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민님글을 읽는 재미에 빠져…그 글솜씨에 눌려 이글을 어쩔까하다…
걍 씁니다.
79년 12월 31일.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그대로 군 내부도 어수선했는데..
그 긴장감이 17시,
부대앞을 지나가는 막차에 분명히 한 병사가 내려야하는데…
휴가 보낸 대대장 당번은 귀대를 않고, 온 부대는 신경이 곤두 서 있다.
부산이 고향인 박이병
이병을 일병으로 바꿔달고 휴갈 보냈는데…미기한것이다.
여차여차하여
걔 집 근처를 아는 내가 차출당하고
이병이 휴가가는 경우가 없었던 터라 이병계급장을 다 떼고 일병계급장을 단다.
내가 단게 아니고 곁에있던 병장, 상병 고참들이....자대 배치 달포만에 벌어진 일
비번이 내려오지 않아 두 장의 휴가증을 만들지는 못하고 31일자 휴가증을 끊어 일단
민통선 이남까지는 일단 빠져 나가야 1월1일 새벽에 서울까지 갈 수 있으므로...
일단 31일일자 비표로...
(나랑 같이갈 장교가 인사장교고, 포병 부대라 행정이 대대단위로 이루어지므로...이럴땐 참 편한 곳이다.) 암튼 *단리까진 갔다.
이등병
그리ㅣ고 전방구경 한달짜리의 신출내기 병사의 눈에는 모든 것이 긴장이다.
오로지 단 하나의 즐거움은 사제밥을 먹는 거...
잠은 인사장교집에 자고
80년 1월1일
새벽 첫차를 타기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인사장교와 나는 길을 편이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밤새 내린 눈으로…
==부대에 있는 사병들은 지금쯤 제설작업으로…..
첫차부터 연착이었고, 포천근처 검문소에서 걸려 하차를 했다.
왜 어제 비표로 오늘 내려오느냐의 질문과…
어제 부대에서 나왔으나…인사장교집에서 한 잔하고 오느라 오늘 오게되었다의 답 사이에
묘한 기운을 느꼈는지..
암튼 그렇게 확인을 위한 절차를 밟기위해 온 사방에 전화를 해대는데…
어느 한 곳도 전화는 연결되지않고 불통이었다
대충 한 시간여 흘렀을까…?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 머쓱해진 헌병은 다음 차량을 세우고
기사아저씨에게 서울까지 가는데….어쩌고 저쩌고해
서울에 왔으나…
신정 연휴 첫날
교통대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속도로의 폭설로 인해 모든 고속버스불퉁,
모든 사람이 역으로 모여들어 서울역은 이미 전쟁터고
인사장교와 나는 용산역으로 가서 TMO를 들러 겨우 열차표를 구한다.
이 열차표 조차도 군용열차칸이 아니라…일반 객실의 입석…ㅋㅋ
용산역에서 출발한 이 열차는 영등포역에서 승객을 태워야 하는데
출입구 발판을 들어 올릴수 없을 정도로 꽉찬 승객들로
발판을 들어야 문을 열 수 있는데…
요즈음의 신도림역 출근 시간대와 비슷하거나…그 보다
더 복잡한 상황이라고 표현하느느게 맞겠다.
이 복잡한 열차는 어캐애캐하여 출발은 했고
열차의 운행 간격이 꼬인 탓에 섰다가다를 반복하는데…
화장실은 지적인데 화장실을 갈 수가 있나…
손을 둘 곳이 없어 들었다가 손잡이를 잡았다가…까지는 괜찮은데..
내려 놓을 수가 없다.
손을 내리자니…이상한 곳으로 가야하고
들고있자니 팔이 아프고…ㅋㅋ
X레이 찍는 자세로 서서 흔들리는 열차의 리듬에 몸을 맞긴지 4시간…
대전을 지나자 이제 팔이 풀렸다.
화장실도 갔다. 허리를 휘감는 통증도 함께…
게획대로라면 부산에는 3시쯤 도착해야 했는데…부산 도착이 밤9시
그 열차속 혼란탓에 인사장교는 정신이 혼미해진 듯…
공중전화 부스에서 연신 동전을 넣어가며…통화를 끝낸 인사장교…휴~~하는 한 숨과 함께
미기했던 박이병은 부대로 귀대했다고
쩝
탐정놀이는 안해도 되는데…
1월5일까지 찍혀있는 내 휴가증은 우짜모좋노….?
내일 그냥 부대로 끌려가기앤, 이 기회가…
슬쩍
포대장님(포대장이 인사장교를 겸하고 있으니..)
자고 가야 하는 거라면…울 집이 마산이니 울집으로 갑시더..
고속버스터미널엔 아는 여자애가 있어서 표 끊기도 좋을 거라고…
또 울집이 터미널 근처라고..
“안돼”라고 할 것같던 포대장은 힘없이 “그러자…”
됐다.
뭔 핑계를 대더라도 5일까진 놀겠다
마산
군대간 자식이 집에 왔으니....그 것도 뜬금없이
집에는 난리가 났다. 포대장이 함께 왔으니...
극진한 대접을 받은 포대장
다음날 아침
고속버스 터미날엔 서울가는 고속버스표가 단 한장밖에 없었다.
그 날 출발하는 모든 서울행 고속버스에…
밀감을 좋아하는 포대장의 팔에는 밀감 한 봉지가 안겨져 있었고
등 뒤로 날아가는 말…
“포대장님 5일에 귀대하겠습니다.~~”
그날밤
고속버스 매표원인 그 여자애랑…
한 잔을 나눴다…
그리고 괜스레 박이병이 고마웠다.
걍 씁니다.
79년 12월 31일.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그대로 군 내부도 어수선했는데..
그 긴장감이 17시,
부대앞을 지나가는 막차에 분명히 한 병사가 내려야하는데…
휴가 보낸 대대장 당번은 귀대를 않고, 온 부대는 신경이 곤두 서 있다.
부산이 고향인 박이병
이병을 일병으로 바꿔달고 휴갈 보냈는데…미기한것이다.
여차여차하여
걔 집 근처를 아는 내가 차출당하고
이병이 휴가가는 경우가 없었던 터라 이병계급장을 다 떼고 일병계급장을 단다.
내가 단게 아니고 곁에있던 병장, 상병 고참들이....자대 배치 달포만에 벌어진 일
비번이 내려오지 않아 두 장의 휴가증을 만들지는 못하고 31일자 휴가증을 끊어 일단
민통선 이남까지는 일단 빠져 나가야 1월1일 새벽에 서울까지 갈 수 있으므로...
일단 31일일자 비표로...
(나랑 같이갈 장교가 인사장교고, 포병 부대라 행정이 대대단위로 이루어지므로...이럴땐 참 편한 곳이다.) 암튼 *단리까진 갔다.
이등병
그리ㅣ고 전방구경 한달짜리의 신출내기 병사의 눈에는 모든 것이 긴장이다.
오로지 단 하나의 즐거움은 사제밥을 먹는 거...
잠은 인사장교집에 자고
80년 1월1일
새벽 첫차를 타기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인사장교와 나는 길을 편이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밤새 내린 눈으로…
==부대에 있는 사병들은 지금쯤 제설작업으로…..
첫차부터 연착이었고, 포천근처 검문소에서 걸려 하차를 했다.
왜 어제 비표로 오늘 내려오느냐의 질문과…
어제 부대에서 나왔으나…인사장교집에서 한 잔하고 오느라 오늘 오게되었다의 답 사이에
묘한 기운을 느꼈는지..
암튼 그렇게 확인을 위한 절차를 밟기위해 온 사방에 전화를 해대는데…
어느 한 곳도 전화는 연결되지않고 불통이었다
대충 한 시간여 흘렀을까…?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 머쓱해진 헌병은 다음 차량을 세우고
기사아저씨에게 서울까지 가는데….어쩌고 저쩌고해
서울에 왔으나…
신정 연휴 첫날
교통대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속도로의 폭설로 인해 모든 고속버스불퉁,
모든 사람이 역으로 모여들어 서울역은 이미 전쟁터고
인사장교와 나는 용산역으로 가서 TMO를 들러 겨우 열차표를 구한다.
이 열차표 조차도 군용열차칸이 아니라…일반 객실의 입석…ㅋㅋ
용산역에서 출발한 이 열차는 영등포역에서 승객을 태워야 하는데
출입구 발판을 들어 올릴수 없을 정도로 꽉찬 승객들로
발판을 들어야 문을 열 수 있는데…
요즈음의 신도림역 출근 시간대와 비슷하거나…그 보다
더 복잡한 상황이라고 표현하느느게 맞겠다.
이 복잡한 열차는 어캐애캐하여 출발은 했고
열차의 운행 간격이 꼬인 탓에 섰다가다를 반복하는데…
화장실은 지적인데 화장실을 갈 수가 있나…
손을 둘 곳이 없어 들었다가 손잡이를 잡았다가…까지는 괜찮은데..
내려 놓을 수가 없다.
손을 내리자니…이상한 곳으로 가야하고
들고있자니 팔이 아프고…ㅋㅋ
X레이 찍는 자세로 서서 흔들리는 열차의 리듬에 몸을 맞긴지 4시간…
대전을 지나자 이제 팔이 풀렸다.
화장실도 갔다. 허리를 휘감는 통증도 함께…
게획대로라면 부산에는 3시쯤 도착해야 했는데…부산 도착이 밤9시
그 열차속 혼란탓에 인사장교는 정신이 혼미해진 듯…
공중전화 부스에서 연신 동전을 넣어가며…통화를 끝낸 인사장교…휴~~하는 한 숨과 함께
미기했던 박이병은 부대로 귀대했다고
쩝
탐정놀이는 안해도 되는데…
1월5일까지 찍혀있는 내 휴가증은 우짜모좋노….?
내일 그냥 부대로 끌려가기앤, 이 기회가…
슬쩍
포대장님(포대장이 인사장교를 겸하고 있으니..)
자고 가야 하는 거라면…울 집이 마산이니 울집으로 갑시더..
고속버스터미널엔 아는 여자애가 있어서 표 끊기도 좋을 거라고…
또 울집이 터미널 근처라고..
“안돼”라고 할 것같던 포대장은 힘없이 “그러자…”
됐다.
뭔 핑계를 대더라도 5일까진 놀겠다
마산
군대간 자식이 집에 왔으니....그 것도 뜬금없이
집에는 난리가 났다. 포대장이 함께 왔으니...
극진한 대접을 받은 포대장
다음날 아침
고속버스 터미날엔 서울가는 고속버스표가 단 한장밖에 없었다.
그 날 출발하는 모든 서울행 고속버스에…
밀감을 좋아하는 포대장의 팔에는 밀감 한 봉지가 안겨져 있었고
등 뒤로 날아가는 말…
“포대장님 5일에 귀대하겠습니다.~~”
그날밤
고속버스 매표원인 그 여자애랑…
한 잔을 나눴다…
그리고 괜스레 박이병이 고마웠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