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야심한 밤의 스케치

靑竹2007.06.27 04:00조회 수 1208댓글 15

    • 글자 크기


마누라는 술이 세다.
반면에 난 술에 젬병이고.
아주 가끔 이 마눌님이 술 한 잔 하자고 꼬드긴다.
그럴 경우, 전투적으로 거절하곤 하는데
거절하는 여러 이유들 중에 말못할 이유가 하나 있다.

평소 낭군님 알기를 하늘 이상으로 아는 냥반이
약주가 거나해지시면 날 부르는 호칭부터
나사산이 어긋나듯 슬그머니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삼강을 물구나무 세우고 오륜에 얼차려를 주기 때문이다.

마누라: "어이~"

청죽: "(엉?) 네?"

뭐 더 길게 쓰지 않아도
이 두 마디면 상상력이 어지간한 분이면
대강 그 뒤의 그림이 그려지리라.

그런데 어젯밤 정조를 허물고
마눌을 따라 호프집엘 가서
500cc짜리 두 잔을 마셨다가
헤롱헤롱 집으로 돌아와 댓자로 뻗어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들으니 웬 열혈 청년 하나가
아파트 화단에 앉아 전화를 하는데 술이 떡이 된 듯
혀가 꼬부라진 큰 소리를 내는 통에 잠이 깨고 말았다.
처음엔 나무라려고 하다가
가만히 들으니 이친구 사연이 꽤 재미가 있다.
창문도 안 닫고 도로 잠자리로 와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그 사연을 듣노라니

예전에 황인용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심야 프로인
'밤을 잊은 그대에게'나
은쟁반에 옥구슬이 또록또록 굴러가는 소리처럼
발랄하기 그지없었던 목소리의 서금옥씨가 진행하던
'밤의 데이트'를 듣는 기분이다.

에고고...
내가 듣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것일까
이제 막 사연이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이 친구 말이 점점 멀어져가는 걸로 봐서
아마 일어나서 제 갈길로 가는가 보다...쩝

그럼 난 뭐여?

에라..잠이 다 달아나고 말았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눈이 말똥거리게 된 김에 컴을 켜고
엊그제 쓴 글에 댓글이 달려서 보았더니
십자수님 염장 댓글이라
심야에 혈압이 오른다...우히히

예전에 바둑에 몰두하던 때였는데
그 때도 잠이 안 와서 일어나 컴을 켜고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 들어갔었는데
마침 대기실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어찌나 재미 있는지 배꼽을 쥐고 웃으면서
한 시간 이상을 지켜본 적이 있다.
뭐 대강의 기억을 살리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가: "요즘 뭐하나?"

나: "백수사업이지 뭐"

가: "뭐든 해야 할 거 아녀"

나: "그래..해야지..그래서 자네 사업장 견학을 가 볼까 해"

가: "이 야심한 밤에?"

나: "왜 지금이 한창 영업중일 때가 아닌가?"

가:"그렇긴 한데 오늘따라 손님이 별로라 닫으려고 생각 중이었지"

나: "그렇군.."

가: "요즘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어"

나: "그래? 고무적인 일인데?"

가: "다양성의 사회니까 아무래도 메뉴를 늘리는 게"

나:" 잘 생각했어..."

가: " 사실 우동 한 가지만으로도 힘은 들지만...어쩌겠어?"

나: "늘리려는 상품은 뭐지?"

가: "음...김밥과 오뎅 쪽으로 거의 굳히고 있어"

나: "와! 좋은 생각이네?"

이 둘의 대화가 이러면서 거의 한 시간 이상을 가는데
새벽 서너 시쯤 되긴 했으나 다른 이용자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터인데 이 둘 외에 아주 조용했던건
이들의 대화가 재미가 있어서 다들 보고만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막판에 이렇게 대화가 이어졌다.

가:"하여튼 지금 오긴 올 거야?"

나: "왜?"

가: "팔다 남은 면이 조금 있는데 불어터지긴 했지만
     젓가락으로 들면 끊어질 정도는 아녀...와서 먹으라구"

나: "그래..고마워..백수에다 요즘 고향 부모님도
       돈을 안 부쳐 주셔서 이틀 굶었어"

가: "저런~ 더 남겨 놓을 걸...하여간 국물이라도 많이 부어 줄게"

하여간 일부러 궁상을 떤 것인지
이 둘의 천연덕스러운 대화를 보면서
웃다가 심각하다가 하면서 한 시간을
멀건히 앉아서 보낸 기억이 나는데
오늘도 그럴 뻔했다.

(음 그런데 시방 난 도무지 뭐 하는 겨?)













    • 글자 크기
라이딩 코스 표시를 위한 표지판 무료 분양 안내 (by 말발굽) 서울동남,북쪽사시는 어반,트라이얼 라이더를 찾습니다 (by 저금통)

댓글 달기

댓글 15
  • 잠안오셔서~ 글씨 쓰고 계시네여 ㅎㅎㅎ

    오늘도 사모님 따라 한잔 하셧나봐여~ ㅎㅎㅎ
  • 靑竹글쓴이
    2007.6.27 04:10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편의점을 하신다고 하셨죠? ㅎㅎㅎ
    젊은 친구가 술을 많이 마셨는지 밖에서 하도 떠들어서 깼습니다..ㅋㅋㅋ
  • 靑竹글쓴이
    2007.6.27 04:23 댓글추천 0비추천 0
    서금옥씨가 진행하던 프로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아니고
    '밤의 데이트'였던 것 같네요..
    예전엔 그렇게 자주 들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확실한 건 모르겠네요.
  • 편의점이 아니라 24시간 슈퍼에여 편의점은 비싸서~

    슈퍼를 시작하면서 편의점을 잡기 위해 시작한건데 .. 매출은 그다지 새벽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ㅎㅎ 그래도 이동네 분들은 오전 10시까지 약 200명 정도 온답니다!
  • 별이 빛나는 밤에는 제가 중고등학교때 들었는데 라디오로 이문세의 ...

    이문세씨가 한 십몇년 했죠~ 그전에 하셧던 분인가 햇습니다 저랑 차이가 있으시니~
  • 靑竹글쓴이
    2007.6.27 04:26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수퍼를 하시눈군요.
    하여간 고생이 많으십니다.
    땀흘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 얼른 주무세여~ 그래야 밝게 하루를 시작하시죠~
  • 일찍 깨셨군요.
    황인용은 생각이 나는데
    서금옥은 모르겠는데요^^
  • 저도 서금옥씨는 모르겠읍니다 ................
  • 헉??....서금옥을 모르신다고요???......(그..그럼...X세대???)
    예전....저도 꽤 들었었는데.....
  • 우히히히 젊은세대는 모른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둘의 대화가 참 푸근합니다... 좀 시끄러웠어도 청죽님이 귀담아 들으실만 한 이유가 있었군요^^
  • 저도 예전에 20대때 바둑을 무지 둔적있었죠...고등학교때 배워서리 죽어라 둔적 있었어요
    바둑이 인생이라는 교훈을 얻으면서 내가 살길은 내 땅을 넓히는 일이다라는 명언과 함께...
    그러다 어쩌다 결혼하고 나니 손이 안가네요...역시 인생은 땅이아닌 마눌인가봐요 헤헤헤
    청죽님 다운힐 사진 제가 저희 사이트에 빌려 갔습니다 괴안지요? 넘 멋져서리...
  • 날밤 새셨군요.
    맥주를 2잔이나 드셨다고요? 평소에 청죽님 으로 봐서는
    거의 치사량인데......

    무더운밤 날밤샐일 많아 질텐데....
    건강 조심하세요.
  • 컥~!!! 청죽님 과음을 허시다니유....
    그나저나 청죽님은 사면초가....가 아니고 이면초가로군요...ㅎ
    형수님께서 주량이 쎄시고...
    아드님은 말 술에 "아부지~!! 나 왔쏘~!!" 를 허질 않나....>.<::ㅎㅎ
    피 하실 수 없다면 즐기셔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디어 복구했습니다. 와일드바이크 심폐소생의 변!40 Bikeholic 2019.10.27 3109
야심한 밤의 스케치15 靑竹 2007.06.27 1208
173643 서울동남,북쪽사시는 어반,트라이얼 라이더를 찾습니다2 저금통 2007.06.27 589
173642 마음만 바쁘다7 STOM(스탐) 2007.06.26 602
173641 이거 원~ 병원서 진찰받기도 힘드네요.13 cheri502 2007.06.26 1255
173640 여~~~ 제발 좀 쓰지 맙시다~! 요로 써야죠...15 십자수 2007.06.26 1501
173639 인생이란 항구 ^^2 speedmax 2007.06.26 549
173638 케넌데일 자전거 공구......2 p321557 2007.06.26 1351
173637 몸은 괜찮은데 머리만 어지러우신 분들....이석증을 의심해 보세요...2 시지프스 2007.06.26 1152
173636 ^^*여러분은 징크스를 믿으세요???17 더블 에스 2007.06.26 861
173635 광교산을.. 간것도 아니고 안간것도 아니여.~5 magicpot 2007.06.26 920
173634 [석궁] 전문가(소유하신분) 도움 부탁드립니다.19 Bikeholic 2007.06.26 1328
173633 크리스 벤와 사망으로 본 불운의 프로레슬러들....7 eyeinthesky7 2007.06.26 1091
173632 wwe의 인기스타 크리스 벤와가 사망 했다고 합니다...9 eyeinthesky7 2007.06.26 1099
173631 조직도...11 다리 굵은 2007.06.26 1415
173630 신흥조폭세력등장 (흰양말파)33 olive 2007.06.26 2192
173629 일요일 라이딩 코스....3 wwolf7 2007.06.26 849
173628 ---=== 긴 급 ===---8 러브 2007.06.26 1269
173627 노래 한곡듣고 시작하세요.11 부루수리 2007.06.26 715
173626 mtb 입문 준비중입니다.6 rrj140 2007.06.26 845
173625 좀이 쑤시네여........어쩌죠???;;8 더블 에스 2007.06.26 568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