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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tour story)

totalclimber2003.04.09 18:30조회 수 470추천 수 1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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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작품중에 "수레바퀴아래서"라는 것이 있다. 읽은지 오래되어서 기억에 가물가물거리지만, 아침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주인공에게 했던 말은 아직 또렷히 남아있다. "여러분들은 항상 달리는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도록 힘을 남겨둬야 된다.…" 나에게 있어 자전거란 항상 교장선생님의 이 훈시같았다. 일상이라는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도록, 나를 지탱해주는, 가끔은 나를 위로해주는 무언가였다.

토요일 오전, 일찍 일을 끝냈다. 수업이 끝나고, 수업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실험실 문을 나선다. 4월의 햇살이 구름에 가려 약하게 빛난다. 유난히 경산에는 못이 많다. 우리학교도 못이 많은 편이다. 과 건물 오른편으로 개나리와 버드나무가 각각 노란빛과 연둣빛을 낸다. 학교뒷편 할인마트에 가서 이런저런 준비물을 챙겼다. 먹을 것도 조금사고, 필름도 사고, 자전거에 문제가 없는지 이곳저곳을 살폈다.

이윽고 출발... 장거리를 여행할때는 항상 출발에는 나름대로의 느낌이 있다. 앞으로 그려질 훤한 고통때문인지, 설레임반 두려움 반이다. 3년전에는 시간에 쫓겨 너무 고생한 탓에, 오늘은 앞당겨 출발하였다. 시속 20km/h 유지가 목표다. 운문호 가는길에 으레히 만나는 고개들을 수월히 넘었다. 진행속도가 꽤 빠른편이었지만, 오버페이스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운문호 정상에서 잠시 호에 고인 물을 바라보다가 건천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운문호

언제나 그렇게 도도한 정적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구나.

말없이 그저
항상 푸르른 몸짓으로

마치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녹여 낼 듯한
여신의 형상으로,

때로는 깊이와 속내를 가늠하기 힘들게 하는
속 좁은 여인네의 모습으로,

늘 내게
오르막과 내리막이라는
짐과 방책을 던지는구나.

<운문호 정상에서...>



생활은 늘 이끼가 끼기 마련이다. 내게 있어 생활이란, 학생으로서 할 일과, 어학공부, 미래에 대한 준비같은 것일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가끔 하는 일들이 나를 괴롭혀도, 이내 좋아지곤 했는데... 더 이상 새로움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걸 발견해낼 의지마저도... 운문호 정상에 서니 이번 여행을 하게 된 이유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자전거가 항상 곁에 있고,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갈수 있으니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자전거를 타면, 눈 앞으로 다가왔던 길들이 다시 뒤로 가고, 페달링을 통한 기계적인 반복뿐인데 그것만으로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있나보다.



의곡가는 길에 교각이 높은 다리가 있다. 거기에 잠시 섰다. 이윽고, 오토바이 운전자가 나타났다. 언듯보니 외국인인 듯 하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제각기 갈길을 간다. 여기서도 운문호가 훤히 보인다. 다만, 물이 빠져서 호를 만들기 전에 산의 형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장자리에 죽은 나무들이 빽빽하다.



의곡에 너무 수월하게 도착했다. 건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 북쪽으로 가면 건천이고, 남동쪽으로 가면 언양으로 가는 길이다. 작은 읍정도도 않되는 규모이고, 생계는 고기를 파는 식당이나 가게 그리고 농사가 주인 것 같다. 너무 조용한 시골이다. 진행속도가 세배정도빠르다. 의곡에서 언양까지도 너무 수월하게 지나왔다. 예전에 깜깜한 밤에 그렇게도 고생했던 고갯길이 이렇게 쉬이 길을 내주다니...



출발한지 4시간 30분만에 언양에 도착했다. 어느 조그만 도자기가게 앞에서 울산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올수 있나고? 급하게 전화를 했던 터라 내심 불안했는데, 나오겠단다. 그래서, 지금이 4시이니 5시까지 울산까지 내달리겠노라고 했다. 오늘 라이딩중 가장 힘들었다. 약속을 미리 해 버렸으니... 친구가 더구나 선약이 있다고 하니 더욱 그럴수 밖에없었다. 소금을 길바닥에 뿌릴 정도로... 거의 한 시간만에 울산에 도착했다. 공단의 도시 답다. 울산은 거의 우리나라 대기업의 하나인 H기업과 일맥상통한다는 이야기가 틀린데 아닌 듯 하다. 온통 H라는 간판과 상품들만 눈이 띈다. 강을 가로질러 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대나무는 대게 집 뒷산 같은데 키우곤 했는데, 강 가운데 철새 도래지같이 울창한 대숲을 보니 생소한 느낌이다. 친구와 약속이 어긋나 몇 번을 전화를 주고 받고 한뒤 H백화점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녁늦게 모임이 있다는 걸 오라고 했으니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두어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고기를 먹는 것보다 찌개같은 걸 먹는게 나을 것 같아서 근처 쌈밥집에 갔다. 찬이 꽤 나왔던 것 같은데, 대부분 남긴 것 같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가 입맛이 없었다. 두어시간이 어떻게 가는줄도 몰랐다. 시골에서 자랄 때 친구라서 격식을 차릴필요도 없고, 대화가 무리없이 흘러간다. 당연히 1장1막은 나의 자전거이야기이다. 주저리주저리, 어쩌고저쩌고... 거기다가 자전거에 얽힌 개똥철학까지 가하면, 친구의 반응은 거의 고무적이다. 다음 장은 친구의 이야기. 회사이야기, 오랜 친구들 이야기. 자리를 옮겨 커피한잔 마셨다. 커피전문점이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다방분위기이다. 누리끼리한 푹신한 2인용 의자에 등받이에 흰 사각형 천을 올려놓은 것이... 소위 무늬만 전문점이다. 식당에서의 대화가 다시 이어져 간다. 노곤함과 여행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러나, 가야한다. 친구도 여기서 자고가라고 권했지만, 피곤함 때문에 그리고 어둠 때문에 여행을 여기서 이어가지 못하면 나중에 나의 나약함을 질책할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8시이다. 울산 시내는 벌써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가족들과 벛꽃구경을 나온 사람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는듯한 한무리의 중학생들, 너무 다정해 보이는 연인들... 그러나, 벌써 머릿속에 3년전의 주전고개가 그려진다. 제발 여기만 무사히 내려가게 해 주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며 올랐던 곳이다. 그때는 보슬비가 살살 내리고 있었고, 더구나 안개가 너무 진했다. 게다가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래서, 더욱 고생스럽게 주전고개를 넘은 듯 하다. 그리고, 산속으로 난 길이라, 휘황찬란한 울산시내에 비하면 캄캄하다. 다만, 오가는 차들이 있어 적막감은 들지가 않는다. 조심해서 가라는 친구의 배웅을 뒤로하고 출발이다. 편의점에 가서 음료한병사고, 울산MBC를 돌아서 경찰서쪽으로.... 이윽고, 주전고개 초입에 들어섰다. 내가 여기를 올라야 되는가 잠시 머릿속으로 고민을 했다. 결론은, 업힐을 하는데 30분에서 40분정도 걸렸다. 그리고, 승부는 너무나 쉽게 나의 승리로 결말이 났다. 너무 쉽게 올라서 감흥이 예전같지는 않았다. 정상에서 울산시내를 보며 다음을 기약했다.

기울기 zero point를 향하여

바람소리 가득한 속에
그곳을 향해간다.

등뒤에 큰 하늘을 지고
발아래 내 몸을 지고

pedal을 통해
crank를 지나
다시 chain으로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부딪긴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단지 찬 바람소리와 굵은 땀방울뿐
소용돌이치는 고개의 끝은
가쁜 숨소리뿐.

- 주전고개를 뒤로한채 -

라이트를 가져가지 않은 것이 다운힐에서 보상받지 못한 이유였다. 차를 잡에서 헤드라이트로 다운힐을 하려했으나, 차를 잡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속력를 많이 내지 않았다. 반대편차가 휙하고 지나가면 잠시동안은 눈앞이 캄캄했다. 10여분의 다운힐 끝에 정자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얼마나 기쁘던지... 그때는 자정을 넘긴 시각에 여기에 도착했는데, 여기가 바닷가인줄 몰랐었다. 갑자기 눈앞에 출렁거리는 무언가가 나타났었는데, 그게 파도였다. 그때는 파도앞에서 반드시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있으리라 다짐했었는데...
정자해수욕장은 늘 그대로였다. 이번이 세 번째다. 숙박하는데도 많고, 멋진 커피숍들도 많고, 회먹는곳도, 무엇보다 까만 돌로 된 해안가가 가장 자랑할 만하다. 파도가 치면, 돌이 파도에 쓸려나가면서 "자르르 자르르"하는 소리가 들린다. 더구나, 한 여름밤에 듣는 그 맛이란.... 오늘은 해안가에 사람이 거의 없다. 까만 돌들도 다들 어디로 쓸려갔는지, 그보다 작은 굵은 모래들만 가득하다. 파도도 예전보다 훨씬 높다. 나가는 파도와 몰려오는 파도가 부딪치며 꽤 큰 소리를 낸다. 가끔 쿠쿵 하는 소리까지 난다.

다시 외동으로 향했다. 이번여행의 최대격전지이다. 정확이 외동이 어디인지 모르나, 아무튼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벌써부터 다리에 힘이 풀린다. 캄캄한 동네를 몇 개 지났다. 요즘은 대게 시골에도 가로등이 있다. 산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동네들을 볼때마다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과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그들의 노고가 보인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나이든 사람들만 지키는 우리나라 농촌들... 우리나라 산천을 돌아보면 어느 마을이든지, 어떤 나무든지, 바위든지 말하지 않는 한같은 것이 서려있는 것같다. 그래서, 가끔 도로를 나서는게 망설여진다. 고개까지 approach하는데도 무척 많은 시간이 걸렸다. uphill은 거의 1시간이상을 했다. 중간에 학교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새벽일찍 경주터미널에 도착할 것이라도 했다. 물론 나오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침에 같이 밥먹고, 나 좀 대구까지 태워달라는 부탁을 했다. 흔쾌히 승낙했다. 이 고개는 산새는 완만하지만, 모양새는 한계령의 그것에 견줄만하다. 굽이쳐 올라가는 모양이... 늘 절망적인 순간은 다음과 같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먹을 물조차 변변치 않고, 더구나 큰 고개의 초입에 자전거여행자가 섰을 때... 외동으로 가는 고개를 넘을때면 항상 이런기분이다. 정말 지루하고 힘든 업힐이 계속되었다. 이 고개를 돌면 끝이 나겠지하고 고개를 쳐들면, 멀리 차량이 불꼬리를 흔들며 고개가 남았음을 알리며 내려온다. 그렇게 절망하며 얼마나 올랐을까... 너무 싱겁게 정상이 나타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왜 산을 타냐고 물으면 대게 대답이 이런식이다.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간다." 논리적인 대답은 아니다. 벼논에 메뚜기는 잡을려고 하면 뛴다. 그러나, 메뚜기는 자기가 왜 뛰어야 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어쩌면 나도 왜 밥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왜 일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뭣 때문에 자전거타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런일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외동으로 가는 고개정상에서 짧은 생각들...)

휘이이... 헬멧으로난 구멍속으로 바람이 공명을 일으킨다. 역시 여기서도 다운힐에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앞이 거의 보이질 않아 희미하게 보이는 중앙선을 따라 내려왔다. 여정이 예상보다 삼분의 일정도 앞당겨졌다. 경주터미널에 새벽 두시쯤에 도착했다. 얼마나 추웠던지, 벛꽃은 눈에 안 들어오고 빨리 간다는 생각만 했다. 딱히 갈곳도 없고, 편의점에서 커피도 마시고, 좀 챙겨먹으면서 몇시간을 보냈다. 창 밖으로 밤새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는것도 재미있었다. 아침에 보니 차량들 본넷에 서리가 왔었다.(편의점에서 후배를 기다리며 이번 여행을 정리하다.)

참, 난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남겨두었다. 몸이 다 소진될때까지 무리한 여행을 하지는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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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2003.4.9 19:21 댓글추천 0비추천 0
    Total--님, 마치 내가 직접 잔차타고 경치들을 둘러 보는 듯 하네요..
    억수로 멋있다..ㅋㅋ
    나도 잔차타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단지 좋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담에 또 멋진 코스 개발해서 초보들 안내 좀 부탁합니다.
    늘 안전 라이딩, 즐거운 라이딩 하세요
  • 2003.4.9 20:00 댓글추천 0비추천 0
    울산 넘어 오실때 산내쪽 보다는 운문사쪽이 훨씬 빡샐것 입니다
    정자 지나서 양남에서 외동(입실)쪽으로 가셨군요 무식하게 타셨군요
    저는 울산에 사는 달려라 영구 바로 위 형 입니다 근육맨님 동화님과 안면이 있죠 다음에 같이 한번 타 봅시다 왈바님들....
  • totalclimber글쓴이
    2003.4.10 01:05 댓글추천 0비추천 0
    Tom형님... 좋은 평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놓고 보니 약간 x팔립니다. ㅎㅎㅎ
  • totalclimber글쓴이
    2003.4.10 01:07 댓글추천 0비추천 0
    bottom님(ID이걸로 쓰시나요) 반갑습니다. 음, 약간 무식하게 탔습니다. 저도 가는 도중에 쪼금 무리한 여행이라는 생각은 했었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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