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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의 100km 도전기

여행자2006.05.15 14:26조회 수 1544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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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자전거를 사고 이제 15번째 라이딩
사당 - 반포 - 탄천 - 분당 백현교 - 하오고개 - 백운호수 - 학의천 - 안양천 - 한강 - 반포 - 사당
이렇게 코스를 정하고 삶은 계란 6개와 물 2리터를 가방에 챙겨넣는다.

이런 장거리는 태어나서 처음인지라 사뭇 긴장되고
초행길이라 걱정도 앞서지만
한편으론 내가 이런 장한 생각을 했다는 게 기쁘기도 하다.



잠실 지나 성남시 초입까지 잘 가다가
코스 검색할 때 보지 못했던 다리이름들이 나오길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분당천이라고 하신다.
되돌아 가니 다시 탄천이 나온다.

길 잃는 건 참 순식간이다.
큰 갈림길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지만
작은 갈림길에서는 섣부르게 판단한다.
그래서 난 주로 작은 갈림길에서 길을 잃는가보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방황은 주로 작은 일들을 경솔하게 처리하면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다시 페달을 밟는다.



하오고개 입구

경사가 밋밋하기에 2-4단으로 출발했다.
나 같은 초보에게 이 선택이 오만이었음을 인지하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숨이 가파오고 기어비는 줄고 줄어 최하단으로 내려온지 오래다.
정상은 멀기만 한데 속도는 겨우 넘어지지 않을 정도 수준이고
이러다가 내가 이곳에 뼈를 묻을 수도 있겠구나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다다른 정상!
그 감격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범벅이 되어 흐르는 땀이
땀이 아니라 온 몸에서 흐르는 감동의 눈물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심하게 자아도취됐다.

그리고나서 맞이한 내리막길
이건 또 무엇인가!
자전거 위에서도 이런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 소리에 놀랐는지 앞서가는 차가 살포시 브레이크를 밟더니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뒤돌아본다.
상관없다.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다.
지금 이 순간 난 차라리 한 마리 짐승이고 싶다.
등줄기에 짜릿한 전율이 끊임없이 흐르고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완전히 압도당한 후
넋을 잃기 바로 직전
난 좌회전을 위해 청계교사거리 앞에 멈춰섰다.

태어나 이런 기분 처음이다.
오래 전부터 내 몸에 바퀴가 달려있었던 것처럼
나와 자전거는 하나가 되었다.
흔치 않은 교감이다.
난 자전거의 매력에 아주 홀딱 반해버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백운호수 나무 그늘에 앉아
삶은 계란 4개를 먹으며 휴식을 취한 뒤 학의천으로 출발했다.

안양천을 타고 석수역 근방에 왔을 즈음
뒷바퀴가 이상하여 내려보니 펑크가 나있었다.

자전거 살 때 예비튜브, 펑크패치, 펌프를 사뒀던 것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인터넷에서 본 기억을 되살려 펑크를 때워보기로 했다.

바퀴 빼는 것부터 낯설고 타이어 빼는 것도 생각보다 힘들다.
튜브를 꺼내어 바람을 넣고 찾아낸 펑크 구멍.
새어나오는 바람소리를 듣지 못하면
눈으로는 찾기 힘든 작은 구멍이었다.

자전거가 못 움직인다는 것은 참 큰 사건이다.
헌데 그 원인은 아주 작은 곳에 있었다.
그 작은 구멍만 메우면 자전거는 다시 살아난다.

세상일도 그런 것 같다.
인생길 달리다가 온갖 역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멈춰서지만
알고 보면 아주 작은 곳에 해결책이 있고
그것만 해결하면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다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주저앉아
달리는 다른 자전거를 보고서는
왜 재수없이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세상 한탄할 수도 있고

눈으로만 펑크구멍을 찾다가
잘 보이지 않아 다시 한번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럴수록 축 늘어진 튜브에 펌프를 대고
사정없이 바람(기운)을 불어넣어야  
기운빠지게 했던 펑크구멍을 찾아낼 수 있고
사포로 열심히 문질러 본드 칠하고 패치를 붙여서 사건을 해결한 다음
다시 일어나 달리면 그만인 것이다.

자전거 타면서
펑크가 한번도 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펑크가 아예 나지 않으려면 자전거를 집에 모셔두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려고 자전거를 산 것도 아니고
세상 역경 다 피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펑크를 다 때우고
한강변 매점에 앉아 캔맥주 하나를 마시는데

제 몸을 다쳐가면서도
내게 많은 기쁨을 가져다 준 내 자전거가
저녁노을에 묵묵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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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의 고통이라는 것을.... (by 필스) 고민 고민 끝에 글을적습니다. 활동을 자제하겠습니다. (by 야문MTB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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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 여행자글쓴이
    2006.5.15 14:30 댓글추천 0비추천 0
    쓰고 보니 너무 길게 썼네요. 일기체인 점도 그렇지만 글의 느낌상 그렇게 했으니 이해해주세요.
  • 두루 수고하셨군요. 다음에는 펑크도 더욱 잘 때우고, 더욱 잘 달릴 수 있겠지요?
  • 일전,,,한강변 매점에서의 캔맥주와 "연"에 관한 글을 쓰시곤,,멋진 마무리 해주신 그분이 아닌가 하고 짐작합니다...검색 안해보는 이 게으럼 ^^.....
    길어도 좋습니다.......일기체인 점도 좋습니다........이해될뿐 아니라,,,,,,멋진글 올리시는 분께 도리어 감사드립니다.....멋진글은 보는이의 마음도 멋지게 만듭니다...^^
    즐거운 자전거 인생 되시길.......
  • 핫.... 연에 대한 감상을 적어 주셨던 시인 라이더님 ^^
    저에게도 하오고개는 좀 특별했습니다.
    꿀렁거리는 생활 자전거를 사고 모임이란델 첨 나가서 엄청난 끌바와 좌절.....
    거기 다녀오고 이틀만에 MTB 자전거를 질렀다는...(중얼)
  • 안양천은 너무 쉴곳이 없죠? 그냥 아무데나 쉬면 그만이지만...
    좀 신경써서 벤치도 만들고 매점도 있었으면 좋을텐데.
  • dichter92님 축하드립니다. 그 성취감 이루 말로 해라릴 수 없지요.
    저도 예전에 포천을 목적지로 잡고 성수대교 지나 중랑천으로 들어가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청계천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항당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님께서 잘못 들었던 분당천은 중간에 분당 중앙공원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번지점프로 유명한 율동공원까지 연결된답니다. 호수 경치가 그만이오니 다음번에는 지나치지 마시고 놀러오십시오.
  • 감동이 묻어나는 글이네요... 언제 봐도 자전거는 인생이랑 어찌 이렇게 비슷한지... ^^
  • ㅉㅉㅉㅉ 전 아직 펑크 한번도 안떼워 봤는데 남일 같지 않습니다. ㅎㅎㅎㅎ
  • 자전거가 님에게는 좋은 것을 많이 줬군요... 사실 본인이 가지는 것이지만...

    글 고맙습니다.
  • ㅋㅋ 자전거에 조만간 푹빠질듯.. 저의 초기증상이랑 너무 비슷하군요! ㅋㅋㅋ
  • 언제 저도 그런 혼연일체를 이룰 수 있을까요?ㅎㅎ
  • 자전거는 초보일지 모르나 생각은 엄청남 '고수'십니다. 혼자 길을 나서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르게 되고 님처럼 그 감흥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 이처럼 좋은 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바퀴 안빼도 벙크 때울 수 있는데,
    난 그게 참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몇번 펑크를 때웠지만, 바퀴를 뺀 적이 없거든요..

    정말 궁금한데, 그런 경우가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바퀴를 빼면 더 편해 지는 것인지..궁금하네요.
  • 전 잔차 사고 첫 라이딩 할 때 대못이 타이어에 박혀버리는 일이 있었지요.. ㅡㅜ
    예비튜브는 물론 패치도 없었기에 집에까지 끌고왔던 기억이..

    그래도 그날 액댐(?)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펑크 한번도 없었답니다.. ㅎㅎ..
  • 한가지... 삶은 달걀보단 고 탄수화물의 뉴트리션이었으면 더 좋았을뻔 했네요 ^^
  • 펑크 떼우는 법 같은 것은 사이버상에서 어디가면 배울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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