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선생 친근기
나는 산중에 우거하는 일개 땔나무꾼입니다만 며칠 전 황선생을 만나 서너 시간을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수인사를 나눈 후 각기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그분과 동행한 어느 선생과 우리 식구 네 명이었습니다. 눈빛이 참 고운 분이더군요. 콧대는 우뚝하지만 매부리처럼 약간 굽었고 하관(턱주위)이 튼실하더군요. 눈 주위가 밝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떠나올 때 깎은 듯 파르스
럼한 면도자국이 표정을 한결 단정히 보이게 했습니다.
“염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표정이 밝고 생기 있어 보입니다.”했더니, “이곳에만 오면 늘 이렇게 생기가 돕니다. 언젠가 틈내어 한참동안 지내고 싶습니다.”하더군요.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니 두루두루 세상구경은 잘했겠습니다.”하니, “아직까지 더 떨어져야 합니다. 그럴 겁니다. 덕분에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하더군요.
그리고는 자신을 하늘 끝까지 올려놓았다가 동시에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뜨리기도 한 문제의 그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자신의 연구란 어떤 것인가, 어떤 점이 문제가 되었는가, 비난에 휩싸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 하는 등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백컨대 나는 그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띄엄띄엄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 낱말 몇 가지 외 그냥 간간이 들리는 서양말과 우리말 모음과 자음이 뒤섞여 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세계 초일류 선생님에게서 그의 연구 내용을 강의 받는 분복을 만났으나, 엄감생심 나 같은 땔나무꾼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더군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나는 그날 그에게서 들은 강의 내용을 여러분께 아무것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날 한 자리에 같이 한듯이 이미 그런 내용들을 소상히 알고 있을 것이니 내가 다시 중언부언하는 것은 한낱 병무(여섯째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내가 하는 일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그렇습니다. 다 같이 이 세상에 제 발자국 만큼의 넓이를 차지하고 서 있습니다. 더도 덜도 없이.
그래서 나는 감히 오늘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삼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와 그의 연구원들이 하는 일이 인류를 위해 진정으로 유익한 일이라면 그들에게 다소의 과오가 있더라도 (그는 대화도중 몇 번씩이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며 고백하고 뉘우쳤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그의 연구가 결실을 맺도록, 그리하여 인류에게 크게 봉사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깊은 성원을 보내야 할 줄로 압니다. 현재 그에게 국내에는 아무데도 그와 그의 연구원들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대화 도중 나는 그에게서 한마디도 남을 원망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간 후 그 자리에 함께했던 우리 식구 모두가 한결같이 탄복한 점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팀을 이탈하여 떠난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말을 몇 번 씩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변변찮은 일개 땔나무꾼이 먼지 앉은 빈 종이를 찾아 등불 심지를 돋우고 책상 앞에 앉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러분에게 고언을 드리는 것은 그분의 명성 탓도 그 분의 학문 탓도 아니고 단지 남을 원망할 줄 모르는 그 선한 눈빛이 며칠씩이고 눈에 밟혀 전전반측 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의 순정이 아직도 남았군’하고 비웃으십니까. 중늙은이의 유약한 심사라고 치부해 버리십니까. ‘사람의 됨됨이가 어진이 치고 난을 일으키는 자가 없다’한 것은 논어의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설령 훗날 그의 연구가 특정 언론에서 밝힌 것처럼 정말 새까만 거짓,사기,불필요한 일임이 확인되어 우리를 배신하고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사람을 신뢰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합할 줄은 알았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붓을 든 김에 잠시만 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초제를 뿌리고 잡초를 메고 하여 새파랗게 잔디 한 가지만을 가꾸는 것은 어느 부잣집 안마당에서나 골프장에서나 운동장을 만들면서나 하는 짓이지 자연 속에는 그런 이치가 없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는 세상을 온통 새파란 잔디 한가지로만 만들려는 심사인지 ‘이것은 옳지 않다.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참으로 가당찮고 같잖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 넓은 산과 들을 보십시오. 온갖 나무,풀들이 제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과 꽃과 향기와 이파리를 달고 서로 섞여 살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독선과 아집과 권위가 있습니까.
그 종교는 자신들만이 세상을 선도한다는 어떤 선민의식에 빠져있는 듯합니다만, 그런 배타적 논리로는 구세, 즉 세상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을 혼란과 질시와 전쟁의 구렁텅이로 선도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주장은 한갓 나만의 허언공담이 아니라 수많은 선각자들이 이미 누누이 지적한 바 있고 인간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였으며 오늘 이 시각에도 세계 도처에서 수 없이 그러한 징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동양종교는 어떤 이치를 설명하면서 곧잘 비유를 들어 보이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경전은 다분히 탐미적이고 짙은 문학성을 띄기 일수 입니다.
예컨대 ‘진리의 세계’를 ‘화엄법계’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화엄’이란 ‘잡화엄식’의 약칭으로 ‘여러 가지 꽃으로 꾸며진 세상’이란 뜻이라고 들었습니다.
진리. 곧 ‘화엄법계’란 그들이 언필칭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사랑,용서,화해’의 불교적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으로만이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됨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짐승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습니까?”
“소를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소의 어떤 점을”
“질 좋은 종자로 증식하고 싶은 거지요. 나는 충청도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가난하여 부모님은 남의 소를 빌려 이를 키워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니 자연 소에 대해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정말 멋진 소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일로 시골의 어머니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좀 더 오래 사셔서 내가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할 텐데.”
이미 밤도 꽤 이슥했습니다. 손을 맞을 제 으레 드리는 찻잔은 서늘하게 식은 채 그냥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고. 과일 한 쪽도 입에 넣지 않았습니다. 까맣게 탄 속내를 알 듯도 하더군요.
이젠 헤어져야합니다. 두 손을 서로 움켜잡은 채 한참씩 고개를 떨구고 서 있습니다. 돌아서서 문을 나서는 그에게 나는 아무 위안이나 도움도 드리지 못한 채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한다 하니, 아주 입맛이 없을 때 이거라도 끓여 훌훌 마셔보십시오. 그리고 억지로라도 식사를 챙겨 드십시오”하는 당부와 함께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불을 때 지어 눌은 밥 누룽지 네댓 조각.
글쓴이 : 담시역사, 조식취모
나는 산중에 우거하는 일개 땔나무꾼입니다만 며칠 전 황선생을 만나 서너 시간을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수인사를 나눈 후 각기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그분과 동행한 어느 선생과 우리 식구 네 명이었습니다. 눈빛이 참 고운 분이더군요. 콧대는 우뚝하지만 매부리처럼 약간 굽었고 하관(턱주위)이 튼실하더군요. 눈 주위가 밝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떠나올 때 깎은 듯 파르스
럼한 면도자국이 표정을 한결 단정히 보이게 했습니다.
“염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표정이 밝고 생기 있어 보입니다.”했더니, “이곳에만 오면 늘 이렇게 생기가 돕니다. 언젠가 틈내어 한참동안 지내고 싶습니다.”하더군요.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니 두루두루 세상구경은 잘했겠습니다.”하니, “아직까지 더 떨어져야 합니다. 그럴 겁니다. 덕분에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하더군요.
그리고는 자신을 하늘 끝까지 올려놓았다가 동시에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뜨리기도 한 문제의 그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자신의 연구란 어떤 것인가, 어떤 점이 문제가 되었는가, 비난에 휩싸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 하는 등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백컨대 나는 그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띄엄띄엄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 낱말 몇 가지 외 그냥 간간이 들리는 서양말과 우리말 모음과 자음이 뒤섞여 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세계 초일류 선생님에게서 그의 연구 내용을 강의 받는 분복을 만났으나, 엄감생심 나 같은 땔나무꾼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더군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나는 그날 그에게서 들은 강의 내용을 여러분께 아무것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날 한 자리에 같이 한듯이 이미 그런 내용들을 소상히 알고 있을 것이니 내가 다시 중언부언하는 것은 한낱 병무(여섯째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내가 하는 일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그렇습니다. 다 같이 이 세상에 제 발자국 만큼의 넓이를 차지하고 서 있습니다. 더도 덜도 없이.
그래서 나는 감히 오늘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삼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와 그의 연구원들이 하는 일이 인류를 위해 진정으로 유익한 일이라면 그들에게 다소의 과오가 있더라도 (그는 대화도중 몇 번씩이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며 고백하고 뉘우쳤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그의 연구가 결실을 맺도록, 그리하여 인류에게 크게 봉사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깊은 성원을 보내야 할 줄로 압니다. 현재 그에게 국내에는 아무데도 그와 그의 연구원들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대화 도중 나는 그에게서 한마디도 남을 원망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간 후 그 자리에 함께했던 우리 식구 모두가 한결같이 탄복한 점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팀을 이탈하여 떠난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말을 몇 번 씩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변변찮은 일개 땔나무꾼이 먼지 앉은 빈 종이를 찾아 등불 심지를 돋우고 책상 앞에 앉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러분에게 고언을 드리는 것은 그분의 명성 탓도 그 분의 학문 탓도 아니고 단지 남을 원망할 줄 모르는 그 선한 눈빛이 며칠씩이고 눈에 밟혀 전전반측 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의 순정이 아직도 남았군’하고 비웃으십니까. 중늙은이의 유약한 심사라고 치부해 버리십니까. ‘사람의 됨됨이가 어진이 치고 난을 일으키는 자가 없다’한 것은 논어의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설령 훗날 그의 연구가 특정 언론에서 밝힌 것처럼 정말 새까만 거짓,사기,불필요한 일임이 확인되어 우리를 배신하고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사람을 신뢰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합할 줄은 알았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붓을 든 김에 잠시만 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초제를 뿌리고 잡초를 메고 하여 새파랗게 잔디 한 가지만을 가꾸는 것은 어느 부잣집 안마당에서나 골프장에서나 운동장을 만들면서나 하는 짓이지 자연 속에는 그런 이치가 없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는 세상을 온통 새파란 잔디 한가지로만 만들려는 심사인지 ‘이것은 옳지 않다.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참으로 가당찮고 같잖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 넓은 산과 들을 보십시오. 온갖 나무,풀들이 제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과 꽃과 향기와 이파리를 달고 서로 섞여 살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독선과 아집과 권위가 있습니까.
그 종교는 자신들만이 세상을 선도한다는 어떤 선민의식에 빠져있는 듯합니다만, 그런 배타적 논리로는 구세, 즉 세상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을 혼란과 질시와 전쟁의 구렁텅이로 선도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주장은 한갓 나만의 허언공담이 아니라 수많은 선각자들이 이미 누누이 지적한 바 있고 인간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였으며 오늘 이 시각에도 세계 도처에서 수 없이 그러한 징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동양종교는 어떤 이치를 설명하면서 곧잘 비유를 들어 보이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경전은 다분히 탐미적이고 짙은 문학성을 띄기 일수 입니다.
예컨대 ‘진리의 세계’를 ‘화엄법계’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화엄’이란 ‘잡화엄식’의 약칭으로 ‘여러 가지 꽃으로 꾸며진 세상’이란 뜻이라고 들었습니다.
진리. 곧 ‘화엄법계’란 그들이 언필칭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사랑,용서,화해’의 불교적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으로만이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됨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짐승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습니까?”
“소를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소의 어떤 점을”
“질 좋은 종자로 증식하고 싶은 거지요. 나는 충청도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가난하여 부모님은 남의 소를 빌려 이를 키워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니 자연 소에 대해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정말 멋진 소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일로 시골의 어머니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좀 더 오래 사셔서 내가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할 텐데.”
이미 밤도 꽤 이슥했습니다. 손을 맞을 제 으레 드리는 찻잔은 서늘하게 식은 채 그냥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고. 과일 한 쪽도 입에 넣지 않았습니다. 까맣게 탄 속내를 알 듯도 하더군요.
이젠 헤어져야합니다. 두 손을 서로 움켜잡은 채 한참씩 고개를 떨구고 서 있습니다. 돌아서서 문을 나서는 그에게 나는 아무 위안이나 도움도 드리지 못한 채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한다 하니, 아주 입맛이 없을 때 이거라도 끓여 훌훌 마셔보십시오. 그리고 억지로라도 식사를 챙겨 드십시오”하는 당부와 함께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불을 때 지어 눌은 밥 누룽지 네댓 조각.
글쓴이 : 담시역사, 조식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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