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금연한 지 만으로 6개월이 다 되어간다.
만 삼십 년을 서울에서 살다가 사업 쫄닥 말아먹고ㅡ,.ㅡ
이사 온 의정부란 동네가 처음엔 무척이나 낯설고
정이 붙지 않은 건 나 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같았다.
그러나 5년여를 궁뎅이 붙이고 눌러 살다 보니
그런대로 정이 들었는지 이제 멀리 나갔다가
의정부로 들 때면 "아..우리 동네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고향마을 동구밖 정자나무 밑을 지나는 기분까지 든다.
이런 변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모르긴 몰라도
집을 나서서 조금만 페달을 밟으면 크고 작은
산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의정부의 지형적 환경이리라.
도로만 7년 정도 타다가 작년 이른 봄께 처음 맛본 산뽕은
틈만 나면 애마를 끌고 산을 오르게 만들었었다.
유난히 업힐을 좋아했다.
뭐 죽어라 페달을 밟는 외에는 자전걸 다루는
기술이 없는지라 그저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비오듯 땀을 쏟으며 올라가는 일에 재미를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다운힐의 참맛은 그렇게
비지땀을 흘리고 난 뒤라야 제대로 느낄 수 있긴 하지만...
그러나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다 보면 늘 호흡이 걸렸다.
그러나 분명 다리에는 힘이 남아있음을 느꼈다.
가슴이 터질 정도로 가쁜 호흡을 몰아쉬면서
오르자면 때로 좌절감마저 들 정도로 힘들었다.
이 모든 것이 생골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좋아하는
지독한 흡연이 원인일 것이라 생각하니 암담했었다.
결국 꽉 막혀오는 호흡곤란 탓에
의정부에서 자주 가는 코스 중
석굴암이란 곳과 장흥임도 정상에서 간이화장실 쪽으로
내려가는 돌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업힐과,
축석고개 못 미처 좌측으로 있는 천보암이란 곳과
안골의 덕수암이란 곳은 영원한 미정복지로 남을 것이라
생각하며 아예 도전할 생각도 못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금연의 효과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나야 작년 늦여름께인가 주위에 떠벌이긴 했지만
날 따라서 얼떨결에 금연했다는 두 사람이 있으니
수백 번도 넘게 시도했다가 실패한 나로선 그들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먼저 금연의 효과를 본 건 그들이었다.
그들보다 내가 훨씬 더 골초였기 때문에
금연을 같이 시작했어도 폐활량이 회복되는 게
아무래도 내가 더 더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폐활량의 향상이 별반 눈에 뜨이지 않는 점에 실망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금연 후 폐활량이 백프로 회복되는데 9개월이 걸린다는
자료를 금연 사이트에서 보았는데 금연 서너 달이 되도록
계속 졸립고 흐리멍텅한 일상이 계속되니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초조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금연 5개월이 좀 지나자
성골 골초였던 내게도 눈에 뜨이는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힘든 업힐 코스를 오르는데 그렇게도 가슴이 터질 정도로
가빴던 호흡이 문득 탁 터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예전엔 힘든 라이딩 후에 근육통으로 인하여
잠을 쉽게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꽤 힘든 라이딩을 하고 나서도 그런 경우가 줄었다.
며칠 전,
금연 삼총사는 마지막 미정복지로 남아 있던
천보암을 정복했다. 온갖 악을 써도 실패했던
그 미정복지를 셋이서 동시에 정복하는데 성공하니
우리 스스로 얼떨떨한 것이 한동안 씩씩거리며
서로 바라보다가 비로소 고함을 치며 손을 마주쳤다.
급기야 돌아오는 길에 우리 셋은 기고만장해지다 못해
"이제 의정부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네"
"그러게요..각자 다른 도시로 흩어져서 마땅한 코스를 찾기로 합시다."
하며 너스레를 떨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성과가 금연의 효과라는 걸
우리 셋 중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가파르기만 하여 도무지
숨을 고를 틈이 눈을 씻고 보아도 없어보이던
지옥같은 코스들이었는데 지금은 이곳들을 오르다가
경사가 살짝 완만해지는 불과 5미터 남짓한
짧은 구간에 이르러 재빨리 숨을 고르면서
"와..요기가 바로 휴게소죠?"
라며 너스레를 떨며 올라갈 정도니 격세지감이다.
그 지독하게 힘들다 생각했던 호암사 코스를 올라
절 마당을 한 바퀴 돌고 곧바로 내려와 석굴암을
다시 오르고 이어 회룡사까지 오르는 삼종셋트
논스톱 업힐을 즐길 정도가 되었으니
이 뿌듯한 성취 앞에서 실로 감개가 무량하다.
어제는 호암사에 이어 석굴암을 거쳤다가
회룡사를 오르는데 선배님 한 분이 회룡사에서
내려오기에 물었더니 나와 역순으로 오르는
중이라서 호암사만 남았단다. 그 선배님의 말에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말이 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선배님. 내 할 이야기가 좀 있는데
회룡사에 금방 올라갔다 올 테니 쪼매만 지둘리슈.
호암사에 같이 올라가면서 이야기 하자구요."
ㅋㅋㅋㅋㅋㅋ
이제 우리 금연동지 셋은
스스럼 없이 서로 담배로 염장을 지른다.
"담배 한 대 태우실라우? 너무 심심해 보이십니다. 흐흐"
"잉? 내 걱정일랑 말고 청죽님이나 피워요."
"거 담배를 너무 참다 보면 정신적으로 좋지 않아요.
생각 나면 한 대씩 피우십시오."
"난 집에서 많이 피우니깐 됐어요."
"엉? ㅋㅋㅋㅋ"
비록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고 평생 참는 것'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실제 경험해 보니 죽고 싶을 만큼
간절했던 흡연의 욕구는 믿을 수 없이 눈에 띄게 줄었다.
요 근래에 피우고 싶은 생각이 한 번 들긴 했다.
월드컵 대 프랑스전 전반을 보다가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금연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금연이 가져다 주는 경이로운 효과를 경험했기에....
담배를 끊은 가장을 바라보는 가족들이
뛸 듯이 기뻐하는 건 우리로선 과분한 덤이기도 하다.
여러분 금연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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