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민이님을 뵈니 예전에 제가 댓글을 달면서 20년전 사병으로 군대생활중 영관급 장교에게 경례도 안하고 개겼던 사연을 언제 기회가 있으면 게시판에 쓰겠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생각나서 다시 들어왔습니다.
저의 보직은 군단 통신단 전자과의 행정병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타자병이었지요. 이 보직은 사무실의 장교들이 낮시간동안 하루종일 끄적끄적 문서를 기안해서 퇴근할때 툭 던져주면서 내일까지 깨끗하게 타자쳐놔라 그러면 석식후 야간근무 신청을 하고 사무실로 내려와 챠트병이었던 제 고참과 함께, 때로는 저 혼자서 그 다음날 아침까지 깨끗하게 문서작업을 해놓는 일의 매일같은 반복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사무실로 내려와 야간근무를 하는 것보다 더 고역이었던 것은 내무반 고참들과 중대 인사계 선임하사의 갈굼이었는데, 매일 저녁 사무실로 내려가기 전에 신고를 할때마다 이것들이 빠져서 내무반 일 안하려고 내려간다는 욕을 들어야 했으니 부대에서 지휘계통을 따지자면야 중대장과 통신단장이었지만, 실생활에서는 전자과 장교들과 중대장 및 중대 인사계의 틈바구니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여기서 욕먹고 저기서 욕먹는 생활의 연속이었으니(절대로 그 둘이서 직접 쑈부는 안봅니다. 애꿎은 사병만 갈구지요) 저 혼자 생각하기를 전쟁나면 대체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하느냐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때도 많았습니다.
전자과 사무실에는 학군 출신 장교와 육사 출신 장교가 있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육사출신 장교가 출세욕이 더 많았습니다. 매일 아침 통신단장은 군단으로 올라가 일일보고를 하는데 그런 문서들은 통신단 전자과, 즉 타자병인 저와 차트병인 제 고참의 손을 밤새 거쳐야 아침에 그 분들 손에 쥐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그날도 밤샘 근무끝에 지시받은 문서작업을 완성하고 아침에 출근한 육사출신 장교에게 저와 제 고참이 직접 점검을 받고 있었는데(보통은 전자과 선임하사의 손을 거쳐 문서와 차트가 건네지지만 그날 아침은 우리가 밤을 새우고 그 장교가 일찍 출근하여 직접 건네주는 자리였습니다) 차트병인 고참이 갑자기 코피를 흘리더군요. 그런데 그 장교가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XX야 너네 코피흘리는건 문제가 아닌데 이 문서가 군단장에게 어쩌구 저쩌구 그 다음말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너네 코피흘리는건 문제가 아닌데라는 앞엣말만 기억이 나는군요. 이때부터 이 장교는 저한테 완전히 인간같지 않은 자로 찍혔습니다. 말을 그딴 식으로 하는게 장교의 자격이 있느냐는게 저의 논리였는데 물론 이같이 어수룩하고 어리버리한 생각은 <어린 사병>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뒤늦게 깨달았습니만 그때는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사실 전쟁중에 우리편 일개 중대나 대대병력을 미끼삼아 적의 연대급이나 사단급을 잡으려는 작전도 다반사 아니겠습니까? 그리되면 우리편이야 아무 이유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하다가 개죽음만 당하는 것이고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게 군대라는걸 깨닫지 못한채 그저 저 인간은 나쁜 놈이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후 그 육사출신 장교는 타사단 통신대대장으로 영전을 가고 팀스피리트 훈련중 우리 막사를 찾아왔더군요. 자기가 모시던 전자과장에게 인사하러 왔었나봅니다. 저는 당연히 경례를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척 <쌩깠습니다>. 저한테는 이미 나쁜 놈으로 찍혔거든요. 전자과장과 얘기를 끝마치고 막사를 나가던 그 육사출신 장교, 통신대대장이 제게 한마디 하더군요. 내가 너 군기교육대 보내거나 영창에 보낼 수도 있지만...어쩌구 저쩌구... 그러고 그냥 끝났습니다.
사람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마 그 시절에 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이미 타부대 지휘관으로 영전되어 간 상태에서 이전에 모시던 상급자에게 인사차찾아온건데 어린 놈 하나 붙잡고 소란떨어봐야 좋을것 없다고 생각한건지...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건지... 그 자세한 속마음이야 제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면 저의 그 무모함에 스스로 한심한 쓴웃음을 짓곤 합니다.
잠수한다고 했으니 다시 글올리는데 맛들이면 안되는데 이렇게 또 하나 올리고 갑니다. 풀민이님만큼 재미있게 쓰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약속은 지켰네요. 모두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세요.
저의 보직은 군단 통신단 전자과의 행정병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타자병이었지요. 이 보직은 사무실의 장교들이 낮시간동안 하루종일 끄적끄적 문서를 기안해서 퇴근할때 툭 던져주면서 내일까지 깨끗하게 타자쳐놔라 그러면 석식후 야간근무 신청을 하고 사무실로 내려와 챠트병이었던 제 고참과 함께, 때로는 저 혼자서 그 다음날 아침까지 깨끗하게 문서작업을 해놓는 일의 매일같은 반복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사무실로 내려와 야간근무를 하는 것보다 더 고역이었던 것은 내무반 고참들과 중대 인사계 선임하사의 갈굼이었는데, 매일 저녁 사무실로 내려가기 전에 신고를 할때마다 이것들이 빠져서 내무반 일 안하려고 내려간다는 욕을 들어야 했으니 부대에서 지휘계통을 따지자면야 중대장과 통신단장이었지만, 실생활에서는 전자과 장교들과 중대장 및 중대 인사계의 틈바구니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여기서 욕먹고 저기서 욕먹는 생활의 연속이었으니(절대로 그 둘이서 직접 쑈부는 안봅니다. 애꿎은 사병만 갈구지요) 저 혼자 생각하기를 전쟁나면 대체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하느냐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때도 많았습니다.
전자과 사무실에는 학군 출신 장교와 육사 출신 장교가 있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육사출신 장교가 출세욕이 더 많았습니다. 매일 아침 통신단장은 군단으로 올라가 일일보고를 하는데 그런 문서들은 통신단 전자과, 즉 타자병인 저와 차트병인 제 고참의 손을 밤새 거쳐야 아침에 그 분들 손에 쥐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그날도 밤샘 근무끝에 지시받은 문서작업을 완성하고 아침에 출근한 육사출신 장교에게 저와 제 고참이 직접 점검을 받고 있었는데(보통은 전자과 선임하사의 손을 거쳐 문서와 차트가 건네지지만 그날 아침은 우리가 밤을 새우고 그 장교가 일찍 출근하여 직접 건네주는 자리였습니다) 차트병인 고참이 갑자기 코피를 흘리더군요. 그런데 그 장교가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XX야 너네 코피흘리는건 문제가 아닌데 이 문서가 군단장에게 어쩌구 저쩌구 그 다음말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너네 코피흘리는건 문제가 아닌데라는 앞엣말만 기억이 나는군요. 이때부터 이 장교는 저한테 완전히 인간같지 않은 자로 찍혔습니다. 말을 그딴 식으로 하는게 장교의 자격이 있느냐는게 저의 논리였는데 물론 이같이 어수룩하고 어리버리한 생각은 <어린 사병>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뒤늦게 깨달았습니만 그때는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사실 전쟁중에 우리편 일개 중대나 대대병력을 미끼삼아 적의 연대급이나 사단급을 잡으려는 작전도 다반사 아니겠습니까? 그리되면 우리편이야 아무 이유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하다가 개죽음만 당하는 것이고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게 군대라는걸 깨닫지 못한채 그저 저 인간은 나쁜 놈이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후 그 육사출신 장교는 타사단 통신대대장으로 영전을 가고 팀스피리트 훈련중 우리 막사를 찾아왔더군요. 자기가 모시던 전자과장에게 인사하러 왔었나봅니다. 저는 당연히 경례를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척 <쌩깠습니다>. 저한테는 이미 나쁜 놈으로 찍혔거든요. 전자과장과 얘기를 끝마치고 막사를 나가던 그 육사출신 장교, 통신대대장이 제게 한마디 하더군요. 내가 너 군기교육대 보내거나 영창에 보낼 수도 있지만...어쩌구 저쩌구... 그러고 그냥 끝났습니다.
사람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마 그 시절에 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이미 타부대 지휘관으로 영전되어 간 상태에서 이전에 모시던 상급자에게 인사차찾아온건데 어린 놈 하나 붙잡고 소란떨어봐야 좋을것 없다고 생각한건지...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건지... 그 자세한 속마음이야 제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면 저의 그 무모함에 스스로 한심한 쓴웃음을 짓곤 합니다.
잠수한다고 했으니 다시 글올리는데 맛들이면 안되는데 이렇게 또 하나 올리고 갑니다. 풀민이님만큼 재미있게 쓰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약속은 지켰네요. 모두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세요.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