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곰을 잡는 방법이랍니다.
커다란 돌 덩어리에 꿀을 바른 후 나뭇가지에 밧줄로 매달아 놓기만 하면 된답니다.
꿀을 발견한 곰은 꿀을 먹기위해 뒷발로 서서 앞발을 들고 돌덩이를 잡으려 하게되고, 돌덩이는 곰의 앞발에 부딫친후 흔들려서 다시 곰을 때립니다.
곰은 꿀이 먹고 싶은데 쉽게 먹을 수 없으니 좀더 세게 돌덩이를 치게되고
곰이 세게 칠 수록 그 힘은 반동이 되어 곰을 후려치게 되고
결국 곰은 기절하여 나가떨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곰은 이렇게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답니다.
‘저놈이 나를 때렸으니 나도 본때를 보여주마’하고 더 세게 돌덩이를 때릴 뿐이지요.
미련한 곰녀석이라고 욕하기 전에 저 역시 돌덩이를 세게 후려치지는 않았나 돌이켜봅니다.
흔들리던 돌이 잠잠해지면 뒷발로 서서 핥아먹었으면 될 것을..
날선 말투는 때로는 주먹을 쓰는 폭력보다도 더 큰 상처를 남깁니다.
누군가는 날선 댓글에서 내려서서 평화를 회복하게끔 배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자전거와 함께 땀을 조금더 흘려보신 분들이, 나이를 한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건설적인 비판의식까지 없애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폭력의 흥분에서 내려서야 건설적인 비판도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곰 얘기는 퇴근하면서 지하철에서 읽은 잡지(좋은생각 7월호)에서 빌려왔습니다.
p.s. : 지금 이 글을 올린 속마음은 뭘까..라고 힘겹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냥 곰 잡는 방법 배웠다라고만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요즘 산에 곰이 있나요?
아메리카 인디언이 곰을 잡는 방법이랍니다.
커다란 돌 덩어리에 꿀을 바른 후 나뭇가지에 밧줄로 매달아 놓기만 하면 된답니다.
꿀을 발견한 곰은 꿀을 먹기위해 뒷발로 서서 앞발을 들고 돌덩이를 잡으려 하게되고, 돌덩이는 곰의 앞발에 부딫친후 흔들려서 다시 곰을 때립니다.
곰은 꿀이 먹고 싶은데 쉽게 먹을 수 없으니 좀더 세게 돌덩이를 치게되고
곰이 세게 칠 수록 그 힘은 반동이 되어 곰을 후려치게 되고
결국 곰은 기절하여 나가떨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곰은 이렇게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답니다.
‘저놈이 나를 때렸으니 나도 본때를 보여주마’하고 더 세게 돌덩이를 때릴 뿐이지요.
미련한 곰녀석이라고 욕하기 전에 저 역시 돌덩이를 세게 후려치지는 않았나 돌이켜봅니다.
흔들리던 돌이 잠잠해지면 뒷발로 서서 핥아먹었으면 될 것을..
날선 말투는 때로는 주먹을 쓰는 폭력보다도 더 큰 상처를 남깁니다.
누군가는 날선 댓글에서 내려서서 평화를 회복하게끔 배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자전거와 함께 땀을 조금더 흘려보신 분들이, 나이를 한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건설적인 비판의식까지 없애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폭력의 흥분에서 내려서야 건설적인 비판도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곰 얘기는 퇴근하면서 지하철에서 읽은 잡지(좋은생각 7월호)에서 빌려왔습니다.
p.s. : 지금 이 글을 올린 속마음은 뭘까..라고 힘겹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냥 곰 잡는 방법 배웠다라고만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요즘 산에 곰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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