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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이의 이야기

palms2004.05.12 21:26조회 수 56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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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도 많은 중학생 회원님들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제가 경험한 이야기 입니다.
이름은 고인을 생각해서 가명으로 하겠습니다.

7년 전 이맘때 쯤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틀에 한번이라도 잔차를 타지 않으면 소화도 않되고 삶에 의욕도 없던
시절이였습니다.

사실 이틀 이상 쉬어본 적도 없지만서도,,
아무튼 그렇게 자전거 생활이 밥먹고 낮잠자는 것 보다 좋았던 시절 동네에 중
학교를 다니는 영민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아주 여리고 착하며 얼굴이 뽀얀 정말 아직 어린아이 티도 벗어나지 못한 애
띤 얼굴을 하고 있었지요.

또한 말은 없고 늘 부끄러워 나무 뒤나 멀리서만 쳐다보며 당시 스텐딩 연습
에 몰두하고 있는 절 그렇게 오랜시간 조용히 지켜보며 응원을 보내주던 아이
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관심이 많은 아이인 영민이에게 제가 먼저 다가가 자전
거 있으면 함께 타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영민인 그저 그냥 "보고 있으면 안돼요?" 란 짦은 한마디 외엔 갑자기
드리워진 어두운 표정에 저 역시 더 이상 강요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전 그날 그 아이가 겁이 많던가 아니면 자전거 타기를 안좋아한다는 생각 외
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몇일을 전 영민이가 놀고있으면 따로 불러 전날 배운 기술을 보여
주며 그 아이와 함께 쭈쭈바며 우리집에서 함께 맛난 식사도 함께하며 저의 어
린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는 영민이가 고맙고 신통하기까지 했으며 먼저 떠난
큰아들과 같은 느낌에 언제나 퇴근 후 또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한 아침부터 영
민이가 오길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지요.
영민이 집안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지방에 내려가 행상을 할 정도로 집안이 어렵고 더군다나 장사도 어
려워 지금의 전세금마져 빼야 하는데 문제는 부모님께서 피곤에 지쳐 귀가하
시던 중 교통사고를 내셔서 현재 유치장엘 들어가 계신다는 것이였습니다.

그 후 영민이는 그 밝던 모습도 사라지고 제가 무릎이 깨져라 배우지도 않은
기술을 보여주고 재미난 곳을 데려가도 웃는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날 이였습니다.
영민이의 얼굴빛이 다른 날과 달리 검고 그 곧고 예쁘던 피부가 잔주름과 마
른 논과 같이 잘게 갈라진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물어도 보았지만 그냥 아무일 없다고만 하는 영민이를 데리고
상가 슈퍼로 갖습니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음료수와 빵을 고른 후 계산을 하려하니 아주머니
께서 "또 빵이냐?" 하시더군요..

물론 영민이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영민이네 담주면 이사해야 하는데 아버지도 유치장에 계
시고 어머니 혼자 일하고 있기에 저녁을 라면이나 빵만 사먹고 있다고...

전 정말 제 주변엔 이런 아이가 없는 줄만 알았기에 그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날 전 바로 영민이를 데리고 갈비집을 찾아 갈비와 영민이가 좋아하는 냉면
을 사주며 물었습니다..
"너 혹시 아저씨와 같은 멋진 MTB 갖고싶니?"
영민이의 눈이 순간 둥그레 지더군요..

물론 그간 제가 자전거도 가르치고 제 자전거도 빌려주며 타고 놀라고 했기에
자전거를 싫어하진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터였으나 그간 자전거 선물도
어머님이 위험하다고 타지 말라고 했다는 소리에 더 이상의 얘기는 꺼내지 않
았었지요.

그러나 그 때의 시간만큼은 영민이도 뭔가 자신의 삶을 벗어나 다른 자신만의
세상을 갖길 원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영민이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영민이는 아무말 없이 "그거 비싸잖아요."
하며 그저 말없이 갈비를 먹고 있었습니다.

"아니야 아저씨가 한대 이상 만들수 있는 부품이 있어. 프레임만 사다 같이 만
들자"
영민이의 눈이 초롱 초롱 빛났습니다.

그 후 하룻동안 정말 고생 엄청해가며 조립을 끝내고 영민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도 영민이는 보이지 않았고 집사람
과 동네 슈퍼 아주머님 역시 걱정과 불안함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민이네 집에도 역시 불은 꺼져있고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바쁜 아침을 뒤로하고 영민이 학교로 찾아가 무작정 등교하는 아이들을 잡고
물으니 한 아이가 영민이를 알고 있다고 했으며 그 아이에게서 전 억장이 무너
지고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이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3일 전 영민이가 시골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영민이의 말도 안돼는 소식을 확인하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여쭈어보니
교통사고 합의가 되었으나 전세방을 뺀 적은 돈과 그나마 있던 돈마져 합의금
으로 주고나니 더 이상 갈곳도 있을 곳도 삶의 희망도 없기에 할아버님이 계
신 시골로 내려갔으나 너무나 막막해 부모님들께서 자살을 기도했다는군요.
그러나 어린 영민이만 죽음을 맞고 부모님들께선 살아나셨다고만 알고 계셨습
니다.

전 그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내 작은 아이이자 우리 아들놈들의 큰형이며 죽은 내 큰아들과 같은 느낌의
영민이를 었다는 슬픔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너무나 원통하고 비통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선생님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와 비보를 전하니
가족들 역시 비통함에 울음바다가 되었고 영민이를 위한 MTB 자전거는 저의
마음을 더욱 비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영민이 자전거는 한참을 저희집 작은 제 방에 그대로 보관되어 매일 자
전거 위에서 한없이 기뻐하며 잔차를 타는 영민이를 기리게 되었고 그 후 1년
이 더 지나 영민이의 부모님을 어렵게 만나 자전거를 전해주며 당시 영민이와
의 약속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그 때의 영민이와의 추억은 아름다움만을 간직한채 지
금 제 가슴속 깊이 언제나 남아있지만 간혹 라이딩시 어린 중학생들과 잔차를
부러워하며 바라보는 학생들에겐 제 잔차를 빌려주며 동네 한바퀴 돌아보라
고 합니다.

아이들이 제 잔차를 타고 달리는 뒷모습에서 혹시나 영민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입니다.


당시가 생각나 많은 부분 생략하고 글 쓰다보니 두서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들 주변을 조금씩만 들여다 보고 둘러보신다면 우리가 줄 수 있는 행복
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보게되길 것 같아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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