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금붕어의 항의

구름선비2007.11.27 13:53조회 수 1079댓글 10

    • 글자 크기


어느날 할 일도 없고 하여 창 밖을 내다 보다가 그것도 지루하여
금붕어 어항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고 있었다.

이 놈들 중에 한 놈은 아마 한 오년은 더 된 놈이고
다른 한 놈은 이제 이 년이 되어 갈 게다.

어항 속에는 금붕어 두 마리와 다슬기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지난 여름 가평으로 갔던 천렵에서 가져 온 네 마리 중에 한 놈만 살아 있는 것이다.

별로 깨끗하게 살고 있진 않지만 가끔은 깔끔을 떤다며
어항의 물을 갈고 인공수초며 맥반석 돌 들을 수세미로 닦아 넣어 놓곤 했다.
색모래도 잘 씻어서 넣고 나면 모처럼 할 일을 한 듯한
성취감이 들곤 하였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물끄러미 바라다 보던 내 눈 앞에 그 중 오래 된 오란다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주인님!"

"왜 그래?"

"하나 물어 봅시다."


허 이녀석 말 놓겠네^^


"그래 뭐야?"

"깨끗한 물에 붕어가 살우? 못 살우?"

"글쎄, 잘 사는 것도 같구. 못 사는 것도 같구…."

"맑은 물에는 고기가 안 사는 법이라우"


그래도 5년이나 된 녀석이니 그 정도는 알고 있노라는 투로 비스듬히 서서 말하는 것이다.

"또, 주인님!"

"왜?"

"주인님 이름 자 있죠?"

"그래, 그거 뭐?"

"이름 자 잘못 지었다고 생각하잖우?"

"그야 그렇지"




전에 딱 한 번
그 때도 할 일이 없어서
이 놈에게 말했었는데 그걸 기억하나 보다.

내 이름은
성은 신 가요. 이름은 얻을 得에 물맑을 澈이다.
물 맑음을 얻는다?

이러니 사람 됨됨이가 찬 바람이 불어
주변에 사람이 꾀일 리 없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



"그래두 모르겠우? 주인님이야 깔끔 떠는 척 어항물을 갈아대지만
그 때마다 우리가 홍역을 치루었고
전에는 다슬기 두 마리가 한꺼번에 죽은 걸 보고도
느끼는게 없느냐 말이우…."


허긴 ㅎㅎ


"요즘 저 다슬기 녀석 잘 움직이지요?"

"그렇더구만"

"전보다 우리 똥이 많으니 녀석도 살이찌고
이제는 새끼 낳을 계획을 세웠다면서 부지런을 떱디다.
그러니 자주 물 갈지 말고 물은 적어도 30% 남긴다는 생각으로
갈아 주시우."


허긴 녀석이나 나나 이제 중년은 넘어가는 나이니 그 말이 옳을 듯도 하다.



다시 어항을 살핀다.
그 안의 색모래를 찬찬히 들여다 본다.

워낙 작은 어항의 것을 그대로 옮긴거라 대머리 머리털 마냥
띄엄띄엄이다. 바닥을 채우기는 고사하고 어항 바닥이 드러난 곳이 더 많다.

그 사이사이에 적당히 똥이 뒬글고 있다.

내가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얘들은 살이 오르고 활기차 있다.

수초와 맥반석에 이끼가 붙을수록,
바닥에 다소라도 붕어 똥이 굴러 다닐 수록
다슬기의 먹거리는 끊이지 않을 것이고
저 오란다 녀석이 나에게 말을 트지는 않을 것이다.

입바른 소리를 한 녀석은 좀은 계면쩍은지
어항 뒤 엉성한 인공수초 속에서 눈만 내놓고
나를 구경하고 있다.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댓글 10
  • 그놈 참 여우같은 놈이군요^^ ㅍㅎㅎㅎㅎ
  • 허어~~ 읽다 보니...오래전에 읽었던(??) 이외수님의 사부님싸부님이란 책이 생각나네요....

  • 흔히 애견인들이 견공에게 염색을 해 주고 옷을 만들어 입히고 신발을 신겨 주는 등 온갖 치장에 신경을 씁니다. 그런데 그런 행위의 본질을 들여다 보면 그런 행위는 개들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를테면 개 주인의 만족을 위한 것일 뿐이지 실상은 견공들을 학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더군요. 그런 대접을 받는 개들은 사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답니다.

    물론 구름선비님의 경우는 물고기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시려는 선의가 기반이 되기는 하셨지만 일종의 오해가 있으셨던 건 마찬가지겠죠. 막연한 고정관념과, 눈으로 보는 것과 실상은 천양지차라는 5년차 고참 오란다님의 주장을 우리는 새겨서 들을 필요가 있....횡설수설...(사설이 길다..)

    ㅋㅋㅋㅋ
    사실 오란다의 입을 빌긴 하셨지만 선비님께서 깨달으신 거잖유? 언짢으실른지는 몰라도 제가 싫어하는 직업군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갱찰이었죠. 구름선비님 땜시 그런 편견이 많이 깨졌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살면서 철옹성처럼 굳어버린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그게 편견이란 걸 알았을 때의 기분은 매우 신선하더군요. 살면서 아니, 나이가 들면서 그런 걸 더 자주 느낍니다. 이제 정말 돌아오신 개뷰..^^
  • 허.. 고넘.. 참.. 이참에 글을 가르쳐 보시지요.
    쫌만 더 가르치면 왈바 로그인도 하겠습니다.
  • 다시 돌아오신 구름선비님 청죽님 폴민이님 ~ 정말 보고싶었습니다 ~

    다들 잠수타지 마세요 ㅠㅠ ~ 글이 없어서 얼마나 자게가 썰렁햇는데요~

    좋은 글들 쓰셔서 자게판을 썰렁하지 않게 해주세요 ~ 제발 ~~

    그럼 선배님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 항상 건강하십시요 ^^
  • 근자에 척박한 삶 속에서도 삶의 지혜를 배울수 있는 그러한 글들이

    자게에 많이 올라와 마음이 흐뭇합니다.

  • 구름선비글쓴이
    2007.11.27 22:25 댓글추천 0비추천 0
    댓글 다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인간 중심의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또는 다른 사람 입장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저 필부이지만
    생각을 가끔씩은 하고 살지요.

    싸늘한 계절인데
    따스한 차 한 잔 마실 여유를 즐기세요^^
  • 그나저나...

    물고기와 대화를 하는 경지에 이르셨군요....

    신고 들어가니.. 항상 조심해서 이야기 해야 합니다...

    휙..====3=====3=====3
  • 구름선비님...............도사 되셨네요
    고기랑 대화도하시고~~
  • 짝다리는 안집었던가요?
    혹시 팔짱은 안끼었던가요?
    치아 사이로 침은 찍~~! 하고 안뱉던가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디어 복구했습니다. 와일드바이크 심폐소생의 변!40 Bikeholic 2019.10.27 3069
188097 raydream 2004.06.07 389
188096 treky 2004.06.07 362
188095 ........ 2000.11.09 175
188094 ........ 2001.05.02 188
188093 ........ 2001.05.03 216
188092 silra0820 2005.08.18 1474
188091 ........ 2000.01.19 210
188090 ........ 2001.05.15 264
188089 ........ 2000.08.29 271
188088 treky 2004.06.08 263
188087 ........ 2001.04.30 236
188086 ........ 2001.05.01 232
188085 12 silra0820 2006.02.20 1565
188084 ........ 2001.05.01 193
188083 ........ 2001.03.13 226
188082 물리 님.. 이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 물리 쪼 2003.08.09 215
188081 물리 님.. 이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 아이 스 2003.08.09 245
188080 글쎄요........ 다리 굵은 2004.03.12 540
188079 분..........홍..........신 다리 굵은 2005.07.04 712
188078 mtb, 당신의 실력을 공인 받으세요.4 che777marin 2006.05.31 1505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