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18일부터 21일까지 일본 오끼나와의 나고에 있는 메이요(名櫻)대학에서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김해공항에서 이른 아침에 떠났는데요, 해외에서 열리는 모든 학회에 갈 때 저는 반드시 현지 답사를 위해 필수장비인 자전거를 갖고 간답니다.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프트케이스에 든 이 커다란 짐이 대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하면서 물어보곤 하지만, 가방을 열기 전에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지요.
미리 오끼나와에 대한 지리학적 공부를 한 차례 거친 뒤라 마음이 편하긴 했지만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마음속에서 끓어 올랐습니다. 오끼나와는 제주도보다 조금 큰 섬입니다. 원래 류우큐우(琉球) 왕국이었으나 여러 세기 동안 계속된 일본의 착취와 압박으로 1609년 마침내 일본령이 되고 말았죠. 이로부터 오끼나와 고유의 문화와 언어가 금지되고, 완전한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2차대전은 오끼나와 원주민들에게 또 하나의 비극을 쏟아부었습니다. 약 15만명이 넘는 오끼나와 주민들이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희생이 되고 말았지요. 곳곳에 당시 비극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종전 후에는 전체 섬의 20%가 미군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대규모 군사기지를 설치하여 무단 점유하고 있답니다. 이 때문에 오끼나와의 갈등과 문제점은 지금도 계속 파생되고 있습니다.
오끼나와에서 가장 큰 도시는 남부의 나하(那霞)와 북부의 나고(名護)입니다. 오사카를 거쳐 나하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무렵, 이윽고 일몰이 와서 버스편으로 나고의 호텔로 이동하는데, 밖은 완전히 캄캄해졌습니다.
다음 지도는 이틀동안 오끼나와를 완전 종주한 코스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호텔 프론트에 부탁해서 오끼나와 정밀지도를 별도로 구해두었습니다. 붉은 동그라미가 출발지점인 나고입니다.
첫째날은 나고에서 중북부 지역을 하루 온종일 돌았고, 약 6시간 40분 동안 114km를 달렸습니다. 둘째날은 나고에서 출발하여 남부의 나하를 거쳐 오끼나와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히메유리(姬白合)의 탑까지 갔다가 다시 나하로 돌아온 루트를 표시해두었습니다. 6시간 50분 동안 118km를 달렸으니 도합 이틀 동안의 라이딩 시간은 13시간 30분, 오끼나와 섬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도합 232km를 바람처럼 달렸군요.
이로써 오끼나와 섬 전체를 북에서 남쪽 끝까지 거의 종주한 셈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오끼나와 섬을 달리는 동안 줄곧 만나고 보았던 많은 꽃과 나무와 산, 바다, 그리고 조용히 아침 산책하던 오끼나와 주민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사카에서 일본 국내선 항공인 ANA편으로 오끼나와의 나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시간은 김해에서 오사카까지 1시간 남짓, 오사카에서 오끼나와까지 약 두 시간 정도입니다.
오끼나와 여행은 겨울철인 11월부터 3월 사이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11월경 오끼나와의 평균기온은 약 18도 가량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초가을 날씨 같은데, 한낮에는 섭씨 28도까지 올랐습니다. 그야말로 전형적 아열대 기후입니다.
오끼나와의 나고(名護)시 58번 도로변에 위치한 루투인나고의 객실입니다.
방이 얼마나 협소한지 침대와 탁자 사이의 빈 공간에 겨우 자전거 한 대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가방에서 자전거를 꺼내어 핸들을 고정하고, 앞바퀴를 결합하며, 체인에 기름을 먹입니다.
배낭도 다시 정리하며 내일 새벽의 출발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여러분께만 살그머니 말씀드리지만, 자전거랑 단둘이서 함께 자는 밤은 왜 그렇게도 행복한지요.^^
이것저것 준비하고 지체하느라 출발이 다소 늦었습니다.
아침 6시40분이 되어서야 비로소 호텔 문앞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마트에 들러서 점심식사로 삼각김밥과 낫또를 넣은 김밥 등 몇 가지를 구입했습니다.
마트의 청년은 김밥을 전자렌지에 넣어서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물도 2리터 짜리를 사서 물백에 한 가득 채웠습니다.
자, 이제는 지도를 따라서 마음껏 달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방향을 어디로 잡을까 망설이다가 과감하게 18번 도로를 선택했습니다.
이 도로는 태평양 연안지역인 섬의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산복도로입니다.
명호악(名護岳)이라는 해발 345m의 언덕길을 넘어가야 하는 재미있는 코스이지요.
개를 몰고 아침산책을 나온 할아버지에게 길을 확인하여 18번 도로로 접어듭니다.
곧 나고 시내와 전경이 보입니다.
나고 시내가 이른 아침 미명 속에서 부시시 눈을 뜹니다.
나고는 바다와 맞닿은 아담한 항구도시입니다.
열대식물의 군락과 진기한 동물들이 많은 곳입니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열대식물들의 강렬한 냄새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한국에도 이 나무는 있지만 매우 귀하지요. 위성류란 나무입니다.
열대지방에서 많이 자생하는 나무인데, 오끼나와에는 이 나무가 지천으로 많았습니다.
위성류 나무에 저의 자전거를 기대놓고 한 커트 찰칵.
어쭈, 자전거가 제법 폼을 잡는군요.^^
나고 주변의 명호악산(名護岳山) 임도 표지판입니다.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었고, 너무도 호젓한 임도를 혼자서 마음껏 바람을 가르며 달렸습니다.
오끼나와의 싱그런 아침 공기가 폐부 깊숙히 스며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맑은 공기를 흠씬 마십니다.
명호악의 가파른 고개를 넘으니 동강 터널이 서너 개 연속으로 나타납니다.
굴 속에 갑자기 들어서면 항시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공연히 시야를 잃고 허우적거리는 듯한 어눌함에 휩싸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인생도 이처럼 캄캄한 굴속을 지나가는 듯한 힘든 구간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터널을 빠져 나오니 울창한 남방의 대삼림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갈림길이 하나 나타납니다.
이 표지판에서 저는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이제 높은 업힐 코스는 이 언덕이 끝입니다.
새로 힘을 내어서 언덕길을 넘어갑니다.
자, 페달에 힘을 주어서 더욱 씩씩하게 밟자!
18번 도로변에 위치한 작은 산간마을인 대천입니다.
일본말로는 오오가와인데요.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만 들려올 뿐 인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호젓한 마을이었습니다.
드디어 태평양 연안의 331번 도로로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대포만(大浦灣)이 훤히 보입니다.
오른쪽으로 파도소리가 들리는 해안도로를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립니다.
길이 워낙 멀고 멀기 때문에 서둘러 가야만 합니다.
이 331번 도로는 동촌 마을에서 도로의 폭이 다소 좁아지면서 70번 도로와 곧장 연결됩니다.
아부(安部)란 이름의 바닷가 마을을 통과해갑니다.
가양(嘉陽)-유명(有銘)-경좌차(慶佐次)를 통과하여 동촌(東村)까지 단숨에 페달을 밟아서 당도합니다. 태평양 연안, 타이라만의 높은 파도가 오른쪽으로 시야를 압도합니다.
언뜻 보니 히가시(平良)란 이름의 마을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궁성(宮城)-신천(新川)-안파(安波)까지는 약 40km가 넘는 상당히 멀고 아득한 길입니다.
지루한 업힐 구간도 계속 이어집니다.
해는 중천에 올라 점점 뜨겁게 이글거리고, 헐떡이는 목은 자꾸만 물을 찾습니다.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는데, 왜 그렇게도 산길 오르막은 자주 나타나는지...
아침에 출발하면서 마트에서 구입해두었던 김밥인데요.
허기가 느껴져서 자꾸만 김밥 생각이 났지만, 우선 다른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꾹 눌러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좀더 경관이 좋은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오른쪽은 소금간이 된 삼각김밥으로 김이 무척 고소했습니다.
왼쪽 김밥은 맛있는 생선어묵이 밥과 함께 들어있는 특이한 김밥이었습니다.
오끼나와 사람들은 이렇게 김밥의 여러 변형 모델을 많이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동촌 마을 부근에서 파인애플 재배농장을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을 발견했습니다.
온도계를 보니 섭씨 28도나 올랐습니다.
오끼나와의 태평양 연안쪽 도로는 오르막 구간이 꽤 많습니다.
이제 끝났는가 하면 또 나타나고, 잠시 내리막이다가도 금방 오르막으로 다시 이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간에 몸이 이미 익숙해진 듯합니다.
땀이 제법 많이 났을 테지만 기능성 섬유가 모든 습기를 재빨리 방출시켜버렸겠지요.
헬멧의 잠금장치를 너무 조여서 머리 양편의 관자노리가 점점 옥죄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불편입니다.
지금 달려가는 이 길은 쿠니가미(國頭) 지역으로 연결된 태평양 연안의 동쪽 331번 국도입니다. 왼쪽으로 가면 오기미(大宜味村) 마을입니다.
저는 계속 직진으로 쿠니가미 방향인 70번 도로 방향으로 곧장 달려가야만 합니다.
달려오는 산간도로의 중간지점에 규모가 작은 미군기지가 간혹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부대 앞에는 천막을 쳐놓고 미군주둔에 반대하는 오끼나와 주민들의 항의 시위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성난 눈빛들을 하고 있었고, 잔뜩 분노한 그들의 앞을 지나가는 심정이 그리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고개를 꾸벅 하고 인사를 보냈더니, 그쪽에서도 손을 흔들며 그제야 가벼운 미소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긴장을 푼다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외세의 시달림을 받고 있는 오끼나와의 비극적 현실이 몸으로 느껴지는 현장입니다.
안파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입니다.
주말 오전이라 학교는 텅비었고, 운동장에는 공허한 메아리만 들렸습니다.
건물 입구에는 새들이 날아와 마치 후식시간의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재잘거리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반이 훌쩍 넘어버렸네요.
배는 밥을 달라고 줄곧 쪼록쪼록 합니다. 안파(安波)에서 계속 70번도로를 타고 오끼나와 섬의 최북단까지 가는 것이 오늘의 목표였지만, 아무래도 코스를 수정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5시가 넘어 자칫 일몰을 만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섬 반대편인 동중국해 쪽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횡단도로를 지도에서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2번 국도입니다.
안파에서 북쪽으로 약 4km 지점에 2번 도로의 입구가 나타납니다.
이 2번 도로는 오끼나와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열대수림이 우거진 아름다운 길가에 앉아서 배낭속의 김밥을 꺼냅니다.
오호, 왜 그렇게도 냄새가 좋은지요.
모든 음식은 이렇게 배가 고픈 상태에서 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호젓한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점심을 먹는데, 저와 같은 복장을 한 오끼나와의 자전거 매니어들이 맞은편 언덕길을 올라옵니다. 먼저 인사를 보내니까 건성으로 고개만 까닥하고 지나갑니다.
드디어 숙소인 루투인나고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마을을 지나쳐 왔습니다.
2번 도로의 끝은 여나(與那)라는 작은 포구입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다시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바닷가 해안도로를 바람처럼 달려왔습니다.
줄곧 마을들이 그림처럼 나타났다가 등뒤로 사라지곤 했는데, 그 마을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헨토나(邊士名)-오쿠마(奧間)-키조카(喜如嘉)-오오기미(大宜味)-염옥(鹽屋)-진파(津波)-중미차(仲尾次)-이차천(伊差川) 등이 바로 그 지명들입니다.
대개 바닷가 마을의 지명들이 보여주듯, 그 정겨운 이름들에서는 파도소리와 갯비린내가 슬며시 풍겨납니다.
마침내 일몰 가까운 시간에 붐비는 나고(名護) 시내로 접어들 수 있었지요.
숙소 가까운 거리로 돌아오니 나고 시내의 여러 표지판이 왜 이렇게도 반갑고 감격스러운지...
가슴속은 새삼스럽게 뿌듯하고 꽉찬 보람으로 채워집니다.
오늘 하루 온종일 달린 코스를 지도에 표시했습니다.
핑크로 칠한 루트에서 왼쪽 아래편 모서리의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오끼나와 중북부의 중심도시 나고(名護)입니다.
이곳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오늘 하루 온종일 달린 것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전거란 도구는 묘하고 신비스럽습니다.
자동차로 달리는 경험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로지 저의 힘으로, 저의 의지를 따라서 자전거는 주인을 태우고, 그 멀고 힘든 길을 충직한 나귀처럼 말없이 달려온 것입니다.
중로에 만약 타이어가 찢어지기라도 했더라면 저는 꼼짝없이 걸어오거나 택시를 불러야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결코 생각처럼 만만치는 않았을 테지요.
자전거 핸들에 부착된 속도계입니다.
이 속도계는 주행시간과 당일 총거리, 현재속도, 평균속도, 최대속도, 누적된 주행거리, 소비칼로리, 심박수, 시계기능 등이 표시됩니다. 캣츠아이(CATS EYE), 즉 '고양이눈'이란 이름의 회사에서 만든 이 속도계는 매우 편리하고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지요.
오늘 달린 총거리는 114km입니다.
그러고 보니 해뜨기 전에 숙소를 나와서 무려 6시간 46분을 달렸군요.
자전거 매니어들에게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은 가장 황홀한 꿈이며, 가장 행복한 사랑의 체험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감격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시간이 자전거라이딩에는 깃들여 있지요.
오늘 저와 함께 달린 오끼나와 중북부 자전거 답사여행이 어떠하셨는지요?
이제 내일이면 오끼나와 남부를 향해 저의 자전거는 또 힘찬 출발을 할 것입니다.
자, 그러면 답사기 속편을 기대하십시오.
미리 오끼나와에 대한 지리학적 공부를 한 차례 거친 뒤라 마음이 편하긴 했지만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마음속에서 끓어 올랐습니다. 오끼나와는 제주도보다 조금 큰 섬입니다. 원래 류우큐우(琉球) 왕국이었으나 여러 세기 동안 계속된 일본의 착취와 압박으로 1609년 마침내 일본령이 되고 말았죠. 이로부터 오끼나와 고유의 문화와 언어가 금지되고, 완전한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2차대전은 오끼나와 원주민들에게 또 하나의 비극을 쏟아부었습니다. 약 15만명이 넘는 오끼나와 주민들이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희생이 되고 말았지요. 곳곳에 당시 비극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종전 후에는 전체 섬의 20%가 미군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대규모 군사기지를 설치하여 무단 점유하고 있답니다. 이 때문에 오끼나와의 갈등과 문제점은 지금도 계속 파생되고 있습니다.
오끼나와에서 가장 큰 도시는 남부의 나하(那霞)와 북부의 나고(名護)입니다. 오사카를 거쳐 나하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무렵, 이윽고 일몰이 와서 버스편으로 나고의 호텔로 이동하는데, 밖은 완전히 캄캄해졌습니다.
다음 지도는 이틀동안 오끼나와를 완전 종주한 코스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호텔 프론트에 부탁해서 오끼나와 정밀지도를 별도로 구해두었습니다. 붉은 동그라미가 출발지점인 나고입니다.
첫째날은 나고에서 중북부 지역을 하루 온종일 돌았고, 약 6시간 40분 동안 114km를 달렸습니다. 둘째날은 나고에서 출발하여 남부의 나하를 거쳐 오끼나와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히메유리(姬白合)의 탑까지 갔다가 다시 나하로 돌아온 루트를 표시해두었습니다. 6시간 50분 동안 118km를 달렸으니 도합 이틀 동안의 라이딩 시간은 13시간 30분, 오끼나와 섬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도합 232km를 바람처럼 달렸군요.
이로써 오끼나와 섬 전체를 북에서 남쪽 끝까지 거의 종주한 셈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오끼나와 섬을 달리는 동안 줄곧 만나고 보았던 많은 꽃과 나무와 산, 바다, 그리고 조용히 아침 산책하던 오끼나와 주민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사카에서 일본 국내선 항공인 ANA편으로 오끼나와의 나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시간은 김해에서 오사카까지 1시간 남짓, 오사카에서 오끼나와까지 약 두 시간 정도입니다.
오끼나와 여행은 겨울철인 11월부터 3월 사이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11월경 오끼나와의 평균기온은 약 18도 가량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초가을 날씨 같은데, 한낮에는 섭씨 28도까지 올랐습니다. 그야말로 전형적 아열대 기후입니다.
오끼나와의 나고(名護)시 58번 도로변에 위치한 루투인나고의 객실입니다.
방이 얼마나 협소한지 침대와 탁자 사이의 빈 공간에 겨우 자전거 한 대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가방에서 자전거를 꺼내어 핸들을 고정하고, 앞바퀴를 결합하며, 체인에 기름을 먹입니다.
배낭도 다시 정리하며 내일 새벽의 출발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여러분께만 살그머니 말씀드리지만, 자전거랑 단둘이서 함께 자는 밤은 왜 그렇게도 행복한지요.^^
이것저것 준비하고 지체하느라 출발이 다소 늦었습니다.
아침 6시40분이 되어서야 비로소 호텔 문앞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마트에 들러서 점심식사로 삼각김밥과 낫또를 넣은 김밥 등 몇 가지를 구입했습니다.
마트의 청년은 김밥을 전자렌지에 넣어서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물도 2리터 짜리를 사서 물백에 한 가득 채웠습니다.
자, 이제는 지도를 따라서 마음껏 달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방향을 어디로 잡을까 망설이다가 과감하게 18번 도로를 선택했습니다.
이 도로는 태평양 연안지역인 섬의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산복도로입니다.
명호악(名護岳)이라는 해발 345m의 언덕길을 넘어가야 하는 재미있는 코스이지요.
개를 몰고 아침산책을 나온 할아버지에게 길을 확인하여 18번 도로로 접어듭니다.
곧 나고 시내와 전경이 보입니다.
나고 시내가 이른 아침 미명 속에서 부시시 눈을 뜹니다.
나고는 바다와 맞닿은 아담한 항구도시입니다.
열대식물의 군락과 진기한 동물들이 많은 곳입니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열대식물들의 강렬한 냄새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한국에도 이 나무는 있지만 매우 귀하지요. 위성류란 나무입니다.
열대지방에서 많이 자생하는 나무인데, 오끼나와에는 이 나무가 지천으로 많았습니다.
위성류 나무에 저의 자전거를 기대놓고 한 커트 찰칵.
어쭈, 자전거가 제법 폼을 잡는군요.^^
나고 주변의 명호악산(名護岳山) 임도 표지판입니다.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었고, 너무도 호젓한 임도를 혼자서 마음껏 바람을 가르며 달렸습니다.
오끼나와의 싱그런 아침 공기가 폐부 깊숙히 스며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맑은 공기를 흠씬 마십니다.
명호악의 가파른 고개를 넘으니 동강 터널이 서너 개 연속으로 나타납니다.
굴 속에 갑자기 들어서면 항시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공연히 시야를 잃고 허우적거리는 듯한 어눌함에 휩싸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인생도 이처럼 캄캄한 굴속을 지나가는 듯한 힘든 구간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터널을 빠져 나오니 울창한 남방의 대삼림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갈림길이 하나 나타납니다.
이 표지판에서 저는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이제 높은 업힐 코스는 이 언덕이 끝입니다.
새로 힘을 내어서 언덕길을 넘어갑니다.
자, 페달에 힘을 주어서 더욱 씩씩하게 밟자!
18번 도로변에 위치한 작은 산간마을인 대천입니다.
일본말로는 오오가와인데요.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만 들려올 뿐 인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호젓한 마을이었습니다.
드디어 태평양 연안의 331번 도로로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대포만(大浦灣)이 훤히 보입니다.
오른쪽으로 파도소리가 들리는 해안도로를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립니다.
길이 워낙 멀고 멀기 때문에 서둘러 가야만 합니다.
이 331번 도로는 동촌 마을에서 도로의 폭이 다소 좁아지면서 70번 도로와 곧장 연결됩니다.
아부(安部)란 이름의 바닷가 마을을 통과해갑니다.
가양(嘉陽)-유명(有銘)-경좌차(慶佐次)를 통과하여 동촌(東村)까지 단숨에 페달을 밟아서 당도합니다. 태평양 연안, 타이라만의 높은 파도가 오른쪽으로 시야를 압도합니다.
언뜻 보니 히가시(平良)란 이름의 마을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궁성(宮城)-신천(新川)-안파(安波)까지는 약 40km가 넘는 상당히 멀고 아득한 길입니다.
지루한 업힐 구간도 계속 이어집니다.
해는 중천에 올라 점점 뜨겁게 이글거리고, 헐떡이는 목은 자꾸만 물을 찾습니다.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는데, 왜 그렇게도 산길 오르막은 자주 나타나는지...
아침에 출발하면서 마트에서 구입해두었던 김밥인데요.
허기가 느껴져서 자꾸만 김밥 생각이 났지만, 우선 다른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꾹 눌러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좀더 경관이 좋은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오른쪽은 소금간이 된 삼각김밥으로 김이 무척 고소했습니다.
왼쪽 김밥은 맛있는 생선어묵이 밥과 함께 들어있는 특이한 김밥이었습니다.
오끼나와 사람들은 이렇게 김밥의 여러 변형 모델을 많이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동촌 마을 부근에서 파인애플 재배농장을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을 발견했습니다.
온도계를 보니 섭씨 28도나 올랐습니다.
오끼나와의 태평양 연안쪽 도로는 오르막 구간이 꽤 많습니다.
이제 끝났는가 하면 또 나타나고, 잠시 내리막이다가도 금방 오르막으로 다시 이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간에 몸이 이미 익숙해진 듯합니다.
땀이 제법 많이 났을 테지만 기능성 섬유가 모든 습기를 재빨리 방출시켜버렸겠지요.
헬멧의 잠금장치를 너무 조여서 머리 양편의 관자노리가 점점 옥죄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불편입니다.
지금 달려가는 이 길은 쿠니가미(國頭) 지역으로 연결된 태평양 연안의 동쪽 331번 국도입니다. 왼쪽으로 가면 오기미(大宜味村) 마을입니다.
저는 계속 직진으로 쿠니가미 방향인 70번 도로 방향으로 곧장 달려가야만 합니다.
달려오는 산간도로의 중간지점에 규모가 작은 미군기지가 간혹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부대 앞에는 천막을 쳐놓고 미군주둔에 반대하는 오끼나와 주민들의 항의 시위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성난 눈빛들을 하고 있었고, 잔뜩 분노한 그들의 앞을 지나가는 심정이 그리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고개를 꾸벅 하고 인사를 보냈더니, 그쪽에서도 손을 흔들며 그제야 가벼운 미소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긴장을 푼다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외세의 시달림을 받고 있는 오끼나와의 비극적 현실이 몸으로 느껴지는 현장입니다.
안파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입니다.
주말 오전이라 학교는 텅비었고, 운동장에는 공허한 메아리만 들렸습니다.
건물 입구에는 새들이 날아와 마치 후식시간의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재잘거리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반이 훌쩍 넘어버렸네요.
배는 밥을 달라고 줄곧 쪼록쪼록 합니다. 안파(安波)에서 계속 70번도로를 타고 오끼나와 섬의 최북단까지 가는 것이 오늘의 목표였지만, 아무래도 코스를 수정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5시가 넘어 자칫 일몰을 만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섬 반대편인 동중국해 쪽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횡단도로를 지도에서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2번 국도입니다.
안파에서 북쪽으로 약 4km 지점에 2번 도로의 입구가 나타납니다.
이 2번 도로는 오끼나와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열대수림이 우거진 아름다운 길가에 앉아서 배낭속의 김밥을 꺼냅니다.
오호, 왜 그렇게도 냄새가 좋은지요.
모든 음식은 이렇게 배가 고픈 상태에서 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호젓한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점심을 먹는데, 저와 같은 복장을 한 오끼나와의 자전거 매니어들이 맞은편 언덕길을 올라옵니다. 먼저 인사를 보내니까 건성으로 고개만 까닥하고 지나갑니다.
드디어 숙소인 루투인나고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마을을 지나쳐 왔습니다.
2번 도로의 끝은 여나(與那)라는 작은 포구입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다시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바닷가 해안도로를 바람처럼 달려왔습니다.
줄곧 마을들이 그림처럼 나타났다가 등뒤로 사라지곤 했는데, 그 마을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헨토나(邊士名)-오쿠마(奧間)-키조카(喜如嘉)-오오기미(大宜味)-염옥(鹽屋)-진파(津波)-중미차(仲尾次)-이차천(伊差川) 등이 바로 그 지명들입니다.
대개 바닷가 마을의 지명들이 보여주듯, 그 정겨운 이름들에서는 파도소리와 갯비린내가 슬며시 풍겨납니다.
마침내 일몰 가까운 시간에 붐비는 나고(名護) 시내로 접어들 수 있었지요.
숙소 가까운 거리로 돌아오니 나고 시내의 여러 표지판이 왜 이렇게도 반갑고 감격스러운지...
가슴속은 새삼스럽게 뿌듯하고 꽉찬 보람으로 채워집니다.
오늘 하루 온종일 달린 코스를 지도에 표시했습니다.
핑크로 칠한 루트에서 왼쪽 아래편 모서리의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오끼나와 중북부의 중심도시 나고(名護)입니다.
이곳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오늘 하루 온종일 달린 것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전거란 도구는 묘하고 신비스럽습니다.
자동차로 달리는 경험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로지 저의 힘으로, 저의 의지를 따라서 자전거는 주인을 태우고, 그 멀고 힘든 길을 충직한 나귀처럼 말없이 달려온 것입니다.
중로에 만약 타이어가 찢어지기라도 했더라면 저는 꼼짝없이 걸어오거나 택시를 불러야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결코 생각처럼 만만치는 않았을 테지요.
자전거 핸들에 부착된 속도계입니다.
이 속도계는 주행시간과 당일 총거리, 현재속도, 평균속도, 최대속도, 누적된 주행거리, 소비칼로리, 심박수, 시계기능 등이 표시됩니다. 캣츠아이(CATS EYE), 즉 '고양이눈'이란 이름의 회사에서 만든 이 속도계는 매우 편리하고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지요.
오늘 달린 총거리는 114km입니다.
그러고 보니 해뜨기 전에 숙소를 나와서 무려 6시간 46분을 달렸군요.
자전거 매니어들에게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은 가장 황홀한 꿈이며, 가장 행복한 사랑의 체험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감격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시간이 자전거라이딩에는 깃들여 있지요.
오늘 저와 함께 달린 오끼나와 중북부 자전거 답사여행이 어떠하셨는지요?
이제 내일이면 오끼나와 남부를 향해 저의 자전거는 또 힘찬 출발을 할 것입니다.
자, 그러면 답사기 속편을 기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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