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떠나버린 유명산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매우 유감스럽다. 같이 라이딩을 가면 앞에서 날아다니는 통에 경치 구경할 틈을 도무지 주지 않는 갑장께서 내가 따라나서지 않는 날은 이렇게 사진을 메일로 보내 염장을 긁기 때문이다.
"피자를 주문해 놓았는데 배달을 안 해 준다네요?"
(한 판에 오천 원짜리 피자인데 소식을 하는 우리 네 식구가 먹기에 딱 좋은 양이고 맛도 좋은데 단지 배달해 주지 않는 게 흠이다.)
"응? 그래? 알았어..내가 가서 가져오지 뭐"
"어머나? 볶은 보리가 떨어졌네요? 보리차 끓여야 하는데?"
"응..걱정 마. 내가 가서 사 오지 뭐."
"아빠! 날도 추운데 왜 갑자기 붕어빵이 먹고 싶나 모르겠당. 효효효"
"알았다 이놈아. 내가 지금 사다 줄게"
"내일 구청과 동사무소에 들러서 뗄 서류들이 좀 많네요"
"그래그래..내가 다 떼어 놓을게"
마흔 살 무렵,
그러니까 결혼한 지 15년 무렵까지는 '국가공인방안통수자격증1급'소지자였었는데 어쩌다 잔차를 배우게 되고 마냥 잔차를 끌고 쏘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적응이 안 돼서 자못 툴툴거리던 마누라가 어느 날부터인가 모든 걸 포기하고 영감을 거친 들에 놓아 먹이게 되긴 했으나 영감이 하는 짓을 매사 곱게만 볼 리 만무였다. 그런 내가 지지난 해부터인가 요금을 받고 일해 주는 심부름센터 직원이라도 되듯 고분고분하고 곰살맞게 식구들의 잔심부름을 군말 없이 하게 되었는데 그런 날 보니 그게 또 적응이 안 되는지 마누라와 딸뇬이 자전거를 끌고 심부름을 가는 내 뒷통수 쪽에서 수군대는 말이 들린다.
"얘! 느그 아부지 요즘 이상하시지 않냐?"
"맞아..엄마 정말야 그치?"
"집안에 있는 머리카락 한 올도 안 줍던 양반이 필시 어디가 아픈 겨"
"아픈 건지는 몰라도 암튼 아빠가 제정신은 아닌 거 같아요..크크크"
잔차를 끌고 나가다 말고 "시끄럿!!!!"하면서 고함을 치지만 식구들의 그러한 수상한 눈초리며 의아해하는 말들이 듣기에 결코 나쁘진 않다. 어쨌건 간에 예전엔 오로지 잔차에 미쳐서 마누라 속을 어지간히도 끓였었다.
"여보여보! 이번 주말에 친구들끼리 만나는데 신랑들도 다 나온다네요?"
"와~ 그래? 그거 재미 있겠다. 난 자전거 타러 가니 당신만 혼자겠네?"
"으휴~ 내 말을 말아야지. 자전거 위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인간아"
자전거를 타면서부터 이동하는 일이 재미가 있어졌다. 자전거를 타면서 어지간히 먼 거리가 아니고는 거리에 대한 부담도 없어졌다. 아니 심지어 같은 거리임에도 오히려 차로 다닐 때가 멀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으니 나로서도 의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나는 잘 안다. 비록 차보다는 느리지만 자연과 살을 맞대고 소통하기 때문에 지루한 줄 모르는 것이고 순전히 나의 힘으로 내가 가고 싶은 방향, 속도로 다닐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의 힘일 것이다.
때로 심부름을 하기엔 좀 피곤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때마저 심부름을 다녀올 곳이 좀 멀었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까지 갖는 일이 잦다. 물렁물렁한 얇은 슬리퍼로 클릿 페달을 너무 세게 누르면 발바닥이 아프므로 심부름 모드는 당연히 초절전관광모드로 설정해서 다니게 되는데 바람이 덥건 시원하건 차건 간에 이 모드는 저녁을 먹고 느긋한 기분으로 나서서 산책하는 기분이 들게 만드니 이 또한 별미가 아니겠는가. 기왕 자전거에 미친 거 같은 값이면 마누라나 애들이 보기 좋게 미치는 게 일석이조가 아닐까?ㅡ,.ㅡ
"어머나..여보!"
"왜?"
"우리 아들 좀 봐요. 만화책을 잔뜩 빌려다 보고는
반납도 않고 군대를 갔네요"
"그래? 알았어. 내가 갖다 줄게"
딸아이가 한 번은 조용히 물었다.
"아빠...요즘엔 왜 그렇게 심부름을 잘해요?"
"쉿..자전거 이미지 개선사업의 일환이니라..크크"
나는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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