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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

키노2007.09.19 03:17조회 수 608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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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고 해서 낮잠을 좀 잤더니 잠이 통 안 오는군요. 내친 김에 옛날 이야기나 좀 하겠습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려고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하는 스무 살 중반 무렵, 학교에서 배운 전공을 써먹기는 싫고 해서 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 이 세상에서 빌어먹나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어디에 내놓아도 빌어먹기는 할 것 같은 기술이 딱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춤, 팝송, 영화.

이 세 가지를 다 써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 가지를 고르긴 골라야 하는데 뭘 고르나 한참 궁리하다가 최종 결정을 내린 게 영화였었습니다. 하다 못해 스턴트맨이라도 할 생각이었죠. 그 당시 고 박노식씨가 영화를 만드는데 삼일빌딩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니까 아무도 뛰어내릴 사람이 없더랍니다. 그거라도 할 생각이었죠.

그 후의 일은 별 거 없습니다. 다 치기 어린 생각이고, 세상일이란 게 만만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무튼 철없이 까불던 시절에는 영화에 관해서 수다 떨고 놀아라 하면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지금은 뭐 세상이 워낙 넓어졌으니까 1백 명쯤 모아놓으면 그 순위에 들까 모르겠습니다.

나이 오십줄에 접어드니까 뭐랄까 이른바 공황상태 같은 게 오더군요. 아는 것도 모르겠고, 배운 것도 모르겠고, 읽은 것도 모르겠고, 본 것도 모르겠고, 겪은 것도 모르겠고, 모르는 것은 더욱 모르겠다는.

조치훈의 바둑책을 보면 “정석을 외운 뒤 잊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정석은 반드시 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잊어야 합니다. 정석대로 두면 지니까 말이죠. 이제까지 살면서 정석은 반드시 외우며 살아왔습니다. 이것을 언제 잊나 생각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잊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뉴스를 뒤져보니까 어떤 스님이 인도와 티베트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왔는데 하시는 말씀이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다. 그냥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제가 딱 그 상태입니다.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다. 그냥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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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눈을 감고 보는 세상과 눈을 뜨고 보는 세상 중 어느 것이 참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본 걸 잊으시고, 들은 것도 잊으시고, 배운 것도 잊으셨으니 원래 色(색)이 空(공)이며 無相(무상)이랬으니 가장 어려운 정석을 또 배우고 계십니다.

    저는 학창시절, 보는 것만 좋아했던 영화광이었습니다.
  • 사람이,
    지식이란 것을 암기해서 채우려고 합니다.

    지식은 채우고 외우는게 아니고
    자연스런 생활과 주변적 환경과 요소에 적용해야 한다는군요.

    이 말이 선뜻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만
    다소 철학적인 면이 강하기에 저에겐 매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잘 까묵는 제 헤드부의 문제로요...ㅎ..

    앞으로도,
    좋은 글 자주 올려 주시며,
    즐거우신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요..^^
  • 컥~!!!@@
    부지런 하신 청죽님 때문에 출근 도장이 늦어삔네유....청죽님 잠도 읍으시유...^^::ㅎ
  • 읍긴유..푹 자고 일곱 시가 되기 전에 일어난 거쥬...모기가 어찌나 무는지...에구..
  • 조심하셔유...그러시다가 온 몸이 뽀삐 엠보싱이 됩니다요...>.<::ㅎ
    즐거우신 하루 보내셔요...청죽님..^^
  • 너무 어려워서 뎃글 못달았습니다 ㅡㅡ;; 근데 역시 노익장 형님들은~ 득도를 많이

    하셔서 그런가 ㅎㅎ ;; 오늘도 좋은 하루들 보내세요~ !!
  • 본 것이 있기에 눈을 감을 수 있고,
    들은 것이 있기에 상념에 잠길 수 있고,
    배운 것이 있기에 이 자리에 내가 있고,
    인간이 정신이나 육체를 통해 터득한 모든 것은 잊혀질 수가 없기에
    내 안에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잠재하게 된다네.....
  • 머릿속에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오히려 짐이 될때가 너무 많습니다.

    과연 인간군상들이, 살고 보고 느끼는 이세상이 참인지............................

    저승에 가서도 저는 모를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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