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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는 극우주의자 입니다

불오리2005.02.04 14:15조회 수 18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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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 교수는 가면을 쓴 일본극우인물"<제1신>

[데일리안 2005-02-03 15:44]  



일본 TV에서 "한국인은 성형을 좋아한다" 발언으로 물의
미즈노 교수는 친한파인가? 아니면 극우 인사인가?

[데일리안]최근 일본 ‘니혼테레비’의 ‘제너레이션 정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일본 극우인사가 한일합방과 관련, 망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날 출연자중에는 한국 TV에 자주 출연해 낯익은 미즈노 순페이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도 있었습니다.

미즈노 교수는 이날 출연에서 “한국인은 성형을 좋아한다”등 주제와는 관련없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미즈노 교수는 1968년 일본 훗카이도 출생으로 텐리대학 조선학과를 졸업한 인물로 한국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마친 뒤 현재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의 객원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그는 KBS 1TV '좋은나라 운동본부'등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 인기를 얻은 인물로 유명합니다.

선량한 웃음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인상깊은 미즈노 교수가 왜 이런 발언을 한 것일까요?

데일리안은 친한파로 알려진 미즈노 교수가 사실은 지한파에 극우인사라는 주장이 있어 이 주장을 수차례에 걸쳐 게재합니다.

이 글은 충북대학교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고 있는 장팔현씨가 보내주신 글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1월 30일 새벽, 일본의 민영방송 ‘니혼테레비’의 ‘제너레이션 정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극우인사가 한일합방과 관련, "식민지화라는 단어 자체가 틀렸다. 한국 사람들이 원해서 합병한 것일 뿐이다" 라는 망언을 잇따라 내뱉은 사실이 있었는데, 이 방송에 미즈노 순페이씨도 참석했었죠.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일본 극우인사의 발언에 침묵을 지키면서 오히려 “한국인은 성형을 좋아한다”면서 논점을 흐려가던 그의 모습에서 그는 절대로 친한파도 양심적인 학자도 아닌 전형적인 일본 극우인물이라는 것이 입증되고 말았죠.

저는 솔직히 일본에서 국제관계 석사과정과 일본 고대사 박사과정을 다니면서 미즈노 순페이란 인물에 대하여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8월에 귀국하면서 그의 가면을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의 취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에 그의 퇴장을 종용하였습니다.

그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무려 6개월간에 걸쳐 많은 네티즌들과 함께 시청자게시판에 그의 일본에서의 행적을 알려, 결국 자취를 감추고 말았죠.

그런데 요즘 보니 또 다시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고 그의 웃는 얼굴이 너무 가증스럽다고 느껴 다시 그의 진면목을 알리려 다시 귀사의 지면을 빌려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미즈노씨의 진면목을 알리려 3월말 출간 예정으로'미즈노를 통해서 본 일본(가칭)' 을 작업 중에 있습니다.

상기 방송에서도 미즈노 순페이씨가 “한국인은 성형을 좋아한다”는 등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로 포인트를 회피해가면서 한국을 깎아내리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절대로 친한파가 아닙니다.

인정 많고 순수한 한국인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잘 구사하는 미즈노씨에 환호하며 그가 친한파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호감을 가짐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전혀 변함없는 전형적인 일본인으로 혼네(속마음)와 타테마에(명분)로 무장된
미즈노 교수가 쓴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의 일본위사´

우익인사입니다.

그가 일본에서 노히라 순스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한국인의 일본위사' '한국에서 반일(反日)소설 쓰는 법''엉터리책! 한일전쟁발발'등의 일본어 원본을 읽어보면 가증스러울 정도로 일본에서 한국을 비난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즈노씨는 일본 나라시에 있는 천리(天理)대학 조선학과 출신입니다.

천리대학은 불교의 한종파인 천리교가 세운 대학으로 일제시대 때부터 우리 역사에 대한 연구와 문화재 반출로 유명한 대학입니다. 그만큼 조선 문화재와 천리교의 한국 포교를 위해 정보수집에 열심이었던 대학입니다.

그 대학 출신인 홋카이도 태생의 미즈노씨가 88올림픽때부터 한국에 와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등 우리를 잘 아는 지한파이지 절대로 절대로 친한파는 아니라는 사실과 그의 저서를 보고 판단할 때 그는 지극히 위험한 극우인사라는 점입니다.

현재 일본 정치가는 물론 젊은이들마저 우익성향을 띄고 있어 미래의 한일 관계를 생각할 때 문제가 심각합니다.

일본 우익정치가들이 꿈꿔오던 역사왜곡이 이러한 우익청년들을 키워온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식의 사고를 가진 역사백치들은 계속 나올 것입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매우 불행한 일본 젊은이들의 인식이지요. 이는 일본이 미국의 묵인과 우리가 65년에 맺은 한일협정에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요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일본의 이러한 극우적 경향이 더하면 더했지,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로서는 민간은 민간대로 문화·경제 교류를 확대해 가되, 절대로 군사적 대응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학자들은 어려운 길일지라도 한일공동 역사교과서 만들기에 힘쓰고 정치인들은 일본의 우경화에 절대로 흔들리거나 이용당하지 말고 사전에 충분히 대비책을 철저히 갖추어 놓아야합니다.

율곡 이이 선생이 임진왜란에 앞서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듯이 본인도 지금의 한일관계나 중국의 움직임을 봐서라도 이이 선생의 주장이 있던 임진왜란 전의 상황이라 인식하고 이 시대를 잘 준비해야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임진왜란 전이나 한일합방 전부터 정보수집차 한국에 건너와 친한파인척 활약하던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시대의 한반도 상황이 100년 전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일본의 한류붐도 냉철한 이성으로 봐야합니다. 이는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강온양면 작전의 한 축으로 반일감정을 없애려는 것으로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에 장기 거주하면서 한국어를 능숙히 구사하는 미즈노 순페이라든가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인 쿠로다 카츠히로와 같은 인물에 주의를 기울여야할 때입니다.

섣불리 앵무새의 지저귐에 박수치고 우리의 혼을 빼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앵무새는 아무리 사람 말을 잘 따라 해도 역시 조류인 새(鳥)일 뿐입니다.

사투리 잘한다하여 친한파 정도로 오인하여 경제계나 매스컴이나 청소년들이 소갈머리 없이 환호함은 앵무새의 속뜻을 모르고 장단을 맞추는 꼴입니다.

때문에 시대 흐름을 잘 읽고 일본의 끈질긴 한반도 정책에 주의를 기울이고 친한파인척 보이는 인물들이 실제로는 엄청난 극우인물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국민들이 속지 않았으면 합니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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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는 가면쓴 일본극우파"<제2신>

[데일리안 2005-02-04 10:57]  


미즈노 교수가 쓴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의 일본위사´

"한국인에 의한 일본 역사 왜곡과 날조 많다" 분개한 미즈노
철저히 일본 우익의 입장에서 역사 왜곡

[데일리안 편집자]미즈노 추적동기

미즈노 순페이씨의 글을 처음 데일리안에 올리자 역시 2003년도에 처음 모 매체에 글을 올릴 때와 똑같은 반응이 나왔다. 즉 필자가 한국 우익인사라거나 너무 근거 없이 얘기한다거나 두루뭉실하게 미즈노씨를 비판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잘 알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씀에 있어서는 마지막에 결론을 내리는 귀납법과 먼저 결론을 내리고 글을 써서 입증해 가는 연역법이 있다. 필자는 미조노씨를 2001년부터 추적하던 사람으로 그의 생각을 그가 일본서 쓴 서적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먼저 결론을 내리고 글을 풀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필자가 소장 중인 그가 쓴 일본어 원문의 여러 서적 중 우선 ‘한국인의 일본위사’에 대하여 쓰려고 한다.

필자가 우연히 일본 교토의 한 서점에서 노히라 순스이(미즈노 순페이)씨가 쓴 ‘한국인의 일본위사’를 집어 들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TV에서 보여 지던 그의 순진무구한 웃음은 그 책을 읽고나서 보니 비웃음이요 일본 우월성을 지닌 한 일본 우익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필자는 교토의 한 대학에서 고대사를 전공한 관계로 어렵게 학위를 받았다. 그것도 칠지도와 무령왕이 일왕 계체에 하사한 우전팔번경, 구리거울, 명문등 금석문을 연구하여 학위를 썼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한일간 ‘하사설’과 ‘헌상설’로 첨예하고 미묘하게 대립하며 정설(定說)없이 아직도 논쟁중인 테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일본인 학자 중에서 그래도 양심적인 리츠메이칸 대학의 야마오 유키히사(현 명예교수)교수 정도가 칠지도의 하사설과 헌상설 모두를 부정하고 백제와 왜국은 동등했기에 칠지도의 수수(주고받음)는 대등한 입장에서 행한 외교이므로 ‘대등설’을 주장할 뿐이다.

일본에서 10여년 가까이 연구한 후 2002년 8월에 귀국한 필자는 미즈노의 실체 알리기에 나섰다. 우선 청주의 한 신문에 ‘다시 보는 일본, 일본인’이라는 타이틀로 그해 11월에 미즈노씨에 관한 칼럼을 처음 썼다. 이후 2003년부터는 한 매체에 본격적으로 글을 올려 6회에 걸쳐 그의 본 모습을 알리려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이제는 많은 네티즌이 미즈노씨의 본 모습에 대하여 알아가게 되었다. 새해 들어 1월 31일 '니혼테레비'에서 미즈노씨의 “한국인은 성형을 좋아한다’는 발언과 일본 우익에 동조하는 듯한 동영상이 결국 한국 네티즌들을 폭발시켰던 모양이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이 반드시 온다고 예상했던 터였다.

KBS의 '좋은나라 운동본부'에 출연 중이던 미즈노씨의 실체를 알려주기 위해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올림은 물론 담당 PD에 전화도 걸었고, 전남대학교에도 전화를 걸어 미즈노씨의 일본에서의 행적을 조사해보라고 전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꿈쩍않다가 이제서 그의 실체가 드러나는 중이다.

‘한국인의 일본위사'를 읽고서


그럼 본격적으로 그의 저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은 2002년도에 소학관(小學館 文庫)에서 출판한 책이다. 예의 그는 이 책에서도 자신의 이름 순서조차 뒤바꾸어 노히라 순스이(野平俊水)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인에 의한 일본역사의 왜곡과 날조가 많다'며 분개해 하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한국인에 의한 대표적인 날조로 “천황은 한국인이다(황실 루트는 한국인이다)” “일본의 국보1호는 코오류우지(廣隆寺)의 반가사유상이다"“일본해는 원래 '한국해'였다" “Korea라는 한국의 영문표기는 일본에 의한 음모이다”를 한국인에 의한 대표적인 일본 역사 왜곡으로 들고 있다.

2001년 12월 24일 일왕 아키히토도 인정한 캄무(桓武)천황의 모친이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는 선언도 부정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그의 부정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지 확실한 해결책이나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천황은 126대(황태자까지 넣어서)가 한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만세일계라 하나 이를 믿는 일본사람들은 바보 이외에는 없다. 와세다 대학의 교수였던 미즈노 유 교수는 일본 천황가가 3번 바꿔 었다는 ‘3왕조 교체설’을 주장한다. 그리고 1대부터 10대는 실재하지 않았던 가공의 기록이라고 보는 것이 일본 학계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그래도 미즈노 순페이가 노히라 순스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독자가 있다면, ‘한국인의 일본위사’ 뒷장에 해설을 써준 요무따 이누히꼬(四方田 犬彦) 메이지학원(明治學院) 대학 교수의 글을 보면 알 것이요, 그래도 미즈노가 아니라고 의심스럽다면 먼저 겉표지 안쪽의 이 프로필을 보면 누구나 수긍하게 될 것이다.

이제, ‘미즈노 순페이(水野俊平)’가 결국은 ‘노히라 순스이(野平俊水)’라는 주장에 대해서 반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우선 전체내용을 알 수 있는 목차부터 펼쳐보기로 한다.

제1장에서는 한국인에 의한 문화전달 위사와 침략 위사를 다루고 있다. 제2장에서는 한일 합작에 의한 위사를 다루고 있고 제3장에서는 역사 왜곡의 법칙을 다루고 있다. 제4장에 해당하는 종장에서는 일본 우익이 주축이 돼서 2001년 4월에 출간한‘새로운 역사교과서(‘新らしい歷史敎科書‘)’에 대한 당시 격렬했던 한국인들의 ‘반일행위(미즈노씨가 볼 때)’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제1장은 한국인들이 고대에 일본에 문화를 전달해줬다고 너무 왜곡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일본 유학 2년 만인 97년에 처음으로 일본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인이 본 왜인전“이란 책을 냈다. 졸저에서 필자는 역사상의 한일관계를 1승1무1패의 역사로 평가했다. 즉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2년까지를 한국의 절대적 우위에 의한 외교관계로 보고 한국의 1승으로 본 것이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무승부로 보았던 것이다.

한국이 일본에 패한 것은 한일합방에 의한 일제 식민지 기간(35년)으로 만 보고 있다. 그런데 미즈노씨가 이러한 필자의 주장을 일본역사 왜곡으로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역사 왜곡이다.

실제로 일본 고대에 있어 삼한 삼국인들에 의한 일본열도 이주는 한반도인들에 의한 개척 시대로 봄이 타당하다 하겠다. 이를 부정하기에는 미즈노씨의 반박이 너무나 부족하다.

이는 이미 1969년도에 북한의 역사학자 김석형에 의해 발표되어 일본에서 큰 충격과 반향을 일으켰던 ‘삼한삼국에 의한 일본열도 분국설’에 잘 나와 있다.

즉 일본은 한반도인들에 의해 신개척지로 개발되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일본열도에는 백제,가야, 신라계 유물은 물론 고구려 유적, 유물조차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전설과 언어 풍습으로 볼 때 충분히 가능성이 큰 편이다.

1장 2절에서는 일본 광륭사(廣隆寺)의 사유반가상이 ‘국보 1호’라는 점에 한국인 학자나 일반인들이 너무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미즈노씨의 주장처럼 한국과 일본의 문화재의 국보 지정과 순번 매김에는 다를 수 있고 일본에선 국보 1호도 여럿 있을 수 있다. 미즈노는 한국인들이 이 사유반가상을「일본 국보 1호」라 주장하는 것이 그 유사함에서 쌍둥이 불상으로 비유되는 한국의 국보83호인「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비교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즉 한국 국보83호가 일본 국보1호와 비교되니 한국의 문화가 일본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왜곡을 하고 있다.

그리고 광륭사의 미륵반가보살사유상이 ‘일본서기’ 기록대로 신라에서 성덕태자에게 보내져 태자가 이를 다시 진 하승(秦 河勝:하타노 카와카츠)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진 하승은 신라계 이주민으로 교토에 정착하여 일본열도 전국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재벌이었다. 이 사유상이 신라계라는 것은 일본 학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는 70년대 수학여행 차 광륭사를 찾았던 한 한국학생이 “이것은

우리 것이야!”하면서 불상의 손을 잡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지는 불상사가 있었고, 이왕 떨어진 참에 그 재질을 분석해보니 한국에서만 나는 적송(赤松-붉은 소나무)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서기’의 기록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할 것이다.

1장 3절에서는 한국해에 관해서 일본측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한국인들이 주장하는 일본해 표기의 부당성」에 대해 이는 위사(僞史)이며 위구심까지 느낀다고 한다. 덧붙여서 그는 한국인들이 '일본해'를 일제 때와 관련시키는 것은 잘못이며 19세기에 벌써 유럽에서 사용되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유중인 고(古)지도 515점 중 한국해-동해 표기가 62%를 점하고 있다고 하며, 16-18세기 고지도 중 동해 표기 관련 115점 가운데 62%에 해당하는 71점이 한국해 또는 동해로 표기된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일본해(Mer du Japon), 일본북해, 일본서해 포함)로 표기된 지도는 불과 22점으로 19%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찍이 서양에서도 1615년 이전부터「한국해(Mer de Coree)」라고 훨씬 높은 비율로 부르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제2장에서는「일한 합작에 의한 위사」를 다루는데 한국인과 일본인에 의해 역사가 왜곡 날조된다는 점이다.

특히 그가 주장하는 한국인에 의한 역사왜곡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고 한다.

"'왔쇼이’는 한국어 ‘왔소’에 유래 한다” “쿠다라나이(쓸모없다)’는 ‘쿠다라나이(백제는 없다)’에 유래한다”는 주장이 왜곡이라는 것이다.

또 “왕인박사의 생가는 전라남도 영암” “법륭사 금당벽화의 작가는 한국인 담징” "만엽집은 한국어"라는 사실도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제3장에서는 역사왜곡의 법칙에 대하여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다. 미즈노씨에 의하면, 역사왜곡은 “타인(일본인)이 날조한 위사는 역사왜곡으로 보이고, 자신(한국인)이 한 역사왜곡은 역사의 재평가로 보인다. 자신들의 역사관에 안성맞춤인 사료(史料)는 어떤 것이 됐든 사료 비판 없이 이용하고, 역사왜곡은 선의(善意)로 행하여진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2001년 여름에 일어난 교과서 문제로 말미암아 한국에서는 일본 우익에 대한 규탄대회와 일제불매운동, 그리고 일왕(천황)의 인형과 히노마루(일장기)화형식이 격렬하게 이루어짐을 한국에 사는 젊은 일본인(미즈노씨)이 본국에 고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들이 이성을 잃은 듯 반일데모를 지켜보면서도 82년의 교과서 문제 때와는 달리 일부 희망 섞인 전망을 보고하고 있다.

즉 “일부이지만 한국인들 중에서도 일본의 (극우지식인들이 선동하는 ‘왜곡 날조된 교과서’: 필자 주)‘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대견해 하고 있다.

다음은 미즈노씨가 쓴『한국인의 일본위사』뒤표지에 나와 있는 선전 문구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 내용

“<고대의 천황은 한국인이었다><일본해는 한국해였다><고천원은 한국에 있었다.><‘쓸모없다’는 ‘백제는 없다’에서 유래 한다><법륭사 금당벽화의 작자는 한국인><『만엽집』은 한국어로 쓰여 졌다.>

최대의 반일국(反日國)이면서 최대의 친일국인 한국에서 일반에 전해지는 일본역사의 상식 중에는 왜곡되고, 의도적으로 날조된 <위사>가 많이 보인다.

한국TV에 고정 출연하며, ‘최고로 유명한 일본인’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는 대학 강사가,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우월 사상이 얼마나 역사를 왜곡하여 왔는가를 재치 있게 소개한다. 한국인이 믿고 싶은 '일본사'에 일본인들은 그저 아연!”

(원본:“「古代の天皇は韓國人だった」「日本海は韓國海だった」「Koreaという國名は日本の陰謀」「高天原は韓國にあった」「『くだらない』は『百濟ない』だった」「法隆寺の金堂壁畵の作者は韓國人」「万葉集は韓國語で書かれた」…。"最大の反日國にして最大の親日國"の韓國で一般に傳わる日本史の常識の中には、歪曲され、意圖的に捏造された「歷史」が多くみられる。韓國TVにレギュラ-出演し、「最も有名な日本人」として人氣を博す大學講師の著者が、韓國人の日本に對する優越思想がいかに歷史を歪めてきたかをユ-モラスに紹介する。韓國人が信じたい「日本史」に、日本人はただア然。” )

이처럼 미즈노씨는 철저히 일본 우익의 입장에서 한국해와 천황의 출자(계통)문제, 언어문제 등에 대하여 그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즈노씨가 한국에서 문학을 전공했다면 우선 이 문제부터 풀어보고 역사문제에 대하여 자기주장을 펴야할 것이다.

즉 왜? 일본어는 한국어와 닮았을까하는 문제이다. 특히 언어학자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 습관상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 낸 의태어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일본열도 사람들은 고대에 한반도에서 이주해간 사람들이란 과학적 연구발표가 일본 쪽에서 자주 나온다하더니 과연 그런 연유란 말인가?

우선 비슷한 단어부터 알아보자.

우리말 '자꾸자꾸'가 일본어로도 그대로 통한다. 배가 고파서 꼬르륵거릴 때를 표현하는 일본어 ‘뻬꼬뻬꼬’가 있는데 ‘뻬’는 우리말 배(腹)를 의미하고 ‘꼬‘는 ’고프다‘의 ’고‘에 해당한다는 설까지 있다. 어린애 키가 ’쑥쑥 크다‘의 ’쑥쑥‘은 일본어로 ’스꾸스꾸’이고, ‘우물우물’ 먹는 모습을 나타내는 일본어 ‘모그모그’는 ‘먹다’에서 유래한다. 밥을 게걸스럽게 ‘팍팍’ 퍼먹는 모습을 ‘빠꾸빠꾸’ 먹는다 한다. 눈시울을 글썽거리는 것을 ‘우루우루’라 하니 ‘울다’에서 유래하고 물이 ‘졸졸’ 흐르는 것을 ‘쵸로쵸로’라 한다. 아기들이 말 안 듣고 힘들게 할 때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는데 ‘팡팡’을 ‘펭펭’이라한다. 너무나 비슷한 의태어이다.

이밖에도 카사카사(꺼칠꺼칠), 사쿠사쿠(사각사각), 파라파라(눈이 ‘펄펄’), 찌라찌라(찔끔찔끔), 카라카라(‘깔깔’웃을 때) 등 등 열거하기에도 한계가 있을 지경이다.

일부 명사에서도 가을을 재촉하며 울기 시작할 매미는 ‘세미’요, 기와(瓦-일부 지역서는 개와)는 ‘가와라’이고 뱀(蛇)은 ‘배미’이다. 초기에 ‘배미’라 불리다가 ‘헤비’로 변했음을 9세기 일본 고대의 백과사전인《와묘오쇼오(倭名抄)》에 보면 그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 고대 초기 일본어를 알 수 있는 이 사전에 뱀을 ‘배미(倍美)’라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배미가 뱀을 의미하는 한국말이 아니라고 노히라씨는 증명할 수 있는가?

결국 일본어 헤비(뱀)도 한국어 배미(충청도.전라도 방언)에서 변천돼 갔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현재의 일본인은 그 의미를 모르는 ‘염장을 지르다’ 할 때의 ‘염장(鹽藏)’이란 단어가 있는데, 일본인은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이는 일본의 불교설화집인《료오이끼(靈異記)》에 이 단어가 나왔는데 그 의미를 정확히 아는 일본인은 적다.

필자도 그 책에 ‘배미(뱀)’니 ‘염장’이니 나오니 멋쩍어 하면서도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서적은 바로 백제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이주민의 후손인 ‘쿄오까이(景戒)’란 스님이 8세기 후반에 지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으며, 세대와 지역을 뛰어넘은 충청도 사투리와의 만남이었으니 이 어찌 시공을 초월한 우리말과의 만남이 아니었던가?

에도말기의 학자였던 후지와라 사다모또(藤原貞幹)조차 1781년 저술한 《쇼오꼬오하쯔(衝口發)》에서 "일본의 문물과 언어는 조선이 기원이다"라 말했을 정도로 한국어와 일본어는 닮은 점이 많은 것이다. 충분히 근거가 있고 이해가 되는 점이다.

이정도로 우선은 미즈노씨의 저서에 대하여 반박을 하고 다음으로 이어진다./ 데일리안 편집자

이 글은 충북대학교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고 있는 장팔현씨가 보내주신 글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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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92 12 silra0820 2006.02.20 1565
188091 ........ 2001.05.01 193
188090 ........ 2001.03.13 226
188089 물리 님.. 이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 물리 쪼 2003.08.09 215
188088 물리 님.. 이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 아이 스 2003.08.09 245
188087 글쎄요........ 다리 굵은 2004.03.12 540
188086 분..........홍..........신 다리 굵은 2005.07.04 712
188085 mtb, 당신의 실력을 공인 받으세요.4 che777marin 2006.05.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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