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축구매니아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내내 방과후면 몇몇 친구들을 꼬셔서 꼭 한경기씩 하고
집에가곤 했다. 점심시간은 물론이고...
초.중.고 모두 그 당시, 귀한 남녀 공학이어서 주변 친구들 보면 '누가누가 이쁘더라',
'누구랑 사귀고 있다더라'라는 말을 많이 들어도 내 귀에는 하나도 안 들어오고 오직
축구에만 관심이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 초기,교실에 여러 동아리 선전 포스터들이 화려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 중에 눈길을 끈것이 당연히 축구부 동아리였는데 아주 단순,간단 명료한 글귀로
'가입조건-축구에 미친자'이었다. 망설임 없는 선택이었다.
졸업 이후에는 어찌된 이유인지 몇년의 공백기를 가졌는데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어찌되었던 결혼 몇년차때 조기축구를 나가기 시작했다.
조기축구 1년차때 구청장배 대회에 나가서 '최다득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순전히 나 혼자 넘어지면서 어이없게 부상을 당했다.
'반월상연골 파열'
난 매스컴에서 들어온 선수들의 부상에 대한 고통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충격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일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술 후 입원 기간중에 여기 왈바에 하소연 한것이 4년전 이었다.
1년후,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여 다시 축구화를 신게
되었다. 물론 가족들의 반대는 말해 무엇하리오.
틈틈히 자전거를 탄것과 수영이 재활의 주된 훈련이었다.
허나 이는 선수들의 전문적인 재활과는 거리가 멀었는지 또다시 같은 부위에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어이없어 하는 가족들....
2번째 수술후에도 여기 왈바에 하소연....
이후 축구에 관계된 것은 모두 폐기처분했다.더 이상 미련은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전거와 더욱 가깝게 되었다.
축구를 할때는 일욜날 교회를 가줄때도 있고 못가줄때도 있었는데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다보니 일요일 온종일 산에서 뒹굴고 올때가 많아서 집안의 불만이 더욱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축구하는 남편보다 자전거 타는 남편이 더 미워진 것이다.
그러길 3년! 열심히 자전거를 타다보니 오른쪽 다리가 거의 정상에 돌아왔다.
게다가 추운 겨울이 되다보니 같이 타던 사람들도 다덜 휴식기에 접어들고.....
그냥 단순히,아무 생각없이,그냥.....예전에 축구하던 조기축구회에 나가 보았다.
너무나 반갑게 사람들이 맞아준다. 게다가 총천연색 인조 잔디가 깔려있다.
그날 마침 외부에서 팀이 왔는데 나를 뛰게 해준다. 무려 2골이나 넣었다.
역시 예전의 골잡이라고 사람들이 칭찬해준다.
이렇게 다시 축구를 시작한지 2달여~
이번에도 혼자서 미끌어지면서 넘어진다. 아프다. 못 걷겠다. 욕이 나온다. 또다시 수술행.
지금 열심히 수영으로 재활중이다.
면도 했던 다리의 털이 왼쪽과 똑같이 짙어질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할 것이다.
(얼마 안 남았다)
지금 젤로 궁금한건 과연 내가 마약과 같은 축구를 끊을 수 있는가이다.
이성으로서 제어가 안되는 경험을 여러분들도 가져보셨겠지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내내 방과후면 몇몇 친구들을 꼬셔서 꼭 한경기씩 하고
집에가곤 했다. 점심시간은 물론이고...
초.중.고 모두 그 당시, 귀한 남녀 공학이어서 주변 친구들 보면 '누가누가 이쁘더라',
'누구랑 사귀고 있다더라'라는 말을 많이 들어도 내 귀에는 하나도 안 들어오고 오직
축구에만 관심이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 초기,교실에 여러 동아리 선전 포스터들이 화려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 중에 눈길을 끈것이 당연히 축구부 동아리였는데 아주 단순,간단 명료한 글귀로
'가입조건-축구에 미친자'이었다. 망설임 없는 선택이었다.
졸업 이후에는 어찌된 이유인지 몇년의 공백기를 가졌는데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어찌되었던 결혼 몇년차때 조기축구를 나가기 시작했다.
조기축구 1년차때 구청장배 대회에 나가서 '최다득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순전히 나 혼자 넘어지면서 어이없게 부상을 당했다.
'반월상연골 파열'
난 매스컴에서 들어온 선수들의 부상에 대한 고통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충격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일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술 후 입원 기간중에 여기 왈바에 하소연 한것이 4년전 이었다.
1년후,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여 다시 축구화를 신게
되었다. 물론 가족들의 반대는 말해 무엇하리오.
틈틈히 자전거를 탄것과 수영이 재활의 주된 훈련이었다.
허나 이는 선수들의 전문적인 재활과는 거리가 멀었는지 또다시 같은 부위에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어이없어 하는 가족들....
2번째 수술후에도 여기 왈바에 하소연....
이후 축구에 관계된 것은 모두 폐기처분했다.더 이상 미련은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전거와 더욱 가깝게 되었다.
축구를 할때는 일욜날 교회를 가줄때도 있고 못가줄때도 있었는데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다보니 일요일 온종일 산에서 뒹굴고 올때가 많아서 집안의 불만이 더욱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축구하는 남편보다 자전거 타는 남편이 더 미워진 것이다.
그러길 3년! 열심히 자전거를 타다보니 오른쪽 다리가 거의 정상에 돌아왔다.
게다가 추운 겨울이 되다보니 같이 타던 사람들도 다덜 휴식기에 접어들고.....
그냥 단순히,아무 생각없이,그냥.....예전에 축구하던 조기축구회에 나가 보았다.
너무나 반갑게 사람들이 맞아준다. 게다가 총천연색 인조 잔디가 깔려있다.
그날 마침 외부에서 팀이 왔는데 나를 뛰게 해준다. 무려 2골이나 넣었다.
역시 예전의 골잡이라고 사람들이 칭찬해준다.
이렇게 다시 축구를 시작한지 2달여~
이번에도 혼자서 미끌어지면서 넘어진다. 아프다. 못 걷겠다. 욕이 나온다. 또다시 수술행.
지금 열심히 수영으로 재활중이다.
면도 했던 다리의 털이 왼쪽과 똑같이 짙어질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할 것이다.
(얼마 안 남았다)
지금 젤로 궁금한건 과연 내가 마약과 같은 축구를 끊을 수 있는가이다.
이성으로서 제어가 안되는 경험을 여러분들도 가져보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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