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 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 넘는 눈물고개
돌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 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 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모처럼 상암구장이나 다녀 올 요량으로
잔차를 끌고 집을 나섰더니만
출발한 지 십 분여 만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에 전혀 개의치 않던 전천후 라이더를 자처했었건만
크로몰리로 애마가 바뀐 뒤로는 사람이 소극적으로 변했다.
퇴각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비를 맞고 보니
비만 내렸다 하면 잔차를 끌고 내달리던 추억들이
뭉클하게 떠오르는 바람에 그냥 내쳐 달리기로 했다.
꼭 추억이 아니더라도 우중라이딩 후에 잔차를 뒤집어
꼼꼼하게 물을 뺀 뒤 싯포스트를 뺀 상태로 세워 두면
아무래도 통풍이 되어 건조가 잘 될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이 되는 이유도 작용했지만...
아직 한낮의 무더위가 만만찮아서
가을이라고 부르기엔 좀 서둔다는 느낌이 있었으나
막상 유니폼을 적시면서 살갗까지 스며드는
선득선득 차가운 빗방울의 익숙한 감촉은
요즘 날씨가 아직은 여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내게서 거두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추운 건 내게는 이미 걱정거리가 아니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 흩날리는 진눈깨비에
유니폼을 흠뻑 적신 상태로 세 시간 정도
달린 일도 있으니까 이런 날씨에 내리는 비야
뭔 대수랴.
아무튼 빗속을 달리고 달려
성산대교 아래서 물을 마시려고 섰는데
옷이며 헬멧이며 배낭에서 쉬지 않고 빗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때로는 굵은 빗방울이 헬멧을 때리지만
이미 그 소리들은 귀에서 잦아들고
이내 묵상에 빠져 든다.
규칙적인 페달링 동작은 물론
이따금 조우하는 교행하는 잔차인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조차 관념의 형태로 변하여
묵상의 일부분으로 자리하니
천지 사위가 더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양대를 지나 장안동 빗물펌프장 고갯길을
댄싱을 쳐서 올라야 한다는 자각으로
묵상에서 깨어났는데...
빗줄기가 더욱 굵어져 조금은 춥다는
생각은 잠시, 느닷없이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비맞은 중마냥 부른 노래가
위의 반야월의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다.ㅎ~
매우 좋아하는 이 노래 세 절 중에서
2절을 가장 좋아한다.
보면 볼수록 어쩌면 그렇게 가사가 절묘할까.
떠나는 님이 돌아오게 해 달라고
애처로운 금봉 낭자가 성황님께 빌어야 했지만
부엉이 우는 외로운 산골에 자신을 두고 가는
님에게 돌아올 기약이나 빌고 가 달라니.
얼마나 간절했으면...
도토리묵이야 보존성이 나쁘니
가다 곧 먹으라고 허리춤에 달아 주겠지만
한사코 울면서 달아 주니 도토리묵을 싼
주머니가 금봉이의 눈물에 젖을 터,
이 눈물 자욱이 채 마르기 전에 님께서
묵을 자시지 않을까...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더"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이 대화는 박경리의 '토지'에서 용이의 팔에 안긴 채
죽음을 맞기 전에 나누는 파란만장한 사랑의 주인공인
무당의 딸 월선이와 그의 연인인 용이의 대화다.
이 대화를 끝으로 내가 토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월선이 곧 숨을 거두었는데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에 안타까움으로 점철된 사이 같았는데
'치열한 사랑을 했던 이 둘은 어쩌면 그런 정황들까지 사랑했나 보다'
라는 생각에 이 몇 마디의 대화가 무척 심금을 울렸었는데
오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중에 라이딩하면서 부른
트로트의 한 구절이 허접한 잔차인의 심금을 또 울렸다.
엣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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