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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추억

탑돌이2008.02.02 18:17조회 수 625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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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에 설이 찾아 오면
가장 눈에 띄는게 옹기 종기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다

추운 겨울 동안 양식이 모자라 굶다시피하던
사람들도 설때만은 남에 뒤지지 않게
떡 벌어지게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하게 아궁이를 달구어 대기 때문이다

이런 즈음

힘께나 쓰는 동네 사내들은 산에서 땔감을 한짐씩
지고 내려오다 꼭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무거운 지게를 바치고 땀을 식히곤 하였는데

담배를 피우는놈
뒷집 처녀 생각에 빠진놈
아직도 힘이 남아 뒷다리를 잡고 씨름을 하는 놈...
별별 짓을 다하다가 제풀이 꺽이면
말 없이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굽어 보곤 하였다

피어 오르는 연기의 색깔만 보고도
만드는 음식이며 땔감의 종류까지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저 외딴집 지붕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연기는
조청을 달구는 은근한 장작불임이 분명하고

시뻘건 불똥이 언듯 언듯 보이도록 잰불을 때고 있는 저 집에서는
커다란 가마 솥에 두부를 만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 시퍼런 연기만 맥없이 피어오르는 저 집 새댁은
게으른 남편이 어거지로 해다 놓은 청솔가지를 태우고 있으렸다!

조용히 마을을 굽어 보는 사내들은
저녁거리로 나올 음식을 상상하며 군침을 삼키는디..
아까 그 게으른 남편은 매운 연기에 눈물깨나 흘리고 있을 마누라
생각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ㅎㅎ

갖은 음식으로 배가 튀어나온 사내들은
꿀냄새 맡은 개미들 처럼
마을 사랑방으로 꾸역 꾸역 모여 드는데

이때 쯤이면 꼭, 타지로 돈벌이 나갔던 선배, 친구들이
두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이제나 저제나 동네 친구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겄다

그동안 대처에서 보고 들은 사연들로 촌놈들을 기죽일 요량을 잔뜩 하고...

나는 그때(70년대 초)까지 TV는 물론이요 기차조차 구경한적이 없었는데
기차의 구조나 작동 원리는 이해를 하였지만
기껏, 라디오로 "손오공" 연속극에 빠져 있던 나에게는
TV라는 물건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때 쯤 설빔을 장만하러 읍내 장에 나가셨던
어머니나 할머니가 돌아 오시면
안방에서는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지곤 하였는데

샘 많고 욕심 많은 여동생은
엄마가 사주신 꽃 신발에는 눈도 주지 않고
언니의 빨간 목도리에 눈독을 들이면서
엄마는 언니만 생각한다는 둥 운운하며 투정을 부리다가
아버지의 호통에 움찔 욕심을 거두어 들이기 일쑤렸다 ㅋㅋ

자정이 훨씬 지나 겨우 동네가 잠잠해 지면

외양간에서는
초저녁에 먹었던 쌀겨로 끓인 여물을
다시 꺼내어 잘근잘근 되새김질 하며
사람들 얘기를 못듣는 척 엿듣던 암소도

이제는 자야 겠다며 포근한 짚더미에 몸을 눞혔다

그렇게 설 전야는 깊어만 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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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스님! 내그럴줄 알았쮸~ (by 하늘기둥) 문제의 중국교자의 광고사진 입니다. (by s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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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대단한 글솜씨 이십니다.
    70년대 초에 농촌에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연재 부탁드려도 딜런지....

    저야 내일 수입이 얼마나 될까?
    폭음탄을 몇개살까. 뭐 그생각하고 밤을 지샜었죠.
    요사이는 폭음탄 구경 해본지 오래됐습니다.
  • 마치..
    정 지 훈님의 "향수"라는 시를(poem)
    물씬 연상케 하는 글 입니다...^^

    70년,80년대의 시골의 모습과 설이 다가 올 때의 향토색이 짙은
    글이 그 때를 연상케 하시니
    마치 그 때로 돌아가 있는 느낌을 줍니다.
    감사히 잘 읽었구요...저도 지속적인 연재를 부탁 드려보는 1인 입니다요...^^
  • 탑돌이글쓴이
    2008.2.2 22:23 댓글추천 0비추천 0
    저희 연배야 어릴적 추억이 만권의 책에도 다 못담을 만큼 많지만
    도시에서 태어나 시계추처럼 학원과 학교를 오가는 제 자식들이 걱정입니다요

    산아지랑이님 과찬이십니다
    스카이님도 풍성한 설 맞으세요....
  • 마치...예전 중학교 시절.....국어책에 씌여졌을 듯한 글체.....
    간결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문장이 너무나 돋보이십니다.....

    70년대라봐야... 도심지에서 자란 저로서는 그저 동경(??)이나 할 정도의 정서임에도....
    그때 그 마을의 설날 전의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

    근데...ㅎㅎㅎ 게으른 남편....청솔가지 땔감에 눈물 깨나 흘릴 아낙네...에서....
    왜 이리 슬쩍 마음이 찔리는지........
  • 사실 이 글에 감탄해서 로긴을 했습니다.^^
    비슷한 때의 산촌의 서정을 빼어나고 수려한 표현력으로
    서술하셨습니다. 글을 보다가 저마저 그시절로 녹아들어갔습니다.
    원래 글을 잘 올리시지 않는 편이었지만 저는 알아보았지요.ㅋㅋㅋ

    다만, 저는 명절 전야까지는 스무날 정도 전부터
    손을 꼽아가며 기다렸지만 정작 명절에는
    체하거나 배탈이 나서 고생한 기억이 더 많습니다.ㅠㅠ
    연 중 고기 구경이라고는 통 못하다가 차례상의 고깃점들을
    허겁지겁 먹다 보니 십중팔구는 탈이 났기 때문이었지요.
    저와 제 밑의 동생이 특히 그랬습니다.
  • 자게가 문인들 모임으로 변모하고 있군요. ^^;;;
  • 탑돌이글쓴이
    2008.2.3 09:10 댓글추천 0비추천 0
    풀민이님 군대물 재밋게 읽고 있습니다
    전 다른 환경에서 복무했지만 상상은 갑니다.

    청죽님, 명절이 오면 먹을 것이 지천이어서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개들도 골라서 먹을 정도였죠, 아마 ==333======333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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