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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라는 것

구름선비2006.06.19 14:04조회 수 737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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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한 잠 자고 일어 났습니다.
몽롱한 정신을 다잡기엔 베란다 바람이 최고입니다.

전에는 누으면 낮잠을 잘 수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피곤해도 깊은 잠을 들지는 못합니다.

부시시한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건너편 산 위로 헬기가 날아갑니다.
그 산 밑으론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향기가 여기까지 엄습해 옵니다.

배 밭도 한 번 바라보고
미루나무 서 있는 시도(市道)를 쳐다 봅니다.

관리사무소 옥상에선 태극기와 새마을기가
펄럭입니다. 언제나 펄럭이는 것을 보면
바람길에 있어서 인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눈이 가는 곳은
어린이 놀이터입니다.

평소엔 몇 명의 아이들이
미끄럼틀이며
그네 주변에 올망졸망 하건만
오늘은 인적이 적습니다.

둥근 회전하는 놀이기구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기구위에 타고 있고
세 살 쯤 된 손자 아이가 기구를 돌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아이가 돌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태워 주다가
아이가 싫증을 내고  급기야는
할아버지가 타게 되었을 것입니다.

순간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급히 디카를 찾습니다.
제대로 찍으면 왈바의
와일드앵글 게시판 업로드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호흡이 빨라 집니다.

초기 모델이고 이제는 스위치 부분이 고장난
이 카메라는
들고 나서면 아무도 디카라고 생각치 못합니다.

등치가 크고 영락없는 똑딱이 필카입니다.

전원을 켭니다.
바로 꺼집니다.
다시 켜 봅니다.
또 꺼집니다.

이게 또 접촉불량이구나 생각하면서
열심히 해 보지만
디카는 Out입니다.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입니다.

전원을 켜고 구도를 잡아 본
자신이 우습습니다.

옛날에는 사진에 미쳤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법 찍은 작품(?)도 있었고
좋은 장비도 있습니다.

디카세상이 오면서
그저 구시대의 장비가 되었고
골동품 취급만 받는 세태가 얄밉습니다.

언젠가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만삭의 부인이 아이의 손을 잡고
아치로 된 병원 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빛은 사광!!
근데 카메라가 없습니다.

오늘 또 촬영의 기회를 놓치면서
아쉬운 것이
그 때처럼 오래
작품의 아쉬움으로 남게 될지는 모릅니다.

아마 그 때의 감흥이 되살아 나지는 못하겠지요.


작품(?)을 놓친
허무함에 몇 자 끄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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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마음속에 찍었잖아요..^^..
    문장실력이 좋으시네요(상당히 회화적이라 편하게 읽히네요)
    이이둘이 생기면서 저역시 한동안 미쳐살던 SLR을 포기하고 지금은
    컴펙트 디카2대와 나름데로 좋다하는 필름컴펙트카메라 1대를 보유하고있습니다.
    이중 한대는 분신처럼 늘 호주머니속에 넣어다닙니다(500만화소인데 그럭저럭쓸만)
    화질이냐 휴대성이냐...두가지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찾기란 정말 힘든것같습니다.

  • 예전에는 공원같은데서"L"랜즈달린 카메라 들고다니며 아이들 사진 찍으시는분 보면
    상당히 부러웠는데 요즘은 주머니속 작은 디카가 더 좋습니다(부럽지가 않네요)
    운전기사에 짐꾼에 ...사진기사 노릇까지...걍 편하게 놀아주는 아빠역할이 더 좋은듯해서
    일찌감치 SLR은 멀리보냈답니다
    카메라처분이 결국 산악자전거를 타게되는계기가 되었지만...
    가끔 비오는날 물끄러미 배란다에 걸려있는 자전거를보면 예전 카메라가 자꾸 보이긴합니다..^^..
  •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한 자락을 작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님의 시선이 부럽습니다.
    사진으로 찍히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전해질 님의 시선과 상념은 이 글로써 충분히 전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놓친 허무함'이 '또 다른 작품'을 낳았네요.
    글이 잔잔하여 마음마저 잔잔해집니다.
  • 구름선비님 안녕 하세요...^^
    오수와 얽힌 일상과 상념들을 멋찌게 승화시키셨네요.
    이런 멋찐 글이 나오려면 낯에 잠시 베란다에 나가 오수라도 취해야 나오는가 봅니다..>.<;ㅎㅎ
    농담이구요....디카는 포샵으로 인위적으로 꾸미는 가공된 것인데 반해
    예전의 필카는 찍사의 심상과 표현과 내공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인 아날로그적인 것이어서
    정이 가는가 봅니다.
    좋으글 잘 보고 갑니다. 늘..건강 하세요..^^
  • 수동카메라 f3 팔아먹고, 이젠 라이카 r6-2 밖에 남지않았습니다.
    이것만은 붙들고 늘어지고 싶지만 크로몰리 땜에 갈등이 많습니다.
  • 구름선비글쓴이
    2006.6.20 23:31 댓글추천 0비추천 0
    jmjn2000님, 'L렌즈' 오래 간만에 들어 봅니다.
    여행자님, 아뒤 바꾸셨죠? 실제로 있는 얘기를 썼는데 과찬이십니다.
    eyeinthesky7님, 항상 따스한 시선으로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산로님, 저도 '카메라, 렌즈 팔아서 최고급 부품 살까' 여러번 고민했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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