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독교인도 보셔도 상관은없습니다만, 제가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건 기독교인 분들입니다.
아프간 사태와 두타스님 사건, 그 전의 이랜드 사건으로 인해 기독교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보다 앞서 이명박 장로님의 발언도 있었죠.
거기에 달리는 리플들 보면 가슴도 아프고 화가 나는 것도 있습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 100주년. 말로만 부흥을 외치고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그저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저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작 제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그런데도 감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과연 사람들 앞에 떳떳한지.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우리가 다른 게 무엇입니까?
온유에 대해 배웠습니다.
사나운 물음에 부드럽게 대답하는 것이 온유라더군요.
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싸우지 않는 것은 비겁이고 타협이죠.
그러나 제 짧은 생각으로 볼 때, 지금은 아닙니다.
남들이 진실을 못 본다고 하지만 나는 얼마나 진실에 가까이 있습니까?
떠도는 소문들을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잘못은 있었다고 봅니다.
온유함으로, 기도함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사건들이 결코 무의미한 시련이나 사단의 공격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겁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의 시작은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났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마3:2)'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일까요? 좀 더 민감해 집시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읍시다.
그 때에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프간 사태와 두타스님 사건, 그 전의 이랜드 사건으로 인해 기독교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보다 앞서 이명박 장로님의 발언도 있었죠.
거기에 달리는 리플들 보면 가슴도 아프고 화가 나는 것도 있습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 100주년. 말로만 부흥을 외치고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그저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저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작 제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그런데도 감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과연 사람들 앞에 떳떳한지.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우리가 다른 게 무엇입니까?
온유에 대해 배웠습니다.
사나운 물음에 부드럽게 대답하는 것이 온유라더군요.
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싸우지 않는 것은 비겁이고 타협이죠.
그러나 제 짧은 생각으로 볼 때, 지금은 아닙니다.
남들이 진실을 못 본다고 하지만 나는 얼마나 진실에 가까이 있습니까?
떠도는 소문들을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잘못은 있었다고 봅니다.
온유함으로, 기도함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사건들이 결코 무의미한 시련이나 사단의 공격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겁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의 시작은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났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마3:2)'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일까요? 좀 더 민감해 집시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읍시다.
그 때에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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