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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단상

franthro2007.09.09 13:07조회 수 643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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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짜파게티로 때웠더니 일찍 배가 출출해져서 집근처 마트에 뭐 먹을게 있나하고 가봤습니다만 한 다섯바퀴를 뱅글뱅글 돌아도 선뜻 손이 가는 음식이 없네요.  할 수 없이 중국집에 가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먹고 집에 들어오는데 동네 골목골목이 사람 흔적 하나 없이 조용해요.  햇빛이 쨍쨍하니 맑은 날씨에 다들 좋은데로 놀러갔나보다 생각을 했는데 알고보니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가신 분들이 많으리라는데 생각이 미쳤고,  게다가 또 다시 제 손가락이 심심해져오는지라 추석 단상이라고 몇자 끄적거려볼까 합니다.

원래 저희 집 선산은 예전 경기도 율현리라고 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울로 편입이 되었지만 예전에 그곳은 밤나무가 많고 밭농사를 짓는 분들이 주로 거주하던 곳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아버님과 함께 최소 일년에 두번은 그곳에 가서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오는 것이 연례행사였는데 그곳을 벌초해주던 묘지기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는 그리고 제가 어느 정도 장성한 이후로는 우리가 직접 벌초를 해야만 했습니다.  평수로는 한 3-400평 정도 될까요 정확히 모르겠으나 11대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큰 봉분 두개와 약간 거리를 두고 산비탈을 따라 내려가면 저의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함께 모신 것을 포함한 작은 봉분 4기가 따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집안 형편이 부유하지 못한 탓에 떼를 못입히다 보니 일년에 두번 찾아갈때마다 사람 허리까지 자라난 정글과도 같은 잡초를 잘라내느라고 저를 포함한 우리 식구들은 아주 기진맥진하기 일쑤였습니다.  낫으로도 부족하여 나중에는 예초기를 동원했지만 힘들기는 매한가지였지요.

그렇게 경기도 율현리로 벌초하러 가기를(조상님께 인사드리러 가기를) 어언 삼십몇년간 계속하던 끝에 드디어 작년 이맘때쯤 조상님들을 다른 곳으로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경기도 양수리가는 길에 있는 공원묘지였는데 기존 봉분을 개봉하고 조상님들의 유골을 화장하여 가루로 만들고 유골항아리에 옮긴후 차로 공원묘지까지 이동하는 작업에 저도 당연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공원묘지로 옮기게 된 것은 벌초를 할 후손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그 묘역자체가 원래부터 우리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아버님께서는 틈만 나면 그 산에 대한 얘기를 하시곤 하였는데 그 복잡한 얘기를 전부 여기에 풀어놓을 수는 없고 다만 그 묘역의 소유가 어찌어찌해서 직계후손에게 물려진 것이 아니라 제게는 먼 친척뻘되는 방계친족에게 넘어가게 되었답니다.  저는 매년 벌초만 하러가면 투덜대기를 그 아저씨는 이 오랜 세월동안 여기에 벌초한번 안오고 게다가 백혈병에 걸린 아들 병원비를 이 땅을 팔아서 대고 그 음덕을 입어 자식을 살렸으면 마땅히 조상님들을 다른 곳으로 모실 수 있도록 손을 써야지 이렇게 우리만 매년 고생하는 것은 정말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울화통을 터뜨리곤 하였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반듯한 공원묘지로 새로 모시게 되었다고 그리고 더 이상 이 힘든 벌초를 안해도 된다고 속으로 몹시 좋아하였지요. (심장 약하신 분들은 이 이하 글은 읽지 마시고 스킵하심이 좋을듯 합니다.)

그날 드디어 봉분을 개봉하는 날 11대조 할아버지의 묘를 인부들과 포크레인까지 동원하여 파는데 아주 두꺼운 회반죽이 15-20cm 정도 되는 두께로 단단한 바위처럼 목관을 둘러싸고 있더군요.  우리는 혹시라도 무슨 중요한 문서라던가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유품이 나올까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그런 것은 없었고 다만 조상님의 두개골부분중 윗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을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친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에서는 땅에 묻은지 4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온전한 유골이 생생하게 남아있더군요.  아버지께서는 유골의 치아부분을 유심히 보시며 당신 어머님의(제 할머님의) 살아생전 특징과 비교를 하시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시는데 봉분의 개봉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두근두근하던 가슴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유골을 눈앞에 봐도 무섭다는 생각은 특별히 들지 않더군요.

그리하여 모든 작업이 끝나고 유골항아리를 차에 싣고 공원묘지까지 당일날 이동하게 되었는데 정작 엉뚱한 문제에 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조상님들을 모실 납골묘가 위치한 공원묘지 구역에 해당군청에서 세운 큰 철제 경고판이 박혀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구역이 그린벨트라서 일체의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전에 와봤을때는 그런 경고판이 분명히 없었거든요.  바로 공원묘소 관리사무실에 전화하여 설명을 요구했더니 아무 문제없다고 자기들이 다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서 판단하건대 공원묘지측이 현재 진행중인 행정소송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 기만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포함 몇몇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그 분쟁구역에 조상님들을 모시도록 유도했다는 것이 명명백백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남의 조상들을 볼모로 하여 그 구역에 설치된 시설물을 기정사실화해보겠다는 그런 약삭빠른 꾀였습니다.  허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조상님들의 모든 유골을 화장, 분쇄하여 유골항아리에 옮겨놓은 상태인 것을... 그 유골단지 여러개를 모두 집으로 갖고 올수도 없는 노릇이고... 울며 겨자먹기로 그 자리에 그냥 모시고 추후 문제가 발생할때에는 공원묘지측에서 민사상, 형사상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받는 선에서 일단 마무리짓게 됩니다.

저희 조상님들 묘소를 작년에 이장할때의 모습을 장황하게 설명드렸는데... 이 글을 읽으시는 다른 분들에게 간접경험으로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문득 떠오르는군요.  <어떤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약점이다.>  무슨 외국영화같은데 보면 그런 장면이 가끔 나오지 않습니까?  서로 총을 마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인질로 하여 상대방을 압박하는 장면 말입니다.  공원묘지측에서 펼치는 상술이 그와 유사한 면이 없지않아 있더군요.  조상님을 위하는 사람들의 효심을 약점삼아 자기들의 이익을 꾀하는데 이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올해 추석전에 서울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같이 조상님께 차례를 지낼 수 있을런지 어떨런지 모르겠네요.  벌초할때 말벌같은 것들 조심하시고... 가족간의 화합과 우애를 다지는 계기로 삼으시기를 바라면서 제 글을 마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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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글이 가을 하늘이 투영된 작은 연못 속 같이 잔잔하군요.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도 이렇게 옮기고 보면
    좋은 글이 되지요.

    할아버지의 난봉으로 적은 산소만 돌보면 되는 저는
    행복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 franthro글쓴이
    2007.9.9 14:53 댓글추천 0비추천 0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321624
    이거 이렇게 남의 블로그에 바로 링크를 걸어도 되는가 모르겠는데 우연히 Daum 에 장례학과 가려고 사표낸 미술교사라는 기사타이틀이 눈에 들어와 클릭했더니 저런 내용이더군요. 세상에 참 별별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라고 새삼새삼 놀라게 되네요. 구름선비님 매번 달아주시는 좋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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