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날이 밝아옵니다.
태양은 아직 동산 저 너머에서 얼굴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어제 오끼나와 중북부 지역을 두루 답사한 뒤라, 온몸이 결리고 뻐근하지만
또 다시 저의 호기심은 사랑하는 자전거를 끌고 마음보다 몸이 먼저 호텔 문 밖으로 나서고야 맙니다.
오늘 자전거로 달릴 코스는 중남부 전지역으로 도합 120km 정도의 구간입니다.
해뜨기 전, 나고(名護)에서 출발하여 줄곧 이어지는 지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세나테라스-만자(萬座) 해변-만자모(萬座毛)-욘나(恩納)-류우큐우무라(琉球村)-잔파곶(殘波串)-요미탄(讀谷村)-카데나(嘉手納) 미국공군기지-기노완(宜野灣)-우라소에(浦添)-나하(那霞)-토미구스쿠(豊見城)-이토만(絲滿)-히메유리(姬白合)의 탑-이토만(絲滿)-토미구스쿠(豊見城)-나하(那霞)-루투인나하로 이어지는 코스이지요.
미리 일몰 시간을 짐작해가며, 그때 그때 코스를 늘이거나 줄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출발전 오끼나와 전도에다 오늘 달릴 코스를 핑크빛 형광펜으로 표시해 둡니다.
어제는 산도 여러 개 넘었고, 제법 가파른 오르막도 있었지만
오늘은 거의 대부분 바닷가 해안도로를 따라서 달리는 코스입니다.
미지의 새로운 코스가 바깥에서 자꾸만 손짓하며 부르는데,
어찌 소극적인 자세로 하루를 덤덤하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우선 자전거 타이어의 공기압부터 체크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휠의 결합상태, 체인 점검, 큐알레버 점검, 속도계 점검은 항시 기본입니다.
배낭의 물백에 2리터 짜리 물을 사서 새로 보충하는 일, 점심 김밥 준비 등등 점검사항이 많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메모를 보며 찬찬히 신중하게 정리하고 확인해가며 완전하게 챙깁니다.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고를 떠나는 시간,
각종 물품을 구입한 패밀리마트 앞 미명 속에서 한 커트 찰칵 찍었습니다.
도시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새벽 6시20분입니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한참을 달려가노라니 곧 해가 떴습니다.
사방은 금방 환하게 밝아왔습니다.
표지판을 보노라니 오늘 최종 목적지인 나하가 52km 남았다고 하는군요.
나하 가는 길목의 카데나 30km, 요미탄 28km의 안내도 보이지요?
정신없이 밟아서 달려왔더니 어느 틈에 나고에서 10km 이상 멀어졌습니다.
나고에서 나하까지는 63km 정도 되거든요.
아무튼 오늘은 종일 하염없이 페달질을 해서 오끼나와 남부지역을 달려가야만 합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입니다.
허기가 느껴지는 순간, 일요일인데도 아침 식사가 된다는 식당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도로를 건너 바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소바 전문집으로 여겨지는 식당 이름은 '나까마',
푸른 옷을 입은 주방장은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오끼나와 원주민 스즈끼씨였습니다.
아랫배가 제법 많이 나왔는데, 스즈끼씨의 식당 메뉴는 주로 오끼나와 전통식품인 '소바'(일본식 국수)가 주종입니다.
소바 정식을 주문했더니 샐러드, 닭 튀김, 계란 프라이, 흰밥 한 공기와 곁들여 소바가 푸짐하게 나왔습니다.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한 오끼나와에서는 양념된 연한 돼지고기를 두껍게 설어서 뜨거운 국수에 얹어 먹는데, 이것이 바로 오끼나와의 소오키 소바입니다.
스즈끼씨는 얼음조각을 넣은 홍차를 서비스로 특별히 큰 컵에 담아서 가져다 줍니다.
저는 이 많은 음식들을 한꺼번에 다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소바와 샐러드, 프라이만 먹고 닭 튀김은 비닐봉투에 넣어서 비상식으로 배낭에 갈무리해 둡니다.
이 모든 음식이 도합 700엔 정도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친절한 스즈끼씨와 식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하고 나니 웬지 자전거가 더욱 잘 달려가는 듯합니다.
신나게 58번 해안도로를 달려갔는데, 곧 만자(萬座) 해변의 표지판이 보이고, 입구로 접어들었습니다.
고급호텔과 주차장이 덩그랗게 보이는 그곳은 별 뚜렷한 경관이 없어서 바로 돌아나옵니다.
나오다 보니 해변에서 독한 해파리를 각별히 주의하라는 안내판이 있어서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만자 해변에서 5-10월 사이에 물놀이하는 유람객들은 이 해파리를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바로 그 아래쪽이 만자모(萬座毛) 해안입니다.
바닷가 너럭바위 위에 1만명 가량의 많은 사람이 함께 않을 수 있다는 넓은 공간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하는데요.
제주도로 비견해서 말하자면 섭지코지와 비슷한 곳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제주도보다 특별히 나은 점이 별로 눈에 띠지 않습니다.
용암 분출 과정에서 생긴 코끼리 바위의 형상이 한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오끼나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토종 꽃입니다.
남방 아열대 지역의 화초답게 색상도 화려하고 섬세하며, 무척 요염합니다.
이름은 히비스커스라고 하네요.
욘나(恩納) 지역으로 가는 해변도로입니다.
동중국해 쪽에서 줄곧 불어오는 11월의 해풍은 별로 추운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도로변에 가지런하게 심어놓은 야자수 잎들이 제히 머릿결을 바닷쪽으로 나부끼고 있습니다.
다음 사진은 제가 사용하는 디카의 미니 삼각대입니다.
이 삼각대 위에 디카를 결합해서 오토 메뉴에서 셔터를 누른 다음 재빨리 달려가서 포즈를 잡는 방식이지요.
그런데 왼쪽 다리를 자세히 보십시요.
어딘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바로 나뭇가지를 꺾어서 다리 대용으로 박아놓은 것이지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미니 삼각대의 다리를 접었다 빼었다 하노라니, 어느 틈에 다리 하나가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삼발에 다리 하나가 없으니 저혼자 서 있을 수가 없겠지요.
너무 허술하게 만든 물건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척 난감해서 한참 멍하게 서 있었답니다.
하지만 순간적 기지가 떠올라 길가의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적절한 길이로 박았는데, 훌륭한 다리 대용품이 되었습니다.
하찮은 나뭇가지에게 저는 너무 감사를 느낍니다.
욘나에서 잔파곶 방향으로 직진하는 6번도로로 꺾어 들자 류우큐우무라(琉球村)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붐비는 58번 도로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고 한적합니다.
길가의 어느 밭에는 사진에서 보듯 사보덴을 많이 재배하는 광경이 보입니다.
이 사보덴을 재배해서 어디에 쓰는지 궁금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관상용으로 기르는 이것을 '공작 사보덴'이라 부르지요.
류우큐우무라(琉球村)은 제주도의 성읍 마을 민속촌과 비슷한 곳입니다.
오끼나와의 전통문화를 한 곳에 집결시켜 놓고 주민들이 출퇴근하면서 베짜기, 악기연주, 질그릇 만들기, 각종 공예품과 전통음식 만드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한 할머니가 전통가옥에 걸터앉아서 오래된 현악기를 연주하며 민요를 부르고 있습니다.
악기의 몸통은 얼룩덜룩한 뱀가죽으로 씌웠다고 합니다.
도기로 만든 기와 지붕과 야생초로 지붕을 씌운 오끼나와의 전통가옥입니다.
전통의상을 입은 복무원들이 집안 마당을 바쁘게 오고 갑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고개를 길게 빼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닙니다.
오끼나와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민요를 부르는 악사와 가수들의 모습입니다.
얼굴을 서양 코미디에 나오는 피에로처럼 분장한 청년이 북을 치며 노래를 합니다.
그의 뚱뚱한 몸집과 코믹한 노랫소리가 보는 이로 하여금 줄곧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그러나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측은하고 슬픈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악령을 물리친다는 오끼나와의 전통적 수호상인 '시이사아'의 형상입니다.
사자와 비슷하게 생긴 이 수호상은 오끼나와 주민들의 집집마다 지붕, 혹은 대문 기둥 양쪽 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류우큐우무라 민속마을에서는 이 수호상을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안동소주에 해당하는 오끼나와 전통 증류주인 '아와모리'도 가는 곳마다 많이 팔고 있었지요. 기본이 40도인데, 60도가 넘는 술도 흔했습니다.
58번 국도의 중간 허리 부분에서 동중국해 쪽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잔파곶(殘波串)입니다.
이 잔파곶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가 6번도로입니다.
잔파곶은 각종 리조트 시설과 호텔, 식당, 위락시설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오끼나와 주민들이 즐겨 찾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바이커들에게는 다소 단조롭고 흥미가 떨어지는 코스입니다.
잔파곶을 한 바퀴 휘돌아 6번도로를 지겹게 달려서 다시 58번 도로를 찾아 나옵니다.
요미탄(讀谷) 마을을 지나 58번 도로로 빠져나옵니다.
그 소문 무성한 오끼나와의 카데나(嘉手納) 미국 공군기지가 바로 눈앞에 나타납니다.
공군기지의 정문 앞 국기게양대에는 성조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신사(神社)의 입구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공군기지의 정문입니다.
미국은 왜 군사기지의 출입구를 일본 신사의 출입구 형상으로 만들어 세웠을까요?
우호적 친밀감의 표시? 아니면 군사적 정복을 꿈꾸는 내면의식?
여러분께서는 과연 무엇이라 여기시는지요?
카데나 미국공군기지는 수십 km에 이르는 길고 긴 철조망 담장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핵미사일 발사기지,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비행장 활주로, 병사들의 막사 등을 비롯한 각종 군사시설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철조망 담장에는 '이곳은 미국 공군의 군사시설임. 무단으로 침입하거나 훼손하는 자에게는 발포할 수 있음'이라고 써놓았습니다.
자전거로 그 앞을 통과하는데 괜스레 머리끝이 쭈뼛해졌습니다.
빨리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카데나를 빠져나오니 기노완(宜野灣) 시내입니다.
여기서 곧장 앞으로만 달려가면 우라소에(浦添) 지역을 통과합니다.
우라소에는 류우큐우 왕국 초창기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성의 유적지는 2차대전 중에 파괴된 것을 다시 재현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도로변에서 저는 나하 지역의 바이크 매니어들과 자주 마주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눌 줄 모릅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차디찬 표정으로 달려갑니다.
혹시나 가벼운 목례라도 나눌까 하고 기대하던 제가 오히려 머쓱해질 뿐입니다.
우라소에만 지나면 너무나도 빨리 나하(那霞) 시내로 접어듭니다.
나하는 인구 31만 6천명의 오끼나와 수도에 해당하는 최대도시입니다.
전쟁 중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종전 후 다시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서 저는 오끼나와의 최남단 지역까지 달려가 보기로 합니다.
페달을 세차게 밟아서 나하 시내를 빠져나가니 곧 토미구스쿠(豊見城) 시내가 나타나고, 이토만(絲滿)도 단숨에 통과합니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맞바람은 점점 심해지는데, 저는 드디어 오끼나와의 최남단 지역에 위치한 '히메유리(姬白合)의 탑'까지 당도했습니다.
'히메유리의 탑'이란 1945년 6월19일, 일본군에게 징집되어 부상병을 간호하거나 참호를 파던 200여명의 오끼나와 여고생들이 미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는데, 그들을 추모하는 전쟁 유적지입니다.
어린 소녀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렬이 종일 끊이지 않습니다.
방문객들은 소녀들의 영전에 꽃을 바치며 평화의 기도를 합니다.
남부 해안지역에는 이런 전쟁유적들이 꽤 많이 널려 있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히메유리의 탑'에서 태평양 연안지역을 휘돌아 나하 시내로 들어가려는 코스를 염두에 두었으나, 이미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벌써 어둑어둑해집니다.
자칫 긴 코스를 돌다가는 일몰을 만나 큰 고생을 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방향을 나하 시내로 수정하여 달려갑니다.
앞서서 통과해 왔던 이토만과 토미구스쿠를 다시 지나갑니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턱이 많고 행인들과의 충돌 위험이 있어서 저는 차도 옆 갓길로 바싹 붙어서 달립니다.
약간의 위험부담은 있지만 한결 빠르고 시간이 절약됩니다.
마침내 나하 시내로 접어들어 전철 욱교역(旭橋驛)에서 불과 12분 거리에 위치한 오늘 밤의 숙소 '루투인나하'를 쉽게 찾아갑니다.
지도를 품속에 지니고 있으면 만사 오케입니다.
숙소는 나하 항구에서 5분 거리입니다.
밤에는 꽤 정취가 느껴지는 뱃고동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듯합니다.
오끼나와 섬의 북쪽에서부터 중부를 거쳐 남쪽 끝에 이르기까지, 제가 달려온 그 많고 많은 도시와 마을들을 저는 생생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기억합니다.
다닌 곳의 추억을 정리하면서 보니 내륙의 슈리(首里) 지구와 오키나와(沖繩)시, 사시키, 요나바루 등지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군요.
자, 오늘은 6시간 45분 동안 118km를 달렸군요.
이틀 동안 도합 232km를 달렸습니다.
오끼나와 전도를 펴놓고 들여다 보면서 저의 자전거 두 바퀴가 지나온 곳을 형광펜으로 꾹꾹 눌러 칠해봅니다. 섬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그 흔적이 길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커다란 성취감으로 새삼 가슴이 뿌듯합니다.
바이커들에게 있어서 자전거로 달리고 또 달리는 일만큼
행복하고 뜻깊은 시간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눈앞에 길이 펼쳐져 있다면 지구상 그 어디까지라도 달려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두 바퀴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태양은 아직 동산 저 너머에서 얼굴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어제 오끼나와 중북부 지역을 두루 답사한 뒤라, 온몸이 결리고 뻐근하지만
또 다시 저의 호기심은 사랑하는 자전거를 끌고 마음보다 몸이 먼저 호텔 문 밖으로 나서고야 맙니다.
오늘 자전거로 달릴 코스는 중남부 전지역으로 도합 120km 정도의 구간입니다.
해뜨기 전, 나고(名護)에서 출발하여 줄곧 이어지는 지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세나테라스-만자(萬座) 해변-만자모(萬座毛)-욘나(恩納)-류우큐우무라(琉球村)-잔파곶(殘波串)-요미탄(讀谷村)-카데나(嘉手納) 미국공군기지-기노완(宜野灣)-우라소에(浦添)-나하(那霞)-토미구스쿠(豊見城)-이토만(絲滿)-히메유리(姬白合)의 탑-이토만(絲滿)-토미구스쿠(豊見城)-나하(那霞)-루투인나하로 이어지는 코스이지요.
미리 일몰 시간을 짐작해가며, 그때 그때 코스를 늘이거나 줄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출발전 오끼나와 전도에다 오늘 달릴 코스를 핑크빛 형광펜으로 표시해 둡니다.
어제는 산도 여러 개 넘었고, 제법 가파른 오르막도 있었지만
오늘은 거의 대부분 바닷가 해안도로를 따라서 달리는 코스입니다.
미지의 새로운 코스가 바깥에서 자꾸만 손짓하며 부르는데,
어찌 소극적인 자세로 하루를 덤덤하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우선 자전거 타이어의 공기압부터 체크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휠의 결합상태, 체인 점검, 큐알레버 점검, 속도계 점검은 항시 기본입니다.
배낭의 물백에 2리터 짜리 물을 사서 새로 보충하는 일, 점심 김밥 준비 등등 점검사항이 많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메모를 보며 찬찬히 신중하게 정리하고 확인해가며 완전하게 챙깁니다.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고를 떠나는 시간,
각종 물품을 구입한 패밀리마트 앞 미명 속에서 한 커트 찰칵 찍었습니다.
도시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새벽 6시20분입니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한참을 달려가노라니 곧 해가 떴습니다.
사방은 금방 환하게 밝아왔습니다.
표지판을 보노라니 오늘 최종 목적지인 나하가 52km 남았다고 하는군요.
나하 가는 길목의 카데나 30km, 요미탄 28km의 안내도 보이지요?
정신없이 밟아서 달려왔더니 어느 틈에 나고에서 10km 이상 멀어졌습니다.
나고에서 나하까지는 63km 정도 되거든요.
아무튼 오늘은 종일 하염없이 페달질을 해서 오끼나와 남부지역을 달려가야만 합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입니다.
허기가 느껴지는 순간, 일요일인데도 아침 식사가 된다는 식당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도로를 건너 바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소바 전문집으로 여겨지는 식당 이름은 '나까마',
푸른 옷을 입은 주방장은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오끼나와 원주민 스즈끼씨였습니다.
아랫배가 제법 많이 나왔는데, 스즈끼씨의 식당 메뉴는 주로 오끼나와 전통식품인 '소바'(일본식 국수)가 주종입니다.
소바 정식을 주문했더니 샐러드, 닭 튀김, 계란 프라이, 흰밥 한 공기와 곁들여 소바가 푸짐하게 나왔습니다.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한 오끼나와에서는 양념된 연한 돼지고기를 두껍게 설어서 뜨거운 국수에 얹어 먹는데, 이것이 바로 오끼나와의 소오키 소바입니다.
스즈끼씨는 얼음조각을 넣은 홍차를 서비스로 특별히 큰 컵에 담아서 가져다 줍니다.
저는 이 많은 음식들을 한꺼번에 다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소바와 샐러드, 프라이만 먹고 닭 튀김은 비닐봉투에 넣어서 비상식으로 배낭에 갈무리해 둡니다.
이 모든 음식이 도합 700엔 정도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친절한 스즈끼씨와 식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하고 나니 웬지 자전거가 더욱 잘 달려가는 듯합니다.
신나게 58번 해안도로를 달려갔는데, 곧 만자(萬座) 해변의 표지판이 보이고, 입구로 접어들었습니다.
고급호텔과 주차장이 덩그랗게 보이는 그곳은 별 뚜렷한 경관이 없어서 바로 돌아나옵니다.
나오다 보니 해변에서 독한 해파리를 각별히 주의하라는 안내판이 있어서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만자 해변에서 5-10월 사이에 물놀이하는 유람객들은 이 해파리를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바로 그 아래쪽이 만자모(萬座毛) 해안입니다.
바닷가 너럭바위 위에 1만명 가량의 많은 사람이 함께 않을 수 있다는 넓은 공간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하는데요.
제주도로 비견해서 말하자면 섭지코지와 비슷한 곳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제주도보다 특별히 나은 점이 별로 눈에 띠지 않습니다.
용암 분출 과정에서 생긴 코끼리 바위의 형상이 한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오끼나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토종 꽃입니다.
남방 아열대 지역의 화초답게 색상도 화려하고 섬세하며, 무척 요염합니다.
이름은 히비스커스라고 하네요.
욘나(恩納) 지역으로 가는 해변도로입니다.
동중국해 쪽에서 줄곧 불어오는 11월의 해풍은 별로 추운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도로변에 가지런하게 심어놓은 야자수 잎들이 제히 머릿결을 바닷쪽으로 나부끼고 있습니다.
다음 사진은 제가 사용하는 디카의 미니 삼각대입니다.
이 삼각대 위에 디카를 결합해서 오토 메뉴에서 셔터를 누른 다음 재빨리 달려가서 포즈를 잡는 방식이지요.
그런데 왼쪽 다리를 자세히 보십시요.
어딘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바로 나뭇가지를 꺾어서 다리 대용으로 박아놓은 것이지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미니 삼각대의 다리를 접었다 빼었다 하노라니, 어느 틈에 다리 하나가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삼발에 다리 하나가 없으니 저혼자 서 있을 수가 없겠지요.
너무 허술하게 만든 물건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척 난감해서 한참 멍하게 서 있었답니다.
하지만 순간적 기지가 떠올라 길가의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적절한 길이로 박았는데, 훌륭한 다리 대용품이 되었습니다.
하찮은 나뭇가지에게 저는 너무 감사를 느낍니다.
욘나에서 잔파곶 방향으로 직진하는 6번도로로 꺾어 들자 류우큐우무라(琉球村)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붐비는 58번 도로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고 한적합니다.
길가의 어느 밭에는 사진에서 보듯 사보덴을 많이 재배하는 광경이 보입니다.
이 사보덴을 재배해서 어디에 쓰는지 궁금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관상용으로 기르는 이것을 '공작 사보덴'이라 부르지요.
류우큐우무라(琉球村)은 제주도의 성읍 마을 민속촌과 비슷한 곳입니다.
오끼나와의 전통문화를 한 곳에 집결시켜 놓고 주민들이 출퇴근하면서 베짜기, 악기연주, 질그릇 만들기, 각종 공예품과 전통음식 만드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한 할머니가 전통가옥에 걸터앉아서 오래된 현악기를 연주하며 민요를 부르고 있습니다.
악기의 몸통은 얼룩덜룩한 뱀가죽으로 씌웠다고 합니다.
도기로 만든 기와 지붕과 야생초로 지붕을 씌운 오끼나와의 전통가옥입니다.
전통의상을 입은 복무원들이 집안 마당을 바쁘게 오고 갑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고개를 길게 빼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닙니다.
오끼나와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민요를 부르는 악사와 가수들의 모습입니다.
얼굴을 서양 코미디에 나오는 피에로처럼 분장한 청년이 북을 치며 노래를 합니다.
그의 뚱뚱한 몸집과 코믹한 노랫소리가 보는 이로 하여금 줄곧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그러나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측은하고 슬픈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악령을 물리친다는 오끼나와의 전통적 수호상인 '시이사아'의 형상입니다.
사자와 비슷하게 생긴 이 수호상은 오끼나와 주민들의 집집마다 지붕, 혹은 대문 기둥 양쪽 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류우큐우무라 민속마을에서는 이 수호상을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안동소주에 해당하는 오끼나와 전통 증류주인 '아와모리'도 가는 곳마다 많이 팔고 있었지요. 기본이 40도인데, 60도가 넘는 술도 흔했습니다.
58번 국도의 중간 허리 부분에서 동중국해 쪽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잔파곶(殘波串)입니다.
이 잔파곶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가 6번도로입니다.
잔파곶은 각종 리조트 시설과 호텔, 식당, 위락시설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오끼나와 주민들이 즐겨 찾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바이커들에게는 다소 단조롭고 흥미가 떨어지는 코스입니다.
잔파곶을 한 바퀴 휘돌아 6번도로를 지겹게 달려서 다시 58번 도로를 찾아 나옵니다.
요미탄(讀谷) 마을을 지나 58번 도로로 빠져나옵니다.
그 소문 무성한 오끼나와의 카데나(嘉手納) 미국 공군기지가 바로 눈앞에 나타납니다.
공군기지의 정문 앞 국기게양대에는 성조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신사(神社)의 입구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공군기지의 정문입니다.
미국은 왜 군사기지의 출입구를 일본 신사의 출입구 형상으로 만들어 세웠을까요?
우호적 친밀감의 표시? 아니면 군사적 정복을 꿈꾸는 내면의식?
여러분께서는 과연 무엇이라 여기시는지요?
카데나 미국공군기지는 수십 km에 이르는 길고 긴 철조망 담장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핵미사일 발사기지,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비행장 활주로, 병사들의 막사 등을 비롯한 각종 군사시설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철조망 담장에는 '이곳은 미국 공군의 군사시설임. 무단으로 침입하거나 훼손하는 자에게는 발포할 수 있음'이라고 써놓았습니다.
자전거로 그 앞을 통과하는데 괜스레 머리끝이 쭈뼛해졌습니다.
빨리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카데나를 빠져나오니 기노완(宜野灣) 시내입니다.
여기서 곧장 앞으로만 달려가면 우라소에(浦添) 지역을 통과합니다.
우라소에는 류우큐우 왕국 초창기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성의 유적지는 2차대전 중에 파괴된 것을 다시 재현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도로변에서 저는 나하 지역의 바이크 매니어들과 자주 마주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눌 줄 모릅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차디찬 표정으로 달려갑니다.
혹시나 가벼운 목례라도 나눌까 하고 기대하던 제가 오히려 머쓱해질 뿐입니다.
우라소에만 지나면 너무나도 빨리 나하(那霞) 시내로 접어듭니다.
나하는 인구 31만 6천명의 오끼나와 수도에 해당하는 최대도시입니다.
전쟁 중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종전 후 다시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서 저는 오끼나와의 최남단 지역까지 달려가 보기로 합니다.
페달을 세차게 밟아서 나하 시내를 빠져나가니 곧 토미구스쿠(豊見城) 시내가 나타나고, 이토만(絲滿)도 단숨에 통과합니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맞바람은 점점 심해지는데, 저는 드디어 오끼나와의 최남단 지역에 위치한 '히메유리(姬白合)의 탑'까지 당도했습니다.
'히메유리의 탑'이란 1945년 6월19일, 일본군에게 징집되어 부상병을 간호하거나 참호를 파던 200여명의 오끼나와 여고생들이 미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는데, 그들을 추모하는 전쟁 유적지입니다.
어린 소녀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렬이 종일 끊이지 않습니다.
방문객들은 소녀들의 영전에 꽃을 바치며 평화의 기도를 합니다.
남부 해안지역에는 이런 전쟁유적들이 꽤 많이 널려 있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히메유리의 탑'에서 태평양 연안지역을 휘돌아 나하 시내로 들어가려는 코스를 염두에 두었으나, 이미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벌써 어둑어둑해집니다.
자칫 긴 코스를 돌다가는 일몰을 만나 큰 고생을 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방향을 나하 시내로 수정하여 달려갑니다.
앞서서 통과해 왔던 이토만과 토미구스쿠를 다시 지나갑니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턱이 많고 행인들과의 충돌 위험이 있어서 저는 차도 옆 갓길로 바싹 붙어서 달립니다.
약간의 위험부담은 있지만 한결 빠르고 시간이 절약됩니다.
마침내 나하 시내로 접어들어 전철 욱교역(旭橋驛)에서 불과 12분 거리에 위치한 오늘 밤의 숙소 '루투인나하'를 쉽게 찾아갑니다.
지도를 품속에 지니고 있으면 만사 오케입니다.
숙소는 나하 항구에서 5분 거리입니다.
밤에는 꽤 정취가 느껴지는 뱃고동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듯합니다.
오끼나와 섬의 북쪽에서부터 중부를 거쳐 남쪽 끝에 이르기까지, 제가 달려온 그 많고 많은 도시와 마을들을 저는 생생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기억합니다.
다닌 곳의 추억을 정리하면서 보니 내륙의 슈리(首里) 지구와 오키나와(沖繩)시, 사시키, 요나바루 등지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군요.
자, 오늘은 6시간 45분 동안 118km를 달렸군요.
이틀 동안 도합 232km를 달렸습니다.
오끼나와 전도를 펴놓고 들여다 보면서 저의 자전거 두 바퀴가 지나온 곳을 형광펜으로 꾹꾹 눌러 칠해봅니다. 섬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그 흔적이 길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커다란 성취감으로 새삼 가슴이 뿌듯합니다.
바이커들에게 있어서 자전거로 달리고 또 달리는 일만큼
행복하고 뜻깊은 시간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눈앞에 길이 펼쳐져 있다면 지구상 그 어디까지라도 달려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두 바퀴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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