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구보씨는 산에 가고 싶었다. 잔차를 타고 꼭 산에 가고 싶었다. 구보씨는 왈바에 가입하였다.
>
>구보씨는 펑크에 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 약속을 하면 펑크 당하기 일쑤였고, 자동차를 탔다 하면 펑크였고, 심지어 길거리를 걸어가도 못에 찔리기 일쑤였다.
>
>구보씨가 왈바에 가입하자마자 펑크에 관해서 검색을 해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검색 결과, 펑크 패치는 번개표가 가장 좋았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번개표 패치는 머리카락 보일까 꽁꽁 숨어있었던 것이다. 번개표 패치를 어렵게 구했을 때 구보씨는 날듯이 기뻤다.
>
>펑크 패치와 펌프는 같은 형제였다. 구보씨는 토픽 몰프 터보를 구했다. 처음에는 밸브 아답타를 생각했지만 결론은 펌프였다. 제일 좋은 걸로 질렀다. 하지만 펑크 난 잔차를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잔차 바퀴를 일부러 펑크를 낼 수는 없었다.
>
>구보씨는 주변부터 물색했다. 누군가의 잔차가 펑크났다거나, 바람 빠진 잔차가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시간과 공간,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갔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펑크를 때우고, 바람을 방방하게 집어넣었을 때, 구보씨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
>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 길을 가다가도 바람이 빠졌거나 펑크 난 잔차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
>“아저씨, 바퀴에 바람 넣어야겠어요. 제가 넣어드릴까요?”
>
>오늘도 구보씨는 한강을 지나가다가 2대의 바람 빠진 생활 잔차에 공기를 넣어주었다. 펑크가 났으면 펑크도 때워주었다. 레버 같은 건 이제 필요가 없었다. 손으로 척척 주물러도 타이어와 튜브는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
>구보씨가 잔차에 관한 공구를 처음 구입한 것은 Y형 육각렌치였다. 어느 날 우연히 한강변을 걷다가 잔차를 조립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택배기사는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잔차를 뚝딱 조립했다. 마치 요술방망이 같았다.
>
>인터넷으로 알아봤더니 3천원했다. 더 비싼 것도 있었지만 전문가란 공구를 탓하는 법이 아니었다. 동네 근처 허접한 잔차방에 갔었다. 5천원을 불렀다.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려 했지만 택배비를 생각하면 배꼽이 더 컸다. 구보씨도 ‘어리석은 고집’이라는 게 있었다. 전철로 한 시간 반 거리에 한*MTB가 있었다. 그곳에 3천원짜리 Y형 육각렌치가 있었다. 구보씨에게는 실로 눈물겨운 육각렌치였다. 십자수님의 무지개 육각렌치 셋트가 결코 부럽지 않았다(구보씨는 결국 구로동 공구상가에서 개당 1만원짜리 일제 육각렌치를 사이즈 별로 모두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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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려면 필수조건은 헬멧과 장갑이었다. 안 그러면 낑가주지도 않았다. 구보씨는 결코 왕따 당하기 싫었다. 또 ‘공구’가 있었다. 랜스 암스트롱이 신었다는 카네소 클릿 신발, EL-500, 속도계..
>
>산으로 가는 길은 실로 끝이 없었다. 때는 여름이었고, 반팔 저지와 반쫄바지를 구해야만 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디자인도 중요했다. 이 모두를 구했을 때 어느새 여름이 훌쩍 지나버렸다. 가을이 되자 긴팔 저지와 긴통바지를 구해야만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
>방풍자켓!
>
>구보씨는 결국 코피가 터졌다. 대체 산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번개공지는 대부분이 야벙이었다. EL-500 따위로는 어림도 없었다. 진정 산으로 가는 길은 이토록 멀고 험하단 말인가? 구보씨는 한숨부터 나왔다.
>
>구보씨는 자신이 이제까지 한 노력들을 차근차근 되씹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중요한 뭔가가 하나 빠진 거 같았다. 구보씨는 산으로 가기 위해서 무엇을 빠트렸는가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
>허걱!
>
>그것은 잔차였다!
>
>이제까지 잔차도 없이 날이면 날마다 저지와 쫄바지, 클릿 신발을 신고, 헬멧과 장갑을 낀 채로, 카멜 물백을 짊어지고, 펑크 패치와 펌프를 들고 엔진 업글을 한답시고 도로를, 언덕을 빡세게 달렸던 것이다. 그러다 펑크 난 잔차를 보면 무상 수리도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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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산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그것이었다.
>구보씨는 산에 가고 싶었다. 잔차를 타고 꼭 산에 가고 싶었다. 구보씨는 왈바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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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는 펑크에 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 약속을 하면 펑크 당하기 일쑤였고, 자동차를 탔다 하면 펑크였고, 심지어 길거리를 걸어가도 못에 찔리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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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가 왈바에 가입하자마자 펑크에 관해서 검색을 해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검색 결과, 펑크 패치는 번개표가 가장 좋았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번개표 패치는 머리카락 보일까 꽁꽁 숨어있었던 것이다. 번개표 패치를 어렵게 구했을 때 구보씨는 날듯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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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패치와 펌프는 같은 형제였다. 구보씨는 토픽 몰프 터보를 구했다. 처음에는 밸브 아답타를 생각했지만 결론은 펌프였다. 제일 좋은 걸로 질렀다. 하지만 펑크 난 잔차를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잔차 바퀴를 일부러 펑크를 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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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는 주변부터 물색했다. 누군가의 잔차가 펑크났다거나, 바람 빠진 잔차가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시간과 공간,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갔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펑크를 때우고, 바람을 방방하게 집어넣었을 때, 구보씨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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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 길을 가다가도 바람이 빠졌거나 펑크 난 잔차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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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바퀴에 바람 넣어야겠어요. 제가 넣어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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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구보씨는 한강을 지나가다가 2대의 바람 빠진 생활 잔차에 공기를 넣어주었다. 펑크가 났으면 펑크도 때워주었다. 레버 같은 건 이제 필요가 없었다. 손으로 척척 주물러도 타이어와 튜브는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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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가 잔차에 관한 공구를 처음 구입한 것은 Y형 육각렌치였다. 어느 날 우연히 한강변을 걷다가 잔차를 조립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택배기사는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잔차를 뚝딱 조립했다. 마치 요술방망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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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알아봤더니 3천원했다. 더 비싼 것도 있었지만 전문가란 공구를 탓하는 법이 아니었다. 동네 근처 허접한 잔차방에 갔었다. 5천원을 불렀다.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려 했지만 택배비를 생각하면 배꼽이 더 컸다. 구보씨도 ‘어리석은 고집’이라는 게 있었다. 전철로 한 시간 반 거리에 한*MTB가 있었다. 그곳에 3천원짜리 Y형 육각렌치가 있었다. 구보씨에게는 실로 눈물겨운 육각렌치였다. 십자수님의 무지개 육각렌치 셋트가 결코 부럽지 않았다(구보씨는 결국 구로동 공구상가에서 개당 1만원짜리 일제 육각렌치를 사이즈 별로 모두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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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려면 필수조건은 헬멧과 장갑이었다. 안 그러면 낑가주지도 않았다. 구보씨는 결코 왕따 당하기 싫었다. 또 ‘공구’가 있었다. 랜스 암스트롱이 신었다는 카네소 클릿 신발, EL-500, 속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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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은 실로 끝이 없었다. 때는 여름이었고, 반팔 저지와 반쫄바지를 구해야만 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디자인도 중요했다. 이 모두를 구했을 때 어느새 여름이 훌쩍 지나버렸다. 가을이 되자 긴팔 저지와 긴통바지를 구해야만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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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자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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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는 결국 코피가 터졌다. 대체 산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번개공지는 대부분이 야벙이었다. EL-500 따위로는 어림도 없었다. 진정 산으로 가는 길은 이토록 멀고 험하단 말인가? 구보씨는 한숨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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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는 자신이 이제까지 한 노력들을 차근차근 되씹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중요한 뭔가가 하나 빠진 거 같았다. 구보씨는 산으로 가기 위해서 무엇을 빠트렸는가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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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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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잔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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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잔차도 없이 날이면 날마다 저지와 쫄바지, 클릿 신발을 신고, 헬멧과 장갑을 낀 채로, 카멜 물백을 짊어지고, 펑크 패치와 펌프를 들고 엔진 업글을 한답시고 도로를, 언덕을 빡세게 달렸던 것이다. 그러다 펑크 난 잔차를 보면 무상 수리도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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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산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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