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서울 출장. 6월 5일 6일은 연휴...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대구에서 가기 힘든 철원지역을 라이딩하기로 맘먹었습니다. 이 지역은 제가 20여년전 군생활을 했던 곳이고 두번 다시 올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곳인데 나이가 드니 그 때 그시절이 생각나 이 참에 떠났습니다.
첫날은 일산에서 서울로가서 수유리가는 방향쪽인 인사동 골목 한 모텔에서 자고 아침먹고 수유리에서 버스로 철원으로 가서 본격적인 철원 라이딩을 시작하였습니다. 혹 기회가 되어 가실 왈바 식구들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사진과 함께 올려봅니다.
철원 동송읍이라는 군사도시에 들어섰을때 눈에 띤 히트상품. 반팔링. 군사도시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철원지역을 라이딩하다보면 거대한 시멘트 사각덩어리가 도로 옆에 도열하듯 설치되어 있는 풍경을 자주 만난다. 철원은 북한의 탱크가 내려올 수 있는 길목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유사시에 이 시멘트 덩어리를 무너뜨려 탱크가 남하하는 걸 막는다. 지금은 동송읍에서 휴전선을 향해 북진중... 양옆으로는 지뢰밭이고 두루미 서식지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민간인 통제선안에 도피안사라는 유서깊은 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민통선이 물러나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도피안사에는 5층석탑과 대적광전에 있는 철불좌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송읍에서 휴전선을 향해 약 4km가면 학저수지 옆으로 도피안사가 보인다.
후 삼국시절 궁예의 건국지였던 철원은 해방이후에는 북한의 관할구역이었다. 지금은 휴전선에 가까이 있어 쇠퇴한 지역이지만 예로부터 철원평야는 강원도 최대의 곡창지대이다. 전쟁 막바지에 철원평야를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백마고지 전투이다. 해방이후 휴전까지 북한은 러시아식으로 이 건물을 지어 철원지역을 통치하였다. 노동당사 역시 과거에는 민통선 안쪽에 있어 가볼 수 없었으나 이젠 민통선을 바로 노동당사 옆으로 옮겨 자유로이 갈 수 있다. 노동당사의 벽에 나있는 포탄자국과 총탄 자국을 보면 한국전쟁의 그 치열함을 느끼게 된다. 동송읍에서 북방 10km.
여기가 바로 노동당사 옆의 민간인 통제선이다. 백마고지는 좌회하여 4KM정도. 자전거로는 민통선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길로 쭉 가면 월정리역과 땅굴과 북한의 땅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이길로 들어갈려면 허가를 받아 버스로 들어가야 한다. 20여년전 군생활하던 당시 자주 들락거리며 보았던 그 민통선안의 풍경과 북녁땅을 떠 올리며 자전거 바퀴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철원에서 신철원쪽으로 달리면 철원평야를 가로 지르는 한탄강을 만난다. 철원평야는 백두산보다 한 참 더 뒤에 화산활동이 있었던 곳이다. 화산활동에 의해 기존의 물길이 막혀 새 물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지금의 한탄강이다. 화산지대이기에 수직의 절리(암석이 갈라진 틈)이 발달해 강옆으로는 대개 절벽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여타 강과는 다른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한탄강을 따라서 드문드문 보이는 한탄강의 절경은 이 지역 라이딩의 특별한 재미이다.
직탕폭포를 지나서 고석정으로 가는 길에 맷돌 공장을 보았다. 이 지역은 용암에서 개스가 빠져나와 만들어진 이런 거칠거칠한 현무암이 많이 분포한다. 그래서 맷돌공장은 이 지역의 특별한 풍경이다.
고석정 조선조 명종 때 임꺽정이 등과의 길이 없는 것에 불만을 품고 동조하는 무리들을 모아 대적단을 조직,조정에 상납되는 각종 공물들을 탈취하여 어려운 서민에게 분배해준 의적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매고 계단을 한 200여개 내려가면 한탄강 최고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노동당사로 부터 약 30km. 여기서 잠시 머문 후 승일교를 지나 신철원으로 향한다.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고 불리는 승일교는(길이 120m, 높이 35m, 너비 8m) 1948년 북한에서 공사를 시작하였다가 6.25전쟁으로 중단되었었다. 그후 휴전이되어 한국땅이 되자 1958년 12월 한국정부에서 완성하였다. 기초공사는 북한이, 상판공사 및 마무리 공사는 한국이한 남북합작의 다리가 되었다. 김일성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서 이승만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과 6.25전쟁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는 후자의 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저녁무렵의 한탄강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깍아지른 절벽과 푸른 물길... 북녁땅에서 발원되어온 한탄강은 휴전선을 가로질러 이렇게 남으로 흐르고 있다.
이 지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도로 표지판이다. 20톤이상의 탱크는 지나가지 마시오...
신철원에서 다시 남쪽으로 40km정도 내려오면 운천을 지나 산정호수에 가까워진다. 저 멀리보이는 산이 산정호수 뒤의 명성산이다. 저기 보이는 가로등을 따라 꼬불꼬불 올라가야 산정호수에 다다를 모양이다. 갈길이 멀다.
산정호수 입장권은 1200원이다. 나중에 안 거지만 이 돈 아낄려면 신철원쪽에서 검문소 바로 지나 비포장으로 고개를 넘어오면 산정호수에 다다를 수 있단다. 시간과 돈, 둘 다 날렸다. 어쨌든 산정호수 상가에서 시작되는 이렇게 좋은 등산길이 있는 줄 모르고 빡시게 자동차 도로로 꼬불꼬불 산정호수로 올랐다. 내려오면서 후회막심. 왜 이런 호젓한 길을 몰랐을까.
말 그대로 산정호수는 산꼭대기에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명성산등 멋진 바위산과 어울려 그림같은 곳이었다. 산정호수 주변을 자전거로 도는 재미도 쏠쏠하다. 자전거 타는 이가 더러 있는 걸 보니 아마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토요일부터 3일의 연휴기간이라 산정호수는 돗대기 시장같다. 사람 너무 많았다. 이런데서 하루를 어떻게 자나. 시간은 벌써 오후 7시. 서울까지 가기엔 너무 늦다. 산정호수를 지나 명성산 쪽으로 계속 업힐을 하다보니 아주 인적이 길 옆에서 이런 곳을 만났다. 산정 B캠프. 문안쪽으로 나있는 길이 하도 매력적이라 무작정이리로 들어가 숲속길을 1km정도 업힐하니 산속에 매력적인 산장을 하나 만났다. 그래 여기서 자자.
맘씨 좋아 보이는 산장주인이 방이 좀 큰데 그래도 혼자 주무실라우? 묻는다. 어쨌든 한번 보기로 하자 또 산길로 접어든다. 숲속에 30평이 넘는 산막이 보인다. 여기요. 아~~ 이 숲속에 이런 큰 집에서 혼자 밤을 새야한다. 무섭지 않을까? 그것은 기우였다. 산장주인 아저씨와 숮불 바베큐와 소주로 시작하여 야밤에 포천 이동까지 넘어가 마신 술 덕분에 무서운 줄 전혀 모르고 모처럼 숲속에서 홀로 고요한 밤을 보냈다. 오늘 총 라이딩거리 약 90km.
산장주인이 내 놓은 바베큐는 정말 일품이었다. 주인 아주머니 말씀이 포천이동에서 잡아온 돼지고기를 꿀과 와인에 숙성시켰단다. 거기다 취나물... 둘이서 소주 7병을 비우다.
잠자고 이런 안주와 소주까지 합쳐 토탈 사만원, 주인아저씨가 너무 고맙다. 여행길에 만나는 좋은 사람들, 이래서 또 가고싶은 여행길.
대구가서 홍보 많이 하겠노라고 약속.
산정B캠프: 전화번호- 031-531-5952
명성산자락에 바로 붙은 이 산정B캠프라는 곳이 사유지인데 총 14만평이란다. 그래서 이 캠프내에 등산로를 다 내었다는 주인 아저씨의 말씀. 귀가 솔깃하다. 산(山)맛 한번 못보고 이대로 대구로 갈 수는 없는 노릇. 명성산에 오르기로 작정하고 아침도 거르고 바로 올랐다. 잣나무 숲길로 난 길이 너무 좋다. 군데 군데 끌바와 멜바도 필요하다. 이 고요한 아침에 궁예가 견훤에게 쫓겨 와 울었다는 이 명성산을 오른다는 게 너무 행복할 수 없었다.
막판은 가파른 바위산이다. 끌바로 올라 올라 선 8부 능선. 저 멀리 산정호수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신철원까지 보인다. 더 이상은 무리이다. 여기서부터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명성산에서 내려와 운천으로 향한다. 운천으로 가는 길에 만난 들꽃뜰 화원. 들어가 구경을 하니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 야생화 이야기를 해 준다. 야생화는 바람을 맞아야 죽지 않고 잘 클 수 있다고...
들꽃뜰을 나와 내려오는 길에 바람 생각을 했다. 우리 라이더들은 사시사철 바람을 맞고 있으니 야생화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거야. 이 집에 아가씨도 야생화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 집에 민박도 된단다.
운천에서 버스를 타고 의정부까지 왔다. 서울에서 한강변을 라이딩할까 하다 휴일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의정부에서 강남터미널까지 바로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앞뒤바퀴 분해해 차체는 안장을 어깨에 매어 오른팔로 감싸쥐고 왼손으로는 앞뒤 타이어를 움켜 잡으니 몸에 붙는다. 그래 이렇게 해서 타면 되겠지. 말리는 역무원 하나도 없다. 오케이. 지하철에서는 제일 앞칸에 조종석 뒤에 이렇게 놓으니 눈치 안보이고 괞찮았다. 대구서도 이렇게 해야지.
동대구행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도중 저쪽 떨어진 옆자리의 한 남자가 오징어를 건낸다. 거친 느낌의 남자지만 눈이 아주 맑다는 느낌을 가졌다. 한 참을 오니 그가 말을 건다. 한국에 온지 5개월이된 성서 어느 공장에서 일한다던 탈북자. 우연히도 그도 철원 북방 평강고원에서 군생활을 하였단다. 분단의 슬픔과 야릇함이 순간 밀려온다. 그의 억센 평안도 사투리속에 순수함이 배겨있다. 전화번호 건네지 못하고 헤어진게 아쉽다. 도움줄 일이라도 있으면...
오랜만에 떠나는 홀로 라이딩, 정말 좋았습니다.
첫날은 일산에서 서울로가서 수유리가는 방향쪽인 인사동 골목 한 모텔에서 자고 아침먹고 수유리에서 버스로 철원으로 가서 본격적인 철원 라이딩을 시작하였습니다. 혹 기회가 되어 가실 왈바 식구들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사진과 함께 올려봅니다.
철원 동송읍이라는 군사도시에 들어섰을때 눈에 띤 히트상품. 반팔링. 군사도시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철원지역을 라이딩하다보면 거대한 시멘트 사각덩어리가 도로 옆에 도열하듯 설치되어 있는 풍경을 자주 만난다. 철원은 북한의 탱크가 내려올 수 있는 길목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유사시에 이 시멘트 덩어리를 무너뜨려 탱크가 남하하는 걸 막는다. 지금은 동송읍에서 휴전선을 향해 북진중... 양옆으로는 지뢰밭이고 두루미 서식지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민간인 통제선안에 도피안사라는 유서깊은 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민통선이 물러나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도피안사에는 5층석탑과 대적광전에 있는 철불좌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송읍에서 휴전선을 향해 약 4km가면 학저수지 옆으로 도피안사가 보인다.
후 삼국시절 궁예의 건국지였던 철원은 해방이후에는 북한의 관할구역이었다. 지금은 휴전선에 가까이 있어 쇠퇴한 지역이지만 예로부터 철원평야는 강원도 최대의 곡창지대이다. 전쟁 막바지에 철원평야를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백마고지 전투이다. 해방이후 휴전까지 북한은 러시아식으로 이 건물을 지어 철원지역을 통치하였다. 노동당사 역시 과거에는 민통선 안쪽에 있어 가볼 수 없었으나 이젠 민통선을 바로 노동당사 옆으로 옮겨 자유로이 갈 수 있다. 노동당사의 벽에 나있는 포탄자국과 총탄 자국을 보면 한국전쟁의 그 치열함을 느끼게 된다. 동송읍에서 북방 10km.
여기가 바로 노동당사 옆의 민간인 통제선이다. 백마고지는 좌회하여 4KM정도. 자전거로는 민통선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길로 쭉 가면 월정리역과 땅굴과 북한의 땅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이길로 들어갈려면 허가를 받아 버스로 들어가야 한다. 20여년전 군생활하던 당시 자주 들락거리며 보았던 그 민통선안의 풍경과 북녁땅을 떠 올리며 자전거 바퀴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철원에서 신철원쪽으로 달리면 철원평야를 가로 지르는 한탄강을 만난다. 철원평야는 백두산보다 한 참 더 뒤에 화산활동이 있었던 곳이다. 화산활동에 의해 기존의 물길이 막혀 새 물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지금의 한탄강이다. 화산지대이기에 수직의 절리(암석이 갈라진 틈)이 발달해 강옆으로는 대개 절벽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여타 강과는 다른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한탄강을 따라서 드문드문 보이는 한탄강의 절경은 이 지역 라이딩의 특별한 재미이다.
직탕폭포를 지나서 고석정으로 가는 길에 맷돌 공장을 보았다. 이 지역은 용암에서 개스가 빠져나와 만들어진 이런 거칠거칠한 현무암이 많이 분포한다. 그래서 맷돌공장은 이 지역의 특별한 풍경이다.
고석정 조선조 명종 때 임꺽정이 등과의 길이 없는 것에 불만을 품고 동조하는 무리들을 모아 대적단을 조직,조정에 상납되는 각종 공물들을 탈취하여 어려운 서민에게 분배해준 의적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매고 계단을 한 200여개 내려가면 한탄강 최고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노동당사로 부터 약 30km. 여기서 잠시 머문 후 승일교를 지나 신철원으로 향한다.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고 불리는 승일교는(길이 120m, 높이 35m, 너비 8m) 1948년 북한에서 공사를 시작하였다가 6.25전쟁으로 중단되었었다. 그후 휴전이되어 한국땅이 되자 1958년 12월 한국정부에서 완성하였다. 기초공사는 북한이, 상판공사 및 마무리 공사는 한국이한 남북합작의 다리가 되었다. 김일성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서 이승만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과 6.25전쟁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는 후자의 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저녁무렵의 한탄강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깍아지른 절벽과 푸른 물길... 북녁땅에서 발원되어온 한탄강은 휴전선을 가로질러 이렇게 남으로 흐르고 있다.
이 지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도로 표지판이다. 20톤이상의 탱크는 지나가지 마시오...
신철원에서 다시 남쪽으로 40km정도 내려오면 운천을 지나 산정호수에 가까워진다. 저 멀리보이는 산이 산정호수 뒤의 명성산이다. 저기 보이는 가로등을 따라 꼬불꼬불 올라가야 산정호수에 다다를 모양이다. 갈길이 멀다.
산정호수 입장권은 1200원이다. 나중에 안 거지만 이 돈 아낄려면 신철원쪽에서 검문소 바로 지나 비포장으로 고개를 넘어오면 산정호수에 다다를 수 있단다. 시간과 돈, 둘 다 날렸다. 어쨌든 산정호수 상가에서 시작되는 이렇게 좋은 등산길이 있는 줄 모르고 빡시게 자동차 도로로 꼬불꼬불 산정호수로 올랐다. 내려오면서 후회막심. 왜 이런 호젓한 길을 몰랐을까.
말 그대로 산정호수는 산꼭대기에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명성산등 멋진 바위산과 어울려 그림같은 곳이었다. 산정호수 주변을 자전거로 도는 재미도 쏠쏠하다. 자전거 타는 이가 더러 있는 걸 보니 아마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토요일부터 3일의 연휴기간이라 산정호수는 돗대기 시장같다. 사람 너무 많았다. 이런데서 하루를 어떻게 자나. 시간은 벌써 오후 7시. 서울까지 가기엔 너무 늦다. 산정호수를 지나 명성산 쪽으로 계속 업힐을 하다보니 아주 인적이 길 옆에서 이런 곳을 만났다. 산정 B캠프. 문안쪽으로 나있는 길이 하도 매력적이라 무작정이리로 들어가 숲속길을 1km정도 업힐하니 산속에 매력적인 산장을 하나 만났다. 그래 여기서 자자.
맘씨 좋아 보이는 산장주인이 방이 좀 큰데 그래도 혼자 주무실라우? 묻는다. 어쨌든 한번 보기로 하자 또 산길로 접어든다. 숲속에 30평이 넘는 산막이 보인다. 여기요. 아~~ 이 숲속에 이런 큰 집에서 혼자 밤을 새야한다. 무섭지 않을까? 그것은 기우였다. 산장주인 아저씨와 숮불 바베큐와 소주로 시작하여 야밤에 포천 이동까지 넘어가 마신 술 덕분에 무서운 줄 전혀 모르고 모처럼 숲속에서 홀로 고요한 밤을 보냈다. 오늘 총 라이딩거리 약 90km.
산장주인이 내 놓은 바베큐는 정말 일품이었다. 주인 아주머니 말씀이 포천이동에서 잡아온 돼지고기를 꿀과 와인에 숙성시켰단다. 거기다 취나물... 둘이서 소주 7병을 비우다.
잠자고 이런 안주와 소주까지 합쳐 토탈 사만원, 주인아저씨가 너무 고맙다. 여행길에 만나는 좋은 사람들, 이래서 또 가고싶은 여행길.
대구가서 홍보 많이 하겠노라고 약속.
산정B캠프: 전화번호- 031-531-5952
명성산자락에 바로 붙은 이 산정B캠프라는 곳이 사유지인데 총 14만평이란다. 그래서 이 캠프내에 등산로를 다 내었다는 주인 아저씨의 말씀. 귀가 솔깃하다. 산(山)맛 한번 못보고 이대로 대구로 갈 수는 없는 노릇. 명성산에 오르기로 작정하고 아침도 거르고 바로 올랐다. 잣나무 숲길로 난 길이 너무 좋다. 군데 군데 끌바와 멜바도 필요하다. 이 고요한 아침에 궁예가 견훤에게 쫓겨 와 울었다는 이 명성산을 오른다는 게 너무 행복할 수 없었다.
막판은 가파른 바위산이다. 끌바로 올라 올라 선 8부 능선. 저 멀리 산정호수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신철원까지 보인다. 더 이상은 무리이다. 여기서부터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명성산에서 내려와 운천으로 향한다. 운천으로 가는 길에 만난 들꽃뜰 화원. 들어가 구경을 하니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 야생화 이야기를 해 준다. 야생화는 바람을 맞아야 죽지 않고 잘 클 수 있다고...
들꽃뜰을 나와 내려오는 길에 바람 생각을 했다. 우리 라이더들은 사시사철 바람을 맞고 있으니 야생화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거야. 이 집에 아가씨도 야생화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 집에 민박도 된단다.
운천에서 버스를 타고 의정부까지 왔다. 서울에서 한강변을 라이딩할까 하다 휴일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의정부에서 강남터미널까지 바로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앞뒤바퀴 분해해 차체는 안장을 어깨에 매어 오른팔로 감싸쥐고 왼손으로는 앞뒤 타이어를 움켜 잡으니 몸에 붙는다. 그래 이렇게 해서 타면 되겠지. 말리는 역무원 하나도 없다. 오케이. 지하철에서는 제일 앞칸에 조종석 뒤에 이렇게 놓으니 눈치 안보이고 괞찮았다. 대구서도 이렇게 해야지.
동대구행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도중 저쪽 떨어진 옆자리의 한 남자가 오징어를 건낸다. 거친 느낌의 남자지만 눈이 아주 맑다는 느낌을 가졌다. 한 참을 오니 그가 말을 건다. 한국에 온지 5개월이된 성서 어느 공장에서 일한다던 탈북자. 우연히도 그도 철원 북방 평강고원에서 군생활을 하였단다. 분단의 슬픔과 야릇함이 순간 밀려온다. 그의 억센 평안도 사투리속에 순수함이 배겨있다. 전화번호 건네지 못하고 헤어진게 아쉽다. 도움줄 일이라도 있으면...
오랜만에 떠나는 홀로 라이딩,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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