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이제 다 성장하고
조금 있으면 다 제갈길로 갈 게 뻔해서
조그만 사내아이를 하나 입양했습니다.
마누라의 동의를 얻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내아이는 다름 아닌
3년생 까만색 숫놈 푸들이랍니다.
갑장께서 키우던 푸들이
두 해 전에 새끼 두 마리를 낳았을 당시,
아주 도도한 갈색 털을 가진 앙증맞은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었는데
저와 딸아이는 뛸듯이 기뻐했으나
마누라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한 적이 있는데
결국 강아지 두 마리 중 요 까만 푸들이 이웃집에 입양되어 갔다가
2년을 넘게 키우던 그 집에서 키우지 못할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반품(헉) 아니, 원 주인인 갑장님 댁으로
되돌리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답니다.
그동안 갑장께서 키워오던 어미와 누이가
분양됐다 돌아온 녀석이 제 새끼와 형제인 줄 모르는지
횡포와 구박이 극심하더랍니다.
그 안스러움을 보다 못한 갑장께서는
외출할 때 녀석을 차에 싣고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귀엽게 생긴 녀석인지라
지나가는 행인들이 다가와 귀여워서 쓰다듬기라도 하면
갑장께서는
"키우고 싶으면 데리고 가세요"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며칠에 한 번은 녀석을 보면서
가랑비에 옷이 젖듯 녀석과 정이 깊어가던 중이라
그런 갑장의 말을 들을 때마다
주인에게 이렇듯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이 불쌍한 녀석이 요즘 얼굴을 익혔다고
나를 이렇게 따르는데 다른 곳으로 떠나갈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막막하고 답답해오더군요.
며칠 전에 무작정 키우겠다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외출 중인 마누라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강아지 데려왔어"
"그래요?"
"응..오다가 사료 좀 사와"
"알았어요"
저만 나이를 먹는 게 아니었나 봅니다.
마누라가 선뜻 사료를 사오겠다고 대답하는 게
어디가 꼭 아파서 실언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에 굶주렸는지
요놈이 잘 때는 꼭 제 팔을 베고 자는데
사람처럼 배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는
네 활개를 펴고 자는 모습이 실로 가관입니다.
개껌을 주었더니 가지고 노는데
제가 "어디보자...요거 내가 가져가야지" 하면서
개껌을 손으로 집는 시늉을 하면서 슬슬 다가가면
번개같이 달려들어 턱으로 개껌을 덮어 누르면서
저의 손을 제 머리로 밀어냅니다.
가끔 야심한 밤에 잔차를 끌고 나가
아파트 주변을 30여 분 정도 산책하듯 라이딩하는데
요녀석 탓에 요즘은 그런 일상에 변화가 왔습니다.
잔차 대신 녀석을 끌고 산책을 나가는 일이 그것입니다.
다른 견공들의 정보가 있음직한 곳에 가면
여지없이 한 쪽 다리를 척 들고 영역 표시를 하더군요.
그 후로 녀석이 영역 표시를 해 놓은 나와바,,,아니,
구역을 녀석과 함께 매일 일정한 시각에
정기적으로 점검 순찰하고 있습니다.
일곱 군데인데 저도 그 코스를 외우기 때문에
서로 죽이 잘 맞는 산책입니다.
저도 영역 표시를 같이 할까도 생각했지만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보기라도 하면
쫓겨날 것 같아 삼가하고 있습...(으이구~)
푸들은 달리기를 참 좋아하더군요.
녀석의 달리기를 위해 같이 뛰었더니 너무 숨이 찹니다.
잔차질을 하는 것과 뛰는 건 전혀 사정이 다르더군요.
제가 고글만 써도 외출하는 걸 아는지
안아 달라고 제 발로 저의 다리를 긁어 당기고
난리를 치고 떼를 씁니다.
아마 갑장께서 몇 달 동안 키우면서
괴롭히는 어미개와 누이개의 횡포 속에
제놈을 떼어놓고 외출하던 때의 갑장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 애처롭더군요.
처음 며칠 현관 쪽에서 볼일을 보는 통에
애를 먹었지만 이젠 지정해 준 화장실(신문지)을 이용할 줄 아네요.
외출했다가 돌아왔을 때
녀석의 극적인 환대는 실로 감동입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로 뛰고 세로 뛰고
이 방으로 저 방으로 번개같이 뛰어다니고
소파위로 아래로 베란다로 날아다니며 부산을 떱니다.
주는 사랑에 비해 지나치게 과분한 환영인 셈이죠.
견공을 무척 싫어했던 마누라의 변심(?) 탓에
실로 오랜만에 견공을 키우게 됐습니다.
무척 귀엽네요.
조지 부시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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