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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50~70년대 사진 #3

sura2008.01.09 07:51조회 수 1778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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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기의 시골은 정말 사람들이 많았던것이 지금과 많이 다르군요.
당시엔 어린아이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지금의 농촌과는 상당히 대조적 입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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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60~70년대 사진 #4 (by sura) 추억의 50~70년대 사진 #2 (by s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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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
  • 아래사진 70년대 상가집 풍경이군요.
    집으로 엮은 칸막이 문상하고 저안에앉아 막걸리먹던 생각이....
  • 기둥에 매달려있는 구부러진 물건은 뭘까요?
  • 요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네요~~~~ 수라님 감사^^
  • 윗사진은 추측컨데 화채깐이 아닐까합니다. -상여 보관소.
    공중화장실일리도 없고. 여념집으로 보기엔 너무 작고, 디딜방아깐치고는 천정이 낮고,
  • 저는 박꽃을 참 좋아함니다 위에 사진을보니 제 어린시절 어두운밤에
    대청마루에 안자서 싸리문밖을 보면 바깥마당 재간지붕위에 하얗게핀 박꽃이 달빛을받아서
    더욱 청초한 모양이 참 보기 좋았읍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박꽃을 좋아하는가봐요
    농번기가되면 지금처럼 시계가 흔치안은 시절에 오후 5시쯤되면 박꽃이 활짝 피면
    저녁지을 보리쌀을 삶을 시간이었지요 ^^*
  • 상갓집사진은 70년대같네요. 아이들복장과 합성수지그릇 ---강원도 제고향에선 고무함지라고 불렀슴---으로 보아하니. 호박은 그당시 외래종으로 보입니다.
  • 아래 사진에 산발하신 분은 쪼매 무서운 느낌이 듭니다요....
  • k1337548 님 위의사진은 건물 외부에 있는 화장실임니다
    지나는 길손들이 이용하고 (공중화장실겸) 그리고 농번기에 사용할걸음을 확보하는 이유도되고요 ^^*
    예전에 여염집에서는 건물내의 화장실은 아녀자들이 사용하고
    싸리문밖 요즘 말하면 대문 바깥에 하나 말들어서 남정내들이 이용하곤 하였읍니다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난후 재가 남으면 중요한 여름 농사용 비료의 재료로서 보관도하는곳이지요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생소한 부분이지요 ^^*

    franthro 님 아래사진 머리를 풀어늘어트린 여인은 망자의 가족으로서
    윗사람이나 또는 남편의 죽음에는 머리를 풀어야하는 우리나라 전통이지요
    옛풍습에 사람이 숨을 거두면 제일먼저 망자에 옷을 지붕위에 던지고 죽음을 알리게되며
    아녀자들은 즉시 머리를 풀고 哭 을하며 이점은 상투를한 남자도 동일함니다

    혹여 자녀들이 이사진을 보게 될경우를 생각하여 댓글올림니다 ^^*
  • 초가집 지붕 옆으로 살~짝~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
    굴똑엔 엷푸른 연기가 가는 서풍에 모락모락 춤을 추고
    초가집 지붕위에 노란 박꽃이 핀
    그 위로 이른 반 달 빛이 살포시 내려 앉는다.

    없이는 살았어도
    가족간,형제간의 사랑과 우애는 아주 각별했던 때 였지안나 싶습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 이모님의 자상하신 설명에 화답하자면, 망자가 숨을 거둔 후에 지붕 위로 돌아가신 분의 웃옷을 갖고 올라가서 북쪽을 향해 흔들면서 아무개 복(復)을 세번 외치게 되어 있습지요. 이것을 초혼(招魂)이라고 부르며, 망자의 혼이 북쪽을 향해서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일부 학설에서는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가 북쪽으로부터 왔기때문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압니다. 즉, 우리 조상들이 맨 처음 왔던 그곳으로 다시 간다는 뜻이기에 북쪽을 향해 옷을 흔들면서 돌아오세요 돌아오세요를 세번 부르는 것이지요. 학교때 공부했던 인류학이 민속학도 포괄하는지라 약간 주워들은 바가 있어서 써보았는데 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죽은줄 알았던 사람의 의식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드물게 있는 것을 보면 아주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하면 안될 것도 같습니다. 그래두 산발한 여인네의 모습은 무서워유~~~~~~~~
  • 부정확한 정보를 드리면 안되겠기에 하나 더 부연설명드리자면, 혼이 북쪽으로 간다고 생각한 이유와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를 결부시킨 설명은 제가 어디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북쪽이라는 방위는 북망산, 북망산천이라는 말과 더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학술적으로 분명한 사실도 세간의 반발을 의식하여 발표하지 못하는 것도 많이 있으니까요.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를 추적해보면 분명히 북방계와 남방계의 혼합이 분명한데 정치적으로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를 밀고나가는 분위기다 보니까 예전에는 대놓고 주장을 못했다고 합니다. 민족이라는 개념자체가 애매한 탓도 있겠지요. 요즘에는 TV에서도 많이 다루더군요. 가락국 수로왕의 왕비 허황후가 인도에서 온 사람이라는 다큐멘타리등등...... 아! 그리고 이 초혼의식이라는건 제사의례와 마찬가지로 지방마다 형편이나 여건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므로 저의 설명과 이모님의 설명이 약간 다르다고 해서 읽는 분들께서 의아해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요...
  • franthro 님이 맞을거에요 저는 단지 어린때에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보앗던것이고요
    생각해보면 대륙쪽에서 북방으로부터 남으로이동하지 안았을가 생각되내요 !
    머리푸로있는 모양은 저도 무서워요 ^^*
  • 앗. 저 위에 댓글 싹 지울라고 다시 들어왔는데 이모님보다 한발 늦었네요. 지가 공부하다가 중도에서 그만둔 사람인지라 뭐 하나 제대로 100프로 철저히 아는게 없습니다. 누가 더 자세히 물어보면 결국은 무식이 탄로나게 되어있습니다. 저 방위문제만 해도 틀림없이 음양오행과의 연관성도 있을듯 싶거든요. 이모님께서 이미 다 읽어보셨으니 지우진 않고 내비두겠습니다만...... 제가 괜히 아는체 하는 댓글을 달았다 싶습니다.
  • 전...처녀 구신도 머리 풀믄 이뿌던듀...왜들 그러신데유~^^ㅎ
  • 이쁘기로는 교복귀신이 더 이쁘던데요?
    그런데 가옥의형태나 빈소의 위치, 형태로보니까 영서지방의 풍습은 아닌듯한데 어느지방의풍습인지 알고싶습니다. 빈소가 울안에 있는건 처음봅니다. 영서지방은 울밖에 땅을 약간(30CMM)정도파고 입관한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용고새를틀어서 덮었다가 발인하는게 통상적이거든요.
    객사일경우는 시신을 울안으로 들이지도 아니하고 염 또한 밖에서하여 입관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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