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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심부름꾼이 되다

靑竹2007.12.07 22:32조회 수 1160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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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떠나버린 유명산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매우 유감스럽다. 같이 라이딩을 가면 앞에서 날아다니는 통에 경치 구경할 틈을 도무지 주지 않는 갑장께서 내가 따라나서지 않는 날은 이렇게 사진을 메일로 보내 염장을 긁기 때문이다.


"피자를 주문해 놓았는데 배달을 안 해 준다네요?"
(한 판에 오천 원짜리 피자인데 소식을 하는 우리 네 식구가 먹기에 딱 좋은 양이고 맛도 좋은데 단지 배달해 주지 않는 게 흠이다.)

"응? 그래? 알았어..내가 가서 가져오지 뭐"



"어머나? 볶은 보리가 떨어졌네요? 보리차 끓여야 하는데?"

"응..걱정 마. 내가 가서 사 오지 뭐."



"아빠! 날도 추운데 왜 갑자기 붕어빵이 먹고 싶나 모르겠당. 효효효"

"알았다 이놈아. 내가 지금 사다 줄게"



"내일 구청과 동사무소에 들러서 뗄 서류들이 좀 많네요"

"그래그래..내가 다 떼어 놓을게"



마흔 살 무렵,
그러니까 결혼한 지 15년 무렵까지는 '국가공인방안통수자격증1급'소지자였었는데 어쩌다 잔차를 배우게 되고 마냥 잔차를 끌고 쏘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적응이 안 돼서 자못 툴툴거리던 마누라가 어느 날부터인가 모든 걸 포기하고 영감을 거친 들에 놓아 먹이게  되긴 했으나 영감이 하는 짓을 매사 곱게만 볼 리 만무였다. 그런 내가 지지난 해부터인가 요금을 받고 일해 주는 심부름센터 직원이라도 되듯 고분고분하고 곰살맞게 식구들의 잔심부름을 군말 없이 하게 되었는데 그런 날 보니 그게 또 적응이 안 되는지 마누라와 딸뇬이 자전거를 끌고 심부름을 가는 내 뒷통수 쪽에서  수군대는 말이 들린다.



"얘! 느그 아부지 요즘 이상하시지 않냐?"

"맞아..엄마 정말야 그치?"

"집안에 있는 머리카락 한 올도 안 줍던 양반이 필시 어디가 아픈 겨"

"아픈 건지는 몰라도 암튼 아빠가 제정신은 아닌 거 같아요..크크크"



잔차를 끌고 나가다 말고 "시끄럿!!!!"하면서 고함을 치지만 식구들의 그러한 수상한 눈초리며 의아해하는 말들이 듣기에 결코 나쁘진 않다. 어쨌건 간에 예전엔 오로지 잔차에 미쳐서 마누라 속을 어지간히도 끓였었다.


"여보여보! 이번 주말에 친구들끼리 만나는데 신랑들도 다 나온다네요?"

"와~ 그래? 그거 재미 있겠다. 난 자전거 타러 가니 당신만 혼자겠네?"

"으휴~ 내 말을 말아야지. 자전거 위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인간아"



자전거를 타면서부터 이동하는 일이 재미가 있어졌다. 자전거를 타면서 어지간히 먼 거리가 아니고는 거리에 대한 부담도 없어졌다. 아니 심지어 같은 거리임에도 오히려 차로 다닐 때가 멀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으니 나로서도 의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나는 잘 안다. 비록 차보다는 느리지만 자연과 살을 맞대고 소통하기 때문에 지루한 줄 모르는 것이고 순전히 나의 힘으로 내가 가고 싶은 방향, 속도로 다닐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의 힘일 것이다.

때로 심부름을 하기엔 좀 피곤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때마저 심부름을 다녀올 곳이 좀 멀었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까지 갖는 일이 잦다.  물렁물렁한 얇은 슬리퍼로 클릿 페달을 너무 세게 누르면 발바닥이 아프므로 심부름 모드는 당연히 초절전관광모드로 설정해서 다니게 되는데 바람이 덥건 시원하건 차건 간에 이 모드는 저녁을 먹고 느긋한 기분으로 나서서 산책하는 기분이 들게 만드니 이 또한 별미가 아니겠는가. 기왕 자전거에 미친 거 같은 값이면 마누라나 애들이 보기 좋게 미치는 게 일석이조가 아닐까?ㅡ,.ㅡ


"어머나..여보!"

"왜?"

"우리 아들 좀 봐요. 만화책을 잔뜩 빌려다 보고는
반납도 않고 군대를 갔네요"

"그래? 알았어. 내가 갖다 줄게"


딸아이가 한 번은 조용히 물었다.

"아빠...요즘엔 왜 그렇게 심부름을 잘해요?"

"쉿..자전거 이미지 개선사업의 일환이니라..크크"




나는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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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 청죽님의 글은 보는이로 하여금 항상 미소를 짓게 합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하긴.....
    이젠...노후(??) 걱정 하실 때가 되긴 하셨구먼유~~~~

    그래도 아직.....장은 안보지유???

    (전..트레일러 끌고 가서...오이며...상추며..달걀 한판이며....양상추며....등등..찬거리도 봐와유~)
  • 靑竹글쓴이
    2007.12.7 23:15 댓글추천 0비추천 0
    고맙습니다 ralfu71님.
    요즘도 여전히 자전거 타시죠?

    흐흑흑..풀민님.
    언제 한 번 만나서 깊은 산속으로 잔차를 끌고 들어가
    둘이서 목놓아 울어 봅시다...(엉? 이런 이야긴 쪽지로 해야 하는디..)
  • 엉??....이젠...산에 안간다니깐유~~~
    (또..은근슬쩍....꼬시는...흐흐흐..이젠 안 속아유~~~~)
  • 이미지 개선사업의 일환이시라는(?^^) 말씀이 총각인 제가 생각혀봐도
    일리 있으신,납득이 마이가는 말씀이십니다...
    전...이미지 개선사업의 일환이 보다 더한...
    노예개선사업의 일환모드라도 다 할것 같은디유...(수카이...너...가본담에 말혀라..>.<::)
    오죽하믄 덩치 크신 풀민님께서 저러실꼬...^^:::======33=======33=====33====
  • 靑竹글쓴이
    2007.12.7 23:33 댓글추천 0비추천 0
    수카이님 눈이 보통 예리하신 게 아니구먼유^^

    나야 쬐그만한 체격이니 마누라 매를 무서워할 법도 하지만
    덩치가 남산만한 풀민님으로선 같은 무섬증일지라도
    왜소한 청죽을 보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헉..돌이 너무 큰 게 날아온다....텨~)

    =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
  • 덩치 크신 풀민님께서야 주우시는게 짱똘이시지만,
    청죽님이나 제가 체감하는 짱똘은 짱똘이 아니고 거은 바윗덩이 크기일 겁니다요...>.<::ㅎ
    =======33=====33=====333=====풀민님 지금 아마도 형수님의 야참꺼리 심부름 가신 것 같은듀...조용 하시네유...^^::ㅎ
  • 2007.12.8 00:30 댓글추천 0비추천 0
    때애애애앵~~~!
    (던진 돌에 맞아서 아픕니...다.. ㅜ.ㅜ)

  • 전 아직 멀은거같아 안심이 됩니다 ㅋㅋ
    지금 마음으로서는 평생 자전거는 버리지 않을거 같습니다 ㅎㅎ
    청죽님에 그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
  • 빨래, 요리, 청소는 기본이죠.

    (물론 매일하지는 않습니다. ><)
  • 여성MTB선수를 아내로 맞이하면....ㅡ,.ㅡ;;;;;
  • 재밌따^^;;
  • 2007년 280랠리에서 12등인가 완주한 여자가 어느 시청에 다닌다는데 부부가 완주했더군요.
    골인 지점에서 댄싱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 ㅋㅋㅋ 다리 힘은 세지는데 반해
    다른 힘은 약해지는데 대한
    '체제 적응'이지요^^;;
  • 심부름 안해주면 무어라 하고
    심부름 너무 잘해줘도 이상하게 보고 ......
    어찌 하오리까 ^^;;

    그나저나 자출할때 집근처 슈퍼나 시장에서 이것저것 구입해서
    핸들바에 주렁 주렁 매달고 집에 가는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
  • 청죽님 "마누라 마늘까는 일"로 돈벌이라도 시키겠다고 하신적이 불과
    몇달 전입니다. 그 기개가 어디로 간 것입니까요.........==33===333333333333333
  • 저에비하면...
    저는 잔심부름군 정도가아니라 마님 시내나들이 교회나들이 , 큰아들넘집 정수기 물받아다주기
    아침에 출근시 며느님 출근 퇴근 ,차남 주차장모셔다주기 , 막내 삼남 초딩4년 학교앞 도착도
    좌우지간 또있습니다.
    여보 ! 퇴근할때 마트에서 간장 다시다 라면 또 뭐 뭐 사오시고... 돈도 안줍니다.
    자기돈 아낄려는 전략인지 손자보느라 핑게인지 통모르겠습니다.
    거기에다 사흘도리로 촌에 부모님님에가서 쌀이며 무우며 배추며 된장고추장 파 마늘 등등 (에구
    이정도로 해두구 ) 그것도 큰아들넘꺼까지 2메지씩 .
    가설라무네 또뭐거 있드라 ?
    또 무지많은데 바쁘고 시간두없구 글날라갈까싶구
    모든것을 제 맏은바 소임을 다하면서 해야되니 이거정말 성질이 느긋해질수가 없군요.
  • 또있습니다.
    아침에 늦동이 막내넘 깨우고 밥 먹는데 상관해야지 (식습관이 잘못 ?) 치솔에 치약묻혀줘야지 차남넘 핵교 ( 대핵교 ) 가라고 깨워야지 (안깨우면 무조건 잘것같아) 그러다 내행동에 반대발언하는
    마늘하고 말다툼해야지 아침마다 북새통입니다.
    사는맛은 나지만 무척 피곤합니다.
    상관하고 모른체하라고 마눌님이 핀잔을 주지만 무관심하면 어디그게 가족입니까.
    저도 제나름대론 좀그래보려 노력하지만 잘안되는군요.
    창피하게 모든치부가 다 드러나구 마네유 ~
    자식교육 잘못됐다구 태클걸지 마세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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