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찍 깨었습니다. 좋은 꿈인지 나쁜 꿈인지 모를, 기억에 안 남은 꿈 때문에
좋은 아침을 맞은 것 같지는 않네요.
창 밖으로 보일 포근하게 눈에 덮인 인수봉을 기대하며 바라본 집 밖의 경관도 내 마음의 표
상인지 섣불리 내린 눈이 모두 녹아 앙상한 가지들만 드러난 나무들뿐
시선을 급히 돌리게 만듭니다.
아버지께 가서 같이 아침식사부터 같이 하고 싶은데 마음뿐인지 시계만 힐끗힐끗 쳐다 볼뿐
컴퓨터 앞에서 텔레비전 앞에서 선뜻 일어나지지가 않습니다.
평소 영화보기를 좋아하던 저는 작년 봄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주연 맷 데이먼 감독 로버트 드니로 총기획제작 프란시스 코폴라 등등 평소 존경까지는
아니겠지만 좋아하던 배우와 감독이 만든다는 한편의 영화소식에 조금 흥분까지 했습니다.
개봉 첫날 늦은 시간에 보았습니다. 3시간이 넘는 런닝타임 탓에 아내는 살짝 졸다가
깨다 가를 반복했지만, 나는 영화 속에 흐르는 또 다른 기운 탓인지 거의 부동자세로
영화가 끝이 날 때까지 눈을 못 떼고 스크린에 집착하고 있는 제 모습에 살짝 놀라기
까지 했습니다.
영화제목인 “Good Shepherd”는 단어의 뜻대로 라면 “좋은 양치기”일수도 있고 신약을
근거로 한다면 “예수님”이라고 표현 하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8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열심히재활훈련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계시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프란시스 코폴라감독의영화 “대부” 시리즈에서 느꼈던 감정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못할미국이나 서구의 명문가에 대한 집착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인지,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기 까지 한 영화의 진행 속에서도 나를 경직시키고 머리 속에
잔 전류들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 이유는 극중 맷 데이먼과 그의 아들의
모습이 자꾸 아버지와 저의 모습으로 오버랩 된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국익을 위해 아들의 약혼녀를 비행기에서 떨어뜨리는 순간엔 분노까지 치미더군요)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까지 20여 년간의 대립 각은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전환을
못 시키는 것을 보면 아버지와 나는 참으로 필요 없는 싸움을 오래도 한 것이지요.
그리 좋지 않은 기억으로 영화를 본 기억은 여러 달 지속 되었습니다.
지난 가을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여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원에는 너무도 마르고 초라한 아버지께서 계셨습니다. 더 이상 병이 호전할 것 같지
않을 그저 병마에 지친 노곤한 인생의 말로의 노인의 모습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누워계셨습니다.
대장암4기에 간으로의 전이 여동생 입에서 나온 소리에 난 생각 자체가 호사스럽게
느껴지더군요. 난 그냥 아버지 곁에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전 아버지를 찾아 갑니다. 일주일간 점심으로 드실 빵과 케익을 사 들고 가서
머리 감겨 드리고 인공항문 청소 해드리고 그리고 몇 마디 대화를 하고
다시 집으로 옵니다.
뜨거운 관계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일 뿐 다른 생각은 못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아버지의 맑은 눈빛이 기억나서 나를 괴롭힙니다.
‘ 괜찮다고 난 괜찮다고 너도 이젠 잘 살라고 ~~~’
현기영님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의 인용 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 ~ 그리고 아버지를 잃음으로써 나는 아무 완충 없이 죽음과 직접 연관 지어졌다.’
Ps: 오랜만에 글을 썼는데 마음 한구석이 시원해집니다.
몸 속의 오래 된 독기를 빼내서 인지 싶습니다.
술 한잔 하며 주정부린 기분이기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좋은 아침을 맞은 것 같지는 않네요.
창 밖으로 보일 포근하게 눈에 덮인 인수봉을 기대하며 바라본 집 밖의 경관도 내 마음의 표
상인지 섣불리 내린 눈이 모두 녹아 앙상한 가지들만 드러난 나무들뿐
시선을 급히 돌리게 만듭니다.
아버지께 가서 같이 아침식사부터 같이 하고 싶은데 마음뿐인지 시계만 힐끗힐끗 쳐다 볼뿐
컴퓨터 앞에서 텔레비전 앞에서 선뜻 일어나지지가 않습니다.
평소 영화보기를 좋아하던 저는 작년 봄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주연 맷 데이먼 감독 로버트 드니로 총기획제작 프란시스 코폴라 등등 평소 존경까지는
아니겠지만 좋아하던 배우와 감독이 만든다는 한편의 영화소식에 조금 흥분까지 했습니다.
개봉 첫날 늦은 시간에 보았습니다. 3시간이 넘는 런닝타임 탓에 아내는 살짝 졸다가
깨다 가를 반복했지만, 나는 영화 속에 흐르는 또 다른 기운 탓인지 거의 부동자세로
영화가 끝이 날 때까지 눈을 못 떼고 스크린에 집착하고 있는 제 모습에 살짝 놀라기
까지 했습니다.
영화제목인 “Good Shepherd”는 단어의 뜻대로 라면 “좋은 양치기”일수도 있고 신약을
근거로 한다면 “예수님”이라고 표현 하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8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열심히재활훈련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계시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프란시스 코폴라감독의영화 “대부” 시리즈에서 느꼈던 감정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못할미국이나 서구의 명문가에 대한 집착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인지,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기 까지 한 영화의 진행 속에서도 나를 경직시키고 머리 속에
잔 전류들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 이유는 극중 맷 데이먼과 그의 아들의
모습이 자꾸 아버지와 저의 모습으로 오버랩 된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국익을 위해 아들의 약혼녀를 비행기에서 떨어뜨리는 순간엔 분노까지 치미더군요)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까지 20여 년간의 대립 각은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전환을
못 시키는 것을 보면 아버지와 나는 참으로 필요 없는 싸움을 오래도 한 것이지요.
그리 좋지 않은 기억으로 영화를 본 기억은 여러 달 지속 되었습니다.
지난 가을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여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원에는 너무도 마르고 초라한 아버지께서 계셨습니다. 더 이상 병이 호전할 것 같지
않을 그저 병마에 지친 노곤한 인생의 말로의 노인의 모습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누워계셨습니다.
대장암4기에 간으로의 전이 여동생 입에서 나온 소리에 난 생각 자체가 호사스럽게
느껴지더군요. 난 그냥 아버지 곁에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전 아버지를 찾아 갑니다. 일주일간 점심으로 드실 빵과 케익을 사 들고 가서
머리 감겨 드리고 인공항문 청소 해드리고 그리고 몇 마디 대화를 하고
다시 집으로 옵니다.
뜨거운 관계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일 뿐 다른 생각은 못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아버지의 맑은 눈빛이 기억나서 나를 괴롭힙니다.
‘ 괜찮다고 난 괜찮다고 너도 이젠 잘 살라고 ~~~’
현기영님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의 인용 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 ~ 그리고 아버지를 잃음으로써 나는 아무 완충 없이 죽음과 직접 연관 지어졌다.’
Ps: 오랜만에 글을 썼는데 마음 한구석이 시원해집니다.
몸 속의 오래 된 독기를 빼내서 인지 싶습니다.
술 한잔 하며 주정부린 기분이기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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