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저 자신도 믿지 않습니다. 무슨 뜻이냐구요?
믿는다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제가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지요.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식이 못된 짓을 할때에, 너는 원래 그런 놈(년)이야. 내가 너 그럴줄 알았어. 니가 그렇지 뭐. 이렇게 말하는 부모있습니까? 있다면 그건 부모자격이 없는거죠. 자식이 설령 못된 짓을 하더라도, 부모는 자기 자식이 그렇지 아니하다는 것을 압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모의 사랑과 믿음은 자식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습니다. 이것이 무작정 자식을 감싸고 이래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주 아주 옛날에 읽은 글인데, 어떤 작가가 자기 어린 시절의 경험을 쓴 것이 있습니다. 6.25때에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시장 좌판에 올려놓고 파는 사과가 너무 먹고 싶어서 하나 훔쳤답니다. 그런데 들켰지요. 들켜서 사과장수가 그 어머니께 끌고 갔습니다. 요란뻑쩍지근하게 자초지종의 설명을 들은 그 어머니는 말없이 사과값을 지불하고 난후에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그 말만을 하고 계속 하시던 일을 하더랍니다. 어린 마음에 그 작가는 큰 꾸중을 들을 생각에 겁에 질려있었으나 예상외로 어머니가 담담하게 대하니 마음속에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이 들었을테지요. 그래서 몇십년이 지나도 그때 일이 잊혀지지 않더랍니다.
제가 저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다고 말할때 그 의미는, 제가 아직도 저 스스로에 대한 완벽한 콘트롤을 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원래 서양의 개인주의라든가 법제도는 하나하나의 개개인을 신으로부터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실존적 존재로 취급함과 동시에 개인이 내린 모든 선택과 행위에 대해서는 그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저는 봅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자기 자신을 자기가 완벽히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법적/사회적으로 책임의 주체가 될수 있는 완전한 성인으로 인정받는다는 함의가 있는 것이구요. 그러나 저는 저 자신을 100% 콘트롤할 수가 없습니다.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머리로는(이성으로는)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Out of control 인 것이지요. 저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은 그런 맥락에서 했던 것이고 이렇게 저 자신조차 믿지 않는 제가 누군가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 게시판에 출입하면서 글을 읽으실 여러분들도 당연히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다는게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적어도 내 의사대로 타인이 움직여주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뜻이지요.
저 아래 은행나무님이 쓰신 좋은 글이 있는데 그 글의 조회수가 300도 안되더군요. karis님의 뭉치자는 절절한 호소글의 조회수는 대략 500대선이구요. 후지 파격할인...황당 오만한 샾...잡았습니다 그넘... 이런 식의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면 조회수가 천, 이천 막 올라가는군요. 그 글들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 자신도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이 뭔가 새로운 것,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자극적인 것을 찾는구나라는 사실을 조회수에서 확인할 수 있기에 저도 다분히 선정적인 글 제목을 붙여보았구요. 과연 진정한 우리편, 진정한 내편은 몇명이나 될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생은 결국 길게 봤을때 남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거제쪽에서 어린이 대공원 올라가는 길을 MTB로 올랐습니다. 예전에는 앞 작은 기어 뒤에 큰쪽 기어 세개로 헉헉거리며 올라가던 길을 오늘은 앞 중간 기어 뒤 큰쪽 기어 세개로 비교적 수월하게 올랐습니다. 그것도 마스크 장착하고, 한번도 안쉬고. 눈에는 안보여도 노력하면 조금씩 실력과 체력의 향상이 있듯이, 지금까지 제가 써온 글들의 효과가 당장은 안나타나도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듯이, 사건을 좋게 해결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겠지라고 자위하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합니다.
믿는다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제가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지요.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식이 못된 짓을 할때에, 너는 원래 그런 놈(년)이야. 내가 너 그럴줄 알았어. 니가 그렇지 뭐. 이렇게 말하는 부모있습니까? 있다면 그건 부모자격이 없는거죠. 자식이 설령 못된 짓을 하더라도, 부모는 자기 자식이 그렇지 아니하다는 것을 압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모의 사랑과 믿음은 자식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습니다. 이것이 무작정 자식을 감싸고 이래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주 아주 옛날에 읽은 글인데, 어떤 작가가 자기 어린 시절의 경험을 쓴 것이 있습니다. 6.25때에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시장 좌판에 올려놓고 파는 사과가 너무 먹고 싶어서 하나 훔쳤답니다. 그런데 들켰지요. 들켜서 사과장수가 그 어머니께 끌고 갔습니다. 요란뻑쩍지근하게 자초지종의 설명을 들은 그 어머니는 말없이 사과값을 지불하고 난후에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그 말만을 하고 계속 하시던 일을 하더랍니다. 어린 마음에 그 작가는 큰 꾸중을 들을 생각에 겁에 질려있었으나 예상외로 어머니가 담담하게 대하니 마음속에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이 들었을테지요. 그래서 몇십년이 지나도 그때 일이 잊혀지지 않더랍니다.
제가 저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다고 말할때 그 의미는, 제가 아직도 저 스스로에 대한 완벽한 콘트롤을 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원래 서양의 개인주의라든가 법제도는 하나하나의 개개인을 신으로부터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실존적 존재로 취급함과 동시에 개인이 내린 모든 선택과 행위에 대해서는 그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저는 봅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자기 자신을 자기가 완벽히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법적/사회적으로 책임의 주체가 될수 있는 완전한 성인으로 인정받는다는 함의가 있는 것이구요. 그러나 저는 저 자신을 100% 콘트롤할 수가 없습니다.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머리로는(이성으로는)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Out of control 인 것이지요. 저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은 그런 맥락에서 했던 것이고 이렇게 저 자신조차 믿지 않는 제가 누군가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 게시판에 출입하면서 글을 읽으실 여러분들도 당연히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다는게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적어도 내 의사대로 타인이 움직여주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뜻이지요.
저 아래 은행나무님이 쓰신 좋은 글이 있는데 그 글의 조회수가 300도 안되더군요. karis님의 뭉치자는 절절한 호소글의 조회수는 대략 500대선이구요. 후지 파격할인...황당 오만한 샾...잡았습니다 그넘... 이런 식의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면 조회수가 천, 이천 막 올라가는군요. 그 글들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 자신도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이 뭔가 새로운 것,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자극적인 것을 찾는구나라는 사실을 조회수에서 확인할 수 있기에 저도 다분히 선정적인 글 제목을 붙여보았구요. 과연 진정한 우리편, 진정한 내편은 몇명이나 될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생은 결국 길게 봤을때 남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거제쪽에서 어린이 대공원 올라가는 길을 MTB로 올랐습니다. 예전에는 앞 작은 기어 뒤에 큰쪽 기어 세개로 헉헉거리며 올라가던 길을 오늘은 앞 중간 기어 뒤 큰쪽 기어 세개로 비교적 수월하게 올랐습니다. 그것도 마스크 장착하고, 한번도 안쉬고. 눈에는 안보여도 노력하면 조금씩 실력과 체력의 향상이 있듯이, 지금까지 제가 써온 글들의 효과가 당장은 안나타나도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듯이, 사건을 좋게 해결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겠지라고 자위하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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