모르겠다.
내일은 프라하의 멋진 모습이 펼쳐집니다.
여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는 파리와 프라하라고 하지요.
프라하에선 연인도 잘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기 다 이유가 있더만요.
오늘은 뮌헨에 온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다.
그렇다.
오늘은 전쟁과 광기의 상징인 수용소를 갈 참이다.
우리는 아우슈비츠만 상징적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전쟁의 광기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1000여개의 수용소가 존재했고
비슷하거나 똑같은 모습으로 유대인과 그들이 소위 말하는
2등 시민들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고 있었다.
오늘 갈 곳은 다하우 수용소이다.
이곳은 뮌헨 근교에 있는 곳인데
최초로 세워진 유대인 집단수용시설이다.
물론 이전에 게토라고 하는 유대인 구역이 있었지만
이곳 수용소는 그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뮌헨 캠핑장의 유쾌한 리셉션을 뒤로 하고
다하우 방향으로 달렸다.
오늘은 다하우 수용소에 들렀다가 체코로 넘어갈 예정이다.
뮌헨을 벗어나 교외로 나섰다.
다하우 수용소는 뮌헨 시내에서 4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하우 시내에 들어서서 방향을 물었다.
지금까지 길 물으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사진을 들이다대는 방법!!
베어 이스트 다스? 웨얼 이즈 잇?
이거면 된다. 뭐 짜달시리 어렵게 고민할 필요없다.
길 가던 커플에게 물으니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해준다.
감 잡고 다하우 수용소로 향하는데
한적한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야 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다하우 수용소로 들어서는데
날씨마저도 너무 음산하다.
입구 대문엔 상투적 거짓말이 붙어 있다.
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일하모 자유를 준다꼬? 에라이 거짓말쟁이 새끼덜아!!
거짓말이 써진 대문을 들어서자 황량한 광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점호를 했는데 숫자가 맞을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세워두었다고 하는데 전쟁은 미친짓이다.
광장을 지나서 예전에 관리동으로 사용했던 박물관으로 향했다.
특징적인 것이 이곳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단체로 이곳을 찾아 조상들의 흔적 속에서
조용히 흐느끼고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도 36년간의 식민지 생활을 통해 탄압을 받았기에
이들이 느끼는 조용한 분노와 흐느낌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현재의 모습이다.
힘을 가진자의 압박 속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뤘던 그들이
지금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자그마한 땅을 향해서
나치가 저질렀던 그대로 어쩌면 더 이상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을 가하고 탄압을 가하고 있다.
게토 같은 가자 지구, 대낮에도 미사일을 쏴대는 야만성...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배워서 그런가?
아뭏든 그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반성은 엄청나게 인간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본다.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와서...
박물관은 사진과 유품들로 몇 개의 방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었다.
가스실험을 통해서 죽어가는 모습
압력실험을 통해서 죽어가는 모습 등이 사진으로 남아져 있었고
탈출을 시도하다 전기철조망에 너덜너덜 걸려있는 주검도 남아 있었다.
한 마디로 형극의 현장이다. 오홋... 이렇게 유식한 말을? ^^
음 웃어서 미안하다. 이곳은 엄숙해야 하는 곳인데
어쨋든 진지함은 나같은 무식한 이에게도 영감을 주는 모양이다.
관리동을 벗어나자 징벌방이 보이는데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을
수감해두는 곳이었다.
서대문 형무소를 보는 듯 하다.
그래서 남의 일 같지 않다. 가슴 한켠이 울컥해온다.
구치소를 지나서 실제로 수용했던 시설로 향하는데
침대가 정말 작다. 나무로 대충 만든 침대는
내가 눕기에도 작아보였는데 키 큰 서양인이라면?
담장을 따라 감시초소가 그대로 남아 있고
전기 철조망도 옛모습 그래도다.
아래 사진의 돋아오른 부분이 예전의 수용소 막사인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막사를 돌아서 가스실로 향했다.
목욕탕이라고 적혀 있지만 물이 나오는 구멍에선
가스가 나왔다고 한다.
사린 가스에 목이 타는 괴로움 속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았을 안타까운 인간들에게
숙연한 마음과 나치에 대한 울분과
전쟁의 광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시에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인지 사진마저도 흔들린 모양이다.
가스실 안에서는 도저히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오는 시체들은 그 옆의 화장막 두 군데에서
태웠는데 나중엔 그것마저도 부족해서
수용소 남단의 대형 소각장에서 불태웠다고 한다.
이스라엘인들만이 슬픈게 아니라 우리도 슬펐다.
뜨거운 한 덩어리가 가슴에서 코로 올라온다 눈아랫쪽을 찌른다.
아프다...
가스실과 화장막을 끝으로 다하우 수용소 순례는 끝이 났다.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분노로 마음을 다잡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방랑자며 여행객이다.
감상에 취해 오래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벤취에 한참을 앉았다 우리는 프라하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그런데 차안에서 나는 발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완전히 발이 썩는 냄새가 난다.
나와 함께 했던 아쿠아 슈즈는 쓰레기통으로 갔다.
피유... 그 냄새라니...
다하루를 지나서 레겐즈부르크를 지나 슈반도르프까지는
말그대로 아우토반이다.
뷔유웅~~!! 달렸다.
슈반도르프까지 1시간 20분만에 도착했다.
슈반도르프까지는 200킬로미터가 넘는다. 흐흐흐
비만 안 왔으면 1시간 10분 안에도 가능했을 것인데 아쉽다.
차도 없고 한적한 길이다.
길 마저 쭈욱 뻗어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가속패달을 밟으면
180킬로미터는 그냥 나온다.
간이 작아서 185킬로미터가 최고 속도인데 나르는 기분이더라.
그래도 나는 속도도 아니다.
오토바이가 한 번씩 170킬로미터로 달리는 나를 추월하는데
그 넘들은 22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이지 싶다.
보통 20킬로 미터 이상 빨라야 추월이 가능하고
쌔앵 추월하려면 50킬로미터 이상 빨라야 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
슈반도르프를 지나자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구릉으로 이루어진 길을 지나는데 비가 쏟아진다.
풍경이 너무 장관이다.
이곳은 독일의 국립공원지역인데
지나치는 풍경이 나중의 오스트리아나 스위스와 비슷했다.
얼마를 달리니 체코와의 국경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지나서 조금 더 가니 검문소가 나오고
여권을 체크하고 체코로 들어섰다.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플젠(PLZEL)을 지나서 프라하로 가는 길은
정말 멋있었다.
이런 멋진길을 두 시간 가까이 달려야 프라하다.
프라하로 가기전 조그마한 마을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주 아주 맛있는 스테이크에 음료수에 아이스크림까지
물가가 예술이다. 3만원 정도에 계산이 완료다.
환상적이다. 게다가 체코의 필스너 생맥주는 그 맛이 예술이다.
시원하면서도 깔끔하고 그리고 풍부한 감칠맛까지!!
맥주는 독일과 체코가 최고라고 본다.
식사를 마치고 프라하로 프라하로 향했다.
운전대를 아내에게 넘기고 한가로히 앞창에 발올리고
달려 나간다.
저녁 무렵 프라하의 캠핑장에 도착을 했다.
적당한 곳을 골라서 텐트를 쳤는데 양쪽 이웃이
다 프랑스 사람들이다.
봉쥬르~~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레스토랑에서 가졌다.
밥값이야 끝내주는 것은 당연지사고
그 맛 또한 연하고 맛있는 소고기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사흘간 그 집에서 저녁 참 맛있게 많이 먹었다^^
사람 좋던 웨이터 아자씨도 생각이 난다.
아 다녀오고 나니 왜 또 이리 가고 싶은지 모르겠다.
내일은 프라하의 멋진 모습이 펼쳐집니다.
여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는 파리와 프라하라고 하지요.
프라하에선 연인도 잘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기 다 이유가 있더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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