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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착한 게 잘못은 아니다...

eyeinthesky72007.06.23 08:27조회 수 974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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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수필과 함께
마음 따뜻했던  예전으로의 마음속 라이딩을 하고자
박동규님의 수필 하 나를 올려 봅니다..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 때 육이오 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

하시고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치하에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하며 살아도 국군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 삼 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일주일 걸려 겨우 걸어서 닿은 곳이 평택 옆 어느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심이 사나워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집 흙담 옆 골목길에 가마니 두 장을 주워 펴놓고 잤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마니 위에 누운 우리들 얼굴에 이슬이 내릴까봐 보자기로 씌워 주셨다.

먹을 것이 없었던 우리는 개천에 가서 작은 새우를 잡아 담장에 넝쿨을 뻗은

호박잎을 따서 죽처럼 끓여서 먹었다.




삼일째 되는 날 담장 안집 여주인이 나와서 우리가 호박잎을 너무 따서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고 다른데 가서 자라고 하였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를 껴안고 슬피 우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다음날 새벽 어머니는 우리들이 신주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을 들고 나가서 쌀로 바꾸어 오셨다.

쌀자루에는 끈을 매어서 나에게 지우시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평택에서 수원으로 오는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서른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 곁에 붙으면서

"무겁지. 내가 좀 져 줄게."

하였다.




나는 고마워서

"아저씨, 감사해요."

하고 쌀자루를 맡겼다.




쌀자루를 짊어진 청년의 발길이 빨랐다.

뒤에 따라 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으나 외길이라서 그냥 그를 따라갔다.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봐

"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

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와."

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다.




청년을 따라 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앉아 있으면 쌀을 잃을 것 같았다.

당황해서 큰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셨다.

길가에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첫마디가

"쌀자루는 어디 갔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청년이 져 준다면서 쌀자루를 지고 저 길로 갔는데,

어머니를 놓칠까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내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

하시며 우셨다.




그날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농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셔서 새끼손가락 만한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얻어 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

하시면서 우셨다.




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고 누워 있는 나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주시다니.




그 후 어머니에게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이그 토양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바보처럼 보이는 나를 똑똑한 아이로 인정해 주시던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 자료 출처 : 박동규님의 에세이집

박동규 교수  : 1939년 1월 16일 (경상북도) 가족 : 아버지 교수 박목월 학력 : 서울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데뷔 : 1962년 현대문학에 평론으로 등단 수상 : 2004년 황조근정훈장 경력 : 2004
저서로는,
아버지와 아들 ,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 글 쓰기를 두려워 말라,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전후 한국소설의 연구, 삶의 길을 묻는 당신에게...등...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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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 잔잔한 감동의 포말이 입니다........^^
  • 눈시울이 붉어지는 글입니다.
  • 아놔~~~ 왜 아침부터..이런 글을 읽게 만들지요???....(눈물나게....)
  • 아침부터 .. 감동 먹게 해여 외 !? ㅡ.ㅡ;;
  • 아침부터 ....

    그데 스카이님 저녁에 잠실은 왜온데유?
    디게 겁나네요.
  • 나쁜 상황에서도 좋은점을 먼저 보려하시는 어머니의 교육적 인격이 대단하시네요
    나쁜걸 나쁘게만 보는 나에게는, 언제나 훌륭한 인격이 스며들지~~~~
  • eyeinthesky7글쓴이
    2007.6.23 11:56 댓글추천 0비추천 0
    사실,
    가끔 시간이 날 때 마다
    박동규님의 수필집이나 월간지에 실린 여러 수필들을 읽습니다.
    박동규님의 수필들은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제법 많은터라...올려 봤습니다..^^

    시간과 세월은 가고
    남는 것은 추억과 수필이라 하더군요...

    아지랑이님 뽀스님께서 저녁에 잠실 가신다기에...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안양 돌집에 잔차 타고 갔다가 갈건데...시간이 워찌될지를 모르겠군요..^^
  • 칭찬.. 전 살면서 많이는 아니지만 본책중에 가장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아직도 누구에게나 권하는 책이 한권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입니다. 작은 칭찬 한마디가 세상을 따뜻하게 살만하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반면에 술도 안먹구 맨정신에 지 하구 싶은 말 다 하구 사는 인간도 있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그런 인간이 누구지요 알송달송...~
  • 그는 방송에 출연해 아버님, 어머님 이야기를 할 때면
    늘 눈시울이 젖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하더군요.
    촉촉하게 젖어드는 그의 목소리도 그렇구요.
    뛰어난 감성은 아마 대를 잇는 것 같습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덕목이죠. 감동적입니다.
  • 참으로 좋은 글이네요.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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