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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덫 2

topgun-762005.12.19 01:50조회 수 425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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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라고요?" 가일즈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트로터 형사를 보며 말했다.
"예,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겠읍니다. 라이언 부인이 살해된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수첩이 발견되었읍니다. 그 수첩에는 두곳의 주소가 적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런던의 컬버가 74번지 였읍니다."
"그 여인이 살해당한 곳이죠?" 몰리가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주소는 바로 이곳 몽스웰 여관이였읍니다."
"뭐라고요?" 몰리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어조로 소리쳤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그래서 우리 호그벤 총경께서는 두 분, 또는 이 집이 롱리지 농장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긴급한 일이라고 생각하셨읍니다."
"아무런 관계도 없읍니다. 전혀 없어요. 그 수첩에 우리집 주소가 적혀 있었던 것은
아마 우연한 일일 겁니다."

트로터 형사가 차분히 말했다. "호그벤 총경께서는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읍니다. 사실은 총경께서 손수 이곳으로 오시려고 했었죠. 그런데 날씨
때문에 못 오셨고, 내가 스키를 탈 줄 알기 때문에 대신 나를 보내신 겁니다.
나는 이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관해 상세히 알아내서 전화로 총경께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집안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도 받았읍니다."

가일즈가 소리쳤다. "안전이라뇨? 맙소사! 설마 우리집에서 누군가가가 살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트로터 형사가 미안하다는 투로 말했다. "부인을 상심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습니다. 호그벤 총경께서도바로 그 점을 염려하고 계신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이 우리 집에서―"

가일즈가 이렇게 말하자 트로터 형사는,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 내가 이곳에
온 겁니다." 하고 말했다.

"미친 사람의 짓이군요."
"그렇습니다. 미친 사람의 짓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겁니다."
몰리가 말했다. "부장형사님,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더 있는 것 같은데요,그렇죠?"
"예, 부인.주소가 적혀 있는 그 수첩의 윗부분에는 '세 마리의 눈먼 쥐'라는 글씨도
쓰여 있었읍니다. 그리고, 살해당한 여자의 옷에 핀으로 꽂혀 있는 종이에는
'이것이 첫번재'라고 적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세 마리의 쥐와 한 소절의 악보가
그려져 있었읍니다. 그痼? '세 마리의 눈먼 쥐'라는 동요였읍니다. 몰리가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세 마리의 눈먼 쥐
그들이 달려가는 것을 보세요.
그들은 언제나 농부의 아내를 쫓아다녔읍니다.
그녀는―

몰리는 갑자기 노래를 그치고 말했다.
"아, 무서워요. 끔찍해요. 롱리지 농장에는 아이들이 세명이었어요. 그렇죠?"
"예, 열 다섯 살 된 남자아이와 열 네 살 된 여자아이, 그리고 죽은 아이는 열 두
살 된 남자 아이였읍니다."
"그 뒤에 두 아이는 어떻게 되었나요?"
"내가 알기로는 여자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입양이 되었는데,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일 큰 남자아이는 지금 스물 세 살이 되었을 텐데,
그아이도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남자아이는 어딘가 약간 이상했다고
합니다. 열 여덟 살에 군데에 들어갔는데, 얼마 뒤에 탈영을 했다고 하는군요.
그뒤엔 어딘가로 사라졌는데, 군대의 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는 정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라이언 부인을 죽인 사람이 바로 그 남자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일즈가 물었다. "그가 살인광이 되어서,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우리 집에
나타날 거라는 말입니까?"
"우리는 이 집에 있는 사람들 중의 누군가가 롱리지 농장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읍니다.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것만 밝혀낼 수 있다면,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당신은 그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읍니다. 그리고 부인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죠?"
"아―예, 그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 집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누구누구라는 것을 말해 주시겠읍니까?"
몰리와 가일즈는 보일 부인, 메트카프 소령, 크리스토퍼 렌, 그리고 파라비치니
씨의 이름을 차례로 말했다. 트로터 형사는 그 이름들을 적었다.
"일하는 사람은 없읍니까?"
"한 명도 없읍니다." 몰리가 대답했다. "아, 일하는 사람 얘기를 하니 어서 가서
감자요리를 해야 하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나는군요."

몰리는 급히 서둘러 그 방을 나왔다. 트로터 형사가 가일즈에게 다시 물었다.

"이 하숙집에 있는 사람들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읍니까?"
"저―우리는―" 가일즈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우린 그 분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읍니다. 보일 부인은 본머스
호텔에서 편지를 보내 왔고, 메트카프 소령은 리빙턴에서, 그리고 렌 씨는 사우스
켄징턴의 어떤 여관에서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었읍니다. 파라비치니 씨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동자가 눈길에 미끄러지며 뒤집히는 바람에 푸른 하늘―아니,
하얀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났죠. 손님들 모두가 신분증이나 식량 배급증 같은
증명서를 지니고 있을 겁니다.
"그건 내가 조사를 해보겠읍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가일즈가 말했다.
"이런 날씨에는 살인범이라도 올 수 없을 테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데이비드 씨."
"무슨 말씀입니끼?"

트로터 형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이곳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가일즈는 깜짝 놀란 눈으로 트로터 형사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레그 부인은 이틀 전에 살해당했읍니다. 그런데, 이집에 온 손님들은 전부 그
살인사건이 일어난 뒤에 도착했읍니다."
"그렇긴 하지만, 예약은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했읍니다―며칠 전에 말입니다.
파라비치니 씨를 제외하고는."

트로터 형사는 한숨을 내쉬며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건은 미리 계획된 범죄들입니다."
"범죄들이라고요? 사건은 한 번밖에 안 일어났는데, 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날
거라고 단정하십니까?"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날 겁니다. 아니,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막아야 합니다.
어쨌든 범인은 사건을 꾸미고 있읍니다. 확실합니다."
"만일 형사님 말씀이 옳다면―" 가일즈가 흥분한 태도로 말했다.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읍니다. 범인의 나이와
비슷한 사람은 렌 씨밖에 없거든요."

트로터 형사는 주방에 있는 몰리에게 갔다.
"데이비스 부인, 나와 함께 서재로 가시겠읍니까? 이 집에 있는 사람들 전부에게
내가 맡은 일에 대해 대충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데이비스 씨가
지금 준비를 해주셔서―"
"예, 저도 서재로 가겠어요. 하지만, 제가 이 감자요리를 끝낼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저는 이따금 월터 롤리경(1552~1618, 영국의 군인.탐험가.정치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아메리카를 탐험하고 영토를 확보하여 여왕에게 바침.
남아메리카에서 담배와 감자를 처음으로 영국에 들여왔다고 함)이 이 골치아픈
감자를 수입해 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한답니다."
트로터 형사는 불만스렁누 표정을 한 채 말없이 잠자코 있었다. 몰리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요.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쟎아요―?"
"비 현실적인 일이 아닙니다, 부인. 이건 명백한 현실입니다."
"범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계신가요?" 몰리가 호기심을
느끼며 물었다.
"그는 중간 정도의 키에 마른 체격이었고, 검은 외투에 밝은 색 모자를 쓰고
있었답니다. 얼굴은 목도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고, 감기에 걸린 듯한 쉰
목소리였다고 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죠." 트로터 형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데이비스 부인, 이 집의 홀에는 검은 외투와 밝은
색 모자가 각각 세 벌씩 걸려 있더군요."
"예, 그렇지만 런던에서 온 손님은 한 분도 없는걸요."
"그럴까요?"라고 말하며 트로터 형사는 재빨리 서랍 달린 찬장으로 가서 신문을
집어 들었다. "2월19일 런던에서 발행된 '이브닝 스탠다드'지로군요. 이틀 전
신문이죠. 누군가가 이 신문을 런던에서 사서 이곳으로 가져온 것이 분명합니다,
부인."
"그럴 리가 없어요." 몰리는 신문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뭔가 희미히게 떠올랐다.
"그 신문이 어디서 났을까?"
"부인, 사람의 얼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부인은 이 집에 받아들인 손님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것 같군요. 부인과 데이비스 씨는 하숙집을 처음
경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예, 처음이에요."
몰리는 트로터 형사에게 경험없고 어리석은 어린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혼하신 지도 얼마 안 되었죠?"
"1년밖에 안 됐어요." 몰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갑작스럽게 결혼식을 올렸어요."
"첫 눈에 반해 버리셨군요." 트로터 형사는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몰리는 트로터 형사에게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예"라고 말하고는 누가
뭐라 해도 좋다는 듯 자신있게 덧붙였다. "그이와 저는 알게 된 지 겨우 2주일 만에
결혼했어요."
몰리는 너무나 열렬히 사랑했던 14일 동안의 연애 기간을 생각해 보았다. 몰리와
가일즈는 그 때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느꼈으며, 아무런 의심도 없었다. 그들은
근심 걱정이 많고 괴로운 이 세상에서 기적과도 같은 사랑과 행복을 발견했었던
것이다. 몰리는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러다가 트로터 형사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현실로 돌아왔다.

"남편은 이 고장 출신이 아니죠?"
"예." 몰리는 막연하게 대답했다.
"아마 링컨셔 군(영국 중부의 군) 출신일거에요."

몰리는 가일즈의 어린 시절과 가정 환경에 대해선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일즈는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몰리는 남편이 불행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읍니다만, 내가 보기에 두 분은 하숙집을
경영하기에는 너무 젊은 것 같군요." 토로터 형사가 말했다.
"아, 글쎄요. 저는 스물 두 살이고―"
그 때 가일즈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몰리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
"준비가 다 외었읍니다. 손님들께 대략 말씀을 드렸읍니다." 가일즈가 말했다.
"그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읍니다."
"잘하셨읍니다." 토로터가 말했다. "준비가 되셨죠, 데이비스 부인?"

트로터 형사가 서재로 들어서자, 그 방에 있던 네 사람이 한꺼번에 말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퍼 렌은 제일 높고 날카롱누 목소리로, 이렇게 스릴 넘치는 일은
생전 처음이라서 오늘밤엔 한잠도 못 자겠다며 살인사건에 관해 자세히 알려 달라고
했다. 보일 부인은 낮고 울리는 목소리로,
"도대체 알 수가 없군요. 살인범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경찰은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라고 말했다.

파라비치니 씨는 말소리보다는 몸짓이 더 요란했다. 그의 목소리는 보일 부인의
목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고, 손짓으로 말을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메트카프 소령은 이따금 한 마디씩 소리치고 있었는데, 단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고만 있었다. 트로터 형사는 잠시 기다렸다가 명령을 하듯 한 손을 쳐 들었다.
그러자 소란스러움이 그치고 놀라울 정도로 잠잠해졌다.

"고맙습니다." 트로터가 말했다. "자, 데이비스 씨가 여러분들에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대강 말씀드린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한
가지ㅡ 단 한지입니다. 그 한 가지를 속히 알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 가운데
롱리지 농장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누군가 하는 겁니다."

입을 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네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트로터 형사를
쳐다보기만 했다. 몇 분 전가지만해도 흥분과 분노, 히스테리와 질문으로
소란스럽던 감정들이 마치 분필 지우개로 칠판에 쓰인 글쒼씀? 깨끗이 지워버린
것처럼 전부 사라진 것이었다. 트로터 형사가 급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판단에 의하면, 여러분 중의 한 사람이
지금 위험에 처해 있읍니다. 목숨이 위험하단 말입니다. 누가 그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고, 움직이는 사람도 없었다. 트로터 형사가
이번에는 화를 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씩 따로따로 묻겠읍니다. 먼저 파라비치니 씨?"

파라비치니 씨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갔다. 그는 결백을 주장하는 외국인의
몸짓으로 양손을 치켜들었다.
"경감님, 나는 이곳에 처음 온 외국 사람입니다. 오래전에 이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을 내가 어떻게 알겠읍니까?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자 트로터 형사는 지체없이 다음 사람에게 물었다.
"보일 부인?"
"알 수가 없군요ㅡ왜ㅡ그러니까 내 말은, 왜 내가 그런 끔찍한 사건과 관련이
있겠어요?"
"그렇다면 렌 씨는?"

크리스토퍼 렌은 쇳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린애였어요. 들은 적도 없는 것 같은걸요."
"메트카프 소령님은?"

소령이 불쑥 말했다. "그 사건은 신문에서 읽었소.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에든버러에 주둔하고 있었소."
"여러분, 그게 전부입니까? 더 이상 하실 말씀은 없읍니까?"

다시 침묵이 흘렀다. 트로터 형사는 과장된 한숨을 내쉬며,
"만일 여러분 중의 한 사람이 살해당한다고 해도, 그 책임은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에게 있는 겁니다." 하고 말한 다음 방을 나가 버렸다.
"이건 마치 멜로드라마 같군요."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그렇지만 정말 잘 생긴 경찰이군요. 안 그렇습니까? 나는 경찰을 존경합니다.
엄격하고 비정하니까요. 이건 상당히 스릴 넘치는 사건이군요.
'세 마리의 눈먼 쥐'의 곡조가 어떤 것이었지?"

크리스토퍼가 그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자, 몰리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만둬요!"
크리스토퍼는 웃으면서 몰리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이 노래는 내 18번인걸요. 난 이퍼럼 살인범 취급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답니다!"
"이건 시시한 멜로드라마 같군요. 난 하나도 믿을 수가 없었요." 보일 부인이
말했다. 그러자 크리스토퍼의 눈이 빛나며 장난기가 넘쳤다.

"잠깐 기다리세요, 보일 부인. 내가 부인의 뒤로 몰래 다가가면, 부인의 목에 내
손이 닿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몰리가 몸을 움츠렸다. 가일즈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내 아내를 겁주지 말아요. 엉터리 같은 농담은 그만둬요. 렌 씨."
"이건 농담할 일이 아닙니다." 메트카프 소령이 말했다.
"농담거리밖에 안 됩니다." 크리스토퍼가 마랬다. "미친 사람의 농담이죠. 그렇기
때문에 섬뜩하게 기분나쁜 겁니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다시 웃었다.

"여러분, 지금 자신의 얼굴들 한번 보시죠." 그리고 그는 재빨리 방을 나갔다.

보일 부인이 맨 먼저 정신을 차렸다.

"저렇게도 무례하고 정신없는 젊은이는 처음 보는군. 아마도 양심적인 참전
거부자겠지."
"저 청년은 공습 때 땅속에 파묻혀서 구출될 때까지 48시간 동안 묻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태도가 저렇게 이상해진 것 같습니다." 메트카프 소령이 말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은 저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변명을 하죠. 하지만,
나는 어느 누구보다 오랫동안 전쟁을 겪었지만 내정신은 아무 이상이 없답니다."
"당연하시겠죠, 보일 부인." 메트카프 소령이 말했다.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시죠?" 보일 부인이 날카롭게 물었다.
메트카프 소령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부인은 1940년에 이 지방에서 전쟁
고아들을 입양시키는 일을 맡고 있었던 장교였다고 하더군요." 라고 말하며
메트카프 소령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떡이는 몰리를 바라보았다. "그렇죠?"

보일 부인이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그녀는 항의하듯
말했다.
"세 명의 어린애를 롱리지 농장에 보낸 것은 부인의 책임 하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읍니다." 메트카프 소령이 엄숙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뒤에 일어난 일까지 내가 책임질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그 농장의
주인 부부는 좋은 사람들 같았고, 또 아이들을 몹시 원하고 있었어요. 난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ㅡ"
보일 부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가일즈가 갑자기 말했다.
"왜 그 이야기를 트로터 형사에게 하지 않았읍니까?"
"경찰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내 일은 나 혼자 할 수 있어요."
보일 부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메트카프 소령이 조용히 말했다.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메트카프 소령도 방을 나가 버렸다. 몰리가 중얼거렸다.

"맞아요, 부인이 그 일을 담당한 장교였조. 저도 기억하고 있어요."
"아니, 당신도 알고 있었어?" 가일즈가 놀란 표정으로 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부인은 공유지에 큰 저택을 갖고 있었죠?"
"그 집은 전쟁 당시 군인들이 사용했어요. 그래서 망가지고 말았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죠. 정말이지 너무했어요." 보일 부인이 비통하게 말했다.

그 때 파라비치니 씨가 웃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거리낌없이
웃어댔다.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부인." 그는 헐떡이며 사과했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내게는 무척 우습게 느껴집니다. 재미있어요, 참 재미있군요."

그 때, 트로터 형사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파라비치니 씨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여러분이 이 일을 그렇게도 재미있게 생각하신다니 나도 참
기쁘군요."하고 비웃듯이 말했다.
"사과드립니다, 경감님. 정말 미안합니다. 경감님이 심각하게 경고한 말을 그만
우습게 만들고 말았군요."

트로터 형사는 양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내 임무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리고, 내 직책은 경감이 아니라 경사입니다. 데이비스 부인, 전화를 사용해도
되겠읍니까?"

"내가 부끄럽군요." 파라비치니 씨가 말했다. "조용히 사라져야겠읍니다."
그러나 그는 소리없이 사라지겠다는 말과는 달리 젊은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방을
나갔다.

" 아싱한 사람이군." 가일즈가 말했다.
"범죄자같은 사람입니다.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죠." 트로터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저 분은 나이가 너무 많아요.
걸음걸이는 젊은 사람 같지만, 얼굴에 화장을 했어요. 어쩌면 늙어 보이는 화장을
했는지도 모르죠. 트로터 형사님, 그러니까ㅡ"

트로터 형사는 몰리의 말에 냉정하게 대답했다. "무모한 추측을 해서는 안 됩니다,
데이비스 부인. 호그벤 총경께 보고를 드려야겠군요."

그는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전화가 통하질 않아요." 몰리가 말했다.
"아니 뭐라고요?" 트로터 형사가 몸을 홱 돌리며 소리쳤다.

그의 날카로운 외침은 방에 있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불통이라니? 언제부터 그렇습니까?"
"조금 전에 메트카프 소령님이 전화를 하시려다 불통인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통화가 되지 않았읍니까? 호그벤 총경의 전화는
받으셨죠?"
"예, 아마ㅡ10시쯤부터 불통이 된 것 같아요. 눈이 많이 쌓인 탓이겠죠."
트로터 형사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누군가가 일부러 전화선을 끊은 것은
아닌지ㅡ"
"그렇게 생각하세요?" 몰리가 물었다.
"조사를 해야겠읍니다."

트로터 형사는 급히 방을 나갔다. 가일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를 따라나갔다.
몰리가 갑자기 소리쳤다. "어머나!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군요. 서둘지 않으면
식사를 못 하겠네요."

몰리가 서둘러 방을 나가자, 보일 부인이 투덜거렸다.

"저런 여자가 하숙집 주인이라니! 정말 형편없는 곳이군. 이런 집에서는 1주일에
7긴씩이나 하숙비를 지불할 수는 없어."



트로터 형사는 몸을 굽히고 전화선을 따라가면서 가일즈에게 물었다.

"이 전화선은 어디와 연결되어 있읍니까?'
"예, 위층의 우리 침실에 설치된 전화와 연결되어 있읍니다. 제가 올라가서
살펴볼까요?"
"그렇게 해주시죠."

트로터 형사는 창문을 열고 창턱의 눈을 쓸어내며 밖으로 몸을 굽혔다.
가일즈는 얼른 위층으로 올라갔다. 파라비치니 씨는 넓은 거실에 있었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그랜드 피아노로 다가가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한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세 마리의 눈먼 쥐.
그들이 달리는 것을 보세요......

크리스토퍼 렌은 자신의 침실을 왔다갔다 하며 휘파람을 불어대다 멈추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갑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애처럼 중얼거렸다.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그러더니 다시 기분을 바꾸고 일어나 어깨를 펴고
말했다. "계속해야 해. 이겨 나가야 해."

가일즈는 자기들 부부의 침실에 있는 전화기 곁에 서 있었다. 그는 방바닥에 몰리의
장갑 한 짝이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자, 몸을 숙여 그것을 집었다. 장갑 속에
있던 분홍색 버스표가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만히 서서 그것을 바라보던
가일즈의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마치 꿈 속을 걷고 있는 것처럼 딴 사람이
되어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더니, 문을 열고 복도 끝의 계단을 응시했다. 한편,
몰리는 감자요리를 남비에 넣고 불 위에 올려놓은 다음. 오븐 속을 들여다보았다.
식사는 계획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식탁에는 이틀 전의 '이브닝 스탠다드'지가 놓여
있었다. 몰리는 신문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누가 저 신문을 가지고 왔을까? 그것을 알기만 한다면.'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몰리는 손을 천천히 내리고, 낯선 곳을 보듯 주방을 둘러보았다.
'맛잇는 요리 냄새가 풍기고 있는 이 주방은 얼마나 따뜻하고 안락한 곳인가.'
"아니야, 안돼." 몰리는 숨을 가쁘게 쉬며 다시 한번 말했다.

그녀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거실로 통하는 문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
누군가가 휘파람을 부는 소리만 들릴 뿐 집안은 고요했다. '저 멜로디는─'
몰리는 몸을 떨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잠시 서서 친숙한 주방을 또다시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문 쪽으로
되돌아갔다. 메트카프 소령은 소리 없이 계단을 내려와서 잠시 홀에서 있다가 계단
밑의 큰 벽장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안이
고요했다.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을 하기에 적절한 때였다. 보일 부인은 서재로
있었다. 그녀는 왠지 마음이 불안해져서 라디오의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렸다.
어떤 방송에서 동요의 기원과 중요성에 관한 프로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내용 중의 하나였다.
다시 다이얼을돌리자 꽤나 학식이 있는 듯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포 심리학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방안에 혼자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대 뒤에서 문을 살짝 열리고─"

그 순간 실제로 문이 열렸다. 보일 부인은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아, 당신이었군요."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라디오에서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군요. 들을 가치조차 없는 내용들뿐이에요!"
"그렇다면 듣지 마시지요. 보일 부인."

보일 부인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라디오를 듣는 것 말고 무슨 할 일이 있어야죠. 바깥 세상과 단절된 이 집안 에서
살인자와 함께 있으니ㅡ사실 그런 멜로드라마 같은 말은 믿지도 않지만─"
"안 믿으십니까, 부인?"
"아니ㅡ무슨 말이요ㅡ?"
바로 그 순간에 허리띠가 보일 부인의 목에 휘감겼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감겼기
때문에 보일 부인은 영문조차 알 수 없었다. 라디오 소리가 높아졌다.
공포 심리학을 강의하는 박식한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면서 보일 부인의 죽음에
따르는 소리를 집어삼켜 버렸다. 그러나 보일 부인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살인자는 그 점에 있어서 능숙한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주방에 모였다. 가스레인지위에서는 감자요리가
보글보글 즐거운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고, 오븐에서는 고기와 콩팥 파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겁에 질린 네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섯 번째 사람인 몰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몸을 떨며 여섯번째 사람인 트로터 형사가 권한 위스키를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트로터 형사는 화가 잔뜩 난채, 굳어진 얼굴로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몰리가 겁에 질린 비명을 지르고, 트로터 형사와 나머지 사람들이
서재로 뛰어간 것이 바로 5분 전이었다.

"데이비스 부인, 부인이 서재로 들어가기 바로 전에 보일 부인이 살해당한 겁니다."
트로터 형사가 말했다. "홀을 가로질러 갈 때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읍니까?"
"휘파람 소리가 들렸어요." 몰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었어요. 어디선가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은 것
같아요ㅡ살며시 닫히는 소리였어요. 제가 서재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어느 문이었읍니까?"
"모르겠어요."
"잘 생각해 보세요, 데이비스 부인. 위층─아래층─왼쪽─오른쪽? 어느 문인 것
같습니까?"
"모르겠어요. 생각이 나질 않아요. 정말이에요. 문소리를 확실히 들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몰리가 울면서 말했다.
"더 이상 내 아내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아내가 지금 겁에 질려 있는게 안
보입니까?" 가일즈는 화를 냈다.
"나는 지금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데이비스 씨. 아시겠읍니까,
데이비스 중령님?"
"나는 전생시의 게급 명칭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형사님."
"알겠읍니다." 트로터 형사가 뭔가 알겠다는 듯이 잠시 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나는 지금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읍니다.
이제까지 여러분은 사건의 중대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 보일 부인도
마찬가지였었죠. 그 부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않았읍니다.
여러분도 내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읍니다. 그런데 보일 부인이 죽은 겁니다.
이사건의 진상을 알아내지 못하면ㅡ그것도 속히 알아내지 못하면 또 다른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라고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왜냐하면─" 트로터 형사가 심각하게 말했다.
"눈먼 쥐는 세 마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가일즈는 믿어지지 않았다는 듯, "한 마리에 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 사이엔 무슨 관계가 있겠군요. 내 말은,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겠는냐 하는 겁니다."
"하지만, 왜 이집에서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겁니까?"
"그 이유는, 그 수처베 적힌 주소가 두 군데였기 때문입니다.
칼버가 74번지에는 살해당할 만한 사람이 한 사람뿐이었지만, 이곳 몽스웰
여관에는 여러 사람이 있읍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트로터 형사님. 이 집에 롱리지 농장 사건과 관련된 사람이
우연히도 둘이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됩니다."
"어떠한 상황하에서는 우연이 아닐수도 있읍니다. 잘 생각해 보십죠, 데이비스 씨."
트로터 형사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보일 부인이 살해당했을 때
여러분이 어디에 있었는지 조금 전에 들었읍니다만, 이제 한 분식 확인 질문을
하겠읍니다. 렌 씨는 데이비스 부인의 비명을 들었을 때 침실에 있었다고 했죠?"
"예, 형사님."
"데이비스 씨는 위층 침실에서 연결된 전화를 조사하고 있었고요?"
"그렇습니다." 가일즈가 대답했다.
"파라비치니 씨는 거실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고 했는데, 아무도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파라비치니 씨."
"아주 작은 소리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으니까요. 한 손가락으로 쳤읍니다."
"어떤 곡을 쳤읍니까?"
" '세 마리의 눈먼 쥐'였읍니다."라고 말하며 파라비치니 씨는 미소를 지었다.
"위층에서 렌 씨가 휘파람으로 불고 있는 것과 같은 멜로디였조. 그 멜로디는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가 잘 알고 있죠."
"그건 너무나 무서운 멜로디예요." 몰리가 말했다.
"전화선은 어떠했읍니까? 누군가 고의로 끊었던가요?" 메트카프 소령이 물었다.
"예, 식당 창문 밖에서 끊어져 있었읍니다. 데이비스 부인이 비명을 지를 때 나는
바로 그 끊어진 부분을 발견했읍니다."
"그것 참 미친 짓이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했을까요?" 크리스토퍼가
날카롭게 말했다. 트로터 형사는 크리스토퍼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아마 살인범은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낳게 여길 겁니다. 자기가 우리보다
영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트로터 형사가 말을 계속했다.
"우리 경찰에서는 훈련 기간 주에 심리학을 공부합니다. 정신분열증인 사람의
정신상태느 무척 흥미롭습니다."
"살인사건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는 그만두는 게 어떨까요?" 가일즈가 말했다.
"그러죠, 데이비스 씨.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살인'과 '위험'
이라는 두 낱말입니다. 이 두 낱말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자, 메트카프 소령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소령님은 어디에서 뭘 하고 계셨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지하실에 계셨다고 하셨는데ㅡ왜 그곳에 계셨읍니까?"
"그냥 구경을 하고 있었소." 소령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계단 밑의 벽장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보다가, 문이 하나 있기에 그 문을 열었더니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이 있더군요. 그래서 지하실로 내려가 본 겁니다. 참으로
훌륭한 지하실이더군요." 메트카프 소령이 가일즈를 보며 말했다.
"오래? 수도원의 비밀스런 지하실 같았소."
"우린 지금 고적 탐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메트카프 소령님.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겁니다, 데이비스 부인, 잠깐 내가 시키는 대로 해주시겠읍니까?
이제 내가 문을 열어놓고 나가겠읍니다." 트로터 형사는 문을 열어 놓고 나갔다.
잠시 뒤 밖에서 '딸깍'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부인이 들었다는 소리가 바로 이런 소리였읍니까?" 트로터 형사가 열린 문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그것은 계단 아래의 벽장 문을 닫는 소리였읍니다. 그러니까 범인으 보일 부인을
죽인 다음, 거실로 걸어나오다가 부인이 주방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급히 벽장으로 뛰어 들어가서 문을 닫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벽장 안쪽에 범인의 지문이 남아 있겠군요."
크리스토퍼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 지문도 있을 겁니다." 메트카프 소령이 말했다.
"좋습니다." 트로터 형사가 조용히 말했다. "어쨌든 그 소리에관해서는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하게 되었군요."
"그런데, 형사님─" 가일즈가 말했다. "형사님이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점은 잘
알고 있읍니다만, 여기는 우리 집이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 머물고 계신 손님들께
어느 정도 책임을 느끼고 있읍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어떤 예방조치를 취할 순
없을까요?"
"어떤 예방조치를 말씀하십니까?"
"예, 솔직이 말씀드리자면 제일 의심스러운 사람을 감금했으면 좋겠읍니다."

그러면서 가일즈는 크리스토퍼 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크리스토퍼 렌은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서며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소리로 외쳤다.

"아니오! 난 아니란 말이오! 당신네들은 모두 날 싫어하고 있어. 사람들은 언제나
날 싫어해. 당신은 지금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어. 이건 학대야─날
학대하는거라고─"
"침착하시오, 젊은이." 메트카프 소령이 말했다.
"진정하세요. 크리스토퍼" 몰리가 그에게 다가서며 그의 팔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무도 당신을 싫어하지 않아요. 렌 씨에게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몰리는 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사람을 학대하지 않습니다." 트로터 형사가 말했다.
"형사님이 렌 씨를 체포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도 해주세요."
"아무도 체포하지 않을 겁니다. 체포를 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증거도 없읍니다."

가일즈가 소리쳤다. "당신 미쳤군, 몰리. 그리고 형사님도 마찬가지라고요. 이 집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범인이 될 만한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오. 그리고─"
"여보, 잠깐 기다려요." 몰리가 가일즈의 말을 막았다. "제발 조요히 하세요.
트로터 형사님, 저─ 형사님께만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나도 이 방에 있겠어."
"안 돼요, 여보. 미안하지만, 당신도 나가 주세요."
가일즈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당신이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군"
가일즈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방을 나가면서 '쾅'하고 문을 닫았다.

"데이비스 부인, 이제 말씀해 보시죠."
"형사님이 롱리지 농장 사건에 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이번 사건을 저지를 만한
사람은 그 세 아이들 중에서 제일 큰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그 소년에 대해서 잘 알고 게신 것 같지는 않네요."
"그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군대의 정신과 의사의 보고에 의하면 그는 약간의
정신이상 증세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그가
범인일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예, 알겠어요. 그래서 크리스토퍼를 그 젊은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그 아이들에게는 부모나 친척이 있었겠죠?"
"예, 그 당시에 아이들의 어머니는 이미 죽었고, 아버지는 외국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읍니다."
"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나요?"
"모릅니다. 작년에 군대에서 제대한 것만 알고 있읍니다."
"만일 아들이 정신이상이라면, 그 아버지도 정신이상일 수도 있겠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젊은 사람일 수도 있고 나이든 사람일 수도 있겠군요.
제가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는 말을 했을 때 메트카프 소령님이 무척 놀라더군요.
굉장히 놀라는 것 같았어요."

트로터 형사가 조용히 말했다.
"부인, 사건이 시작될 때부터 나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모두 생각했읍니다.
그 소년, 짐이라는 그 소년의 아버지, 그리고 소년의 누이동생까지도 생각해
보았읍니다. 왜냐하면, 범인은 여자일 수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모든 가능성을
전부 생각해 본 겁니다. 사실 나는 마음속으로 누가 범인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지만,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을 자세히
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경찰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어떤 일들을 보게 되는지 아시면 아마 놀라실 겁니다. 특히
결혼 문제가 그렇습니다. 전쟁시에 급히 서둘러 결혼한 사람들은 서로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채 서로의 말만 듣고 결혼해 버립니다. 남자가
자기는 공군 조종사라고 하거나 육군 소령이라고 하면, 여자는 맹목적으로 그 말을
믿고 결혼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 몇 년이 지나서야 그 남자가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도망친 은행원이라든가, 군대에서 도망친 탈영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는 잠시 쉬었다고 다시 말했다.
"부인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살인범은 지금 살인하는 행위를 즐기고 있다는 겁니다.
나는 그 점을 확신하고 있읍니다."

트로터 형사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몰리는 얼굴이 상기된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
잠시 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천천히 오븐으로 걸어가서 허리를 굽히며 오븐 뚜껑을
열었다. 친숙하고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 냄새를 맡자 몰리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것은 마치 갑자기 매일매일의 정답고 친숙한 세계 속으로 둥실 떠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요리, 청소, 집안 꾸미기 등의 평범한 생활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던 것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여자들은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해왔다.
비록 바깥 세상은 어지럽고 위험했어도, 여자들은 주방에서만 영원히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방 문이 열리며 크리스토퍼 렌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세상에, 이런 소동이 일어나다니! 누가 형사의 스키를 훔쳐 갔어요!"
"형사의 스키를! 왜 그랬을까요?"
"알 수 없죠. 형사가 이곳을 떠난다면 제일 좋아할 사람은 범인일 텐데,
이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안 그렇습니까?"
"남편이 그 스키를 계단 밑 벽장에 넣어두었는데요."
"그런데 없어졌단 말입니다. 어떤 음모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며
크리스토퍼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 형사는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어요. 누구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흥분했어요.
메트카프 소령에게 달려들어 추궁하고 있지만, 늙은 메트카프 소령은 보일 부인이
살해 되기 직전에 자기가 벽장을 들여다보았을 때에 그곳에 스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요.
트로터 형사는 소령이 분명 스키를 봤을 거라고 우기고 있죠."

크리스토퍼는 몰리에게 다가서서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이제 트로터는 지치기 시작했어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일들은 나에게는 무척 자극적이에요. 모든 것이
너무도 비현실적이거든요."

몰리가 날카롭게 말했다. "만일─만일 당신이 보일 부인의 죽은 모습을 보았다면
그런 말은 못 할 거예요. 난 자꾸 그 모습이 떠올라요. 잊혀지질 앉아요. 잔뜩
부어오른 그 자줏빛 얼굴─" 몰리가 몸을 떨었다.

크리스토퍼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엊으며 말했다.

"알아요. 난 멍청이에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 생각을 미처 못 했군요."

몰리는 흐느끼듯 더듬거렸다. "지금은 괜찮아요─지금은─이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는, 그러다가 갑자기─다시 돌아가서─마치 악몽처럼...."

고개를 숙인 몰리를 보고 있던 크리스토퍼의 얼굴에 이상한 표정이 스쳐갔다.

"알아요. 이젠 됐어요. 난 이방을 나가서 당신을 방해하지 말아야겠군요."
"가지 말아요!" 크피스토퍼가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몰리가 외쳤다.

크리스토퍼는 뒤돌아서서 묻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진심이세요?"
"예?"
"가지 말라고 한 것 말입니다."
"예, 진심이에요.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요."

크리스토퍼는 식탁 옆에 앉았다. 몰리는 오븐을 열고 윗 선반에 파이를 올려 놓은
다음 오븐을 닫았다. 그리고는 크리스토퍼 곁으로 왔다.

"참 이상하군요." 크리스토퍼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요?"
"당신은나와 단둘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군요, 그렇죠?"

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두렵지 않아요."
"왜 날 두려워하지 않죠, 몰리?"
"잘 모르겠어요─두렵지 않아요."
"그렇지만 나는 살인범일지도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예정된 살인범 말입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있어요. 트로터 형사에게
그런 점에 관해 말했어요."
"그가 동의하던가요?"
"예, 동의했어요." 몰리가 천천히 말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같은 말이 계속 들려 오고 있었다. 특히 그 마지막 말이.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읍니다.'
'알고 있을까? 내 생각을 정말 알고 있을까? 트로터 형사는 살인범이 살인을 즐기고
있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일까?'

몰리가 크리스토퍼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이 일들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니죠? 조금 전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천만에요. 아니에요. 왜 그런 말을 합니까?"
"아니에요.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트로터 형사가 한 말이예요. 난 그 사람이
미워요! 그 형사는─사실이 아닌 말들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집어넣었어요─그건
사실일 수가 없어요." 몰리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자 크리스토퍼가 그녀의 손을 살며시 내리게 했다.

"자, 몰리, 왜 그러죠?"

몰리는 그가 자기의 손을 잡아 끌며 삭탁 옆의 의자에 앉히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그의 태도는 더 이상 어린애 같거나 신경질적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죠, 몰리?"

몰리는 한참 동안 뭔가를 알아보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엉뚱한 말을 했다. "우리가 안지 얼마나 됐죠? 이틀인가요?"

"그렇죠. 당신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군요. 우리가 만난 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우린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죠?"
"맞아요. 참 이상해요."
"우린 서로 통하는 게 있어요. 그건 아마 우리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것은 묻는 말이라기보다는 서로의 느낌을 확인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몰리는
잠자코 있다고 조용히 말했다. 그것 역시 묻는 말이 아니었다.

"당신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렌이 아니죠?"
"예, 아닙니다."
"그런데 왜─"
"왜 하필 그 이름을 선택했는냐고요? 그건 기발한 생각이었을 뿐이에요.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은 나를 크리스토퍼 로빈이라고 부르며 놀렸지요. 로빈─렌,
비슷하지 않습니까?"
"진짜 이름은 뭐예요?"

크리스토퍼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 건 밝힐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아무 의미도
없을 테니까요. 난 건축가가 아닙니다. 사실은 군데에서 탈영한 도망병이에요."

순간 몰리의 눈빛에 깜짝 놀란 기색이 스쳐갔다.

크리스토퍼가 그것을 눈치채고, "예,우리가 말하던 그 수수께끼의 살인범과
마찬가지죠. 그래서 내가 살인범일지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읍니까?"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난 당신이 살인범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쟎아요,
자, 당신에 관해서 더 얘기해 봐요. 왜 탈영을 했죠? 심리적인 이유
때문인가요?"
"군대 생활을 두려워했느냐고 묻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어요. 사실 위급한 상황에선느 다른 군인들보다 더 냉정하고
침착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전혀 다른 문제 때문이었죠. 우리 어머니 때문에
탈영했어요."
"어머니요?"
"예, 우리 어머니는 공습 때 땅속에 파묻혀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머니의
시체를 파내야만 했읍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도 놀라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나는 마치 내가 그 일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지요. 그래서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내 몸을 파내야 한다고 느낀겁니다─그건 뭐라 설명할 수
없는─정말 혼란스러웠어요─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느낌이었죠."

크리스토퍼는 얼굴을 숙여 두 손에 파묻고 분명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방황했어요. 어머니를 찾아다닌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을 찾아다닌
건지─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 세월이 지나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군대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어요. 아니, 어쩌면 돌아가서 보고를 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당신의 내 혼란된 감정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때 이후로 나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살아
왔어요."

말을 마치고 몰리를 바라보는 크리스토퍼의 얼굴은 절망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당신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몰리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럴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당신은 아직 젊어요."
"예, 그렇긴 하지만─난 갈 데까지 가고 말았는걸요. 이젠 모든 게 끝났어요."
"아니에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그러니까 모든 게 끝장이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군요, 몰리?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틀림없이
그렇군요?"
"그래요."
"무엇 때문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겪은 그런 일이었어요. 나는 젊은 공군 조종사와 약혼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가 전사하고 말았죠."
"그것 말고 다른 일은 없었나요?"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잔인하고 비참한 일들을 무척 두려워하게 되었어요. 인생이란 항상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거예요. 약혼자 잭이 전사했을 때, 인생이 잔인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내 생각이 더욱 굳어지고 말았죠."
"그런데 그 때 가일즈를 만나게 되었군요?"

크리스토퍼가 몰리를 쳐다 보며 말했다.

"예." 몰리의 입가에는 수줍은 미소가 감돌았다. "가일즈를 만나자 모든 것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느껴졌어요─그런데, 가일즈!"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고, 얼굴에 두려움이 나타났다. 몰리는 오한이 난 듯
몸을 떨었다.

"왜 그래요, 몰리? 몸을 떨고 있군요.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군요. 그렇죠?"

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과 관계가 있는 겁니까? 남편이 당신에게 뭐라고 했나요?"
"아뇨, 남편이 아니에요. 그 무서운 남자예요!"
"무서운 남자가 누굽니까?" 크리스토퍼는 깜짝 놀라 물었다.
"파라비치니 씨입니까?"
"아니, 아니에요. 트로터 형사예요."
"트로터 형사라고요?"
"그가 내 마음속에다 남편에 관해 무서운 생각들을 심어 놓았어요. 내가 몰랐던
그런 생각들을 말이에요. 아! 난 그가 미워요─정말 미워요!"

크리스토퍼가 천천히 눈썹을 치켜뜨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가일즈? 가일즈! 그렇군요. 당신 남편 가일즈와 난 나이가 비슷하죠. 나보다
나이를 더 먹어 보이긴 하지만, 아마 나와 비슷할 겁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가일즈도 범인일 가능성이 있군요. 하지만 그건 말도 안돼요, 몰리. 런던에서
그 여자가 살해당한 그날, 가일즈는 당신과 함께 이곳에 있었으니까요."

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크리스토퍼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날 남편이 이곳에 없었읍니까?"

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혼란된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집에 없었어요─자동차를 몰고─철망을 싸게 판다는 저 반대편
지역에 갔었는데─그가 그렇게 말했어요. 나도 그전까지─그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언제까지 말입니까?"
몰리는 천천히 손을 뻗어 식탁에 놓여 있는 '이브닝 스탠다드'지의 날짜를
가리켰다. 크리스토퍼가 그 날짜를 보고 말했다.

"이틀 전 런던에서 발행된 것이군요."
"남편이 돌아왔을 때 주머니 속에 이 신문이 있었어요. 남편은─남편은 그날 런던에
갔었던 게 분명해요."

크리스토퍼는 신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몰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휘파람을 불려고 입술을 오므리다가 갑자기 그만두었다. 지금은 그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몰리의 시선을
피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에 대해─어느 정도 알고 있읍니까?"
"그만둬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몰리가 외쳤다. "잔인한 트로터도 그렇게
말했어요. 여자들은─특히 전쟁시에는─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남자가 하는 말만 믿고 결혼을 해버린다고 말예요."
"그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신까지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난 참을 수가 없단말에요. 지금처럼 불안한
상황에서는 근거가 없는 말도 믿게 되니까요─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난─"

몰리가 말을 멈추었다. 주방문이 열렸던 것이다. 가일즈가 들어왔다.
그는 약간 험상궂은 표정으로, "내가 방해가 되었나?" 하고 말했다.
크리스토퍼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나는 지금 요리 강습을 받고 있었읍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래요? 이봐요, 렌 씨.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다시는 주방에 들어오지 말아요,
알겠소?"
"하지만 이건 분명히─"
"내 아내와 가까이하지 말란 말이오, 렌 씨. 내 아내가 다음번 희생자가 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나두 그걸 염려하고 있는 겁니다."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그 말에 중대한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해도 가일즈는 그 의미를 눈치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 가일즈는 다만 얼굴이 덩구 상기되며, " 염려는 내가 하겠소. 내 아내는
내가 보호할 수 있으니까 당신은 어서 나가시지." 하고 소리쳤다.

몰리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나가요, 크리스토퍼포, 부탁이에요."

크리스토퍼는 마지못해 문쪽으로 걸어가며, "멀리 가지 않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말은 몰리에게 아주 분명한 뜻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어서 나가지 못하겠소?"

크리스토퍼는 어린애처럼 낄낄거리며, "예, 예, 중령님." 하고 말했다.




그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가일즈는 몰리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이런, 젠장! 몰리,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주방 문을 닫고 저런
위험한 살인광과 단둘이 있다니!"
"그 사람은 그런─" 하고 말하려다가 몰리는 얼른 고쳐 말했다.
"그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나도 조심하고 있어요. 내 몸을 내가 지킬
수 있어요."
가일즈가 씁쓸하게 웃었다. "보일 부인도 그렇게 말했었지."
"여보,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미안해. 하지만 저 불쾌한 젊은 녀석 때문에 참을 수가 없어. 당신이 그 녀석에게
잘 대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군."

몰리가 천천히 말했다. "그가 불쌍해요."
"살인광이 불쌍하다니?" 몰리는 의미 있는 눈초리로 가일즈를 보았다.
"나는 살인광이라도 동정할 수 있어요."
"그 녀석을 크리스토퍼라고 부르더군. 언제부터 그렇게 부를 정도로 친해졌지?"
"여보, 그러지 말아요. 요즘에는 누구나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르고 있어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만난 지 겨우 이틀밖에 안 되었으면서? 아니, 그보다 오래 되었는지도 모르지.
그가 여기 오기 전부터 당신은 그 엉터리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을 알고 있었지?
우리집으로 오라고 당신이 그에게 권한 건 아니야? 당신이 그 녀석과 짜고 그런 건
아니냐고?"

몰리가 가일즈를 노려보았다. "당신 미쳤어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은 나보다 그 녀석을 더 잘 아는게 아니야?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아니냐고?"
"당신 정말 미쳤군요!"
"당신은 그 녀석이 우리 집에 오기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가 이런 외딴 곳에 와서 머문다는 것도 뭔가 이상한 일이 아니겠어?"
"그렇게 생각한다면 메트카프 소령과 보일 부인의 경우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이제야 알겠어. 살인광들은 여자들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 그게 사실인 것 같군. 당신, 그 녀석과 어떻게 알게 됐지? 언제부터
그런 사이로 지내왔지?"
"당신 정말 이상하군요. 그리스토퍼 렌이 이곳에 오기 전에는 그를 본 적도
없어요."
"당신이 이틀 전에 런던에 가서 그 녀석을 만났지? 그리고 모르는 사람처럼 우리
집으로 오라고 서로 짠 거지?"
"내가 몇 주일 동안 런던에 가지 않았다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가지 않았다고? 그것 참 재미있군."

가일즈는 주머니에서 가죽으로 안을 댄 장갑을 꺼내 들었다.

"이건 당신이 그저께 끼고 있었던 장갑 한 짝이 맞지? 내가 철망을 사러 사일햄에
갔었던 그날 말이야."
"당신이 철망을 사러 사일햄으로 갔었던 그날이었죠."
몰리는 가일즈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맞아요. 외출할 때 난 그 장갑을 끼고 있었어요."
"당신은 시내에 간다고 했었지. 당신이 시내에만 갔었다면 장갑 속에 왜 이런게
들어 있지?"
가일즈는 따짓듯이 분홍색 버스표를 내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당신은 런던에 갔었어." 가일즈가 말했다.
"그래요. 나는 런던에 갔었어요." 몰리가 턱을 쳐들었다.
"크리스토퍼 렌이란 녀석을 만나러 갔었나?"
"아니에요. 크리스토퍼를 만나러 간 건 아니였어요."
"그렇다면 왜 갔었지?"
"여보, 지금은 말할 수 없어요."
"흥! 그럴 듯한 변명을 지어낼 시간을 벌자는 거군."
"난 당신이 미워요!" 몰리가 말했다.
"난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 가일즈가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나도 당신을 미워했으면 좋겠어. 난 더 이상 당신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나도 마찬가지 기분이에요. 당신은─마치 낯선 사람같아요.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그런 사람─"
"내가 언제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
몰리가 웃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이 철망을 사러 갔다는 말을 믿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날 당신도 런던에 갔었쟎아요."
"당신이 런던에서 나를 본 거로군. 그래서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당신을 믿어요? 난 아무도 믿지 않을거예요. 다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

가일즈와 몰리는 주방 문이 살짝 열리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파라비치니 씨가
들어와서 헛기침을 했다.

"그러지들 말아요." 그가 중얼거렸다. "젊은 사람들이 감정이 격해져서 말을
지나치게 하는 건 좋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싸움에서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 마련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싸움이라고요? 천만에요." 가일즈가 비웃듯이 말했다.
"알아요, 알아. 나는 두 사람의 기분을 잘 알고 있어요. 젊었을 땐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주방에 온 이유는, 저 형사가 우리 모두를 거실로 모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요. 그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른 것 같더군요."

파라비치니 씨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경찰에서 단설르 잡았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니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우리의 트로터 형사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분명하지만, 머리가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여보, 당신은 가봐요." 몰리가 말했다.
"난 음식을 만들어야 해요. 내가 없어도 트로터 형사의 일은 상관없을 거예요."
"음식이라니 말입니다만─" 파라비치니 씨는 주방을 가로질러 깡총깡총 뛰며 몰리
곁으로 왔다. "프랑스 겨자를 묻힌 얇은 베이컨과, 타조의 간을 두껍게 바른
토스트와, 닭의 간을 조리한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요즘에는 타조의 간을 구하기 힙듭니다." 가일즈가 대답했다.
"어서 가시죠. 파라비치니 씨."
"내가 주방에 남아서 도와 드릴까요, 부인?"
"당신도 거실로 가야 합니다. 파라비치니 씨." 가일즈가 말했다.

그러자 파라비치니 씨가 소리없이 웃으며 말했다.

"남편께서 부인을 걱정하고 있군요. 당연하죠. 부인을 나와 함께 주방에 남겨
놓기가 싫으신 겁니다. 부인의 남편게서 두려워하는 것은 남을 괴롭히는 내
성격이지, 불명예스러운 성격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들어야겠죠."

그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손가락 끝에 키스를 해보였다.
몰리는 난처한 듯 말했다. "파라비치니 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파라비치니 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가일즈에게 말했다.

"당신은 아주 똑똑한 젊은이로군요. '기회를 주지 말 것'─그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오. 내가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나 형사에게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요? 아니오. 난 그럴 능력이 없어요. 아니라는 사실처럼 증명하기 어려운
것도 없으니까." 그는 유쾌하게 그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몰리가 움츠리며 소리쳤다.

"제발 그 끔찍한 멜로디는 그만두세요, 파라비치니 씨."
"아! '세 마리의 눈먼 쥐'라는 멜로디였군요! 내 머릿속에 박여 버렸나 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소름끼치는 내용이군요. 절대로 좋은 가사가 아니예요.
하지만 어린애들은 소름끼치는 걸 좋아하지요. 눈여겨 본 적이 있읍니까?
'세 마리의 눈먼 쥐'라는 동요의 가사는 무척 영국적이예요. 목가적이지만 잔인한
영국 시골의 생활을 보여 주고 있어요. '그녀는 식칼로 쥐들의 꼬리를 잘라
버렸읍니다.' 아이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죠. 내가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를─"
"제발, 그만두세요." 몰리가 겁에 질려 말했다.
"당신도 잔인한 사람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신경질적으로 높아졌다.
"당신은 지금 잔인하게 웃고 있어요. 마치 쥐를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고양이처럼─쥐를 가지고─" 몰리가 마침내 울기 시작했다.
"여보, 진정해." 가일즈가 말했다. "자, 우리 함께 거실로 갑시다. 트로터 형사가
화를 내겠어요. 음식은 걱정 하지 말아요. 살인이 음식보다 훨씬 중대한
문제이니까."
"난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파라비치니 씨는 뛰는 듯한 발걸음로 몰리와
가일즈를 따라오며 말했다. "사형수는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 말이
있읍니다."

크리스토퍼 렌은 홀에서 그들 세 사람을 만났다. 가일즈가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크리스토퍼는 재빨리 살피듯이 몰리에게 눈길을 주었지만, 몰리는 고개를
쳐들고 똑바로 앞만 보며 걷고 있었다. 그들은 행진을 하듯이 거실로 들어갔다.
파라비치니 씨가 맨 뒤에서 깡총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트로터 형사와 메트카프 소령이 거실에서 그들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메트카프
소령은 골이 난 표정이었고, 트로터 형사는 얼굴에 생기가 도는 기운찬 표정이었다.
그들이 전부 들어오자 트로터 형사가 말했다.

"됐읍니다. 나는 여러분이 전부 모여 주시길 원했읍니다.지금부터 어던 실험을
하고 싶습니다. 그 실험에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래 걸릴까요? 전 주방에서 할 일이 많거든요. 어쨌든 식사는 해야 할 테니까요."
몰리가 말했다.
"알겠읍니다." 트로터 형사가 대답했다. 식사를 염려해 주져서 고맙습니다, 부인.
그렇지만 식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읍니다! 예를 들자면 보일 부인은 더 이상
식사를 할 필요가 없읍니다."
"형사님은 꽤나 재치없이 얘기하시는군요." 메트카프 소령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 모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스키를 찾으셨나요, 트로터 형사님?" 몰리가 물었다.
그러자 트로터 형사는 얼굴이 붉어지며, "아뇨, 아직 못 찾았읍니다, 데이비스
부인. 그러나 누가 무슨 이유로 스키를 훔쳤는지 확실한 짐작은 하고 있읍니다.
지금은 그 이상은 말씀드리지 않겠읍니다."
"제발 지금 말씀하지는 마십시오." 파라비치니 씨가 말했다.
"그런 설명은 흥분된 마지막 순간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오."
"아닙니까? 그렇다면 형사님은 뭔가 잘못 알고 있군요. 내 생각에 이건
게임입니다─어떤 사람에게는요."
"살인범은 살인을 즐기고 있어요." 몰리가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몰리는 얼굴을 붉혔다.

"트로터 형사님이 제게 한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에요."
트로터 형사는 불쾌한 표정이었다. "좋습니다. 파라비치니 씨는 이 일이 마치
추리소설처럼 스릴 넘치는 사건인양 마지막 순간이란 말까지 하셨는데, 이건
현실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크리스터퍼 렌이 손가락을 목에다
대며 말했다.
"이제 그만들 하시죠." 메트카프 소령이 말했다. "형사님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을 얘기해 줄 겁니다."

트로터 형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는 사무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전에 여러분의 설명을 들었읍니다. 그 설명은 보일 부인이 살해당한
시간에 여러분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읍니다. 렌 씨와 데이비스 씨는
각자의 침실에 있었고, 데이비스 부인은 주방에 있었읍니다. 메트카프 소령님은
지하실에 있었고, 파라비치니 씨는 이곳 거실에 있었읍니다."

그는 잠시 뒤 다시 계속했다.
"이상은 여러분이 말씀하셨던 겁니다. 나는 여러분의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읍니다. 사실일 수도 있겠고─아닐 수도 있읍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네 사람은 진실을 말씀하셨지만─한 사람은 거짓말을 했읍니다.
누굽니까?"

트로터 형사는 한 사람씩 훑어보았다. 입을 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한 사람이 거짓말을 했읍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찾아내기 위한 계획을
세웠읍니다. 나에게 거짓말을 한 사람을 찾아내면─살인범이 누구인가도 알게 되는
겁니다."
가일즈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어떤 다른 이유로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난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데이비스 씨."
"그런데 어떤 계획입니까? 우리의 설명의 진실인지 아닌지 밝혀낼 방법이 없다고
하시지 않았읍니까?"
"그렇죠. 하지만, 여러분이 그 당시와 똑같은 행동을 한 번 더 해주신다면
어떻겠읍니까?"
"아─" 메트카프 소령이 경멸하는 태도로 말했다.
"범죄의 재구성이군요. 외국 방식이죠."
"범죄이 재 구성이 아닙니다. 결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행동을 재구성하는
겁니다."
"그 방법에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가 없읍니다."
"연극을 해보라는 말씀인가요?" 몰리가 물었다.
"예, 그런 겁니다, 데이비스 부인."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불안감이 감도는 그런 침묵이었다. '이건 함정이야' 몰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함정이야─하지만 알 수 없어. 무슨 이유로─'
누군가가 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면, 아마 한 사람의 범인과 네 명의 결백한 사람이
아니라, 다섯 명의 범인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섯 사람이 의미스럽게
곁 눈짓을 하며, 결백을 증명할 행동을 요구하는 확신에 찬 미소짓는 젊은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때 크리스토퍼가 갑자기 소리쳤다.

"알 수 없군요─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똑같은 행동을 다시 한 번 하라고 해놓고
도대체 뭘 알아내려는 겁니까? 이건 우스운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렌 씨?"
"좋습니다. 당신 말대로 해보겠읍니다." 가일즈가 천천히 말했다.
"협력하겠어요. 그 당시와 똑같이 하면 되는겁니까?"
"예, 같은 행동을 해주시면 됩니다."

메트카프 소령은 토로터 형사의 말을 듣자 뭔가를 알겠다는 듯 예리한 눈빛으로
트로터 형사를 쳐다보았다. 트로터 형사가 다시 말했다.

"파라비치니 씨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어떤 멜로디를 치고 있었다고 했읍니다.
그 행동을 다시 한 번 해주시겠읍니까, 파라비치니 씨?"
"물론 해드리죠, 형사님."

파라비치니 씨는 깡총거리며 방을 가로질러 가서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지금부터 피아노의 거장께서 살인을 위한 주제곡을 연주해 드리겠읍니다."

그는 허풍을 떨며 말했다. 그는 싱긋 웃고 나서 한 손가락을 세련되게 움직이며
'세마리의 눈먼 쥐'를 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즐기고 있어. 즐기고 있는거야.'
몰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넓은 거실에 조용하게 울려퍼지는 피아노 소리는
무시무시한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파라비치니 씨." 트로터 형사가 말했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도 같은 멜로디를 치셨죠?"
"예, 그랬읍니다. 이 멜로디를 세 번 되풀이해서 쳤읍니다."

트로터 형사가 몰리에게 돌아서며 물었다.
"피아노를 칠 줄 아시죠, 데이비스 부인?"
"예, 트로터 형사님."
"파라비치니 씨가 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 멜로디를 칠 수 있겠읍니까?"
"예, 물론이죠."
"그러면 피아노 앞으로 가서 내가 신호를 보내면 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줄실까요?"

몰리는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녀는 피아노 옆으로천천히 걸어갔다.
파라비치니씨는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며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항의했다.

"형사님, 우리는 각자 자기가 한 역할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피아노에 앉아 있었던 사람은 나였읍니다."
"당시의 상황과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된느 것이지만, 같은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할
필요는 없읍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가일즈가 말했다.
"이런 겁니다, 데이비스 씨. 여러분이 하신 말씀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특히 어떤 한 사람의 말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자, 여러분의 위치를 지시하겠읍니다. 데이비스 부인은 이곳 거실 피아노
앞에 계시고, 렌 씨는 주방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살피고 계십시오. 파라비치니
씨는 렌 씨의 침실로 가서 휘파람을 불며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십시오.
'세 마리의 눈먼 쥐'를 휘파람으로 부는 겁니다. 메트카프 소령님은 데이비스 씨의
침실로 가서 전화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데이비스 씨는 홀의 벽장 속을
들여다보시고 지하실로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 다음 네 사람은 천천히 거실문으로 걸어갔다.
트로터 형사는 그들 뒤를 따라가며 뒤돌아보며 말했다.

"50까지 센 다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세요, 데이비스 부인."

그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거실으 나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파라비치니 씨가,
"경찰이 실내 게임을 이렇게 좋아하는지는 몰랐읍니다." 하고 말하는 소리가
몰리에게 들려왔다.

"48, 49, 50."
몰리는 트로터 형사가 시키는 대로 숫자를 50까지 세고 나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다시 부드럽고도 오싹하는 멜로디가 넓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세 마리의 눈먼 쥐
그들이 달리는 것을 보세요.....

몰리는 심장이 점점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파라비치니씨가 말했듯이
이상할이만큼 잊혀지지 않는 잔인한 가사였다. 어른이라면 끔찍하게 생각했을
그런 불행한 일을 무관심하게 넘겨 버리는 어린애들의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가사였다. 위층에서 희미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 왔다. 크리스토러 렌의 역할을 하고
있는 파라비치니 씨가 크리스토퍼의 침실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옆방의 서재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트로터 형사가 라디오를 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보일 부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데 왜? 무엇 때문에 그 부인의 역할을 하는 걸까? 함정은 무엇일까?'
몰리는 함정이 있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가 있었다. 갑자기 찬 바람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쳐갔다. 얼른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렸다 닫힌 게 분명했다.

'누군가가 거실로 들어온 모양이지─아니야, 거실에는 아무도 없어.' 몰리는 별안간
두려움을 느꼈다. '누가 들어온다면? 만일 파라비치니 씨가 깡총거리며 뛰어 들어와
피아노 옆으로 다가와서 긴 손가락을 내밀며─'
'아, 부인은 지금 자신의 장송곡을 연주하고 있군요, 행복하시겠읍니다─'
말도 안 돼.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마. 그런 상상을 하면 안돼.파라비치니 씨가
지금 위층에서 불고 있는 휘파람 소리가 들리잖아.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그가
듣고 있듯이. 그 생각이 떠오르자 몰리는 피아노에서 손을 땔 뻔했다.
'보일 부인이 살해당한 시각에 파리비치니 씨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어! 그것이 함정이었을까? 파라비치니 씨는 피아를 치지 않았던게 아닐까?
거실에 있지도 않았고 서재에 있어다면? 서제에서 보일 부인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트로터 형사가 몰리에게 피아노를 치라고 했을 때 파라비치니 씨는
무척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작은소리로 피아노를 쳤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물론 그는 피아노를 아주 작은 소리로 쳤기 때문에 거실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에게는 들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기에, 작은 소리라는 말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 때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했던 사람이 치고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면─트로터 형사는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거짓말을 한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거실 문이 열렸다. 파라비치니 씨가 들어올까 봐 조마조마하고 있던 몰리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트로터 형사였다.
그 멜로디를 세번 되풀이해서 치고 난 다음에 그가 들어온 것이다.

"감사합니다, 데이비스 부인." 그가 말했다. 그는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또한 태도도 활기차고 자신이 있어 보였다. 몰리는 피아노 건반에서 손을 때며,
"원하는 결과를 얻으셨나요?" 하고 물었다.
"예, 내가 원하던 바로 그 결과를 얻었읍니다."
트로터 형사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뭐예요? 누구예요?"
"모르시겠읍니까? 데이비스 부인? 자, 그건 어렵지 않아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부인은 정말 어리석군요. 부인은 내가 세 번째 희생자를 추적하는
것을 내버려 두었읍니다. 그 결과 당신은 심각한 위험에 빠진 겁니다."
"제가요? 무슨 말씀이죠?"
"부인이 솔직하지 않았다는 뜻입다. 데이비스 부인, 부인은 내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읍니다─보일 부인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모르실 리가 없죠. 내가 롱리지 농장 사퓻? 대해 처음 말했을 때 부인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전부 알고 있었죠. 그래서 부인은 당황했었죠. 보일 부인이
이 지방에서 전쟁 고아를 입양시키는 일을 맞고 있었던 장교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도 부인이었읍니다. 보일 부인과 당신은 이 지방 출신이죠. 그래서 나는 세
번째 희생자가 누구일까 하고 추측해 보았을 때, 그건 바로 부인이어야 한다고
단정한 겁니다. 부인의 행동과 말은 롱리지 농장 사건을 직접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읍니다. 우리 경찰은 그런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몰리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를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전 그 사건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나두 그건 이해할 수 있읍니다." 트로터 형사의 목소리가 약간 달라졌다.
"결혼 전 부인의이름은 웨인라이트였죠?"
"예."
"그런데, 부인의 실제 나이는 부인이 말하는 나이보다 약간 많죠?
1940년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부인은 에비베일 학교의 교사였죠?"
"아니에요!"
"그러지 마세요. 데이비스 부인."
"난 아니에요. 사실이에요."
"죽은 그 아이는 죽기 전에 부인에게 편지를 보냈었죠. 우표를 훔쳐서 붙였어요.
그는 편지에다 도와 달라고 썼어요. 친절하고 다정한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던
겁니다. 자기 반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왜 안 나오는지 알아봐야 하는것이
선생님이 해야 할이 아닙니까? 하지만, 부인은 알아보지 않았읍니다. 그 불쌍한
어린애의 간절한 편지를 당신은 모른 체해 버린 겁니다."
"그만하세요." 몰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형사님은 지금 제 언니에 관해 말씀하시고
계신 거예요. 언니는 학교 선생님이었어요. 그렇지만, 언니는 그 편지를 모른
체하진 않았어요. 언니는 그 때 아팠어요─폐렴을 앓고 있었던 거예요. 그 아이가
죽고 나서야 그 편지를 볼 수 있었던 겁니다. 그 일 때문에 언니는 얼마나
괴로와했는지 몰라요. 말도 못 할 정도로 괴로와했어요. 언니는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 일은 언니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언니가 그토록
괴로와했기 때문에 저도 그 일을 다시는 생각하기 싫었어요. 그건 악몽과도
같았어요."

몰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잠시 뒤 손을 내렸을 때 트로터 형사가 그녀를
응시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그건 부인의 언니였군요. 하지만 어쨌든─" 그가 갑자기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건 상관없어요. 당신의 언니가─내 동생─"

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는 웃고 있었다. 행복하게.
몰리는 그가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는 경찰이 리볼버 권총을 안 가지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요?"
"경찰은 리볼버 권총을 안 가지고 다니죠." 그가─그 젊은이가 말했다.
"그렇지만, 데이비스 부인, 나는 경찰이 아니거든요. 내가 바로 짐이에요.
죽은 조지의 형이란 말입다. 당신은 내가 시내에서 공중전화로 트로터 형사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를 경찰아리고 생각한 거죠.
난 이곳에 도착했을 때 집밖의 저노하선을 끊어버렸어요. 그래야만 당신이 다시
경찰서로 전화를 못 할테니까요."

몰리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권총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아요, 데이비스 부인─소리를 지른다면─즉시 방아쇠를 당기고
말겠소."

그는 계속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도 어린애의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그래요. 난 조지의 형이에요. 조지는 롱리지 농장에서 죽었지. 그 나쁜 여자가
우릴 그리로 보냈어요. 그리고, 그 농부의 아내는 우리를 잔인하게 학대했고,
그런데 당신은 우리를─세 마리의 눈먼 쥐를 도와 주기 않았어.
난 그 때 내가 크면 당신들을 전부 죽이겠다고 맹세했지. 굳게 맹세했어.
그때부터 그 생각만 했어."

그는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다.
"군대에서 사람들은 날 괴롭혔어. 그 의사는 자꾸 질문을 했지─난 도망칠 수 밖에
없었어. 나는 그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할까 봐 겁이 났던 거야.
그렇지만 이젠 나도 어른이야. 어른들은 하고 싶은것은 뭐든지 할 수 있거든."

몰리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해. 생각을 딴 데로 돌리게 만들어야 해.'

"하지만, 짐, 당신은 무사히 도망칠 수 없어요."
그의 표정이 어두어졌다. "누가 내 스키를 숨겼어. 그걸 찾을 수가 없어."
그러더니 그는 다시 웃었다. "그러나 상관없이. 이건 당신 남편의 총이니까.
그의 서랍에서 꺼냈지. 사람들은 당신 남편이 당신을 쏘았다고 생각할 테니까.
어쨌든─상관없는 일이지. 지금까지 정말 재미있었어. 경찰인 체한 건 정말
기막히게 재미있었어! 런던의 그 여자─나를 알아 봤을 때의 그 얼굴 표정.
그리고 오늘 아침에 죽인 그 멍청한 여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어디선가 으스스한 휘파람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누군가가 '세 마리의 눈먼 쥐'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다.
트로터가 깜짝 놀라자 권총이 흔들렸다. 어떤 목소리가,

"엎드려요, 데이디스 부인!" 하고 외쳤다.

몰리가 바닥에 엎드리는 순간, 문 옆의소파 뒤에 숨어 있던 메트카프 소령이
일어나면서 몸을 날려 트로터를 덮쳤다. 권총이 발사되면서 총알은 죽은 에모리
양이 아끼던 유화 중의 하나에 박혔다. 잠시 뒤에 가일즈가 뛰어 들어오고, 뒤따라
크리스토퍼와 파라비치니 씨가 밀려 들어오자 거실은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변했다.
메트카프 소령은 트로터를 꽉 붙잡은 채로 짧게 힘주어 말했다.

"데이비스 부인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이에 소파 뒤로 숨어들었죠. 난 처음부터
이 사람을 주목하고 있었읍니다. 나는 이 사람이 경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경찰은 바로 나니까요─나는 태너 경감입니다. 메트카프 소령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 분 대신 내가 온 겁니다. 런던 경시청에서는 누군가를 현장에 보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죠. 자, 젊은이─"

태너 경감은 이제 온순해진 트로터에게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했다.

"나를 따라오게. 아무도 자네를 헤지진 않을걸세. 자네는 이제 괜찮아.
우리가 돌봐주겠네."

그 젊은이는 굳은 얼굴을 한 채 가엾은 어린애의 목소리로 물었다.

"조지가 내게 화를 내지는 않을까요?"
"아니야, 조지는 화를 내지 않을 거야." 메트카프, 아니 태너 경감이 대답했다.
그는 가일즈 곁에 지나면서 말했다.

"불쌍하게도 완전히 정신이상이 되고 말았소."

그들이 나가자, 파라비치니 씨가 크리스토퍼의 팔을 툭치며 말했다.

"당신도 나와 함께 나갑시다."

단둘이 남은 몰리와 가일즈와 서로 마주보았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굳게
껴안았다. 가일즈가 먼저 말했다.

"여보 괜찮아?"
"예, 괜찮아요. 여보, 그 동안 내 정신이 어떻게 되었었나봐요. 난 정말
당신인줄─당신, 그날 왜 런던에 갔었죠?"
"내일이 우리의 결혼 기념일이잖아. 그래서 당신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갔었어.
당신에게 미리 알리지 않으려고 했던거야."
"어머, 이럴 수가! 나도 당신 선물을 사러 갔었어요. 당신 몰래 말이에요."
"난 그 이상한 젊은 녀석에게 불 같은 질투를 느끼고 있었어. 머리가 이상했었나
봐. 미안해. 날 용서해요. 여보."

그 때 문이 열리며 파라비치니 씨가 염소처럼 뛰어들어왔다.
그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화해하는 데 방해가 되었군요─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에요. 아, 그런데 난 이제
작별을 해야겠어요. 경찰차가 눈을 뚫고 이곳까지 왔군요. 나도 그 차를 타도록
해야겠어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몰리의 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멀지않아 나는 몇 가지 골치아픈 일을 당할지도 모릅니다─그렇지만 그런 것쯤은
자신있게 처리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만일 부인이 어떤 상자를 배달받게 되면
─거위, 즉 칠면조와 타조의 간 통조림 몇 개,햄, 나일론 스타킹등이 들어 있는
상자를 받게 되면, 그건 매력적인 부인에게 드리는 내 찬사의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시오. 데이비스 씨, 하숙비는 테이블 위에 놓아 두었읍니다."

파라비치니 씨는 몰리의 손에 키스를 하고 깡총거리며 방을 나갔다.

"나일론 스타킹?" 몰리가 중얼거렸다. "타조의 간? 파라비치니 씨는 뭘 하는
사람이죠? 산타크로스일까요?"
"몰래 물건을 사고 파는 그런 장사꾼인 것 같아." 가일즈가 말했다.

그 때 크리스토퍼 렌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디밀고 말했다.

"저─방해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주방에서 뭔가 타는 냄새가 지독하게 나고 있어요.
내가 가볼까요?"

그러자 몰리가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갔다.

"내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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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라를 만든 프로토 모터스에 면접보러 갑니다. (by 딘박) 야심한 밤에 읽으시라고...(심심하신 분..ㅎ) 쥐덫 1 (by topgun-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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