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고백

靑竹2007.02.24 02:03조회 수 1285댓글 11

    • 글자 크기


"형~"

"왜?"

"마당의 참새 두 마리 중 어떤 게 암놈여?"

"엉? 어떻게 아냐? 어떤 놈이 암놈인데?"

"......"

"말해 봐"

"등에 흙 묻은 참새"

평소 과묵하여 우스개소리를 별로 하지 않던 동생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인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내게 들려 준 이야기다. 당시엔 왜 그렇게 우습던지.

워낙 겁이 많은데다가 싱글 라이딩 이력마저 짧은 탓에 근근히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갈 수는 있는데 이따금 좁아터진 나무계단의 양쪽 끝 부분에 계단목으로 쓰인 통나무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박아 놓은 철근들이 죽창처럼 일렬로 삐죽이 솟아 있는 모습들 보면 나도 모르게 말고삐(브레이크)를 황급히 당긴다. 휴~

이럴 때 나의 행색은 흡사 번개처럼 내달아 험준한 절벽으로 된 협곡을 바람처럼 뛰어서 넘는 준마들의 뒤를 따르다 혼비백산하여 백척간두 앞에서 앞발굽을 땅에 깊숙히 박고 공포에 바르르 떨며 멈추어 선 똥말 꼬라지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또 휴~

어떤 형태의 라이딩을 하든지 주로 일행의 맨 뒤에서 쫓아가는 걸 좋아하여 어딜 가거나 보직이 꽁무니로 정해지다시피 되었는데 내 알기론 후미는 일행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리더가 맡는 걸로 알고 있지만 나의 경우는 일종의 무자격 꽁무니인 셈이다.

물도 한 곳에 오래 고이면 썩는다고 했다. 나의 오랜 꽁무니 보직도 예외는 아닌 것이 비리와 부정과 음모와 협잡이 횡행하고 있다는 걸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는 바이다. 애초에 무자격자가 맡았으니 태생적 한계가 노출될 건 뻔한 이치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어 고백하고자 한다.

앞선 자는 뒷통수에 눈이 없는데다가 앞에 신경을 쓰느라 뒤에 있는 나의 이런 꼬라지를 미처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난 멀찌기 뒤처져 가다가 이런 경우를 만나면 잔차를 들고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데 전생에 산적 두목의 연락병이라도 했었나 잔차타는 건 잘 못해도 들고, 메고, 끌고 뛰는 건 그나마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훌쩍) 그렇게 눈치채지 못하게 잽싸게 따라붙다 보면 일행이 잠시 멈추어서 중간 점호를 하는 조그만 공터 같은 곳에 이르게 되는데 꽁찌로 공터로 입성하는 난 엄격한 표정관리를 비롯하여 혼신의 연기를 하게 마련이다.

"어? 청죽님 다 타고 내려오신 겁니까?"

"허~ 참내..그럼 타고 내려오지 힘들게 들고 내려와요?"

"와~"

어쨌거나 내가 마적질을 했건 뭘 했건 이렇게라도 잔머리를 굴려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일행들의 대열에 자랑스럽게 합류하게 되니 비록 하늘을 우러르자면 점점이 박힌 부끄러움이 흡사 깨엿에 박힌 검정깨처럼 바글바글하지만 잔차를 들고 뛰는 꼬라지를 들켜 망신당하는 것 보다야 낫지 싶어서 그런대로 이런 부정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자위하며 다녔다. 휴~

더 웃기는 건 똥말 주제에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늘 조심스럽게 다니는 천성을 어디다 두고 집을 나섰는지 가끔 제정신이 아닐 때가 있어서 전혀 엉뚱한 곳에서 과감해지는 통에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꽁무니 보직의 음모는 깊어만 가니 통탄할 일이다. 점프도 못하면서 무작정 들이대다 앞바퀴가 콕 박히면서 뒤집어지는 통에 잠시나마 누워서 지면에서 올라오는 대자연의 향기를 맡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정말 잠시다.

후다닥 옷을 털고 일어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앞사람을 번개처럼 쫓아가는데 이 경우 옷을 터는 재주도 보통이 아니라서 이소룡 쌍절곤을 돌리듯 번개같은 동작으로 옷을 털고 쫓아가기 때문에 앞의 일행들은 내가 넘어진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엊그제 거구의 사나이와 둘이서 싱글을 탔는데 뜬금없이 내가 앞서게 되었다. 한참을 요리조리 비집고 내려가다가 잘 따라오나 싶어서 말을 걸었는데 평소 과묵함과는 거리가 먼 친구가 너무 과묵한 게 이상해서 멈추고 뒤돌아 보았더니 보이지 않는다. 놀라서 되집어 올라가고 있으려니 저만치 슬금슬금 내려온다.

"뭔 일 있었어?"

"아니요"

그러나 부정을 많이 저질러 본 놈이 남의 부정도 잘 캐는 법, 그 거구의 사나이의 앞자락이며 바지며 등에 묻은 혈흔..앗..아니 흙을 털어낸 흔적들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번 그 등에 흙 묻은 참새..아니, 그 거구의 사나이를 취조한다.

"정말?"

"그래요!! 굴렀어요 왜요!!ㅋㅋㅋ 하여간.."

기다란 업힐엔 쥐약이지만 이 거구의 사나이의 순간적인 폭발력은 가히 역동적인데 그런 친구가 이런 조그마한 부주의로 인하여 내게 실패를 간파당했다는 것은 증거의 인멸에 있어서 좀 더 섬세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잔머리도 한계는 분명히 있다. 부정과 음모도 결국 천재지변 앞에서는 도무지 힘을 쓸 수 없으니 나도 그 점에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십부능선으로 된 싱글길이란 자고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기 마련이라 물이 빠져 노면이 뽀송뽀송한 편이지만 그래도 간혹 골짜기 형태를 지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봄이 되면서 그런 곳은 습하게 마련이라 넘어져도 골라서 넘어져야 하는데 하필 그런 곳에서 넘어지는 날이면 증거의 인멸이 불가능하다.

질퍽거리는 습기찬 흙에 넘어졌다 일어나면 아무리 털어내도 소용이 없다. 옷이 점점 마르면 검정색 옷의 표면에 찬란한 황금빛이 살아나게 되어 남들의 눈에 쉽게 드이기 마련이라 증거를 인멸한답시고 옷이 마르기를 기다려 탈탈 털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려니와 마른다고 해도 그냥 흙먼지가 묻은 경우와 판이하게 달라 쉽게 털어지지도 않는다.

사실 거구의 사나이와 내가 가장 잘 넘어지는 스타일이라 우리끼리는 서로 암호가 있다. 찹쌀로 찰진 밥을 지어 절구에 찧어 쫀득쫀득한 떡을 만들어 한 줌 떼서 콩고물에 굴리면 그게 바로 인절미라 좀 찰진 진흙에 넘어진 우리들 꼬라지가 영락없는 그 꼴이다.

"또 인절미 된 겨?"

"네..여러 번 굴렸는데 잘 나왔죠?"

"푸헤헤"

요새 혜성같이 나타난 젊은 친구가 있는데 역시 젊음이 무기다. 오늘도 앞산에 올라 그친구를 앞세웠는데 철근이 있는 곳에 이르러 우당탕 내려간 그 친구가 그냥 잠자코 내려갈 것이지 내려가자 마자 멈춰 서더니 들고 내려가는 날 보고야 말았다. 올 것이 온 것이다..흑흑.

"그게 말여...거시기..그러니깐두루..xx님은 팔팔한 총각이니끼니 생명을 초개와 같이 생각할른지 모르지만 말유...우리 정도  나이가 들면 일단 삐죽이 솟은 철근을 보면 처자식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게 마련이고 또 가설라무네 내가 없으면 조국의 앞날이 어찌될 것인가도 걱정이 되고 소크라테스가 꾸어간 닭을 받는 일은 또 어찌..어쩌구저쩌구 횡설수설....."

"크흐흐흐흐흐..靑竹님도 참.."



자전거가 좋다^^


추신: 李형  화이팅!!!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댓글 11
  • 모르면 몰라도 청죽님 없는 세상은
    김 빠진 맥주,
    고무줄 없는 빤쑤,

    그 정도는 아니고

    퍼런 글을 볼 수 없싱게
    거시기 하면 안됩니다.

    가늘고 길게 쭈욱
    퍼런 글을 보여 주십시오.

    잘 봤습니다.

    근데 지금이 몇 신데?
  • 어?..아까 분명히 숫놈으로 봤는디..ㅋㅋ
  • 靑竹글쓴이
    2007.2.24 02:15 댓글추천 0비추천 0
    헉..구름선비님께서 아직도 안 주무시다니..ㅎ~ 역시 잠이 없으면 늙는가 봅니당(맞나?) 아프릴리아76님..ㅋㅋㅋ 이제 암수도 헷갈립니다. 잽싸게 고쳤슈
  • ㅋㅋㅋ 청죽님이라고 실수를 안 한 다는 보장이 있나요?
    나이 드신 분이 새벽에 글을 쓰다 보니 그렇지요.

    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드리기 위해....
    이러구 있습니다요.
  • ㅋㅋㅋ 댓글이 달리기 전에 저도 수컷으로 봤습니다. 참새가 참으로 요상한 체위를.. 이렇게 읽었습니다.
  • 靑竹글쓴이
    2007.2.24 02:29 댓글추천 0비추천 0
    허걱! 그 몇 안 되시는 조회자 중에 키노님도 계셨군요..엉엉
  • 청죽님은 청색을 좋아 하신다는 사실 ^^
  • 청죽님글을 읽고있노라면...제가 마치 그상황에 닥친거 같이 생생함이 느껴집니다.(얼마나 재미있게 봤는지...킥킥킥~거리면서 봤네요...^^)
  • ㅍㅎㅎㅎㅎㅎ.....
    인절미,참새??....ㅎㅎㅎㅎㅎ...참말로 청죽님 때문에 힘들 때 글 읽으면
    힘든줄도 모르쥬....
    산만 갔다허믄 들빠,멜빠가 거은 대부분인 수카이는 엑스레이,엠알아이도 잘 찍는듀...
    행복하신 주말 보내시구유....
    불손한 제 핸드폰이 청죽님 연락처를 삼켰씨유.....쪽지로 연락처좀 부탁 혀유...^^::
  • 도로라이딩 할때는 선두에 서는 일이 많은데 싱글을 잘타는 분들이 많다보니 싱글라이딩땐 간혹 뒤에 서는 일이 있습니다. 앞사람 따라가기가 바쁘긴 하지만 뒤따라가다가 혼자 넘어져도 다치지만 않으면 일행이 모임곳에 슬쩍 합류해도 모르더군요(아무 일 없었던 듯한 표정 관리.........ㅎㅎㅎㅎ)
  • 재수하기,
    면허시험 떨어지기,
    처가 신세지기,
    바지 엉덩이 터지기,
    .
    .
    .........이 모든거 보다도

    저는..잔차타고 가다가 남들이 보는 앞에서 자빠링하는 거이 젤 창피하데요 ㅎㅎㅎㅎㅎ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디어 복구했습니다. 와일드바이크 심폐소생의 변!39 Bikeholic 2019.10.27 2746
78716 부평쪽에서 자전거사망사고발생 cdkk6288 2004.09.01 1115
78715 부품 교체의 이유!7 듀카티 2009.11.30 1011
78714 부품 등급을 아시는 분들~ 레드맨 2004.07.25 395
78713 부품 몇개 구하고 싶은데 너무들 하시네... ........ 2002.09.27 334
78712 부품 업글을 했습니다;;;; yomania 2003.12.21 580
78711 부품 이름은..이렇게 쓰여 있읍니다. ........ 2001.12.21 166
78710 부품가격을 가지고 장난치는 샾 ........ 2002.05.03 356
78709 부품관련 디게 궁금해서 문의드려요. Blue Rider 2005.06.23 401
78708 부품교체6 반월인더컴 2021.05.03 78
78707 부품도 올립니다. RSM 2005.01.20 554
78706 부품들이 하나하나씩... syhs4 2004.12.12 380
78705 부품에 대한 로이로제~@,.@(리뷰에서 악평 VS.극찬) 건전업글 2004.08.15 487
78704 부품으로 선물받으면 되는데... jmy70 2004.07.31 192
78703 부품은 구했는데... 작업은 안하고 이틀간 빈둥빈둥.. 십자수 2004.04.20 181
78702 부품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 @@ 2003.02.27 402
78701 부품이 별로입니다 저라면 돈 좀더모아서 lx급이상사는걸 추천해드리고싶군요 battle2 2005.09.23 439
78700 부품이 왔는데요 ㅜ.ㅜ!!8 tt1972kr 2006.10.31 1206
78699 부품좀 구해 봅니다 ahm01kr 2003.09.08 300
78698 부활1 battle2 2006.04.09 796
78697 부활! 자전거!!! ohrange 2004.09.24 585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