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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태머리

靑竹2006.11.08 21:22조회 수 1646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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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하게 살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착한 며느리
동태머리 찌개를 너무도 좋아하는
시아버지를 위해 부끄러움도 잊은 채
재래시장 생선가게에 날마다 들러
'어두일미'를 알 턱이 없는
게으른 젊은 주부들이 버리고 가는
동태 머리를 얻어가곤 했는데....


방금 잘라낸 동태 머리를 봉지에 담던 며느리에게
생선가게 주인이 느닷없이 물었다.

"대관절 동태 머리는 뭐에 쓰시려고
날마다 가져 가시우?"

난처한 며느리 얼떨결에 한 대답이

"아..예..저희집 개 주려고요.." 였단다.


각설하고
엊그제는 비를 쫄딱 맞으며
백릿길을 페달을 밟았다.

십여 년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는데
차가운 초겨울 비라고 대수랴

비옷을 준비했는데
웃옷만 있어서 달리는 내내
바지가 모조리 젖었다.

작년에는 비와 눈이 뒤섞인
진눈깨비를 맞아 쫄딱 젖은 채
세 시간을 달렸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번 비는
온수 샤워다.

찬 비 내리는 한강의 둔치는
모처럼 시야가 탁 트인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호젓하다.
그 호젓한 길을 나홀로
유유자적하는 게 취미다.

말 없이 흐르는 한수를 따라
나도 입을 다문 채 조용히 흘렀다.
어쩌면 내가 강물에 떠다니는 유빙 조각이거나
조그만 나뭇가지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사뭇 커다란 반원을 몇 번 그리다 보니
어느덧 중랑천으로 접어들었다.

35km를 달리고 나니
이제 집까지 5킬로 남았다.
멈추면 오한이 밀려오는 걸 알기에
페달질을 계속하다 보니
동태 머리를 함께 넣고
얼큰하게 끓인 동태찌게 생각이 간절하다.

평소 날 놓아먹이는 마누라가
날 일컬어 '만년촌놈'이라 부르듯
고기는 싫은데 순대국이나 곱창은 좋고
생선도 주로 내장이나 머리에 사족을 못 쓴다.
그 중에서도 마누라가 끓여 주는
동태 머리를 넣은 얼큰한 동태찌게는
이십여 년을 넘게 먹었어도
조금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메뉴다.
특히 머리는 언제나 나의 차지다.

5km가 남은 시점에서 전화를 했다.
때르르르르릉.

"응..여보..어디?"

"집에 가는 중여"

"생쥐꼴이겠지 뭐.."

"그러는 고양이는 어디랴?"

"비 맞고 온다는 기별을 받고 동태 사러 간다 왜"

"나 가기 전에 맛본다고 대x리 먹지 말어.."

"쳇...먹으라고 사정해도 안 먹네요"

동태찌게 생각에 남은 거리가
당겼다 놓은 고무줄처럼 줄었다.
신나는 페달질이다.

한 가지 의아한 일이 있다.
마누라가 끓인 동태찌개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동태의 몸통에 비해 머릿수가 현저히 많다는 사실이다.
머리가 둘, 셋 달린 동태가 잡히나?  

위의 착한 며느리처럼
마누라도 비스무리한 핑계를 대고
얻어오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갑자기 나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까짓 것 맛만 있으며 됐지..
달려랏...

푸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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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포스트가 부러져서 다칠뻔했네요... (by bongg) 3일에한번 당직하는데 코고는 소리때문에 환장하겠습니다. (by grac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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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 오호호호.. 저두 어서 장가가서 동태찌게든 김치찌게든 이쁜 마눌하고 맛나게 먹고 싶어요^^
    정말!!!!
  • 한편의 수필을 보는듯, 청죽님의 글은 언제나 너무나 좋습니다. 혹... 작가신가요?

    베스트극장이 따로 없습니다. 건강하세요 ^________^
  • "그러는 고양이는 어디랴?" <------------- 이 말씀에 넘어갑니다...ㅎㅎㅎㅎㅎ....
    역쉬...청죽님의 글에선 아날로그적 향기가 가득해서 너무 좋습니다요....
    언제 의정부 가게되믄 청죽님표 동태머리 좀 귀경좀 할 수 있으려나....^^:::

  • 글을 쓰고 났더니 '새ㄱ기'라는 단어가 있다고 거부를 하네요.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 회식도 마다고 일찍 들어왔는데
    들어오면서 직원들에게 변명을 했더니 꽃바구니 한 다발을 보내왔네요.

    동태 대가리 끓여주는 마누라는 아니더라도
    직원들의 보고요청(?)도 있고
    오늘은 마누라를 기어이 사랑(?)해 주어야겠네요.

    결혼 선배
    청죽님,
    청죽님도 사모님 사랑해 주실꺼죠?
  • 흐흐흐..사모님이 동태를 구하는 방법.....
    "울 집에 놓아 멕이는 개한마리(??) 있는데...저녁거릴 만들어줘야 해요~~~"..(큭큭큭..)

    근데..명태?..동태?? 찌게....
    흠...전 아주 싫어하는 메뉴 중 하나입니다만...

    예전 고등학교 시절...
    아버님을 일찍 잃은 저로서는 재혼하신 형님 밑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쩝..그 눈치(??)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지요...
    어머님은 누님 댁에서 생활하시고..
    전 형님댁에서 살고...

    근데 지금은 돌아가신 그 형수님이....워낙...공사가 다망(??) 하신 분이라...
    그래서 식사준비를 해놓고 다니시는데...
    부엌..(옛날 재래식 부엌..)..부뚜막에...커다란 솥 한가득....동태찌게를 끓여 놓고 다녔지요..
    그 찌게안에는 온갖 생선 내장이 다들어 있었는데...
    식은 것을 다시 끓여서 먹고..또 그렇게 끓여서 먹고...
    대략 3일 아침 저녁으로 그것만을 먹다 보니...부엌에는 온통 비린내와...
    동태찌게 그특유의 냄새가 베어 벼렸는데...

    그로인하여 나중에는 그 비슷한 냄새만 맡아도...기겁을 하는...
    지금도 일반 식당에서 옆 식탁에서 동태찌게가 나오는 것을 보면...기겁을 하며..
    후다닥 밥을 먹어 버리고 (거의 숨도 못쉬고..) 나와 버린다는...
    (그쯤에서는 아예 메뉴판에 동태찌게만 있어도...안들어가는...)

    청죽님..다음에 만나면..절대 동태찌게 말씀을 하지 마셔요....
    그냥 그 맛난 한림원 괴기나 사주세요....흐흐흐....
  • 저는 어릴때 동태찌게를 먹으면, '간'인가요? 그 야들야들하면서 특유의 맛이있는 것을 먹기를 좋아했었더랩니다.

    대학생이 되면서 부터는 밖에서 밥을 많이 먹다가 대학원부터는 집에서는 아침도 거의 먹기 힘들었었죠. 그러다가 이제 사회인이 되어서 집에서 밥을 먹는 적이 없어서 어머니께서 해주신 찌게를 먹는 것은 명절이 아니면 어렵게 되어버렸군요.

    하긴, 스테이크와 이탈리아음식을 좋아하는 저도 올해들어선 부쩍 찌게와 매운탕이 좋아집니다.
    물론, '시원하다'라는 말 뜻을 정확히 느끼기도 하구요.^^

    청죽님 글 재밌어요. 언제 책한번 쓰시지요?
  • 세월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안전라이딩하세요...
  • 한 줄의 글로..잘 읽었습니다. 라고 한다면...?
  • 청죽님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그러는 고양이는 어리랴 너무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두분 재미있게 사시고
    두분이 어떻게 사시는지 눈에 훤히 보이는합니다
    청죽님글 읽으면 웃음부터 나와서 기분이 좋습니다 ^^

  • 이거 염장글 맞지유? ^^
  • 부럽습니다.
  • 남편의 마음을 알아주는 부인이 있다는게 부럽습니다.
    우리집 고양이는 동태찌개 끓일때 왜 저에게 물어보는지 모르겠네요..
  • 그런거 해줄 사람 없는 사람에겐 지대로 염장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진짜로 ''개'' 준다고 하면서 가져 왔을지 궁금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靑竹글쓴이
    2006.11.9 16:15 댓글추천 0비추천 0
    스탐님 설마 그럴 리가요..왈왈..크르릉(헉..??)
    (그런데 정말 불안하당)
  • 글이 참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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