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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 오동나무, 찔레꽃

구름선비2007.05.21 19:24조회 수 753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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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 이상해서 쉬는 날마다 비가 왔습니다.
핑계김에 자출을 한 번 했지만 그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습니다.

불행스럽게도 요즘 활동하던 까페가 양분 위기에 처하는 바람에
잔차를 타는 것도 귀찮았습니다.

여하튼 지난 17일 자전거를 타고 오늘 처음 나선 라이딩은
헝그리 복서의 '의무 방어전'격입니다.

22일 서울에 거주하는 왈바 횐님이 임도 안내를 부탁하여
몇 몇 분들에게 번개 공지를 했고
오늘은 그저 몸풀기만 할 요량으로 길을 나섭니다.


며칠 와 보지 않은 나의 '구역'이 변했습니다.
겨울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내리 달리던 마일드한 싱글은
그 옛 모습이 아닙니다.

작년 여름 내 뺨과 종아리를 사정없이 후려치던
가시나무 가지 등을 적당히 제거하여 내리 달릴 수 있던 길이었는데
귀엽던 동네 중딩이 성장하여 이제는 코 밑에 털나고
덤벼 들듯이 자란 수풀이 또 도전을 하여 오는 것입니다.

오월의 그 싱그러움이 나뭇잎을 성장시켜서 가는 곳마다 팔을 내밉니다.

때로는 머리를 숙이고 때로는 어깨로 치고 나가 보지만
이게 싱글의 난이도를 다시 격상시키고 있습니다.

몸풀기 라이딩은 항상 정해진 코스입니다.
정해진 길, 숙달된 길로만 다니고자 하는 나의 습관이
처음 오는 친구들에게는 내가 자전거를 잘 탄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짙푸러진 산길에는 꽃향기가 널려 있습니다.


첫 번째 향기는 아까시나무 꽃 향기입니다.

야산이고 자연스럽게 자란 나무들 틈에는 아까시 나무가 많습니다.
가을에 밤나무가 눈에 띄듯이 향기를 잔뜩 풍기는 아까시는
라이딩을 즐겁게 하는 한 요소입니다.

내리달리면서 치 부는 바람에 실려 오는 아까시 향기는
단박에 내 폐 속까지 그 진한 향기를 배달시킵니다.
그 향기가 중독성이 있어서 내 코와 입은
잠시라도 향기가 그치지 않도록 바쁩니다.

폐 속까지 들어온 향기는 몽환적인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쩌면 예쁜 여름의 여신의 하늘거리는 흰색 드레스를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잠깐 도로를 타고 묘지길로 들어섭니다.
포장되어 있고 인적이 적은 묘지는 변변한 라이트도 없던 초보시절
밤에라도 자전거를 타게 하던 곳입니다.

잠시 잠깐 동안
고양이가 뛰어들거나, 새가 퍼덕이는 소리에 긴장하기도 하고
묘비에 비치는 달빛이나 자전거 라이트의 불빛이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역시 시골출신, 험한 세대를 산 가슴에  부담은 아니었습니다.

서울의 유명한 교회의 묘지인 이 곳엔 오동나무가 많습니다.
오동나무의 넓은 잎과 넉넉한 보라색 꽃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세른 세 살 농염한 여인의 향기처럼 아스팔트 위는
온통 오동나무 꽃의 향기로 가득찹니다.

아까 아까시 꽃 향기는 폐로 직통했지만
은은한 오동나무 꽃 향기는 심장에 핫 라인을 연결한 것 같습니다.

덜 화려하고 덜 세련된 꽃이지만
그 풍겨나오는 향기는 폐가 아닌 심장으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황홀경에 빠져서 숲길을 내리 달립니다.
난이도가 적당한 싱글,
역광을 받고 녹색에서 노랑색 중간의 색조로 보이는 나뭇잎 들이
검은 나무 그림자 사이에서 그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면서
짦은 싱글도 다시 도로를 만납니다.


이제는 다른 작은 산을 탈 차례입니다.
마른개울을 건너갑니다. 언제부터인지 개울을 지나는 다리엔 차가 출입할 수 없게
말뚝이 박혀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서 비닐하우스를 지나 동구밖 과수원길에 들어섭니다.
여기도 아까시나무 꽃은 만발했습니다.

저절로 '동구밖 과수원길~~♪♬' 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그 과수원 끝에 이르렀습니다.
과수원지기가 배나무 사이의 풀을 쳐 내고 있습니다.
풀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이유는 적당한 습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랍니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자갈이 깔려진 길을 지날즈음
내 코는 먼 옛날 고향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먹골배 과수원 끝 지점에 흰색 찔레 꽃이 잔뜩 피어 있습니다.
흰색 꽃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고향의 향기는 내 뇌 속을 흔듭니다.

그 어려운 유년시절,
찔레가 나오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찔레 덤불로 들어가서
양껏 찔레를 꺾어 왔었습니다.

유난히 찔레를 잘 따던 고향 친구는 몇 년 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그 철도 지나면서 찔레덤불을 지날 때에 하얗디 하얀 찔레 꽃잎을 따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초라한 행색의 유년이었지만
지금 저 꽃잎을 바라보면서
그 향기에 취한 마음은 아직도 그때나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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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 속시끄러움이.. 세가지 향기로 다 풀리셨으면...
  • 아카시아향기가 진하게 풍길때는 두통이 날 정도로 진하죠 ㅎㅎ
    구름선비님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일 저런일 ..
    욕심이 없다면 그런일은 없을텐데~~~~그냥 취미로 즐기면 그만이죠
    선비님 기분 푸시고 라이딩 잘하세요 ^^
  • 꽤 오래 전에 운영에 대한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제명을 당한 분께 들어서 처음 알았던 곳인데
    얼마 전, 몇 년이 지난 올해 들어와 다시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한다'라는
    말이 있듯 인연이 중하면 중할수록
    가슴앓이라는 톡톡한 댓가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늘 베풀기만 하는 자연에게
    뭐 하나 제대로 되갚은 적 없어
    조용한 생명들 사이로 우당탕거리며
    잔차를 타고 지나노라면
    늘 뒤꼭지가 가렵습니다.

    참으로 우연인가 봅니다.^^

    오늘 낮 잔차를 끌고 숲길을 타다가
    숲속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매복한
    아카시아 군락지를 지나노라니
    나무들이 모두 연륜이 깊어
    달리는 제 눈높이로는 보이지 않는데
    꽃들이 흐드러지게 달린 높다란 가지들이
    5월의 싱그러운 바람의 힘을 빌어
    제 향기를 아래로 아래로 비처럼 뿌리더이다.

    별다른 먹거리나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
    아카시아 꽃송이 입에 넣고 앙다문 치아에
    벼를 훑는 훌태질처럼 훑어서 배를 채우던 기억이
    오늘따라 새록새록 그리워지는지
    블로그에서 몇 자 주절거리고 와 보니
    모르긴 몰라도 거의 같은 시간에
    비슷한 감성에 젖어 계셨던 건 아니시올지?
  • 아카시아향이 여기까지 오는거 같습니다.^^
  • 구름선비글쓴이
    2007.5.22 04:23 댓글추천 0비추천 0
    댓글 달아 주신 님들 감사드립니다.

    동호회의 문제는 정예화, 조직에 대한 반발에서 기인했습니다.
    그냥 자전거나 타자는 사람은 내심 반발이 생기고
    그래서 최소한 두 개의 까페로 나뉘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냥 업저버 자격으로 출입하던 동호회였는데
    그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계절에 느끼는 감성,
    옛날일을 떠올리는 되새김질은
    동호인이라서 더 살갑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일찍 깨어서 주절거리고 있습니다.
  • 제가 동호회라는 형식을 가진 까페나 소동호회에 가입이나 활동을 안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얽메이게 되고 규제가 따르고 시간 지나면 불협화음에 너잘났네 나잘났네... 그리고 끼리만의 그런 문화가 싫어서입니다.

    누가 물으면 전 그저 와일드바이크라고만 말할 뿐입니다.
  • 구름선비글쓴이
    2007.5.22 07:24 댓글추천 0비추천 0
    그냥 업저버로만 활동한다고 하지만
    어느새 동호회에 빠지게 되는데
    사람을 싫어하는 단계로 발전할까봐 걱정입니다.

    저도 그래야 겠습니다.
  • 세상의 이치는 모이고,흩어지고의 반복입니다.
    어찌보면 카페의 분열과 생성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편하고 넉넉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 5월20일 서초동 우면산엘 올랐지요.
    이산에도 아카시아 나무가 많습니다.
    얼마전 tv에서 아카시아 나무의 수명이 100년 정도라 하더군요.
    정상 부근의 아카시아 고목은 맨 꼭대기 부분이
    이제서야 입사귀가 푸르러 지더군요.
    나이가 들어서 수분 섭취가 힘들어 그런가 부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해 두해 시간은 잘도 갑니다.
    잔차 탄지도 꽤 되어가는 군요.
    묵묵히 서있는 나무처럼
    때되면 향기를 주고 꿀을 주는 그런 나무의 삶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봄입니다.
  • 제가 어느도인에게 들은 말입니다.
    여기서도 몇번 써먹은 말인데요.

    쉽게 사세요.

    여러가지 뜿이 함축된 말인데, 요새는 제인생의 좌우명이 됐네요.
    여기저기 아카시아 꽃이 많이 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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