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거의 모든 가정에 욕실이 있을 뿐더러
대중 목욕탕이 주위에 흔해서 목욕문화가 많이 좋아졌지만
과거 우리네 농촌의 가옥구조란 대개 살림방과 부엌과 헛간과
짐승우리 뿐, 특별하게 목욕을 할 만한 공간이 별로 없었다.
아장아장 걸음마 수준을 넘긴 아이든 어른이든,
땡볕에 그을리며 농사일을 하느라 온통 땀에 젖어 살았으므로
때로 개운한 목욕이 절실할 때가 많았다.
남정네들이야 그저 아무데서나 웃통을 훌훌 벗어 던지고
등물을 하던지 아니면 냇가에 나가 홀랑 벗어 던지고 목욕을 했지만
여자들이 목욕을 할 만한 공간이나 기회는 상당히 제약을 받았다.
간혹 여자들이 자신의 집 뒤란에서 커다란 고무통에
물을 길어다 놓고 목욕하는 모습들을 보긴 했으나
그마저 이웃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믐날이나 마찬가지인 아주 희미한 달빛에 드러난
옆집 처녀의 뿌연 어깨의 실루엣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설렌다..(언제 철이 들꼬...)
내가 태어난 마을의 바로 앞에 금강 지류가 흘렀는데
어찌나 물이 맑았던지 모내기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고운 모래 퍼내고 흩어졌던 모래가 이내 가라앉은 뒤에
샘물처럼 맑아진 물을 항아리로 길어다 농군들이 그냥 마셨다.
그런데 그 냇물이 달이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떠난
깜깜한 그믐날 밤엔 동네 처녀들의 널따란 공중 목욕탕이었다.
쥐방울 만한 나는 떠꺼머리 총각들이 몰려다니면
쫄래쫄래 낑겨서 휩쓸려 다녔는데 이런 날은 예외 없이
각자 집에서 ㄱ자로 구부러진 국방색 군용 후래쉬 하나씩
들고 나오라는 지령을 받기 마련이었다.
내가 쥐방울이면서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건
당시 한 동네에 살면서 온통 짓궂은 모사를 잘 벌이던
외삼촌들과 외가쪽 아저씨들이 나와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은 탓에 늘 닭서리나 과수원서리를 해도
내게 망을 본다던가 하는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의 임무를
부여해 주며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거사일인 그믐 날,
발소리 죽여서 냇가를 향하여 보무도 당당하게(?)
행군을 한 뒤에 냇가의 반대편 둑에 일제히 볏단 널어 말리듯 엎드렸다.
귀가 밝고 눈치가 빠른 선발대 하나가 곧 위치 추적에 나서고
그에게서 신호가 오면 나머지는 곧 볏단에서 구렁이로 변신하여
구렁이 담을 넘듯 둑을 넘어 냇물의 가장자리에 넓다랗게 심어 놓은
콩밭의 이랑 속으로 끓는 물 속에 빠뜨린 미꾸라지
두부 속으로 파고들 듯이 일제히 스며들어가서는
높은포복 자세로 모래땅을 기어서 목표지점으로 나아갔다.
사전에 주고받은 신호가 잠시 후에 대장으로부터 떨어졌다.
모두 가져온 군용후래쉬를 까르르 웃음소리,
철벅거리는 물소리가 어우러져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군용 후래쉬로 일제히 집중사격을 가했는데...
아뿔싸.....
난 여자들이 수염이 턱에 안나고 다른 곳에 나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푸헤헤..
그렇지만 맑은 설탕물에 담긴 백도나 황도처럼
매끈매끈한 동네처녀들의 진면목이 후래쉬의 집중포화로
다 드러나도 그 쪽에선 눈부신 빛의 뒤에 있는 우리가
보일 리 만무였다.
그런데...뭐... 그 다음 일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야~이 어떤 x 씨보룽쉐이덜이~!!!!"
"흐미..이 작것들이"
"썩울눔들아..니들 다 디졌어 인제.." 하는
시골처녀 합창단의 퍽이나 낭랑한 악다구니에
반사적으로 후래쉬를 끄고 일어나 튀었는데
성깔이 난 시골처녀 합창단들이 일제히 물속으로 손을 넣어
조약돌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던지는데 이게 상당히 적중률이 높은 산탄총이었다.
젤 꼬맹이라 걸음이 젤 느린 난 뒤통수며 등짝이며
종아리에 따다닥 툭탁 꽃히는 조약돌 산탄의 위력에
뒷통수를 감싸쥐고는 깨갱깨갱 나오려는 비명소리
이를 악물고 삼키며 엎어졌다 뛰다가를 대여섯 번 반복한 뒤에야
비로소 구렁이 담을 넘는 것이 아니고 이번엔
선불맞은 멧돼지 철책을 넘듯 단번에 둑을 넘어
그 무간지옥을 탈출했던 것이다.
첫 출격이 있었던 뒤로 한 달이 흘러
두 번째 출격 기회가 왔다.
외삼촌의 명령이 떨어졌다.
"후라쉬 갖고 나와라"
그러나 난 단호했다.
"싫어~!!!!!!!!!!!!!!!!!!!!!!!!!"
사실 그 당시의 명령불복종으로 인하여
이렇게 생존하여 장성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푸헤헤.
또 갔다가 커다란 자갈돌에 맞아
북망산천 유람을 갔을지 누가 알겠는가..
=3=33=3333=3333=33333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향으로 잔차를 가지고 달려가
그 둑이며 산허리며 기다란 농로들을
미친듯 달려 보고 싶습니다.
대중 목욕탕이 주위에 흔해서 목욕문화가 많이 좋아졌지만
과거 우리네 농촌의 가옥구조란 대개 살림방과 부엌과 헛간과
짐승우리 뿐, 특별하게 목욕을 할 만한 공간이 별로 없었다.
아장아장 걸음마 수준을 넘긴 아이든 어른이든,
땡볕에 그을리며 농사일을 하느라 온통 땀에 젖어 살았으므로
때로 개운한 목욕이 절실할 때가 많았다.
남정네들이야 그저 아무데서나 웃통을 훌훌 벗어 던지고
등물을 하던지 아니면 냇가에 나가 홀랑 벗어 던지고 목욕을 했지만
여자들이 목욕을 할 만한 공간이나 기회는 상당히 제약을 받았다.
간혹 여자들이 자신의 집 뒤란에서 커다란 고무통에
물을 길어다 놓고 목욕하는 모습들을 보긴 했으나
그마저 이웃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믐날이나 마찬가지인 아주 희미한 달빛에 드러난
옆집 처녀의 뿌연 어깨의 실루엣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설렌다..(언제 철이 들꼬...)
내가 태어난 마을의 바로 앞에 금강 지류가 흘렀는데
어찌나 물이 맑았던지 모내기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고운 모래 퍼내고 흩어졌던 모래가 이내 가라앉은 뒤에
샘물처럼 맑아진 물을 항아리로 길어다 농군들이 그냥 마셨다.
그런데 그 냇물이 달이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떠난
깜깜한 그믐날 밤엔 동네 처녀들의 널따란 공중 목욕탕이었다.
쥐방울 만한 나는 떠꺼머리 총각들이 몰려다니면
쫄래쫄래 낑겨서 휩쓸려 다녔는데 이런 날은 예외 없이
각자 집에서 ㄱ자로 구부러진 국방색 군용 후래쉬 하나씩
들고 나오라는 지령을 받기 마련이었다.
내가 쥐방울이면서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건
당시 한 동네에 살면서 온통 짓궂은 모사를 잘 벌이던
외삼촌들과 외가쪽 아저씨들이 나와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은 탓에 늘 닭서리나 과수원서리를 해도
내게 망을 본다던가 하는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의 임무를
부여해 주며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거사일인 그믐 날,
발소리 죽여서 냇가를 향하여 보무도 당당하게(?)
행군을 한 뒤에 냇가의 반대편 둑에 일제히 볏단 널어 말리듯 엎드렸다.
귀가 밝고 눈치가 빠른 선발대 하나가 곧 위치 추적에 나서고
그에게서 신호가 오면 나머지는 곧 볏단에서 구렁이로 변신하여
구렁이 담을 넘듯 둑을 넘어 냇물의 가장자리에 넓다랗게 심어 놓은
콩밭의 이랑 속으로 끓는 물 속에 빠뜨린 미꾸라지
두부 속으로 파고들 듯이 일제히 스며들어가서는
높은포복 자세로 모래땅을 기어서 목표지점으로 나아갔다.
사전에 주고받은 신호가 잠시 후에 대장으로부터 떨어졌다.
모두 가져온 군용후래쉬를 까르르 웃음소리,
철벅거리는 물소리가 어우러져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군용 후래쉬로 일제히 집중사격을 가했는데...
아뿔싸.....
난 여자들이 수염이 턱에 안나고 다른 곳에 나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푸헤헤..
그렇지만 맑은 설탕물에 담긴 백도나 황도처럼
매끈매끈한 동네처녀들의 진면목이 후래쉬의 집중포화로
다 드러나도 그 쪽에선 눈부신 빛의 뒤에 있는 우리가
보일 리 만무였다.
그런데...뭐... 그 다음 일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야~이 어떤 x 씨보룽쉐이덜이~!!!!"
"흐미..이 작것들이"
"썩울눔들아..니들 다 디졌어 인제.." 하는
시골처녀 합창단의 퍽이나 낭랑한 악다구니에
반사적으로 후래쉬를 끄고 일어나 튀었는데
성깔이 난 시골처녀 합창단들이 일제히 물속으로 손을 넣어
조약돌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던지는데 이게 상당히 적중률이 높은 산탄총이었다.
젤 꼬맹이라 걸음이 젤 느린 난 뒤통수며 등짝이며
종아리에 따다닥 툭탁 꽃히는 조약돌 산탄의 위력에
뒷통수를 감싸쥐고는 깨갱깨갱 나오려는 비명소리
이를 악물고 삼키며 엎어졌다 뛰다가를 대여섯 번 반복한 뒤에야
비로소 구렁이 담을 넘는 것이 아니고 이번엔
선불맞은 멧돼지 철책을 넘듯 단번에 둑을 넘어
그 무간지옥을 탈출했던 것이다.
첫 출격이 있었던 뒤로 한 달이 흘러
두 번째 출격 기회가 왔다.
외삼촌의 명령이 떨어졌다.
"후라쉬 갖고 나와라"
그러나 난 단호했다.
"싫어~!!!!!!!!!!!!!!!!!!!!!!!!!"
사실 그 당시의 명령불복종으로 인하여
이렇게 생존하여 장성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푸헤헤.
또 갔다가 커다란 자갈돌에 맞아
북망산천 유람을 갔을지 누가 알겠는가..
=3=33=3333=3333=33333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향으로 잔차를 가지고 달려가
그 둑이며 산허리며 기다란 농로들을
미친듯 달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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