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공원 가는 언덕길. 걸어 올라가면 전혀 힘이 안들 아주 약간의 경사. 그러나 자전거로는 업힐이고 나처럼 처음 업힐을 하는 이 한테는 이 정도만으로도 힘이 든다. 경사가 시작된지 얼마 안되서 결국 기어를 1대3으로 넣었다. 동호회원님 한 분이 옆에서 다독여 주시며 이것 저것 팁을 알려주신다. 결국 성공했다. 코스가 15분 정도만 더 길었어도, 경사가 조금만 더 높았어도 중도에서 포기했을 것같다.
공기 맑고 높이 있고 한적하고 트여있는 곳이 다 그렇듯이 하늘 공원은 좋다. 요란하게 꾸며진 것들은 어디에도 없고 둘레에는 한강 물길을 중심으로 서울 경치가 가득히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머지않은 곳에 올려다 보이는 거대한 소각로 굴뚝에서 느릿느릿 피어오르는 짙은 연기와 공원에 자리잡은 몇개의 풍력 발전탑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한 가운데에서는 억새가 자라고 있었던가?
둘레를 천천히 돌면서 한강쪽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각자 자신의 자전거를 잡고 개인 사진을 찍었다. 이제 다운힐이다. 별거 아닌 경사지만 미끈한 포장로인데다 짧지 않은 코스인지라 엄청난 가속도, 아마도 내가 처음경험 해볼 가속도가 붙을거라고 짐작은 했다. 장애물이 없고 넓은 길이니 그저 스릴을 즐기며 전속력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속도계 숫자가 50km를 넘어가기 시작하고 마침 약간의 커브가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꽈당하고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튕겨나가거나 자전거와 엉켜 길바닥을 구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브레이크를 너무 쎄게 잡았던 것이다. 넘어지기 시작한 0.몇초의 짧은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아무 느낌도 없었다. 헬맷 한쪽이 깨져 너덜너덜해졌고 두꺼운 자켓과 등산용 바지는 여기 저기 찢어지거나 구멍이 생겼다. 고글 프레임에는 기스가 났고 렌즈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오른쪽 뺨과 턱 사이, 왼쪽 손등, 왼쪽 무릎, 오른쪽 팔꿈치의 경미한 타박상이나 찰과상말고는 상처가 없었다. 아, 입술 안쪽이 살짝 터져 피가 조금 나오기도 했다.
오늘 나는 헬멧, 고글, 장갑, 자켓, 바지의 합동 작전에 의해 구원받았다. 죽을 수도,몇달 동안 외출하지 못할 정도의 타박상이나 골절상이나 찰과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오늘 나는 동호회원님들의 배려에 의해서도 구원 받았다. 혼자 당한 일이었다면 망연자실해서 기가 죽었겠지만 차를 불러야 되겠다는 그 분들 때문에, 도중에 약국 앞에서 라이딩을 멈추고 상처를 돌봐주신 그 분들 때문에 계속 힘을 낼 수 있었다. 라이딩이 끝나고 한 분은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거나 자신이 없는 스포크 정비와 브레이크 패드 조절까지 해주셨다.
뺨에 난 상처와 망치로 내려치기라도 한것처럼 깨진 헬맷을 보시면 어머님은 뭐라고 하실까? 부모님과도, 그 누구와도 떨어져 혼자 산다는 것은 이런 때, 이점이 된다. 탄현까지 가서 즐거운 점심을 나누고 아무도 맞아주는 이 없는 집에 돌아와 풀썩 널브러진다. 혼자 탈 때보다 조금 더 긴 코스를, 더 평속을 올려서 다녀온 것이지만 피곤한것은 아니다. 그저 몸에 난 시시한 상처에서 나는 시시한 열기들 때문에, 그리고 어제 정기 라이딩 모임에 시간맞춰 나가기 위해 밤을 꼴딱 샌 덕에, 조금 졸렸을 뿐이다.그리고 5시간만에 깨어나 다시 밤을 새울 태세인 지금은 우선 달고 커다란 사과를 먹고 싶다. 하나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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