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아름답고 슬픈이야기군요...
읽는 중간에 콧등이 깨지는것처럼 아팠습니다.
콧물이 나오네요...
>이 곳에도 많은 중학생 회원님들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제가 경험한 이야기 입니다.
>이름은 고인을 생각해서 가명으로 하겠습니다.
>
>7년 전 이맘때 쯤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틀에 한번이라도 잔차를 타지 않으면 소화도 않되고 삶에 의욕도 없던
>시절이였습니다.
>
>사실 이틀 이상 쉬어본 적도 없지만서도,,
>아무튼 그렇게 자전거 생활이 밥먹고 낮잠자는 것 보다 좋았던 시절 동네에 중
>학교를 다니는 영민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
>아주 여리고 착하며 얼굴이 뽀얀 정말 아직 어린아이 티도 벗어나지 못한 애
>띤 얼굴을 하고 있었지요.
>
>또한 말은 없고 늘 부끄러워 나무 뒤나 멀리서만 쳐다보며 당시 스텐딩 연습
>에 몰두하고 있는 절 그렇게 오랜시간 조용히 지켜보며 응원을 보내주던 아이
>였습니다.
>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관심이 많은 아이인 영민이에게 제가 먼저 다가가 자전
>거 있으면 함께 타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
>그러나 영민인 그저 그냥 "보고 있으면 안돼요?" 란 짦은 한마디 외엔 갑자기
>드리워진 어두운 표정에 저 역시 더 이상 강요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전 그날 그 아이가 겁이 많던가 아니면 자전거 타기를 안좋아한다는 생각 외
>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 후 몇일을 전 영민이가 놀고있으면 따로 불러 전날 배운 기술을 보여
>주며 그 아이와 함께 쭈쭈바며 우리집에서 함께 맛난 식사도 함께하며 저의 어
>린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는 영민이가 고맙고 신통하기까지 했으며 먼저 떠난
>큰아들과 같은 느낌에 언제나 퇴근 후 또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한 아침부터 영
>민이가 오길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날이였지요.
>영민이 집안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지방에 내려가 행상을 할 정도로 집안이 어렵고 더군다나 장사도 어
>려워 지금의 전세금마져 빼야 하는데 문제는 부모님께서 피곤에 지쳐 귀가하
>시던 중 교통사고를 내셔서 현재 유치장엘 들어가 계신다는 것이였습니다.
>
>그 후 영민이는 그 밝던 모습도 사라지고 제가 무릎이 깨져라 배우지도 않은
>기술을 보여주고 재미난 곳을 데려가도 웃는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
>시간이 흘러 어느날 이였습니다.
>영민이의 얼굴빛이 다른 날과 달리 검고 그 곧고 예쁘던 피부가 잔주름과 마
>른 논과 같이 잘게 갈라진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
>무슨 일이 있나 물어도 보았지만 그냥 아무일 없다고만 하는 영민이를 데리고
>상가 슈퍼로 갖습니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음료수와 빵을 고른 후 계산을 하려하니 아주머니
>께서 "또 빵이냐?" 하시더군요..
>
>물론 영민이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영민이네 담주면 이사해야 하는데 아버지도 유치장에 계
>시고 어머니 혼자 일하고 있기에 저녁을 라면이나 빵만 사먹고 있다고...
>
>전 정말 제 주변엔 이런 아이가 없는 줄만 알았기에 그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
>하기 힘들었습니다.
>
>그날 전 바로 영민이를 데리고 갈비집을 찾아 갈비와 영민이가 좋아하는 냉면
>을 사주며 물었습니다..
>"너 혹시 아저씨와 같은 멋진 MTB 갖고싶니?"
>영민이의 눈이 순간 둥그레 지더군요..
>
>물론 그간 제가 자전거도 가르치고 제 자전거도 빌려주며 타고 놀라고 했기에
>자전거를 싫어하진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터였으나 그간 자전거 선물도
>어머님이 위험하다고 타지 말라고 했다는 소리에 더 이상의 얘기는 꺼내지 않
>았었지요.
>
>그러나 그 때의 시간만큼은 영민이도 뭔가 자신의 삶을 벗어나 다른 자신만의
>세상을 갖길 원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영민이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
>영민이는 아무말 없이 "그거 비싸잖아요."
>하며 그저 말없이 갈비를 먹고 있었습니다.
>
>"아니야 아저씨가 한대 이상 만들수 있는 부품이 있어. 프레임만 사다 같이 만
>들자"
>영민이의 눈이 초롱 초롱 빛났습니다.
>
>그 후 하룻동안 정말 고생 엄청해가며 조립을 끝내고 영민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
>그러나 그렇게 하루,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도 영민이는 보이지 않았고 집사람
>과 동네 슈퍼 아주머님 역시 걱정과 불안함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영민이네 집에도 역시 불은 꺼져있고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바쁜 아침을 뒤로하고 영민이 학교로 찾아가 무작정 등교하는 아이들을 잡고
>물으니 한 아이가 영민이를 알고 있다고 했으며 그 아이에게서 전 억장이 무너
>지고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이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
>바로 3일 전 영민이가 시골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
>영민이의 말도 안돼는 소식을 확인하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여쭈어보니
>교통사고 합의가 되었으나 전세방을 뺀 적은 돈과 그나마 있던 돈마져 합의금
>으로 주고나니 더 이상 갈곳도 있을 곳도 삶의 희망도 없기에 할아버님이 계
>신 시골로 내려갔으나 너무나 막막해 부모님들께서 자살을 기도했다는군요.
>그러나 어린 영민이만 죽음을 맞고 부모님들께선 살아나셨다고만 알고 계셨습
>니다.
>
>전 그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내 작은 아이이자 우리 아들놈들의 큰형이며 죽은 내 큰아들과 같은 느낌의
>영민이를 었다는 슬픔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너무나 원통하고 비통합니다.
>
>그렇게 한참을 울고 선생님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와 비보를 전하니
>가족들 역시 비통함에 울음바다가 되었고 영민이를 위한 MTB 자전거는 저의
>마음을 더욱 비통하게 만들었습니다.
>
>그 후 영민이 자전거는 한참을 저희집 작은 제 방에 그대로 보관되어 매일 자
>전거 위에서 한없이 기뻐하며 잔차를 타는 영민이를 기리게 되었고 그 후 1년
>이 더 지나 영민이의 부모님을 어렵게 만나 자전거를 전해주며 당시 영민이와
>의 약속을 이야기 했습니다.
>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그 때의 영민이와의 추억은 아름다움만을 간직한채 지
>금 제 가슴속 깊이 언제나 남아있지만 간혹 라이딩시 어린 중학생들과 잔차를
>부러워하며 바라보는 학생들에겐 제 잔차를 빌려주며 동네 한바퀴 돌아보라
>고 합니다.
>
>아이들이 제 잔차를 타고 달리는 뒷모습에서 혹시나 영민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입니다.
>
>
>당시가 생각나 많은 부분 생략하고 글 쓰다보니 두서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들 주변을 조금씩만 들여다 보고 둘러보신다면 우리가 줄 수 있는 행복
>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보게되길 것 같아 글 올립니다.
>
>
읽는 중간에 콧등이 깨지는것처럼 아팠습니다.
콧물이 나오네요...
>이 곳에도 많은 중학생 회원님들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제가 경험한 이야기 입니다.
>이름은 고인을 생각해서 가명으로 하겠습니다.
>
>7년 전 이맘때 쯤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틀에 한번이라도 잔차를 타지 않으면 소화도 않되고 삶에 의욕도 없던
>시절이였습니다.
>
>사실 이틀 이상 쉬어본 적도 없지만서도,,
>아무튼 그렇게 자전거 생활이 밥먹고 낮잠자는 것 보다 좋았던 시절 동네에 중
>학교를 다니는 영민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
>아주 여리고 착하며 얼굴이 뽀얀 정말 아직 어린아이 티도 벗어나지 못한 애
>띤 얼굴을 하고 있었지요.
>
>또한 말은 없고 늘 부끄러워 나무 뒤나 멀리서만 쳐다보며 당시 스텐딩 연습
>에 몰두하고 있는 절 그렇게 오랜시간 조용히 지켜보며 응원을 보내주던 아이
>였습니다.
>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관심이 많은 아이인 영민이에게 제가 먼저 다가가 자전
>거 있으면 함께 타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
>그러나 영민인 그저 그냥 "보고 있으면 안돼요?" 란 짦은 한마디 외엔 갑자기
>드리워진 어두운 표정에 저 역시 더 이상 강요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전 그날 그 아이가 겁이 많던가 아니면 자전거 타기를 안좋아한다는 생각 외
>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 후 몇일을 전 영민이가 놀고있으면 따로 불러 전날 배운 기술을 보여
>주며 그 아이와 함께 쭈쭈바며 우리집에서 함께 맛난 식사도 함께하며 저의 어
>린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는 영민이가 고맙고 신통하기까지 했으며 먼저 떠난
>큰아들과 같은 느낌에 언제나 퇴근 후 또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한 아침부터 영
>민이가 오길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날이였지요.
>영민이 집안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지방에 내려가 행상을 할 정도로 집안이 어렵고 더군다나 장사도 어
>려워 지금의 전세금마져 빼야 하는데 문제는 부모님께서 피곤에 지쳐 귀가하
>시던 중 교통사고를 내셔서 현재 유치장엘 들어가 계신다는 것이였습니다.
>
>그 후 영민이는 그 밝던 모습도 사라지고 제가 무릎이 깨져라 배우지도 않은
>기술을 보여주고 재미난 곳을 데려가도 웃는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
>시간이 흘러 어느날 이였습니다.
>영민이의 얼굴빛이 다른 날과 달리 검고 그 곧고 예쁘던 피부가 잔주름과 마
>른 논과 같이 잘게 갈라진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
>무슨 일이 있나 물어도 보았지만 그냥 아무일 없다고만 하는 영민이를 데리고
>상가 슈퍼로 갖습니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음료수와 빵을 고른 후 계산을 하려하니 아주머니
>께서 "또 빵이냐?" 하시더군요..
>
>물론 영민이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영민이네 담주면 이사해야 하는데 아버지도 유치장에 계
>시고 어머니 혼자 일하고 있기에 저녁을 라면이나 빵만 사먹고 있다고...
>
>전 정말 제 주변엔 이런 아이가 없는 줄만 알았기에 그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
>하기 힘들었습니다.
>
>그날 전 바로 영민이를 데리고 갈비집을 찾아 갈비와 영민이가 좋아하는 냉면
>을 사주며 물었습니다..
>"너 혹시 아저씨와 같은 멋진 MTB 갖고싶니?"
>영민이의 눈이 순간 둥그레 지더군요..
>
>물론 그간 제가 자전거도 가르치고 제 자전거도 빌려주며 타고 놀라고 했기에
>자전거를 싫어하진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터였으나 그간 자전거 선물도
>어머님이 위험하다고 타지 말라고 했다는 소리에 더 이상의 얘기는 꺼내지 않
>았었지요.
>
>그러나 그 때의 시간만큼은 영민이도 뭔가 자신의 삶을 벗어나 다른 자신만의
>세상을 갖길 원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영민이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
>영민이는 아무말 없이 "그거 비싸잖아요."
>하며 그저 말없이 갈비를 먹고 있었습니다.
>
>"아니야 아저씨가 한대 이상 만들수 있는 부품이 있어. 프레임만 사다 같이 만
>들자"
>영민이의 눈이 초롱 초롱 빛났습니다.
>
>그 후 하룻동안 정말 고생 엄청해가며 조립을 끝내고 영민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
>그러나 그렇게 하루,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도 영민이는 보이지 않았고 집사람
>과 동네 슈퍼 아주머님 역시 걱정과 불안함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영민이네 집에도 역시 불은 꺼져있고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바쁜 아침을 뒤로하고 영민이 학교로 찾아가 무작정 등교하는 아이들을 잡고
>물으니 한 아이가 영민이를 알고 있다고 했으며 그 아이에게서 전 억장이 무너
>지고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이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
>바로 3일 전 영민이가 시골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
>영민이의 말도 안돼는 소식을 확인하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여쭈어보니
>교통사고 합의가 되었으나 전세방을 뺀 적은 돈과 그나마 있던 돈마져 합의금
>으로 주고나니 더 이상 갈곳도 있을 곳도 삶의 희망도 없기에 할아버님이 계
>신 시골로 내려갔으나 너무나 막막해 부모님들께서 자살을 기도했다는군요.
>그러나 어린 영민이만 죽음을 맞고 부모님들께선 살아나셨다고만 알고 계셨습
>니다.
>
>전 그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내 작은 아이이자 우리 아들놈들의 큰형이며 죽은 내 큰아들과 같은 느낌의
>영민이를 었다는 슬픔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너무나 원통하고 비통합니다.
>
>그렇게 한참을 울고 선생님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와 비보를 전하니
>가족들 역시 비통함에 울음바다가 되었고 영민이를 위한 MTB 자전거는 저의
>마음을 더욱 비통하게 만들었습니다.
>
>그 후 영민이 자전거는 한참을 저희집 작은 제 방에 그대로 보관되어 매일 자
>전거 위에서 한없이 기뻐하며 잔차를 타는 영민이를 기리게 되었고 그 후 1년
>이 더 지나 영민이의 부모님을 어렵게 만나 자전거를 전해주며 당시 영민이와
>의 약속을 이야기 했습니다.
>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그 때의 영민이와의 추억은 아름다움만을 간직한채 지
>금 제 가슴속 깊이 언제나 남아있지만 간혹 라이딩시 어린 중학생들과 잔차를
>부러워하며 바라보는 학생들에겐 제 잔차를 빌려주며 동네 한바퀴 돌아보라
>고 합니다.
>
>아이들이 제 잔차를 타고 달리는 뒷모습에서 혹시나 영민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입니다.
>
>
>당시가 생각나 많은 부분 생략하고 글 쓰다보니 두서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들 주변을 조금씩만 들여다 보고 둘러보신다면 우리가 줄 수 있는 행복
>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보게되길 것 같아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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