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은 국립 하노이사범대학 어문학과 재학생들과 함께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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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28일부터 5월4일까지 6박7일 동안
베트남 통일 31주년 축하사절단으로 베트남의 하노이와 하롱베이, 캇바섬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짐을 꾸릴 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전거를 먼저 챙기는 것이 우선이었지요.
왜냐하면 나는 당당한 바이커이기 때문입니다.
자전거의 부피가 커서 탁송료를 조금 더 지불했습니다.
4월28일 저녁 비행기로 인천을 떠나 밤 10시 반에 하노이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은 주말에다 베트남 통일절, 메이데이(국제노동절)로 이어지는 황금연휴라
공식적 일정을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일행은 우선 베트남 북부 동해안의 하롱 항으로 이동하여
선박 편으로 약 4시간 가까이 하롱베이를 달려 캇바 부두에 도착했습니다.
왜냐하면 공식일정을 갖는 5월1일 저녁까지 별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해가 뉘엿뉘엿하는 저녁 무렵,
캇바 부두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왜냐구요?
산 위로 길게 오르막으로 뻗어있는 너무도 멋진 자전거 코스가 보였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다만 바이커들에게만 혼자 속으로 감격해하는 일이랍니다.
캇바 리조트에 짐을 풀고 방을 배정 받았습니다.
리조트 바로 앞에는 해수욕장이라 방에서도 파도소리가 철썩철썩 들립니다.
이곳에서 이틀 밤을 묵고 떠나게 되는데 내일 하루는 종일 특별한 일정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힘들게 들고 간 자전거를 멋지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하루를 푹 쉬고 난 아침 식사를 할 때 미리 준비한 비닐봉투에다 빵을 듬뿍 담았습니다.
바나나와 과일도 몇 개 담았습니다.
리조트의 프론트로 가서 복무원에게 캇바 섬의 지도를 한 장 달라고 요청했더니,
손으로 그려서 복사해 둔 이상한 지도를 꺼내줍니다.
커다란 참고가 되겠다며 소중히 간직했었는데 실제로 라이딩을 해 보았더니
너무도 엉터리로 작성된 지도였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지명과 실제로 답사해본 지명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방으로 올라와 라이딩 준비를 합니다.
자전거 전용 의상을 꺼내입고 팔토시, 다리토시로 무장을 합니다.
헬멧을 쓰고 신발을 신습니다. 자전거는 미리 세팅을 해두었습니다.
얼굴에는 강한 햇살에 대비하여 자외선차단제를 듬뿍 바릅니다.
이윽고 10시경에 리조트를 출발합니다.
일단 캇바에서 가장 큰 지역인 타운을 통과합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우선 타운을 한 바퀴 휘돌아봅니다.
중심가는 온통 관광객으로 들썩이는데 뒤편의 빈민가는 쓸쓸하기만 합니다.
한 할머니가 석탄을 물에 반죽하여 손으로 떡탄을 만듭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매연으로 가득한 타운의 샛길로 빠져서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이 길이 외곽지역으로 빠지는 유일한 도로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야릇한 복장의 외국인에게 일제히 쏠리는 시선을 느낍니다.
이곳만 해도 자전거를 타는 외국인이 별로 많이 오지 않는 듯합니다.
처음 나타난 티짱 마을에서 좌측 도로를 선택하여 캇바 섬을 한 바퀴 일주할 생각을 합니다.
캇바는 한국의 거제도와 비슷한 지형인데 거제도보다는 조금 작습니다.
곧 작은 시골마을들이 이어지고 갈림길이 보입니다.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길가의 소년들에게 묻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소년들은 열심히 길을 가르쳐 줍니다.
나는 눈치로 소년들의 말뜻을 알아듣습니다.
내가 보답으로 사탕을 나누어주자 모두들 너무도 즐거워합니다.
히엔하오 마을을 통과하여 다시 한참을 달려갑니다.
그래도 캇바섬에는 이정표를 자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스럽습니다.
이정표는 부옹 마을, 꾸옥 끼아 마을까지 15km 남았다고 알려줍니다.
몇 구비의 오르막을 오르고 또 내렸을까?
캇바섬은 자전거를 타는 바이커들에게 천국과도 같습니다.
바다를 끼고 도는 코스가 무척 아름답고 도로도 잘 닦여져 있습니다.
카우푸롱 마을로 이어지는 일직선 도로는 단조롭고 재미가 적습니다.
하지만 길가의 개천에서 고기를 잡던 소년 둘이 보여준 웃음은 깊고 순수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소년들은 자기가 잡은 고기를 나에게 주려고 했지만, 나는 고맙다는 표시만 하고 그들과 헤어졌습니다.
카우푸롱 마을을 통과하여 다시 한참을 달려가면
하이퐁 항으로 떠나는 배를 탈 수 있는 도선장이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오던 길로 되돌아와서 시름없이 페달을 밟고 또 밟으면 삼거리가 나타납니다.
이곳이 바로 파 카이 비엥과 부옹 마을로 갈라지는 삼각로입니다.
나는 이곳에서 파 카이 비엥쪽으로 핸들을 꺾습니다.
왜냐하면 가보지 않은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우뚝한 산과 산으로 이어지는 협곡 사이로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길가에 한 아낙네가 삼각형 갈대모자를 쓰고 앉아 있습니다.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니 그녀도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여섯 마리의 새끼돼지를 둥주리에 넣어서 지고 가다가 잠시 쉬고 있는 중입니다.
돼지가 더위를 먹을 수 있으므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돼지 위에 덮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부채로 줄곧 부쳐줍니다.
물소란 놈은 너무도 더운 날씨가 힘겨웠던지 아예 작은 웅덩이의 물속에 몸을 잠그고 그 특유의 되새김질을 하며 앉아 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엎드려 있는 모습이 마치 베트남의 늙은 철학자 같습니다.
이윽고 벤토 마을까지 달려가 봅니다.
과거 미국과의 전쟁시절에 얼마나 많은 폭격을 받으며 두려움에 떨었을까요?
이제는 평화의 시기가 찾아와서 마을의 모든 것은 한가하기만 합니다.
작은 마을이 하나 나타나고
그 길가 하수구에는 낯익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알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는 병아리 녀석들이 어미를 따라 다니며
그 작은 부리로 모이를 쪼으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어여쁘던지요.
오리는 줄지어 도로를 가로지르고, 어미 닭은 병아리를 데리고 열심히 모이를 쫍니다.
개들은 길게 늘어져 누워서 낮잠에 빠져 있습니다.
산천과 주민들도 편안해 보입니다. 평화의 아름다움은 지극한 것입니다.
누가 어떤 명분으로 그들의 삶의 평화를 함부로 깨뜨릴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벤토 마을에서 다시 오던 방향으로 되돌려 기아루안을 향해 달려갑니다.
기아루안까지는 15km입니다.
루안 마을은 캇바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풀 속에 있는 국립공원 마을입니다.
하지만 일반인은 그곳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다만 루안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좌측으로 새로 난 수풀 길을
잠시 달려볼 수 있을 뿐입니다.
이미 점심때가 한참이나 지났으므로
나는 원시림이 내려다보이는 길가에 앉아서 배낭 속에 넣어온 빵과 과일을 꺼냅니다.
때마침 오토바이 엔진소리가 요란히 들리며 한 무리의 젊은 남녀들이 올라옵니다.
그들은 나의 옆에 와서 깔깔거리며 떠들어댑니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데 알고 보니 하노이에서 온 부유층 자제들입니다.
모두 애인들을 뒤에 태우고 와서 캇바 섬을 유람중입니다.
산악자전거에 대단한 관심을 가집니다.
나의 자전거 핸들을 잡고 헬멧을 빌려쓰고 사진들을 찍어댑니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나고 난 산길은 다시 적막해집니다.
나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땀에 젖은 웃옷을 벗은 채 점심을 먹습니다.
울창한 수풀이 있는 산길의 그늘은 시원합니다.
국립공원을 빠져나와서 다시 국도로 접어듭니다.
노이동 티엡 마을을 지나가는데 베트남 산골 소녀들이 손을 흔듭니다.
나는 잠시 라이딩을 멈추고 소녀들과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사탕을 먹으며 함께 웃습니다.
그 천진하고 순결한 미소를 오래 오래 잊지 못할 것입니다.
국도 변에는 벵벳 마을이 아직도 10km나 남았다고 이정표가 알려줍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아마도 파출소 같아 보이는데, 도무지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붉은 바탕에 노란 별이 그려져 있는 베트남 국기만 바람에 펄럭이다가 제풀에 스르르 가라앉곤 했습니다. 일광은 대지를 점점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4월 하순 한낮 더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온도계를 보니 섭씨 36도나 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탈진이 되고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이럴 때 또 힘겨운 오르막이 나타납니다.
이제부터는 정신력으로 올라갑니다.
숨을 씨근거리면서 힘겨웁게 오르는데
오토바이를 탄 한 베트남 청년이 곁에 다가와서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우면서
"넘버 왕!"이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싱긋 웃으며 눈길을 마주칩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우정어린 격려입니까?
나는 다시 다 빠진 힘을 새로 냅니다.
고갯마루에서 쏜살같이 달려 내려오니 이윽고 벵벳 마을이 보입니다.
이 마을만 통과해서 조금만 더 가면 이제 타운으로 다가갑니다.
타운으로 가려면 한 구비의 오르막을 더 거쳐야 합니다.
그 초입에서 너무 지쳤습니다. 물도 떨어지고 더위를 먹었습니다.
어느 집 마당에 핀 베트남의 꽃잎 빛깔이 너무나 선정적입니다.
길가의 나무그늘 밑에 그냥 퍼질러 앉아서
지나가는 행인들과 거리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정확히 31년 전 오늘은
베트남이 외세의 침략을 완전히 물리치고 그들만의 조국을 되찾은 날입니다.
거리엔 통일절을 기념하는 베트남 공산당의 대형 포스터 혁명 구호가 세워져 있고,
확성기에선 요란한 혁명가요가 넘쳐 흐릅니다.
하지만 베트남 국민들은 이러한 것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들의 일과를 돌보고 있습니다.
오랜 정치적 이념은 이제 시대의 낡은 유물이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민족적 자부심과 삶의 느긋한 여유를 즐기는
인정 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은 나의 가슴속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더욱 복잡해진 타운을 빠져 나와서 해안도로를 달리니
오전에 달려온 리조트 입구의 산모퉁이가 보입니다.
아, 이제 다 왔습니다.
완전 초행길에다 몹시 자료가 빈약한 지도 한 장을 달랑 들고 시작한
캇바 섬의 멋진 라이딩 일정이 끝나갑니다.
오늘 4시간 40분 동안 모두 71km를 달렸습니다.
라이딩 길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 베트남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산천의 실루엣은
나의 가슴속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다음 번에는 하노이 시내 일주 라이딩 기록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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