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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 라이딩

靑竹2006.07.29 23:46조회 수 878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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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첫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새로운 호구지책거리가 생겨서 의정부에서 암사동까지 왔다갔다 해야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중랑천 자전거도로를 타고 한양대앞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옥수역 못 미처서 중랑천 하류의 끝에 나 있는 다리를 건너 한강 북단의 자전거도로를 타고 잠실대교를 건너 암사동까지 자전거로 가 보니 정확하게 40km가 나오더군요. 그러나 그것도 고작 하루. 다음날 엄청나게 쏟아진 비로 인하여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의정부-암사동까지의 최단거리는 또 얼마일까가 궁금한 생각이 들어 퍼붓는 비를 무시하고 차도를 이용하여 군자교로 해서 천호대로를 달려 천호대교를 건너 목적지인 암사동까지 달리니 29km가 나오더군요. 11km 차이가 나네요. 삼각형에서 빗변의 길이는 다른 두 변의 길이의 합보다 짧다는 걸 자전거로 증명했습니다.ㅡ,.ㅡ

"당연히 먼 길로 돌아서 댕기시겠구만?"

저를 잘 아는 저의 막내동생이 제게 건넨 말입니다. 내 일터로 가는데 내 그렇게도 좋아하는 자전거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 좋아하는 잔차질을 할 수 있는 40km 거리라는 알토란 같은 권리를 수학적 논리까지 동원해서 침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을 거란 걸 저의 동생은 제대로 꿰뚫고 있었던 거지요.^^

문제는 장맛비.
억수로 비가 내렸던 며칠 전의 일입니다. 첫 장마가 끝나고 간만에 비가 그쳐서 물이 눈에 뜨이게 빠진 중랑천을 보고는 출근길에 냅다 뛰어들어 신바람을 내며 달린 건 좋았습니다. 그러나 여명이 일던 이른 아침에 장안동 빗물펌프장 굴다리를 넘어 한양대앞 쪽으로 내리 쏘다 보니 누가 아랫쪽에 하얀 천을 깔아놓은 것이 얼핏 보여서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촤아아악~' 소리를 내며 자전거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잠수하기 시작하는데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지점의 삼각주가 온통 물바다더군요. 살수대첩도 아니고 죽은 쥐들이 여기저기서 둥둥 떠다니고ㅡ,.ㅡ 자전거 바퀴가 완전히 잠겨서 물결이 출렁이는 대로 자전거도 흔들흔들..아이고~ 예전에 중랑천에서 한 번 잔차와 떠내려 가다가 자전거를 머리 위로 들고 간신히 걸어나온 기억도 있는데 또 한 번 제대로 걸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뒤돌아서 가기는 싫고 예전에 억수로 물이 불어난 중랑천을 섭렵했던 예의 라이딩 주법인 오리발 페달링을 정신없이 시작했습니다. 물속에서는 부력 탓에 아무래도 접지력이 많이 떨어지기 마련이라 연신 헛바퀴를 돌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움직여야 하기에 슬금슬금 최소한의 속력을 내면서 자칫 옆의 도랑으로 빠지지 않기 위하여 수백 번도 더 다녀 노면의 정보까지 훤히 꿰고 있는 장점을 십분 살려 길이 있을 법한 곳을 어림 대중으로 짐작하며 무사히 한양대 앞 공터쪽으로 난 다리를 건넜습니다.

거진 2백여 미터를 그런 식으로 가면서 실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여기서 출렁이는 물살에 밀려 넘어지면서 클릿을 못 빼면 죽은 쥐들이 둥둥 떠다니는 물을 얼마나 마실까..그래도 고깃국이니 살로 가지는 않을까? 자전거가 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면 자전거를 버릴까 나를 버릴까....이런 경우 나를 버리면 살신성인이란 사자성어를 적용하는 일이 가당키나 한 걸까..' 등등..그야말로 상상도 횡설수설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더 이상 자전거도로를 고집하는 건 무리다 싶어 위로 올라가려고 차도를 힐끗거리며 달리는데 아이고~ 예전에 노천극장이던 곳의 가장자리에 시멘트로 수로를 만들어 놓은 걸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싸늘한 느낌이 들어 앞을 보니 이미 앞바퀴가 수로로 추락하고 있더군요..제게서 몇 달이나 퇴출당했던 클릿페달을 장착하고 나자마자 아주 제대로 걸린 거지요. 앞바퀴를 이용한 장대 높이뛰기를 물구나무로 했죠 뭐..덕분에 떨어지면서 땅을 짚은 왼손바닥에 시퍼런 멍이 들었습니다.

비가 개고 이틀이 지나서 암사동쪽 토끼굴로 내려가 본 한강 잔차도로는 완전 뻘밭이던데 제 자전거를 막아서신 아자씨께서 "이거 다 치우려면 스무 날은 걸릴 거유" 라시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할 수 없이 예의 그 삼각형의 빗변을 이용합니다. 차도로만 달려서 좀 삭막하긴 하지만 워낙 우중 라이딩을 좋아하는지라 라이딩 거리는 40km에서 29km로 대폭 줄었지만 그래도 너무 행복합니다.

자전거를 왜 타느냐고요?
페달링을 하면서 가슴 한 가득 바람을 안고 달리면서
무한자유를 느끼기 때문이지요. 왜 좋은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무조건 좋아요.^^

여러분 건강하세요.



엄청난 장맛비로 수해를 입으신 분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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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자전거를 왜 타느냐고요? 철학적인 문제라서... ^^
    걍 잔차만 타면 무념의 세계로 잠시 빠져서...
    건강하시고 언제나 즐라하십시요
  • 마지막 말씀이 가슴에 와닺네요..
    내가 자전거를 타는이유.. 크게 다르지않음을 느끼며 새삼 슬며시 미소를 지어봅니다..^^
  • 청죽님...오랜만에 보는 녹색글이네요..^^

    한대앞 운동장의 수로에서 일을 당하셨군요. 범람하면 거긴 정말 보행하시는 분들과
    통행 하시는 분들에게 매우 위험해 보이던데요.
    그 수로의 중간 중간에 로프와 부표를 이용해 위험 표시라도 해놓으면 좋을텐데 말이지요.

    저 또한 장마기간 내내 자출을 하고 우중 라이딩을 즐겨 왔던터라
    그 묘미를 충분히 공감가네요..

    비가 억쑤로 쏟아지는 장마 때에 잔차타고 출근 하는데
    교차로에 대기중인 승용차의 차주님들 시선의 압박도 많이 받았지만
    큰 사고없이 장마기간 지나서 개인적으로 무척 다행이라 생각 합니다.

    한대앞 운동장까진 집에서 잔차타고 10분이면 갑니다.
    언제고 이쪽으로 오시게 되면 전화 한 번 주시지요..
    식사라도 함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늘...건강 하시길 바라며 즐,안라 하시길 바랍니다..^^
  • 靑竹글쓴이
    2006.7.30 00:42 댓글추천 0비추천 0
    이구~ 말씀 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별고 없으셨죠? ㅎ~
  • 자전거를 왜 타냐고 물으신다면~~~~차가 없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농담인거 아시죠^^)
  • 하얗게 쏟아지는 비맞으며 공차던 군대시절이 생각나네요.
    비 올때 나가보고 싶긴 한데, 이젠 잘 안되네요.
    아직 매니아가 아닌 모양입니다.

    요즘은 비 안오는 날만 골라서
    도로로 가끔 타곤 하는게 전부인 것 같군요.
    즐라 하십시오.^^



  • 靑竹글쓴이
    2006.7.30 00:58 댓글추천 0비추천 0
    엊그제 에시비에스(발음 좋다..)에서 자전거 특집방송을 해 주었는데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던 유럽인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비 좀 맞는다고 다치거나 죽는 게 아니다"

    비를 맞으며 잔차를 타노라면 정말 시원하기 그지 없습니다. 페달링으로 더워진 엔진을 식히는데는 아무래도 공랭식 보다는 수냉식이 더 효과적인 탓이겠지요. 엠티비 매니아분들은 비를 너무 겁내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 그런 악조건들(사실 악조건도 아님) 속에서도 탈 수 있게 만든 값비싼 자건거인데 그런 효용성을 사장시키면 되겠습니까? ㅋㅋㅋ 과감하게 한 번 끌고 나서 보세요. 느낌이 달라집니다.

    건강하세요.
  • 자전거가 이유없이 좋은건 사랑하는 경지까지 도달하신것 아닐까 합니다.
    저는 아직 그런 느낌은 못 가졌지만....
    미사리 뚝방 풀이 난 가운데로 미풍을 맞으며 달리면서
    뭔지 모를 원초적 생명성이 살아나는 경험을 한적이 있었지요.
    인간이란 뜻은 사람과 사람끼리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빗속에 타고 싶어도 요즘 비는 웬지 산성비라는 생각이 먼저 오다보니
    좀 주춤거려지더군요. 저도 언제 한번 일부러라도 우중 라이딩 해보려 합니다.
    자연에서 느끼는 색다른 느낌이 올것 같아서요.
  • 녹색 글을 대하니 무척 반갑습니다.
    특유의 재치가 뚝뚝 묻어나는 내용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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