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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언론의 어리석음은 언제 종언되는가 외

맞바람2006.01.17 12:22조회 수 472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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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khan님의 언급에 덩달아 저도 몇가지 링크
망둥이가 뛰니 뭐도 뛴다는데 한번 놀아봅니다

http://www.kyosu.net/?news/view/id=9632&page=2
http://www.kyosu.net/?news/view/id=9631&page=2
http://www.hani.co.kr/kisa/section-008003000/2006/01/008003000200601152024991.html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04793&ar_seq=2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04593&ar_seq=2

언론의 어리석음은 언제 종언되는가
교수논평: 황우석 사건과 언론매체의 과제
2006년 01월 09일   김성재 조선대

김성재/조선대·언론학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갈파했을 때 그를 사기꾼이라고 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술은 수용자의 감성적 판단인 미학에 기초하기 때문에 누가 사기를 친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과학은 사기다”라고 말한다면, 세계가 다 웃을 일이다. 과학은 이성적 판단인 논리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연구결과의 조작은 서울대 의대 모 교수의 말마따나 “이야기 끝”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 희대의 과학 사기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국익’과 경쟁자에 대한 ‘보안’을 빌미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난자 매매가 가능한 한국에서 황우석이라는 과학 ‘사기꾼’이 나타났다. 더 나아가 그는 그의 명령에 따라 일하는 연구원에게 대가성 난자 기증을 강요함으로써 실천이성인 도덕까지 파괴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계를 농락한 ‘대사기꾼들’을 색출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과학자나 검찰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비판적 과학저널리즘” 정신으로 무장해 모험적인 ‘탐사보도’를 수행했던 방송국(MBC) 프로듀서와 인터넷 언론매체(프레시안) 기자였다. 여기서 “비판적 과학저널리즘”은 대중매체를 통해 과학에 대한 정보를 일반인에게 보도하고 해설해주는 언론행위로서 ‘과학저널리즘’을 넘어선 개념이다. 이 개념은 인간 유전체 조작과 같은 고도의 테크놀로지가 인간 건강, 생태계 그리고 노동과정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과학기술을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일반 대중에게 지나친 과학 유토피아를 경고하고 과학의 사회적 위험도 알려주는 언론행위를 말한다.


위에서 언급한 저널리스트들은 동료 과학자들이 침묵하고 정부권력이 황우석을 국보처럼 비호하는 열악한 취재환경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용기 있는 저널리스트들이었다. 이들의 활동 저편에서 한국의 거대 언론매체인 소위 ‘조·중·동’은 황우석을 영웅으로 만드는 데 몰두했고, 감정적 여론을 등에 업고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매국노로 몰아갔다. 이들 매체에 소속된 한 과학전문 기자는 ‘엠바고’까지 깨면서 ‘사이언스’에 게재된 황우석의 논문 으로 소아적 영웅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진보적인 언론매체라고 자부하는 ‘한겨레’도 “제2창간 운동”에서 황우석을 대대적으로 팔아먹었지만, 지금까지 자기반성의 사과문을 내놓지 않았다.


열 차례가 넘는 황우석의 말 바꾸기와 서울대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맞춤형 줄기세포 배양의 허위 및 논문조작 사실이 드러났지만, 황우석의 교묘한 상징조작(예: “인위적 실수”!)에 놀아난 언론매체들은 아직까지 궁색한 변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 매체는 지금도 실체 없는 ‘원천기술’과 ‘황빠’들의 황우석 보호론에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황우석 보도에서 갈지자를 걸었던 언론매체들끼리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며 다투고 있는 슬픈 매체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시지탄이지만 한국의 생명과학 연구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매체들이 견지해야 할 보도태도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원래 대중매체 체계의 기능은 우선 알려야 할 대상을 창조하고 이를 순간에서 순간으로 변화시키며, 계속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모험적으로 수용자의 수긍 혹은 거절을 자극하는 것이다. 환언하면, 시간의 압력에 쫒기면서 특정 주제를 상황에 따라 보도하여 수용자를 자극(흥분)시키는 일이다. 한국의 거대 언론매체들은 황우석이라는 주제로 한국인을 흥분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은 과학을 판단하는 기준인 진리/허위, 도덕의 기준인 선/악을 적용하는 데 판단의 착란(황우석의 경우 허위와 악의 유혹)에 빠졌다.


이러한 가치판단의 착란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비판적 과학저널리즘의 기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과학을 다루는 저널리스트들은 과학연구의 내용이 내포하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함의와 과학기술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부작용까지 보도·해설해야 한다. 그러나 거대 언론매체들은 2년 동안 과학저널리즘의 기본에 충실하기는커녕 허위 사실에 미혹되어 우리를 흥분시켰다. 이 흥분이 남긴 허탈의 상처 위에 또 다른 허위와 조작의 흥분을 덧씌우는 언론인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은 황우석 사건을 계기로 영원히 끝나야 한다.


문화비평: 스타의 애국심
2006년 01월 09일   박유하 세종대

정말은 10년 후에나 가능한 것이었다는 연구를 앞당기기 위해 두어진 황우석 교수의 무리수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여전히 시간이 성패를 가름하는 사회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근대화’라는 것이 ‘공간의 시간화’임은 이미 지적된 지 오래지만 그렇게 우리는 아직 우리의 공간을 시간적으로 보다 앞선 위치에 두려는 근대화를 시도 중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게임에서 보조를 맞추지 않는 타자를 ‘잔여’(스튜어트 홀)로 규정하고 지배에 나선 것이 다름 아닌 근대였다. ‘월화수목금금금’ 태세라고 황우석 교수가 강조하고 매스컴이 칭송했던 연구태세는 그런 의미에서 최첨단을 가면서도 근대적이라는 아이러니를 내포한다.


그러한 근대주의가 외부와 차단된 실험실이라는 공간에서 권력화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해야 하리라. 연구원들이 개인의 것이어야 할 휴일과 자신의 난자를 제공하기에 이른 이유가, 언젠가 공동연구자로 논문에 이름이 오르는 날을 위한 것이었건 혹은 단순히 ‘난자가 담긴 접시를 엎지른’ 죄 때문이었건, '선생님께 대적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난자제공 연구원의 후회는 난치병환자를 위한 박애주의가 - 내부인에게조차 결코 박애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배적인 권력의 장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처연하기조차 하다.


그런 지배구조가 드러날 수 없었던 것은 그/그녀들이 어디까지 ‘무명의 희생자여야 했기 때문이다. 무명성은 '희생'의 존재를 부풀리면서 동시에 결코 공공의 장으로 끌어내지는 않는다. 그/그녀들의 ‘희생적’ 행위가 한편으로는 칭송되면서도 결코 개인의 목소리를 내서는 안되었던 이유도, 따라서 결코 표창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근대국민국가는 그러한 ’무명’인들을 무수히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와는 대조적으로 단 하나의 영웅적인 고유명 역시 필요로 한다. 분명 황우석 ‘팀’이라는 다수가 있었음에도 그리고 가끔은 그들의 존재가 부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스컴과 사회가 황우석이라는 단 하나의 고유명을 필요로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 ‘고유명’은 그가 보다 좋은 조건으로 타국에서 연구할 것을 제의하는 ‘타국의 유혹’을 거부하는 이임을 강조해 동시대의 ‘애국자이야기’를 완성한다.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 만들었다는 황우석 교수의 강연에 수퍼맨의 슬라이드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황교수가 민족주의의 속성을 숙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하여 과학은 그곳에서 종교의 양상을 띤다. '내가 너를 걷게 해 주리라.’


민족주의적 열망은 늘 패권주의적이지만 그것이 드러나서는 안되기에 수난의 역사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한다. ‘세계생명공학의 고지에 태극기를 꽂고 온 기분’이라거나 ‘과학에는 조국이 없어도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거나 하는 황우석 교수의 말은 이미 최대급의 민족주의적 수사이지만 그보다도 더 듣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을 말은 ‘식민지화와 동족상잔이라는 고난’을 겪은 나라 한국에 하느님이 이제 ‘어깨 펴고 살아보라고 이런 천운을 주었다’는 말이리라.


황우석 교수에 대한 그동안의 열광현상은 단순히 그가 세계를 상대로 쾌거를 올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실과 함께, 혹은 그 사실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가 우리에게 늘 자신의 능력과 함께 애국심을 확인시켜 국민들에게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성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대중적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마치 금모으기 운동처럼,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자를 채취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민족주의가 존재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난치병 환자 치료’라는 정의담론이 장애자에 대한 무관심/차별과 동시적으로 존재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가 강하면서도 국민의 70퍼센트가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하는 현상과 닮은 꼴이기도 하다. 한국적 민족주의의 문제는 오히려 그런 관념성에 있다.

박유하 / 세종대·일문학


‘국익’ 이라는 환상

“여러분이 필리핀 유학생이라고 가정합시다. 거기서 한국 기업이 체불과 인권침해를 하자 필리핀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겠다고 여러분에게 번역, 시위 조언 등의 부탁을 해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학생들에게 수업 중에 던진 질문이다. 난감해하던 학생들 중에서 한 명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못할 것 같아요.” “왜죠?” “국익에 위배되는 것 같아서….”
여기서 읽는 것은 그 학생이 ‘국익’이라는 가치를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국익이 정의, 평등, 박애, 인권 등 의 보편적 가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에 없다. 과연 이런 식의 사고는 교실 안의 소수 학생에 한정된 것일까?

한국사회에서는 누구든지 보편적 가치로 ‘국익’과 ‘국가경쟁력’ 등을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국익이 사실 사회와 긴장을 이루는 국가기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이익의 준말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도 실상은 반대다. 뭔가 사회와 시민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가치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국민이익이라고 생각해도 그렇다.(물론 국민학교도 폐지된 마당에 국민이익이 아니라 시민이익이라는 게 옳다). 과연 사회 전체의 이익을 집약하는 그런 이익이 존재할까? 재벌과 노동자의 이익은 대립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상충하고, 전자제품 수출업자와 농민의 이익은 모순된다. 한국사회는 서로 충돌하고 모순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과연 최대 공약수를 이끌어내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과연 국익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더구나 세계화 시대에 국적과 국가적 경계를 바탕으로 하는 이익 구분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한국사회의 상층부는 하층부와 함께 ‘국익’으로 포괄될 수 있는가? 세계자본주의 체제 중심부의 상층부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농민의 이익은 한국재벌의 이익보다는 어떤 나라의 농민들 이익과 더 가까운 데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던져보면 국익이 절대로 두부모처럼 잘릴 수 있는 한국사회 대다수의 이익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한국인의 이익은 미국인, 일본인과 일치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오히려 국익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 속에서 4700만의 한국인 이익을 하나로 수렴하는 뭔가 초월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거기서 오히려 득을 보는 소수집단은 대표성을 띠게 되고, 사회적 약자나 다수의 이익은 집단이기주의에서 나오는 발상으로 추정되기 일쑤다. 더구나 국가=사회=대기업=나라가 당연하다는 듯이 등치되는 분위기 아래서 사회적 약자-여성, 빈곤층, 장애자, 비이성애자 등의 이익이 국익으로 대접받은 적이 있는가? 그것은 한국사회 대다수 이익을 대변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소수의 이익을 추상화시켜 은폐하는 도구가 아닐까?

한국사회는 지나치게 국익, 국가경쟁력 등의 애국주의적 국가주의적 개념과 가치에 몰두해 왔다. 그 결과 보편적 가치인 진실, 자유, 평등, 박애 등의 가치를 껍데기로 만들거나 하위가치로 하락시켰다고 볼 수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쌀 수입 개방, 이라크파병,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 사학법 개정 등에서 보기 힘든 것들은 보편적 가치와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둘러싼 논란이다. 요란한 것은 ‘진정한 국익’ ‘나라를 위해서’의 나팔소리다. 국익이라는 환상 속에서 누가 희생을 당하고 있고 인류의 어떤 보편적 윤리가 묵살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따져볼 때다.

권혁범/대전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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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많은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집니다...
    위의 글들을 읽어보면 신문이나 텔레비젼방송에 나온내용을 근거로 삼고있습니다. 언론이 이렇게 무서운건지 새삼알것같습니다...
  • 대단하심... 설마 전부 자판 두들겨서 오리신건 아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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