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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소리 함부로 칠 일이 아니다. ㅡ.ㅡ;;;

靑竹2005.07.09 00:30조회 수 76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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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호원동에 호암사란 조그만 절이 있다. 거기로 올라가는 업힐 코스가 시멘트 포장길인데 어찌나 우툴우툴거리는지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 볼록 튀어나온 곳에 앞바퀴가 살짝 걸리면 핸들이 건들건들 들리며 자동으로 윌리동작을 연출하며 발라당 넘어가기 십상이다. 물론 고수님들에겐 별 난관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초짜인 나로선 엄청난 압박을 느끼는 곳이다.

힘이 장사인 친구를 하나 데리고 올라가는데 앞서서 올라가던 그친구 힘으로 내리 쏘다가 앞바퀴가 들리며 잠시 윌리동작을 선보이더니 클릿을 뺄 겨를도 없이 그대로 꽈다당 넘어지는 걸 뒤에서 목격하면서 나도 놀라서 부랴부랴 쥐어 뜯듯이 클릿을 빼고 자빠링 일보 직전에 내리기도 했던 원한의 코스다. 아직도 클릿페달이 완전히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위급한 순간에 나도 모르게 빼긴 빼는데 이것이 빼는 건지 아니면 저절로 빠지는 건지 그 매커니즘의 과정이 묘하다. 뭐 굳이 글로 표현하자면 발의 각도를 틀어서 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쥐어뜯듯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일전에 글에서 밝혔듯 사부님이  한 분 계시지만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그의 부인인 사모님의 실력도 만만치가 않아서 남자인 나도 따라가기가 어려운 지경인데. 도선사보다 훨씬 빡세다는 호암사에 두번을 도전하였다가 정상 문턱에서 좌절을 겪었는데 사부님은 21단 생활잔차로 바람같이 올라가는 걸 보고 내가 왜 인간이 아닌 짐승을 사부로 삼았던가 하는 생각에 머릴 깎고 출가를 할까 아니면 이민을 가버릴까 갈등을 겪으면서 조국이 싫어지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모에게 큰소리를 방정맞게 쳐놓은 것이었다.

"하이고~ 호암사요? 말도 마슈~ 만약 사모님이 호암사를 단번에 완등하는 걸 보고 내가 그자리에서 실패를 한다면 내 차라리 목을 매달고 죽을라우"

"엥? 정말요? 아이구~ 그러면 제가 같이 올라가다 저만 완등에 성공하면 살인하는 꼴인데 올라가고 싶어도 못올라가겠네요..호호호~"

하며 염장을 지른다. 도선사는 올라갔다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는 것도 가능한데 요 짧은 호암사 코스가 될듯 될듯 하면서 어려워 그렇게 몇달을 아예 잊고 지냈는데 오늘 오후에 문득 누가 호암사 이야길 꺼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내고 엎어진 김에 쉬어 가랬다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 내친 김에 까짓거 올라갑시다"

하고 일행 중 하나가 충동질을 한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사모께서 올라가겠다고 장비를 주섬주섬 챙긴다. 아이고 평소에 농담으로 호암사를 오르자고 하면 목을 맬 끈부터 찾는 시늉으로 대항을 해서 모면했었는데 난 이제 죽었다.  '아..사나이 인생 결국 마흔일곱에 종치나 보다' 하는 생각에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서러움이 복받쳐 가족들의 얼굴이 눈앞에 슬라이드처럼 하나 하나 떠오르며 속으로 울먹이며 자전거학교 한귀퉁이에 철푸데기 누워서 쉬고 있는 애마를 일으켜 세우는데 오늘 따라 엄청 무겁게 느껴져 만정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고..

다섯명이 도전하는데 내가 세번째로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사모님이 내 앞이다. 내가 사는 길을 두가지다. 첫째로 내가 보란듯이 단번에 완등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첫번째 방법이 난망이라 좀 더 현실성이 있는 두번째 방법 즉, 그녀가 내 앞에서 완등에 실패하는 일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앞에 가는 사람이 자빠링을 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죽도록 빌면서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핸들바를 쥐고 있어서 망정이지 성황당 돌무더기 앞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빌었다면 손바닥에 지문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흡사 파리새깽이 앞다리 비비작거리듯 빌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사모님은 도무지 자빠링과는 거리가 먼 폼으로 쉬지않고 올라간다. 아둥바둥 핸들바를 틀어쥐고 건들건들 쳐들리려는 핸들에 코를 쳐박고 죽어라 페달을 밟아대면서 이번엔 기도 대신에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아...신발..공연시리 큰소리는 쳐갖고.." "뭔 절이 이리도 많담" "사부는 왜 저런 독한 여자랑 사는가 몰러" 등등 말도 안되는 푸념들이 입을 쩍 벌리고 헥헥거리는 숨과 함께 튀어나온다.

푸헤헤.
그런데 사람의 목숨이란 참으로 모진가 보다. 살려는 욕구가 너무나 강했던가. 나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지 않고 따라서 올라갔다. 숨소리도 헥헥모드에서 씩씩모드로 바뀐지 오래다. 급기야 씩씩 소리에 이상한 쇳소리 비스무리한 소리까지 섞여 나온다. 궁시렁 궁시렁.

뒤에서 따라오는 두사람은 힘이 들었나 앞에 가는 날 보고

"그만 가자구...아이고 죽것네..."  한다.

"씩씩..누굴 헥헥..죽이실라구 그려요...난 못서요..물구신도 아니시구..씩씩..헥헥"

"그려..그럼 우리 둘은 여기서 쉬고 있을테니 올라갔다 오라구"

그런데 앞에 말을 하느라 기력이 쇠해서 그런지 '알았수' 나 '네' 라는 짧막한 단어조차 입에서 뱉어낼 수가 없어서 시뻘개진 얼굴을 하고 무작정 페달을 밟아서 올라갔다.


절마당에 먼저 도착한 두사람.

"목숨을 건지신 거 축하합니다..호호호"

"아이고 갑장님 이제 목매실 끈 버리슈..필요 없잖우?"



살았다. ㅡ.ㅡㆀ



(호암사 오른 것도 금연효과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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