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야식을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
내내 끊지 못한다. 메뉴는 주로 요 라면이란 놈이다.
"왜 상을 두고 꼭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드세요?"
하는 마누라의 푸념이 있긴 하지만 어쩐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먹어야 제맛이 날 것 같기에ㅡ,.ㅡ
1970년.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가을 무렵이다.
퇴근(엥?) 아니,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니
바로 손위 누님께서 주전자에 뭘 끓이는데
정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구수한 냄새가 났다.
"와~ 뭐여?"
"라면이랴.."
"라면이 뭐랴?"
"봉지에 끓이는 방법이 나와 있어
설명을 보면서 끓이는 중이니께 조용히 햐"
나보다 두 살 위인 누님이
머리털 나고 처음 끓여 준 그 라면이
봉지에 인쇄가 되어 있는 설명을 보면서
끓이느라 너무 시간을 썼음인지
퍽이나 팅팅 불었던 건 기억에 확실히 남아 있다.
세상에나~
네상에나~
난생 처음 먹어 본 라면의 맛은
황홀하기 이를데 없는 천상의 맛이었다.
아마도 신선들이나 그런 음식을 먹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외삼촌이 다섯 분 계셨는데
그 중 둘째 외삼촌께서 무작정 상격하신 뒤
자리를 잡으신 곳이 라면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추석 명절에 차례를 지내러 오신 외삼촌께서
큰 종이박스 두 개를 가지고 오셨는데
'왈순이 라면'이던가..?
하여간 좀 특이한 이름의 라면이었다.
세월이 흘러 자라고 늙어가면서
이 라면은 그 뒤로도 죽 함께했으나
첫 대면의 그 강렬하고 황홀했던 맛은
한여름 푸르던 잎사귀가 점차 시들어가듯
세월따라 서서히 퇴색하기만 해 왔는데
모름지기 사람의 입이 간사한 탓일 게다.
예전의 그 맛을 아주 똑같이 느낄 순 없지만
기억하려고 애를 쓰면 어렴풋이나마
처음 먹던 그 맛이 기억이 난다.
에고..그나저나 밤참을 끊어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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