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가 지렁이와 동거하는 이야기
자전거를 좋아해서, “노란 자전거”라는 별명을 쓰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하고 상상만 하는 소시민입니다.
어느 날인가 지렁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전에 환경 스페셜에서 지렁이를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을 본 이후에 머리 속에 깊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애완동물이란 걸 몇 번 키워 본적이 있습니다. 마당에서 키우다 떠나 버린 강아지부터 대학교 시절 소라게까지. 하지만 애완 동물이란 이름이 얼마나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인간 중심적인지 느낀 이후로 다시는 애완용이란 이름으로 동물을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지렁이를 키우게 되었을까? 애완용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의해,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서 좋고 지렁이에게는 물고기 밥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것보다 좀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은 여우가 말했듯 길들임과 길들여짐의 관계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나는 나의 생활을, 지렁이는 상자 속 어둠 안에서 지렁이만의 영역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공존이고 달리 말한다면 요새 말하는 계약 동거 비슷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결혼 후 분가는 했지만 주말 부부인 상황도 한 몫 한 듯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언감생심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징그러운 지렁이를 한 두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를 집에서 키운다니요?
직장 문제로 저는 수원에서 안사람은 울산에서 장모님과 살고 있기 때문에, 일주일이나 2주마다 가족 상봉을 하곤 했습니다. 방학때가 되면, 중학교에 근무하는 안사람이 수원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때문에 얼굴 볼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크게 싸운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까지 기억 중에 가장 크게 싸운 일은 지렁이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해 7월, 여름 방학이 되어 안사람이 임신 5개월의 몸을 이끌고 장모님과 수원으로 올라 왔습니다. 그전에도 지렁이를 치우라는 압력은 있었지만 제가 꿋꿋하게 버티자 그럼 눈에만 띄지 않게 하는 걸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자 지렁이들이 처리하지 못한 음식물에서 원하지 않았던 작은 생명체들이 자라기 시작해서 집안 여기 저기 날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초파리였습니다. 가뜩이나 깔끔한 성격에 뱃속의 아기로 민감해 있던 안사람에게 너무나 커다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모님이 계시니 크게 싸우지는 못하고 서로 감정만 상해서 잠자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긴장감 속에 출근하고 오후가 되어 돌아와 보니 2주 정도 계시기로 하셨던 장모님께서 단 하루만에 울산으로 내려가신 겁니다. 저희 두 사람의 암울한 분위기를 느끼시고 답답하셨던 모양입니다.
저녁을 차려 주어도 안 먹고 이불을 덮어 쓰고 있던 안사람이 옷을 주섬주섬 입고 집을 나섭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지. 울산에서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갈 데도 없을 텐데...’
두 시간이 지나고 네 시간이 지나고
‘지갑은 있나? 자동차 열쇠는 가져갔네!’
‘설마 울산으로 내려 간 건가?’로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새벽 2시 다섯 시간 만에 들어오는 안사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다음 방학 때까지 지렁이를 버리던지 집 밖에 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 방학에는 우리 아들이 태어나고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조용히 넘어 갔습니다. 하지만 올 여름은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휴가 나온 처남에게 운전시켜서 올라오는데 큰일 났습니다. 이놈의 초파리와 이름 모를 곤충들이라도 치워야 할 텐데 말입니다.
지렁이가 좋은 점은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로 한다는 것과 지렁이의 배설물로 건강한 흙을 만들어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렁이가 사는 집 안에 뿌리 내린 식물이 싹까지 틔운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뚜껑을 덮어 주어서 빛 하나 들어 오지 못하는 공간인데도 말입니다. 껍질 깍으며 잘라 버린 감자싹에서 자란 줄기, 콩나물 대가리에서 자란 것으로 추정되는 잎파리, 그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식물들...
이 좋은 흙으로 집안의 화분을 분갈이 해주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식물들이 나타나 궁금증을 일으킵니다. 분명 제가 먹고 버린 야채나 과일일텐데 이 식물의 이름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 식물의 종류를 알고 계시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꼭 알고 싶습니다.
제가 지렁이를 키운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징그러운 지렁이”를 주로 말씀하십니다. 주로 저희 가족들 - 저희 안사람, 부모님 - 과 여자분들. 다른 하나는 가족도 없고 심심한 ‘기러기 아빠’의 괴이한 취미 생활. 물론 지금 주위에 계신 분들은 제 이야기를 통해 지렁이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지렁이를 한 번 키워보세요”라는 이야기에 성큼 “한번 해볼까?” 하며 호감을 보이시는 분도 거의 없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의 이상한 취미생활”일 뿐이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에게도 “타인의 이상한 취미생활”일 뿐인가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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