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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목수2007.08.05 22:46조회 수 986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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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님의
글을 보다가

이제는 혁명이 두려워진 기성세대가
건강을 걱정하는 중년이 된
스스로가 부끄러워
생각난 시 입니다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 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 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고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신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 온 곳

우리의 옛 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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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음....시가 약간 난해 하네요...쩝.^^;;
  • 눈 감으면 저 멀리서 다가오는 다정한 그림자...
    옛얘기도 잊었다 하자 약속의 말씀도 잊었다 하자...

    이용복의 노래인줄...

    나이 서른에 우린 무얼 하고 있을까 하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한데 벌써 마흔을 넘겨버렸으니... 그동안 뭘했나?
  • 줄줄이 공감이 가는 시네요.

    하루 하루가 아까운 시간인데
    지나고 지내다 보면 그저 허무할 뿐....

    인생이 그런 것 같아 안타까운 중년....
  • 학생운동 하실때를 회상하시면서 쓰신 시인거 같습니다
  • 나이 먹는다는거.........첨엔 슬프고 서럽더이다.
    하지만 기왕먹는나이 멋지게 늙어(?)가리다 생각하니 오히려 뿌듯하더이다........
  • 돌이켜 보면 매일매일이 회색빛 하늘만 같았던 그 시대....그...하늘....
    언젠가 부턴...아니...오래 전 부터 하늘은 파랗게 변했더군요.
    세월의 흐름속에 저의 하늘도 변했지요.
    시대의 아픔과 산고,희생과 흘린...피...당신들의 노력과 희생 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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