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놈은 군대에 가고 마누라와 딸애가 3일 일정으로
어딜 다녀온다고 가면서 평소 놓아먹이던 자전거에 미친 짐승을
집이나 지키라면서 울안의 말뚝에 매어 놓고 가네요.훌쩍~
덕분에 난생 처음 홀로 온전하게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호젓하고 조용한 가운데서 문득
후배 하나가 선물해 준 고급 차(茶)가 생각났습니다.
지독한 커피광일 뿐, 차에 관한 한 무지한 제게
후배가 일본으로 신혼 여행을 다녀오면서 선물해 준 것인데
아까워서 포장도 뜯지 못하고 반 년을 넘게 구경만 했지요.
'그래, 차와 함께 지천명을 맞자'
섬세한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자
그 기나긴 '덖음'의 과정이 함축적으로 드러납니다.
여름에는 물을 먼저 붓고 나서 차를 띄우고
봄가을엔 물을 절반만 붓고 위에 차를 띄우고
차를 띄운 위에 나머지 물을 부어서 채우고
겨울에는 주전자 바닥에 차를 먼저 넣고
끓는 물을 붓는다고 했나요?
김훈 님의 '자전거여행'이란 소설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확실히 맞나 모르겠습니다.
다만 차를 우려내는 물은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이 아니라는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만리 타국의 차밭의 이름 모를 농군이던가
아니면 그 아낙이나 아들 혹은 딸이던가
그들의 혼신을 다한 '덖음'의 과정으로 인하여
수분이 없어진 찻잎을 갈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어찌 보면 담뱃가루보다 더 고와보이던 찻가루가
물을 붓자마자 블랙홀 속에서 튀어나오듯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찻잎들이 온전한 모양으로
숨어 있던 강렬한 다향과 함께 살아납니다.
이국의 차밭의 강렬한 햇빛이 느껴집니다.
차나무를 가꾸던 자연의 손길이있던
이국의 그 바람이 찻잔 속에 되살아나 부는 듯합니다.
'그래..이제 좀 철이 들자..이제 나이가 쉰이다'
점점 자정이 가까워져 오고
차를 음미하며 마음을 다스리면서
더할 수 없이 조용하고 온전하게
새해를 맞고자 합니다...만,,
자정을 5분 남기고 결국,,,
자전거를 끌고 살을 에이는 추위 속으로
맹렬하게 달려나갔습니다.
그렇게 30여 분을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얼굴이 꽁꽁 얼어서야 들어왔습니다.
결국 자전거 안장 위에서 페달을 밟으며
지천명의 새해를 맞았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마누라는 요즘 천리안입니다.
화상이 이러고 쏘다닌 일쯤이야
버~얼~써 눈치채고 있을 겁니다.
=3=33=333=333333333333
잔차인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靑竹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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