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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이야기 (다른 곳에 올렸던 글)

노란자전거2008.03.13 14:55조회 수 1176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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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지렁이와 동거하는 이야기
자전거를 좋아해서, “노란 자전거”라는 별명을 쓰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하고 상상만 하는 소시민입니다.
어느 날인가 지렁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전에 환경 스페셜에서 지렁이를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을 본 이후에 머리 속에 깊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애완동물이란 걸 몇 번 키워 본적이 있습니다. 마당에서 키우다 떠나 버린 강아지부터 대학교 시절 소라게까지. 하지만 애완 동물이란 이름이 얼마나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인간 중심적인지 느낀 이후로 다시는 애완용이란 이름으로 동물을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지렁이를 키우게 되었을까? 애완용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의해,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서 좋고 지렁이에게는 물고기 밥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것보다 좀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은 여우가 말했듯 길들임과 길들여짐의 관계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나는 나의 생활을, 지렁이는 상자 속 어둠 안에서 지렁이만의 영역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공존이고 달리 말한다면 요새 말하는 계약 동거 비슷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결혼 후 분가는 했지만 주말 부부인 상황도 한 몫 한 듯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언감생심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징그러운 지렁이를 한 두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를 집에서 키운다니요?
직장 문제로 저는 수원에서 안사람은 울산에서 장모님과 살고 있기 때문에, 일주일이나 2주마다 가족 상봉을 하곤 했습니다.  방학때가 되면, 중학교에 근무하는 안사람이 수원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때문에 얼굴 볼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크게 싸운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까지 기억 중에 가장 크게 싸운 일은 지렁이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해 7월, 여름 방학이 되어 안사람이 임신 5개월의 몸을 이끌고 장모님과 수원으로 올라 왔습니다. 그전에도 지렁이를 치우라는 압력은 있었지만 제가 꿋꿋하게 버티자 그럼 눈에만 띄지 않게 하는 걸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자 지렁이들이 처리하지 못한 음식물에서 원하지 않았던 작은 생명체들이 자라기 시작해서 집안 여기 저기 날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초파리였습니다. 가뜩이나 깔끔한 성격에 뱃속의 아기로 민감해 있던 안사람에게 너무나 커다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모님이 계시니 크게 싸우지는 못하고 서로 감정만 상해서 잠자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긴장감 속에 출근하고 오후가 되어 돌아와 보니 2주 정도 계시기로 하셨던 장모님께서 단 하루만에 울산으로 내려가신 겁니다. 저희 두 사람의 암울한 분위기를 느끼시고 답답하셨던 모양입니다.
저녁을 차려 주어도 안 먹고 이불을 덮어 쓰고 있던 안사람이 옷을 주섬주섬 입고 집을 나섭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지. 울산에서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갈 데도 없을 텐데...’
두 시간이 지나고 네 시간이 지나고
‘지갑은 있나? 자동차 열쇠는 가져갔네!’
‘설마 울산으로 내려 간 건가?’로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새벽 2시 다섯 시간 만에 들어오는 안사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다음 방학 때까지 지렁이를 버리던지 집 밖에 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 방학에는 우리 아들이 태어나고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조용히 넘어 갔습니다. 하지만 올 여름은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휴가 나온 처남에게 운전시켜서 올라오는데 큰일 났습니다. 이놈의 초파리와 이름 모를 곤충들이라도 치워야 할 텐데 말입니다.
지렁이가 좋은 점은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로 한다는 것과 지렁이의 배설물로 건강한 흙을 만들어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렁이가 사는 집 안에 뿌리 내린 식물이 싹까지 틔운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뚜껑을 덮어 주어서 빛 하나 들어 오지 못하는 공간인데도 말입니다. 껍질 깍으며 잘라 버린 감자싹에서 자란 줄기, 콩나물 대가리에서 자란 것으로 추정되는 잎파리, 그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식물들...
이 좋은 흙으로 집안의 화분을 분갈이 해주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식물들이 나타나 궁금증을 일으킵니다. 분명 제가 먹고 버린 야채나 과일일텐데 이 식물의 이름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 식물의 종류를 알고 계시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꼭 알고 싶습니다.
제가 지렁이를 키운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징그러운 지렁이”를 주로 말씀하십니다. 주로 저희 가족들 - 저희 안사람, 부모님 - 과 여자분들. 다른 하나는 가족도 없고 심심한 ‘기러기 아빠’의 괴이한 취미 생활. 물론 지금 주위에 계신 분들은 제 이야기를 통해 지렁이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지렁이를 한 번 키워보세요”라는 이야기에 성큼 “한번 해볼까?” 하며 호감을 보이시는 분도 거의 없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의 이상한 취미생활”일 뿐이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에게도 “타인의 이상한 취미생활”일 뿐인가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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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고래 딸? ㅠㅠ (by 靑竹) 짜수방? (by 靑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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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저는 지렁이 만진손으로 그냥 김치안주 집어먹습니다.
    낚시터에서 ... 사랑스럽진못해도 지렁이 자체는 깨끗합니다.
  • 지렁이는,
    콘드로이친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우렁,달팽이와 더불어 노화방지에 좋습니다.
    특이한건,
    자웅동체 라는 것이죠...^^
  • 수카이님 왜 제 뒤만 따라 댕긴대유 ~ㅋㅋㅋㅋ
  • 처음 낚시 배울때 처음엔 버벅 거리다가..담 부턴 아무느낌없이 손톱으로 댕갈 잘라서 바늘에
    끼웠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깨끗하고 고마운 녀석이죠..하지만 이빨은 무서워요..
  • 큰 성님도...원....지가 금산 큰 성님 좋아허니께
    집강아지 쥔 따라 댕기듯 ((((살방~살방~))) 꼬리 흔들믄서 따라 댕기는거여유...^^
    요즘,
    마이 힘드신 걸로 압니다요.
    부디 힘 내시고 ...이럴 때 일 수록 더 힘을 내셔야 합니다...큰..성님....
    홧~~이~~팅~~유~!!! ㅣ^^/~♥
  • 노자님, 지렁이들의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저희집 음식물도 좀 드리겠습니다..^^ 언제 자전거를 같이 한번 타야 하는데 말이죠..저는 요새 작은 새를 키워볼까..고민중에 있습니다..^^
  • 후배와 함께 시골로 낚시인지 놀이인지를 갔던 개그맨 전유성씨가

    "에이~ c~ 뭔 모기가 이렇게 많아?"

    하고 투덜거리는 후배를 보고는 그 특유의 말투로 그랬답니다.

    "야~ 니가 모기들이 사는 곳으로 온 거야"


    인간이 숨을 쉬기 위해 필요한 산소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 언뜻 나무가 우거진 숲 같지만 사실은 흙 속의 미생물이라고 합니다. 혐기성 미생물이 살아가면서 뱉어내는 산소의 양이 60퍼센트가 훨씬 넘어 70퍼센트 가까이 된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바다속의 미생물들이 만들어 내는 산소도 무시할 수 없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흙은 점점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여가고 산은 하루가 다르게 개발이란 미명하에 눈에 띄게 잘려나가며 바닷물은 인간들이 지독하게 배출하는 공해물질들로 무서운 속도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바닷물의 경우 그게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하면 이미 극지방에서도 오래 전부터 그 썩어가는 징후들이 보인다고 합니다.

    어쩌면 인류가 혐기성 생물들처럼 산소가 없이도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할른지는 모르겠지만 노란자전거님의 글을 보니 인간에게 영역을 빼앗기기만 하는 지렁이에게 뜻밖의 영역을 내어 주신 모습 같아서 감동입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엊그제 교황청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은 죄악'이라 결론짓고 '십 억 카톨릭 신자들부터 환경을 지켜나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발표했더군요.
  • 이쯤에서 "산아지렁(?)이"형님께서 등장 하셔야 하는디....ㅡ,.ㅡ;;;;;;;
  • 뽀스가 대신 등장할게...
    지렁이가 지렁이판에서놀면...ㅣㄷ져ㅚㅍㄱ9ㄷㄱ거3ㅏㄷ재ㅑㅓ새 ㅐ;


    ===3=3=33
  • 집에 있는 화분 중에 영양이 풍부한 것이 없다보니
    가끔은 생각하는 방법이지만 용기는 나지 않는군요.

    초파리만 아니면 키워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토마토 싹은 알겠는데 다른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ㅎㅎ
  • 노란자전거글쓴이
    2008.3.14 12:34 댓글추천 0비추천 0
    구름선비님 ...토마토 싹을 알아 보시네요. 사진이 작아서 구분이 힘든데....^^
    그리고 지렁이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음식을 주면 초파리는 생기지 않습니다.
    지렁이는 하루에 자기 몸뚱아리 만큼 정도 먹습니다.
    청죽님...좋게 보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듀카티님...원래 목적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였는데 지금은....ㅠ.ㅠ
    싸모님 몰래 구석에서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늘기둥님...아직 낚시를 못 해봐서...혹시 나중에 지렁이 필요하시면 무료로 분양해 드립니다.

    그 밖에 혹시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이해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자웅동체면 무슨 쪼꼬렛/사탕 주고 받거나 자장면 시켜먹는 날은 어쩌죠?ㅎㅎㅎ
    죄송..-_-;;
  • 저희 집에도 몇마리 살고 있는데
    별도로 입양한거는 아니고
    화분 흙에 묻어와 서식하더군요
    물을 많이 주면 숨이 막히는지 거실마루 바닥으로 넘어와서
    아내가 기겁을 하곤 하지요

    또 기분이 좋으면 표토층에 똥을 잔뜩 싸놓곤 하지요
    마치 두저지들이 흙을 혜쳐놓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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