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9월에 기록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충청남도 지역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1971년 청계천에서 시작된 활빈교회 김진홍 목사가 청계천 철거민들을 위해 서해 남양만에 두레마을을 세우고 소금 땅을 옥토로 바꾼 이야기는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
그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두레교회와 류관순 기념관이 있는 병천면 탑원리와 덕산면, 해미면 주변 일대의 카톨릭성지를 돌아 왔었지요.
차량은 그 당시 인기가 많았던 프라이드(FS)로 운전은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지인께서
하셨습니다. 그 분은 그 이전(1980년 이전)부터 이태리제 고급 싸이클을 즐겨 타셨고
MTB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 싸이클을 MTB와 바꾸어 타셨지요. 지금은 록키마운틴 에리먼트
팀차를 타십니다. 저에게 MTB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저희가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해미근처에서 엉뚱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정표를 보고 갔는데 사고가 난 후에야 길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 당시 충청도의 도로사정은 최악이였습니다. 이정표를 보기가 가물에 콩 나듯 하고,
어느 곳은 이정표대로 가면 딴 나라로 가게 되었지요.
그 때 들어 선 도로가 왕복 1차선으로 약 1.5km 정도 새로 포장한 채 직선으로 뻗어
있었습니다. 양쪽 아래로는 논이고 논에 물을 대는 콘크리트 수로가 논을 따라 가고 있었지요. 도로에서 논까지 높이가 5m정도. 전봇대와 새로 심은 가로수가 줄줄이.
그 도로가 너무 깨끗하고 좋아서 속력을 올렸습니다. “충청도에 이런 도로가 있다니“ 하면서, 110km ~. 이야기는 길게 썼지만 거의 순간적인 시간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그 도로를 1/3정도 갔을 때 맞은편 반대 차선에 5대의 차량이 줄줄이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차 120km. 그런데 건너 차선에서 맨 뒤에 오던 코란도 찦차가 앞차들을 추월하려고
우리 차선으로 들어 왔습니다. 코란도가 맨 앞차를 추월하려고 할 때 앞 차도 속력을
내는 바람에 계속 우리 차선을 달려왔습니다. 마침 앞차가 속력을 줄여서 이제 자기 차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지를 않고 계속 돌진해 왔습니다. 정면충돌 찰나에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반대차선으로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다시 우리 차선으로 핸들을 꺾었지요. 그런데 급히 지그자그로 핸들을 꺾어서인지 한 번 더 좌측으로 꺾어야 바로잡히는데 기울어진 차는 핸들이 말을 않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로수를 들이 받고 튀어나가 옆으로 공중회전 두 바퀴 쯤 돌고 추락. 그래도 떨어진 곳이 콘크리트 수로가
막 끊어진 수초가 많은 물웅덩이에 빠져서 다행이였습니다.
차에 물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안전벨트에 매달려서 바둥바둥 하며 카메라를 찾고 있을
때 맞은 편 차들이 멈추고 와서 꺼내느라 야단법석. 둑 위 길로 올라오자 우리보다 그 사람들이 도망 가버린 코란도 욕을 하느라고 난리가 났지요. 그 사람들에게 혹시 차량번호를 보았냐고 물었지만 허사였고, 이상하리만치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아픈 곳이 생길거라 했지만 그 후에도 털끝하나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 날 차를 견인해서 점검을 했는데 지붕과 전면 오른쪽이 조금 찌그러지고 깜박이
유리가 깨진 것이 모두였습니다. 연료통에 물이 들어간 차를 몰고 서울까지 왔지요.
계속 달릴 때는 꿀렁꿀렁해도 그런대로 갈만했지만 신호등에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시동이 꺼지는 바람에 지인께서 애를 먹었습니다.
1971년 청계천에서 시작된 활빈교회 김진홍 목사가 청계천 철거민들을 위해 서해 남양만에 두레마을을 세우고 소금 땅을 옥토로 바꾼 이야기는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
그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두레교회와 류관순 기념관이 있는 병천면 탑원리와 덕산면, 해미면 주변 일대의 카톨릭성지를 돌아 왔었지요.
차량은 그 당시 인기가 많았던 프라이드(FS)로 운전은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지인께서
하셨습니다. 그 분은 그 이전(1980년 이전)부터 이태리제 고급 싸이클을 즐겨 타셨고
MTB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 싸이클을 MTB와 바꾸어 타셨지요. 지금은 록키마운틴 에리먼트
팀차를 타십니다. 저에게 MTB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저희가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해미근처에서 엉뚱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정표를 보고 갔는데 사고가 난 후에야 길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 당시 충청도의 도로사정은 최악이였습니다. 이정표를 보기가 가물에 콩 나듯 하고,
어느 곳은 이정표대로 가면 딴 나라로 가게 되었지요.
그 때 들어 선 도로가 왕복 1차선으로 약 1.5km 정도 새로 포장한 채 직선으로 뻗어
있었습니다. 양쪽 아래로는 논이고 논에 물을 대는 콘크리트 수로가 논을 따라 가고 있었지요. 도로에서 논까지 높이가 5m정도. 전봇대와 새로 심은 가로수가 줄줄이.
그 도로가 너무 깨끗하고 좋아서 속력을 올렸습니다. “충청도에 이런 도로가 있다니“ 하면서, 110km ~. 이야기는 길게 썼지만 거의 순간적인 시간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그 도로를 1/3정도 갔을 때 맞은편 반대 차선에 5대의 차량이 줄줄이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차 120km. 그런데 건너 차선에서 맨 뒤에 오던 코란도 찦차가 앞차들을 추월하려고
우리 차선으로 들어 왔습니다. 코란도가 맨 앞차를 추월하려고 할 때 앞 차도 속력을
내는 바람에 계속 우리 차선을 달려왔습니다. 마침 앞차가 속력을 줄여서 이제 자기 차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지를 않고 계속 돌진해 왔습니다. 정면충돌 찰나에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반대차선으로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다시 우리 차선으로 핸들을 꺾었지요. 그런데 급히 지그자그로 핸들을 꺾어서인지 한 번 더 좌측으로 꺾어야 바로잡히는데 기울어진 차는 핸들이 말을 않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로수를 들이 받고 튀어나가 옆으로 공중회전 두 바퀴 쯤 돌고 추락. 그래도 떨어진 곳이 콘크리트 수로가
막 끊어진 수초가 많은 물웅덩이에 빠져서 다행이였습니다.
차에 물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안전벨트에 매달려서 바둥바둥 하며 카메라를 찾고 있을
때 맞은 편 차들이 멈추고 와서 꺼내느라 야단법석. 둑 위 길로 올라오자 우리보다 그 사람들이 도망 가버린 코란도 욕을 하느라고 난리가 났지요. 그 사람들에게 혹시 차량번호를 보았냐고 물었지만 허사였고, 이상하리만치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아픈 곳이 생길거라 했지만 그 후에도 털끝하나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 날 차를 견인해서 점검을 했는데 지붕과 전면 오른쪽이 조금 찌그러지고 깜박이
유리가 깨진 것이 모두였습니다. 연료통에 물이 들어간 차를 몰고 서울까지 왔지요.
계속 달릴 때는 꿀렁꿀렁해도 그런대로 갈만했지만 신호등에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시동이 꺼지는 바람에 지인께서 애를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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