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역사
최초의 두발자전거는 1818년 4월 6일 '소에르브룅 남작'이 발명해 파리에서 선보인 '드레지엔'이다. 이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탄 사람이 발로 땅을 밀어서 움직였다. 조잡하고 볼품은 없었지만 방향조절이 가능했던 이 자전거는 그럭저럭 작동되었다. 이어 1839년 스코틀랜드 덤프리스셔의 대장장이 맥밀런이 4년간의 실험을 통해 완성한 사람의 힘으로 추진되는 자전거가 등장
했다. 맥밀런은 1842년에 이 차로 역마차와 경주해서 이겼다.
작동원리면에서 현대의 자전거와 같은 편리한 자전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프랑스인인 P.미쇼와 아들 E.미쇼이다. 독일의 뮌헨 에서는 이미 이 자전거를 모방해 사용했는데 1862년 '벨로시페드'알려진 이 자전거가 142대나 만들어졌다.
1868년 5월 31일 최초의 공식적인 자전거 경주가 생클루 공원에서 열려 영국인 '무어'가 우승했으며 1869년 11월에 열린 최초의 도로경주에서도 우승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자전거는 기술과 구조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말과 달리 지치지도 않고 먹이도 필요하지 않은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자 자전거 애호가들은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도로개선, 도로가 표시된 지도, 도로표지 등을 요구하게 되었고 법원으로부터 자전거도 마차 못지않게 대로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집안에 갇혀있던 여자들도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짧은 스커트, 짧은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탔고 이 여성들이 의상변화 이상의 것을 요구해 여성의 투표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자전거 붐을 사그러들었다가 제 2차 세계대전 중 휘발유 부족으로 잠시 인기를 되찾은 이래 올림픽 경기의 주요 종목으로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있다. 특히 자전거는 공해문제, 연료부족, 건강 등 에 관한 관심이 새로이 고조되면서 다시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전거 역사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언제 처음 들어왔는 지는 확실치 않으나 1896년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신축현장을 갈 때 처음으로 탔다는 설도 있고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들여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 자전거사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은 엄복동 선수이다. 엄복동은 일제 시대에 일본인을 누르고 국내의 각종 경기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명성을 떨쳤다.
어떤 대회에서는 일본인 심판들의 부당한 판정으로 큰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는데, 일본인 선수를 제치고 엄복동선 수가 독주하게 되자, 일본인 심판들은 엄복동 선수에게 우승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일몰을 구실로 경주를 중단시켰던 것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엄복동 선수는 격분한 나머지 우승기를 꺾어 버렸다. 칼자루를 쥔 일본인들은 엄복동 선수에게 몰매까지 가하여 한때 관중의 항거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 때 최고의 우승자에게는 우승기와 양복, 금메달을 수여하기로 되어있었다.
국내의 자전거 제조는 1950년까지는 부품 제작 과정에 머물러 있다가 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생산이 이뤄져 주요 생산국이 되었다.
출처 : 삼천리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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