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의 일이다.
무지무지 튼튼했던 생활잔차를 도난당하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던 잔차질을 못해 뽕쟁이 주사생각에 몸서리치는 거 맹키로(경험이 없지만 대략 알 것 같음..ㅋㅋ)몸살이 날 지경이었는데 다시 잔차가게를 기웃거리며 생활잔차를 물색하던 중 mtb예찬에 침을 튀기던 후배 땜시로 엄청난 무리를 하여 남들에겐 저가형일지 몰라도 보리흉년에 하루 밥 한끼 벌어 물을 잔뜩 부어서 죽 세끼로 불려서 근근히 연명하던 나로선 엄청난 과용일 수 밖에 없는 잔차를 구입하였다.
그래도 세자릿수 곱하기 만원짜리인지라 도둑질과 사기 등등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만한 수단을 빼고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비자금을 만들려 고군분투하던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새우처럼 허리가 휘는 느낌이다.
그런데 문제는 비록 영감을 들에 놓아 먹이는 스타일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엄격한 가풍(?)을 강요하시던 존경하는 마눌님이 한 분(헉..그럼 누구는?) 계셨기 때문에(으흑흑) 여하히 그분을 속이느냐였다. 설득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인 건 알았지만 우리 마님이 설득당할 사안은 절대로 못되었기로 비겁하지만 속이는 수밖에 없었다. 혹자께서는 그래도 설득해야 도리가 아니겠는가 반문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잔차 가격을 솔직하게(미련하게?) 발설하는 그즉시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한 생존본능 때문이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무튼 잔차를 잃어버린 뒤로 한 일주일여를 몸살이 난 애처러운 몰골의 내모습을 내내 관찰하며 "차라리 자전거를 하나 사줄테니 그거 가지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말라"던 마눌이었기 때문에 새 엠티비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쭈뼛쭈뼛 아파트 벨을 눌렀다. 콩당콩당..
"어? 자전거 새로 사셨네요? 얼마 주셨대요?"
"웅...십만원"
"와~ 요즘 자전거 잘 나오네요..십만원짜리가 되게 반짝거린다.." (허걱~)
"웅..요즘은 기술이 좋나벼..5만원짜리도 있는디..무지 반짝거려.."
"근디 밖에 매두지 왜 베란다로 가지고 들어가요? 가뜩이나 좁아 죽겠구만"
"도둑맞으면 열받잖여..."
"그깟 십만원짜릴 누가 집어간다구 그려요.."
"돈이 문제가 아녀...열받잖여.."
"하여간 영감태기 못말려요.."
툭하면 날 보고 '영감태기'라고 호칭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띠동갑인 나이어린 처남이 있는데 그친구의 아들 그러니까 내겐 처조카인 꼬마녀석을 어느날 데리고 밖에 나갔다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아이구 애기가 되게 이뿌네요...할머니세요?"
하는 말을 들었단다. 마흔 넷에 그런 말을 들으니 조선땅에 만정이 다 떨어져 차라리 아프리카로라도 이민을 갔으면 좋겠다며
"이게 다 영감탱이가 날 고생시켜서 이런 것이니 책임을 져욧~!!!!"
하면서 애꿎은 청춘(?)을 보고 느닷없이 '영감탱이'라고 소릴 버럭 지르는 것이 아닌가. 억울했지만 그자리서 감히 반박할 엄두도 못내는 선천적 새가슴인지라..'넹' 하며 그저 지당한 말씀이란 듯이 모기 하품하는 소리로 대답을 하며 풀이 죽었던 것이었는데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항변하며 대들지(ㅡ.ㅡ;;;) 못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그 뒤론 아주 대놓고 영감 영감 하며 날 불렀는데 가랑비도 처음 맞을 때만 귀찮지 옷이 푹 젖으면 그런대로 맞을만 하다더니 내가 바로 그 꼬라지다. 여보나 xx아버지란 호칭은 이제 기억에서 철저하게 지워진 상태다. 에휴..아마도 영감소릴 가장 오래 듣고 산 사나이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영감~"하고 부르면 '넹"하고 아무 생각없이 총알같이 대답이 나온다.
그런데 외출 후 잔차를 베란다에 입고시키기를 반복하던 며칠 후였다. 동네 외출할 일이 있어서 어딜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니 복도에 자물쇠도 채우지 않고 잔차가 휑뎅그레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마누라...이기 도대체 우찌된 일여...아이고 왜 잔차를 복도에다가..??"
"얼래? 베란다 청소한다고 내놨다가 나도 깜빡 잊었네요?"
"내가 못살어..못살어.."
"참내..마눌이 한동안 안보여도 태평한 영감이 잔차 복도에 내놨다고 저렇게 펄펄 뛰실까..참내.."
"웅...고것이..긍께로..그러니까..내 말은...값이 싸고 비싸고가 문제가 아니구 말여...요것이 정이 새록새록 들어서리...또 이자뿌면 나 죽는당께..."
"허이고...내 내일 구청에 가서 그놈의 자전거와 혼인신고라도 해줘야것네..흐미~샘이 다 나네요. 내가 참 불쌍한 여자지...십만원짜리 자전거가 나보다 더 사랑스런가베.."
사실 그깟 엠티비가 수천대가 있다 한들 감히 마눌과 비교를 할 수 있을까만 마눌은 마눌이고 잔차는 잔차니 놀란 가슴과 잔차 핸들을 동시에 부여잡고 베란다로 다시 모셔놓고는 안도의 한숨을 쉰 기억이 난다.
요로코롬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도 희희낙낙거리는 이유는 마눌님이 인터넷과는 거리가 먼 아짐씨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긴 어렵다. 요즘 시청에서 무료로 주부들에게 인터넷 강습을 해준다던데 혹시 배웠을지도 몰라 가슴이 두근거린다.
좌우간 마눌님께서 아직도 십만원짜리 자전거로 알고 계신 나의 애마와 오늘도 빗속을 뚫고 라이딩을 했다.
무지무지 튼튼했던 생활잔차를 도난당하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던 잔차질을 못해 뽕쟁이 주사생각에 몸서리치는 거 맹키로(경험이 없지만 대략 알 것 같음..ㅋㅋ)몸살이 날 지경이었는데 다시 잔차가게를 기웃거리며 생활잔차를 물색하던 중 mtb예찬에 침을 튀기던 후배 땜시로 엄청난 무리를 하여 남들에겐 저가형일지 몰라도 보리흉년에 하루 밥 한끼 벌어 물을 잔뜩 부어서 죽 세끼로 불려서 근근히 연명하던 나로선 엄청난 과용일 수 밖에 없는 잔차를 구입하였다.
그래도 세자릿수 곱하기 만원짜리인지라 도둑질과 사기 등등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만한 수단을 빼고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비자금을 만들려 고군분투하던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새우처럼 허리가 휘는 느낌이다.
그런데 문제는 비록 영감을 들에 놓아 먹이는 스타일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엄격한 가풍(?)을 강요하시던 존경하는 마눌님이 한 분(헉..그럼 누구는?) 계셨기 때문에(으흑흑) 여하히 그분을 속이느냐였다. 설득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인 건 알았지만 우리 마님이 설득당할 사안은 절대로 못되었기로 비겁하지만 속이는 수밖에 없었다. 혹자께서는 그래도 설득해야 도리가 아니겠는가 반문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잔차 가격을 솔직하게(미련하게?) 발설하는 그즉시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한 생존본능 때문이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무튼 잔차를 잃어버린 뒤로 한 일주일여를 몸살이 난 애처러운 몰골의 내모습을 내내 관찰하며 "차라리 자전거를 하나 사줄테니 그거 가지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말라"던 마눌이었기 때문에 새 엠티비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쭈뼛쭈뼛 아파트 벨을 눌렀다. 콩당콩당..
"어? 자전거 새로 사셨네요? 얼마 주셨대요?"
"웅...십만원"
"와~ 요즘 자전거 잘 나오네요..십만원짜리가 되게 반짝거린다.." (허걱~)
"웅..요즘은 기술이 좋나벼..5만원짜리도 있는디..무지 반짝거려.."
"근디 밖에 매두지 왜 베란다로 가지고 들어가요? 가뜩이나 좁아 죽겠구만"
"도둑맞으면 열받잖여..."
"그깟 십만원짜릴 누가 집어간다구 그려요.."
"돈이 문제가 아녀...열받잖여.."
"하여간 영감태기 못말려요.."
툭하면 날 보고 '영감태기'라고 호칭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띠동갑인 나이어린 처남이 있는데 그친구의 아들 그러니까 내겐 처조카인 꼬마녀석을 어느날 데리고 밖에 나갔다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아이구 애기가 되게 이뿌네요...할머니세요?"
하는 말을 들었단다. 마흔 넷에 그런 말을 들으니 조선땅에 만정이 다 떨어져 차라리 아프리카로라도 이민을 갔으면 좋겠다며
"이게 다 영감탱이가 날 고생시켜서 이런 것이니 책임을 져욧~!!!!"
하면서 애꿎은 청춘(?)을 보고 느닷없이 '영감탱이'라고 소릴 버럭 지르는 것이 아닌가. 억울했지만 그자리서 감히 반박할 엄두도 못내는 선천적 새가슴인지라..'넹' 하며 그저 지당한 말씀이란 듯이 모기 하품하는 소리로 대답을 하며 풀이 죽었던 것이었는데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항변하며 대들지(ㅡ.ㅡ;;;) 못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그 뒤론 아주 대놓고 영감 영감 하며 날 불렀는데 가랑비도 처음 맞을 때만 귀찮지 옷이 푹 젖으면 그런대로 맞을만 하다더니 내가 바로 그 꼬라지다. 여보나 xx아버지란 호칭은 이제 기억에서 철저하게 지워진 상태다. 에휴..아마도 영감소릴 가장 오래 듣고 산 사나이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영감~"하고 부르면 '넹"하고 아무 생각없이 총알같이 대답이 나온다.
그런데 외출 후 잔차를 베란다에 입고시키기를 반복하던 며칠 후였다. 동네 외출할 일이 있어서 어딜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니 복도에 자물쇠도 채우지 않고 잔차가 휑뎅그레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마누라...이기 도대체 우찌된 일여...아이고 왜 잔차를 복도에다가..??"
"얼래? 베란다 청소한다고 내놨다가 나도 깜빡 잊었네요?"
"내가 못살어..못살어.."
"참내..마눌이 한동안 안보여도 태평한 영감이 잔차 복도에 내놨다고 저렇게 펄펄 뛰실까..참내.."
"웅...고것이..긍께로..그러니까..내 말은...값이 싸고 비싸고가 문제가 아니구 말여...요것이 정이 새록새록 들어서리...또 이자뿌면 나 죽는당께..."
"허이고...내 내일 구청에 가서 그놈의 자전거와 혼인신고라도 해줘야것네..흐미~샘이 다 나네요. 내가 참 불쌍한 여자지...십만원짜리 자전거가 나보다 더 사랑스런가베.."
사실 그깟 엠티비가 수천대가 있다 한들 감히 마눌과 비교를 할 수 있을까만 마눌은 마눌이고 잔차는 잔차니 놀란 가슴과 잔차 핸들을 동시에 부여잡고 베란다로 다시 모셔놓고는 안도의 한숨을 쉰 기억이 난다.
요로코롬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도 희희낙낙거리는 이유는 마눌님이 인터넷과는 거리가 먼 아짐씨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긴 어렵다. 요즘 시청에서 무료로 주부들에게 인터넷 강습을 해준다던데 혹시 배웠을지도 몰라 가슴이 두근거린다.
좌우간 마눌님께서 아직도 십만원짜리 자전거로 알고 계신 나의 애마와 오늘도 빗속을 뚫고 라이딩을 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