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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졸업식에서 스티브잡스의 연설

무한초보2006.09.08 00:42조회 수 1507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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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 한번쯤은 들어보셨을겁니다.
'애플'컴퓨터 창시자이고 '픽사' 라는 애니메이션회사도 차린 큰손이죠.

예전에 이 연설을 본적이 있긴한데 대강읽고 넘겼습니다만 다시 자세히 보니 참 감동적이네요.

약 15분 짜리 영상입니다.  시간많으신분은 동영상을 보시고 바쁘신분들은 밑의 글을 읽어주세요.





저는 오늘 전세계에서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이번이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온 것입니다.
오늘 저는 제 삶에서 3가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얘기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컬리지를 첫 6개월동안 다닌 후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자퇴하기 전에 그 후 18개월동안 청강생으로 주위에 머룰렀습니다.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제가 태어나기 전 내 어머니(생모)는 젊고, 결혼도 하지 않은 대학 졸업생이어서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 졸업자에 의해 양자삼아주기 강하게 원하셨고, 태어나면 변호사와 그의 부인에게 입양되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내가 출생했을 때 그들이 여아를 정말 원한다는 결정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게 스텐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계층인 부모님의 모든 돈이 내 대학 등록금으로 소진되었습니다. 6개월 후 저는 대학에서 가치를 발견치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뭘하고 싶은지, 어떻게 대학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에서 내 부모님이 전 생애를 통해 벌었던 모든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퇴를 결심했고, 모두 잘 될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순간은 무척 두려웠었지만, 뒤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한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그 순간 저는 관심 없었던 필수 과정들을 이수하지 않을 수 있었고, 관심 있어 보이는 과정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도 없었고, 친구 집의 바닥에서 잠을 잤고, 먹을 음식을 사기위해 콜라병을 모아 5센트씩 모았고, 매주일 밤에 일주일에 한번 훌륭한(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헤어 크리쉬나 사원까지 기꺼이 7마일을 걷곤했습니다. 그 일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름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든 많은 것들이 후에는 가치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그 당시에 리드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아마도) 최고의 서법강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전 캠퍼스의 모든 포스터, 모든 서랍의 라벨은 아름답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제가 자퇴하고 정규과정을 수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법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위해서 서법 강좌를 수강하기로 결정했고, 저는 serif[(M, H등의 글자에서상하의획에 붙인) 가는장식선, 세리프 ]와 san serif 서체를 배웠습니다. 즉 다른 글자 조합간의 총 공간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 무엇이 서체를 멋지게 만드는 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따라잡을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저는 그것에서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어떤 것도 내 삶에서 실제적인 적용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처음 메켄토시 컴퓨터를 처음 디자인할 때, 그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맥에 모든 것을 디자인해 넣었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활자(typography)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대학에서 그 과정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결코 다양한 서체와 균형 잡힌 자간을 띄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윈도우스가 맥을 모방했기 때문에, 개인용 PC가 글자체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저는 결코 이러한 서체 강좌를 수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들은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에는 점들을 앞쪽을 보면서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후 뒤쪽을 돌아보니 아주 아주 명료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점들은 앞을 보면서는 연결할 수 없습니다. 점들은 뒤쪽을 보면서만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들이 어느 정도 당신의 미래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신뢰해야 합니다. 즉 실질, 운명, 삶, 카르마(인연, 숙명) 그 무엇이든. 이런 접근법은 결코 저를 낙담시키지 못했고, 내 삶의 모든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두번째 얘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저는 제가 즐겨할 수 있는 일을 빨리 발견했습니다. Woz와 저는 20세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APPLE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만에 애플은 차고의 2명에서 4000명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최상의 창조물 -매킨토시-을 1년 더 빨리(29세에)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당신이 만든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될 수 있냐구요? 글쎄요,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저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매우 재능있는 누군가를 고용했고 첫해 일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젼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나이 30세 해고를 당했습니다. 아주 공식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죠. 내 전 젊음을 집중했던 것은 사라졌고, 파괴되었습니다.

저는 수개월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전 세대 사업가들을 낙담시킨 것처럼 즉 내게 전달된 바톤을 떨어뜨린 것처럼 느꼈습니다. 저는 데이빗, 패커드과 밥 로이스를 만나서 일을 그르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공적으로 실패했고 심지어 벨리(실리콘?)에서 도망칠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제게 새벽이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한 것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의 일련의 사건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저에게 있어 가장 최선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를 제 삶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간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했습니다.

다음 5년 동안, 저는 NeXT라는 회사와, Pixar라는 또 다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부인이 된 굉장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Pixar는 세게 최초 Computer animated feature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창조해냈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니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일련의 변화로 애플은 NeXT사를 샀고, 저는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NeXT에서 개발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에 핵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멋진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꺼라고 확신합니다. 지독하게 쓴 약이었지만 저는 환자에게 그런 약이 필요한 것임을 압니다. 때때로 삶이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치게 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저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것이 제가 한 것을 사랑하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일에도 진실하십시오. 여러분의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세요. 마음의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발견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위대한 관계처럼, 세월이 흐르면 점점 좋아지게 됩니다.

찾을 때까지 계속 찾으시고 안주하지 마세요.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17세였을 때 “매일 매일을 당신의 마지막 날처럼 사세요, 그러면 언젠가는 당신은 가장 확실하게 내가 옳았어”와 같은 인용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인상적이었고, 그 이후로 지난 33년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길 원하는가?”라고 자문합니다. 그리고 연속으로 많은 날 동안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될 때, 저는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압니다.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즉 제가 삶에서 큰(중요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우연하게 마주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 외부적인 기대들, 자신감, 창피함 또는 실패의 두려움- 이런 것들은 죽음의 면전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여러분이 뭔가를 잃게 될꺼라는 생각의 덫을 피하게 하는 제가 아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벗었고,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1년전쯤,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전 7:30에 정밀조사를 받았고, 분명하게 췌장에 종양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췌장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제게 이것은 치료할 수 없는 형태의 암이라는 것을 말해줬고, 저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살 수 있음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제 의사는 집에 돌아가서 일들을 정리하라고 조언했고, 그것이 의사의 죽음에 대한 준비절차였습니다. “그렇게하는 것은 단지 수개월내에 제가 앞으로 10년동안 자녀들에게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아래에서 위까지)해서 가족에게 가능한 쉬운 것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그런 진단을 받고 하루종일 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검사를 했습니다. 즉 목으로 들어가서 위를 통해서 창자속으로 들어가는 내시경을 했습니다. 제 췌장에 바늘을 넣어서 종양으로부터 세포 몇개를 취했습니다. 저는 차분했지만 함께 있던 아내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검사하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특이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현재 건강합니다.

이것이 제가 죽음에 직면했던 가장 가까운 것이었고, 이것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것이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통해서, 저는 현재 여러분께 죽음은 유용한 것이지만, 순수하게 지적 개념이었을 때보다 좀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을 가길 원하는 사람조차도 죽어서 그곳에 도달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유일한 최고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대리인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길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것들을 치우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새로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날 여러분은 점차 오래된 것이 되어 치워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 극적인 것 같아 미안하지만 완전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사람의 삶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로 살아가는 독단에 빠지지 마세요. 내면의 소리를 소멸시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세요. 여러분은 이미 어느 정도 여러분이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대 “The Whole Earth Catalog"라고 불리던 놀라운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세대에 바이블과 같았습니다. 그 출판물은 여기서 멀지 않은 Menlo park의 Stewart Brand라는 분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그의 시적인 솜씨를 더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때는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탑으로 출판되기 이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출판물은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종이 형태로 만들어진, 구글이 사용되기 35년 전의 종이형태의 구글이었습니다. 이상적이었고 간결한 도구와 위대한 개념들이 흘러넘쳤습니다.

스튜터트와 그의 팀은 “The Whole Earth Catalog"를 수차례 발행했고, 그 과정을 개설하면서 최종본을 발행했습니다. 그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고 저는 여러분의 나이였습니다. 그 최종본의 뒤쪽 커버에는 이른아침 시골 길 사진이 있었고, 만약 당신이 모험심이 강했더라면, 히치하이킹하는 당신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그림 아래에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발행을 마치면서한 고별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내 스스로를 그렇게 되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현재 졸업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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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너무 감동적이네요. 정말 성공한 사람은 평범 속에서 진리를 찾는 사람인거 같습니다. 이런 동영상 보게 되서 너무 감사합니다. ^^
  • 아침부터 힘이 납니다. 이 글 지우지 마세요~^^ 힘들때마다 와서 보고 싶네요~ ^^
  • 무한초보글쓴이
    2006.9.8 10:25 댓글추천 0비추천 0
    전 여러 좋은 구절 중에서도 특히 '죽음은 삶의 유일한 최고 발명품' 이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랜스 암스트롱도 비슷한 경험을 겪어 일인자가 되지않았나 싶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 어제 새벽에 보는데 "스티브잡스의 잡설"로 읽어버렸다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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